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9월초만 되면 여치가 나타난다. 더운 여름에는 보기도 힘든데 이때는 도량 이곳 저곳에서 수없이 많은 여치를 볼 수 있다. 갑자기 이렇게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단 하나. 죽기 위해서다.
아니 죽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죽을 때가 되면 밖으로 나오는 습성 때문일 것이다. 힘이 없어 사람이 다가가도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쓰러지는 모습이 안쓰럽다. 마당은 물론이고 법당 안에도 날아 들어오고 방문에도 여기 저기 붙어 있다.
여치의 죽음은 가을의 전주곡이다. 땅에 쓰러져 있는 여치는 개미들의 좋은 겨울 식량 감이어서 파랗게 널려있던 여치는 시간이 지나면 한 토막씩 분해가 되어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때가 되면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최후를 받아들이는 여치가 위대해 보인다. 사람만큼 수명에 대한 욕심이 많은 중생도 없을 것이다.
초가을. 아침의 여린 햇볕. 쌀쌀한 기온. 그렇다, 이젠 만물이 침잠해야 하는 가을의 길목이다. 하지만 나는 계절을 잊은 지 오래 되었다. 그저 더우면 여름인가 보다 하고 지내다가 요새처럼 밤이면 쌀쌀한 날씨 때문에 가끔 군불을 때주지 않으면 아침에 온몸을 으스스하게 하는 방구들의 냉기를 느낄 때 비로소 또 세월이 지나가고 있구나 한다.
겨우내 잎이 다 떨어진 나무에 물이 오르고 연두색부터 시작한 초록의 행진을 지켜본 것이 엊그제였는데 이젠 산꼭대기로부터 내려오는 붉은 기운(언뜻 보면 노란 기운)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가을 햇볕은 또 얼마나 투명한가. 억새도 슬슬 머리를 풀어 헤칠 준비를 하고 있지만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맴도는 느낌이다.
<목요산악회>를 조직한 것이 올 봄, 3월초로 기억된다. 멤버는 세 사람. 나와 강사 일귀(一歸)스님 그리고 관음전 1000일 기도법사 황운(黃雲)스님이다. 산에 살면서 운동부족을 느끼다니. 우리는 그때 분노(?)하고 있었다.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일귀스님은 강의다 법회다 다니다 보니 운동부족이 되었고 나는 사무 보느라 그렇고 기도법사 스님은 하루 4번 기도하느라 그랬다나.
매주 목요일 오후 1시. 송광사에서 굴목재 산장까지 왕복코스로 했다. 송광사에서 굴목재 산장을 거쳐 선암사까지 6.6km이고 굴목재 산장은 그 중간에 있으니 왕복 7km 정도 되는 거리다. 우리가 정상코스나 선암사까지 가는 코스를 잡지 않은 이유가 있다.
정상은 힘이 든다. 어쩌다 한 번 가는 것은 모르지만 매 주 가기에는 무리다. 이 코스(송광사-정상-배바위-선암사)는 보통 안거 중간인 반살림 때 등반하는 코스다. 선암사까지 내쳐 달리는 코스는 다시 송광사로 오기 위해서 선암사에서 차를 타고 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어쨌거나 시작이 반이라고 출발은 산뜻했다. 나는 나대로 나중에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비하려는 마음이 생겼다. 2주일을 걸어서 가면 영산 안나푸르나가 장엄하게 보이는 곳이 나온다고 한다. 혼자 묵묵히 걸어가는 여행이야말로 참다운 여행이라는 것을 작년 중국여행에서 깨달았다. 길은 곧 진리 아니겠는가! 노자도 석가도 공자도 예수도 <길>과 <진리>는 동의어라고 설파했다.
아직 겨울의 모습 그대로인 첫 산행에서 우리는 무척 힘들었다. 그 동안 다리가 많이 풀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열심히 굴목재 산장을 향해 간 이유는 그 곳에 가면 먹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굴목재란 말 그대로 재, 즉 고개란 뜻이다. 선암사까지 가려면 두개의 재를 넘어야 한다. 송광사 굴목재와 선암사 굴목재. 그 두 고개 사이는 당연히 계곡이 있고 그 계곡 안에 산장이 있다.
산장이라고 하니 지리산 장터목산장 같은 숙소가 연상되나 그곳은 숙소가 아니라 음식점이다. 도토리묵도 있다. 감자전, 파전, 상치전, 부추전 등이 있고 구수한 꽁보리밥도 있다. 상추에 꽁보리밥을 싸 먹는 맛이라니! 막장도 맛있지만 3년 묵은 짜디짠 묵은지 함께 싸먹는 맛도 일품이다.
