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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날
음력을 여전히 주요 월력으로 쓰고 있는 절집에서 설날은 아주 중요한 명절이다. 옛날 우리네 산업이 농업에 치중해 있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그 때는 설날과 정월 대보름과 추석이 얼마나 큰 명절이었던가.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서양식 연호인 서기를 쓰게 되면서 우리의 명절은 차츰 형식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추세임을 인정하기는 해도 서운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비단 나이 드신 어른들 뿐만은 아닐 것이다. 현대문명을 외면할 수도 없고 또 외면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래도 절집에서는 여전히 음력을 주력으로 쓰고 있다.
설날이 다가오면 모두들 마음이 들뜨게 된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3일간의 휴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 게
妄道始終分兩頭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 하지만
冬經春到似年流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試看長天何二相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는 것을…
浮生自作夢中遊
영광 불갑사에서 출가하여 금화스님의 법을 이은 학명스님(鶴鳴, 1867-1929)의 게송에는 분별심을 내지 말라고 하고 있지만 중생들이 모여 사는 이 사바세계에서 그 말씀대로 살기는 어려운 법. 그저 늘 마음에 새겨 두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때가 많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을 사람들의 설날 풍경이지만 절집은 꼼짝하지 않는다. 공동체 생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추석과는 달리 설날은 겨울안거 중에 돌아온다. 100여 명의 대중이 석달 동안 지지고 볶으면서 살고 있는 중이다.
설이 올 때쯤이면 겨울도 이제 끝물이 된다. 석달 안거 중 두달 반이 지나 걸망 싸서 산문을 나설 해제도 보름 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기나긴 겨울의 터널 속에서 화사한 봄의 출구를 보는 기분이니 스님들의 마음이 들뜨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납월(臘月) 그믐 전날. 사중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고 강원 학인 스님들이 사흘 동안 그 자리를 대신한다. 매표소, 주차장, 서점, 법당, 종무소, 그리고 경비 소임에 모두 30여명의 스님들이 교대로 지킨다.
설날의 제 1라운드는 섣달 그믐날 선원에서 벌이는 윷놀이다. 4인이 1조가 되어 풀 리그로 시합을 하기로 했다.
선원에서 8개조가 나왔고 종무소에서도 찬조금을 낸 공덕으로 한 팀을 만들어 참가하기로 했다. 이 세기의 결전(?)을 위해 선원의 열중(悅衆)스님과 청중(淸衆)스님은 방장스님을 위시해 사중의 어른스님과 뒷방 스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찬조금과 찬조품을 얻었다.
그믐 날. 오전에 비구계 포살(布薩) 의식이 있었고 오후 1시에는 방장스님의 법문이 있었다. 드디어 오후 6시. 죽비 3성으로 예불을 마친 선원 대중은 수선사 큰방에 빙 둘러앉았다. 증명에는 선원장스님, 대회장에는 유나스님, 심판장에는 열중스님이 만장일치로 뽑혔다.
먼저 청중스님이 오늘의 상금과 상품 내역을 발표했다. 대회장인 유나스님이 격려 말씀과 개회선언을 했다.
조 편성에 들어갔다. 선덕스님조, 유나스님조, 열중스님조 등 8개조가 짜였고 종무소에서 주지스님을 중심으로 1조를 짜 들어가니 모두 9개조가 되었다. 윷판은 3군데에서 벌어졌다.
대웅전에서는 저녁예불과 독경 후 입정시간인데 송광사에서 제일 높은 터에 위치한 수선사에서는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온 도량이 떠들썩한다. 서서히 명절 분위기가 달구어지고 있었다.
풀 리그전이니 각 팀마다 8번 경기를 가졌다. 한 판이 끝날 때마다 칠판에 전적이 기록되었다. 3시간 30분간의 열전 끝에 전적이 가려졌다.
1등은 7승 1패의 선덕스님팀. 2위는 마지막에 선덕스님 팀을 이겨 6승 2패를 기록한 지전(持殿) 팀에게 돌아갔다. 3위는 청중스님 팀과 다각(茶角)팀, 그리고 우리의 종무소팀 등 세 팀이나 되어 다시 재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청중스님 팀이 3위, 우리는 4위가 되었다.