된장에 찍어 먹는 풋고추. 계곡은 늘 물이 철철 흐르고 있다. 넓은 터 이곳 저곳 큰 느티나무 아래 자리 잡은 평상 위에 둘러앉아 먹고 있노라면 새삼 식탐(食貪)이 오욕락(五慾樂)의 하나가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디 이뿐이랴. 우리하고는 별 관계가 없지만 이곳에서 만드는 농주는 화학약품을 쓰지 않는 오리지널이다.
맛이 조금 싱거운 듯 하나 조계산의 물맛만큼 감칠맛이 나서 땀 흘린 나그네의 피로를 풀어주는 보약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송광사 땅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집 주인 내외는 송광사 스님이라면 끔찍이 생각해 준다.
팔팔한 강원(講院) 시절에는 큰절에서 뛰어오다시피 하면 30분만에 보통 오는 코스다. 그렇다고 아무 날에나 올 수는 없다. 낮에 쉬는 시간은 1시간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요일 오후는 강의가 없어서 올만 하지만 일반 등산객이 붐비는 날이어서 마땅치 않다. 그래서 보통 보름에 한번 있는 삭발일을 이용한다. 그 날은 오후 강의가 없기 때문이다.
돈도 별로 없으니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을 수도 없거니와 실제로 스님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겨우 감자전과 도토리묵 정도. 오신채인 파 마늘을 먹지 않으니 감자전도 양념간장이 아닌 맨 간장을 찍어 먹게 마련이다. 농주라니!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말아라. 곡차라고 해도 안 된다. 차는 차고 술은 술이니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집에서 뱀탕과 백숙을 팔았다. 그러나 명색이 부처님 땅인데 살생을 조장하는 음식을 팔아서 되겠느냐는 송광사의 권유에 따라 지금은 순수한 채식 위주로 장사하고 있다.
이 집의 음식은 정말 맛이 있다. 도시의 선술집, 얄팍한 상혼에 찌든 사람은 그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침이 고일 것이다. 꼭 먹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은 아니지만 언제나 기다리는 꽁보리밥과 3년 묵은 묵은지를 잊을 수 없어 매 주 산행을 했다.
가는데 1시간, 1시간 먹으며 쉬고 ,다시 돌아오는데 1시간. 넉넉잡아 3시간이면 좋았다. 한 코스는 지겨울 수 있으므로 가끔 다른 코스를 갔는데 바로 천자암 코스다. 이번 가을 수련법회 때의 공식코스로 지정했다. 내가 제일 선호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이 코스의 좋은 점은 어느 정도만 올라가면 산허리를 타고 소나무 숲길을 따라 콧노래를 부르며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시간은 30분 정도 더 걸린다. 그러나 천자암을 들러 천연기념물 88호인 멋있는 쌍향수를 볼 수 있다. 힘이 덜 들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은 다 따라올 수 있다.
매 주 등산할 때마다 우리는 산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칙칙한 옷에서 연두색 옷으로, 푸른 정장으로 산은 그렇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공공연히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나 이 모임은 6주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나는 수련법회에 본격적으로 매달리게 되어 빠지는 때가 많았다. 날은 점점 더워졌고 다른 두 스님도 이런 저런 이유로 한 두 번 빠지더니 언제부터인가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한사람이라도 빼먹지 말고 가는 것으로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간 경우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셋이 가는 것과 둘이 가는 것이 다르고 혼자 가는 것은 더 다르다. 여행이라면 혼자도 좋다. 하지만 원족(遠足)을 하는 것은 조금 다르다. 빤히 보이는 코스. 두런두런 얘기도 하며 가는 즐거움. 먹을 것을 앞에 두면 혼자는 또 얼마나 쑥스러운가. 꽁보리밥인들 즐겁게 먹을 수 있을까.
어찌되었거나 모임은 해산식도 없이 끝나고 나도 한참 산행을 쉬다가 5차 수련법회가 끝나고 나서야 겨우 시간을 낼 수 있었다.
5차 때 자원봉사자 5명을 인솔하여 예의 천자암 코스를 따라 가서 산장에서 부침개와 꽁보리밥을 실컷 먹은 후 각자 평상 하나씩 차지하고 시원한 바람 속에서 한숨 자고 왔다. 1996년 8월 9일 금요일, 거의 넉 달 만이었다. 그리고 이번 11월에 갈 예정이니 또 석 달의 간격.
조금 한가하면 답사 차 미리 한 번 다녀와야겠다. (96.10)
사진 https://raonyss.tistorycom/m/2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