시간은 어느덧 10시가 되었다. 선원에서 내려오니 법당 앞 경비실에서 경비를 맡고 있는 학인이 나와 인사한다. 선원에서 들려온 함성으로 덩달아 마음이 들떴을 것이다. 방으로 들어오니 다리와 어깨가 뻐근하다.
내일이 설날. 새벽에는 전 대중이 법당에서 예불 모시고 제불보살님께 통알(通謁)을 드리는 날이다. 그 일을 위해 자정이 다 되도록 컴퓨터로 법당 좌복 배치도를 그렸다. 내일은 또 오후에 총림배를 놓고 탁구시합이 있을 예정이다. 나도 종무소를 대표하여 뛰어야 한다.
정월 초하루, 설날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이 돌아왔다. 새벽 3시, 도량석을 도는 학인 스님도 새해 첫 날을 의식했는지 다소 긴장된 목소리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1년 중 유일하게 방장스님을 비롯한 어른스님들과 선방스님들까지 대웅전에서 예불을 드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법당으로 들어갔다. 자리배치가 잘 되어 있는가 점검을 하기 위해서다. 신도님들도 20여 분 와 있다. 법고가 끝나고 대종 소리가 울리니 대중들이 하나 둘 모인다. 방장스님도 오셨고 멀리 감로암 국제선원 대중도 왔다.
예불이 시작되니 장엄한 소리가 삼천대천세계를 울려 퍼지는 듯 했다. 강원 찰중스님이 낭랑한 목청으로 이산스님 발원문을 낭송했고 이어서 반야심경 독송. 오늘은 금강경 독송과 입정은 없다. 대신 삼세 제불보살님들께 세배를 드리는 날이다. 동당스님이 창호지에 크게 써온 글을 노전스님이 읽고 대중이 삼배씩 올린다.
통알(通謁)
복청대중 일대교주 석가세존전 세알삼배
伏請大衆 一代敎主 釋迦世尊前 歲謁三拜
복청대중 시방삼세 일체불보전 세알삼배
伏請大衆 十方三世 一切佛寶前 歲謁三拜
복청대중 교리행과 일체법보전 세알삼배
伏請大衆 敎理行果 一切法寶前 歲謁三拜
복청대중 문수보현 관음세지전 세알삼배
伏請大衆 文殊普賢 觀音勢至前 歲謁三拜
복청대중 차사최초창건주 혜린선사 원력수생 중흥조도 해동불일 보조국사 여시차제 십오국사 위작 증명법사 지공 나옹 무학 삼대화상전 세알삼배
伏請大衆 此寺最初創建主 慧璘禪師 願力受生 中興祖道 海東佛日 普照國師 如是次弟十五國師 爲作 證明法師 指空 懶翁 無學 三大和尙前 歲謁三拜
복청대중 대소선교 일체승보전 세알삼배
伏請大衆 大小禪敎 一切僧寶前 歲謁三拜
통알이 끝나면 어른스님들께 세알을 드린다. 먼저 제일 어른이신 방장스님께 전 대중이 삼배를 올린다. 그 다음은 어간(御間) 어른 스님들께 세알 삼배. 이것으로 법당에서의 의식은 모두 끝났다. 이제 법당을 나와 각 단으로 새해 첫 인사를 드리러 다닐 차례다.
관음전, 승보전, 지장전, 영산전, 약사전, 사자루를 참배하고 선원 안에 있는 응진전, 설법전, 국사전, 풍암영각을 돌아 개울 건너 있는 화엄전과 불조전에 인사드리고 다시 큰방 부처님께 절을 올리니 어느덧 5시10분이다. 설날답게 날이 차다. 손발이 차갑다. 잠시 방으로 돌아와 몸을 녹인 후 지장전으로 갔다.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시식이 5시 30분에 시작된다. 차례 후 가사장삼을 수한 채 아침 공양을 먹었다. 오늘 아침은 당연히 떡국이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먹는 떡국이지만 역시 설날 아침에 먹는 떡국 맛이 제일이다. 강사스님은 우스개 소리로 떡국 먹을 때마다 한 살씩 먹었다면 지금쯤 아마 500살도 넘었을 것이라고 한다.
아침 먹고 나오면서 중간 그룹의 스님들이 세배를 같이 다니기로 했다. 법당에서 한 것은 전체 세배이고 본격적인 세배는 이제부터다. 혼자 따로 가는 것 보다 백 배 재미있다. 혼자 털래 털래 다니는 것도 지루하고 세뱃돈 받는데도 단체로 가야 말하기가 좋다.
강주스님, 학감스님, 강사스님, 관음전 기도스님, 총무스님은 우연히 을미(55년)생 갑장이다. 내가 그 아래고 재무스님이 제일 젊다. 방장스님께 세배 드렸으나 세뱃돈은 받지 못했다. 주지스님은 조그만 인삼엑기스 드링크 한 병씩 돌리는 것으로 때운다. 하긴 삼직스님들과 원주, 강주스님은 어제 미리 금일봉을 받았다.
유나스님에게서 만원을 받으니 첫 수입이다. 한주스님과 선원장스님으로부터는 5천원씩 받았다. 이제 우리는 세뱃돈을 받기에 어색한 나이가 되었다. 동당스님은 한과로 세뱃돈을 대신했고 도감스님은 환갑 전에는 절대 줄 수 없노라고 버티신다. 회주스님과 광원암스님으로부터 만원씩 받아 올해 총 수입은 4만 원이다.
세배 올 사람을 계산해 보니 1인당 5천원씩 준다해도 8만 원은 필요하다. 수입보다 이젠 지출이 많은 세월이 온 것을 보니 나도 나이를 먹기는 먹었구나. 정말 불혹의 나이가 되긴 되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마음은 언제나 열 일곱 봄날 같은데…….
엊저녁부터 잠을 설쳤기 때문에 피곤하여 뒷방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시계를 보니 12시. 재무스님의 전화가 왔다. 탁구시합이 1시에 있으니 빨리 오라고. 종무소 팀으로는 나와 재무스님 둘이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선원에서 개울 건너면 버섯밭이 있고 그 안에 천막 탁구장이 있다. 점심시간 후 쉬는 시간에 선원스님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월등하게 뛰어난 사람이 없이 비슷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항상 서로 오늘은 내가 이겼니 졌니 하며 붐비는 곳이다.
시합은 단식과 복식으로 나뉘어 벌이기로 했다. 선원, 강원, 종무소 이렇게 세 팀이다. 개인전은 2명씩 나오니 모두 6명이다.
유나스님과 선덕스님 그리고 선원장스님까지 입회를 했고 비공인 국제심판 간병(看病)스님이 심판을 봤다. 단식은 강원의 본각스님이 5전 전승으로 1위를 차지했고 재무스님이 2위를, 나와 열중스님과 청중스님은 3승2패로 동률이 되었으나 재대결에서 내가 다 물리쳐 3위를 했다. 복식은 종무소 팀이 1위를, 선원 팀이 2위를, 강원이 3위를 했다.
저녁에 강원에서 윷놀이 한다고 초청이 왔다. 강원에서는 세 팀(치문반, 사집반, 사교반)이 나왔고 선원에서 어제 우승한 팀과 3위 팀이 왔다. 종무소 팀까지 모두 6팀. 학인들이라 어제 선원처럼 치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규칙을 가르쳐 주면서 경기를 했다. 결과는 싱겁게 선원 두 팀이 1, 2위를 차지했고 사집반이 3위, 종무소는 4위에 머물렀다.
그리고 다시 뒷방에서 개인전이 벌어졌다. 강사 스님 방에서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네 팀이 빙 둘러앉아 윷판을 벌렸다. 이틀 동안 4번에 걸쳐 벌어진 이 윷판에서 나는 17연패 후 3연승, 그리고 다시 1패를 기록했다. 비록 패가 많았지만 1년 중 유일하게 밤 10시가 넘도록 떠들며 지내는 즐거움이 있었다.
미당의 싯구처럼 잔치는 끝났다. 초사흘부터 선원에서는 일주일동안 용맹 신중기도를 방장실인 삼일암 옆 응진전에서 한다. 24시간 목탁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6명의 스님이 4시간씩 돌아가며 기도한다. 한해 동안 나라와 사중의 안녕은 기원하는 의식이며 풀어진 신심을 다지는 뜻도 있다.
강원에서는 초이레인 25일부터 해제날인 정월 대보름까지 지장전에서 용맹기도를 한다. 인원이 많으니 하루 1시간씩 배당해도 24명이면 충분하다. 밤에 목탁소리가 나면 시끄러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장가같이 들려 잠이 더 잘 온다는 사실을 아는 이 몇이나 될까.
봄은 그래서 한 걸음 더 성큼 다가오고… (9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