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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k5. 팔루트 - 알루바리 캠프 - 고르케이
Phalut (3600m) - Alubari Camp (3125m) - Gorkey (2500m)
팔루트 톱 파노라마
산닥푸 트레킹의 마지막 하일라이트, 팔루트 톱 일출을 보러 간다. 통루 일출, 산닥푸 일출, 토쿰밸리 파노라마에 이은 네 번째 파노라마 감상이다. 그렇게 산닥푸 트레킹에는 여러 번 히말라야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
새벽 5시 출발하여 50여 미터 위에 있는 꼭대기에 올랐다. 시간은 20여 분 걸렸지만 추운 새벽 서리가 깔려 있는 산길이라 제법 숨이 찼다. 어제 오후에 일몰을 보기 위해 이곳에 왔던 분들의 체력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역시 이곳에서 보는 히말라야의 일출이 장관이다. 산닥푸보다 더 좋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주로 인도 내국인) 산닥푸로 가지 않고 바로 이곳으로 올라오고 있다. 우리 하산길에서도 올라오는 몇 팀을 만났다.
멀리 서쪽 쿰부 히말부터 히말라야 동쪽 끝(우리에게는 바로 앞 북쪽)까지 일망무제 파노라마가 펼쳐져 있다. 팔루트 톱이야말로 최고의 히말라야 전망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팔루트 톱에서 복쪽(시킴)으로 4km 더 가면 싱갈릴라 패스(3690m)가 나오고 그곳에서 2km 북쪽에 폭테이 다라 톱(Pektey Dara Top, 3620m)이 있다. 그곳에서 보는 풍광은 더 좋을 것 같다.
현지 여행사 프로그램에는 바그도라에서 다르질링으로 가지 않고 시킴 힐레이(Hilley)까지 150km를 차량으로 8시간 이동 후 트레킹을 시작하여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며 폭데이 다라 톱 - 싱갈릴라 패스 - 팔르트 톱 - 고르케이로 내려오는 7일 일정을 제시하고있다. (아래 지도 참조)
싱갈릴라 패스를 넘는 팔루트 트레킹. 산닥푸 트레킹은 일정에 따라 다양한 루트를 만들 수 있다. (Singalila Pass with Phalut Trek)
시킴(다르질링 포함)의 구르카인
예전 시킴 왕국은 동쪽으로 부탄, 서쪽으로 네팔, 남쪽으로 인도, 북쪽으로 티베트 등 동서남북으로 다른 나라와 국경을 두고 있는 내륙국가여서 외세의 침입이 빈번했다. 특히 18세기 후반부터 네팔 구르카 왕국이 세운 샤 왕조의 침입이 심했다.
팔루트 톱은 현재 시킴 땅이다. 외국인은 시킴에 들어가려면 따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르질링도 원래는 시킴 왕국에 속한 땅이었으나 1835년 인도의 영국 식민지 시절 시킴 왕이 영국의 동인도 회사에게 다르질링을 넘겨주었다.
영국은 다르질링에 산악 요양지를 설립하고 차 농장을 개발하기 시작하여 세계적인 차 생산지가 되었다. 힘 없고 조그만 약소 왕국이 당시 세계 최강 제국주의 영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네팔-시킴 전쟁에서 동인도 회사가 시킴을 대신하여 전쟁에 참여해 승리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전리품이다.
간추린 네팔 역사
지금 줌라(Jumla)는 네팔의 중서부 지역에 위치한 산악 지대로 작고 허름한 네팔의 한 마을에 불과하다. 그러나 12세기 경에 설립된 줌라 왕국은 한때 서부 네팔에서 400년 이상 가장 강한 세력으로 군림했다. 이들은 인도의 일부와 서부 티베트 전역까지 세력을 넓혔다. 전성기 때는 네팔의 작은 힌두 왕국 44개가 줌라에 복속했다.
줌라는 또한 히말라야를 지배했다. 당연히 줌라의 왕은 무스탕 왕국과, 길게 연결되어 있는 무스탕의 요새들을 손에 넣으려 했다. 줌라의 침입이라는 위협 때문에 무스탕은 14세기 아메 팔 시대에 새로운 수도 로만탕이 건설되었다.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줌라와 무스탕은 우호적인 상황에서 비참한 상황까지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보통의 수준으로 돌아왔다. 각 나라들끼리는 300년 이상 간헐적인 전쟁을 벌였고, 요새들의 지배자는 계속 바뀌었다. 특히 무스탕 남부의 요새는 더 빈번히 그랬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1723년 마나슬루 아래 산자락의 작은 구르카 왕국(1559년 설립)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이 아이가 훗날 히말라야에서 가장 용감한 전사로 용맹을 떨친 네팔 샤 왕조의 초대 왕 프리트비 나라얀 샤(Prithvi Narayan Shah, 1723-1775)다.
그는 왕국의 세력을 점점 키우며 1768년 카트만두와 파탄, 박타푸르를 정복하고 네팔 동부 전 지역과 시킴을 평정하고 서부 네팔까지 모두 정복했다. 그리고 줌라에 복속하고 있던 44개의 작은 왕국들을 합병하여 1768년 네팔 왕국을 세웠다. 1795년 그의 계승자는 줌라를 정복하고 그 세력을 영원히 파괴했다
샤 왕조는 2001년 왕궁 학살 사건으로 킹 비렌드라와 왕족들이 피살된 후 2006년 민주화 운동으로 왕의 권한이 크게 제한되었다. 마침내 2008년 네팔 제헌의회가 군주제를 폐지하고 네팔 연방 민주 공화국을 선포함으로써 240년 동안 네팔을 지배해왔던 샤 왕조는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네팔 - 시킴 전쟁
어쨋든 초기 샤 왕조는 계속 영토를 확장하여 서쪽으로는 얼마 전 다녀 온 난다데비가 있는 가르왈과 꾸마온 지역과 동쪽의 시킴 왕국까지 침입하여 지배하고 영토 전쟁을 계속해왔다. 오랫동안 계속된 네팔-시킴 전쟁은 1814-1816년의 영국 동인도회사-네팔 전쟁으로 바뀌었고 그 전쟁에서 네팔이 패배한 후 협정을 통해 지금의 시킴과의 국경을 확정했다.
네팔 침공의 영향으로 19세기와 20세기에 시킴(다르질링 포함)에는 많은 네팔 구르카족들이 이주하여 살게 되었다. 그들은 농업, 군사, 상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당연히 네팔어를 사용하며, 그들의 불교와 힌두교 문화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시킴의 인구는 약 61만 명(2021년 기준)으로 추정되는데 네팔계 구르카인은 시킴 인구의 약 70-75%(42~46만 명)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다르질링을 구르카랜드라 부르며 인도와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구르카 용병의 탄생
영국 동인도 회사와 네팔 간의 전쟁에서 영국은 구르카 전사들의 전투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이들을 용병으로 모집하기 시작했다.
시킴에 거주하고 있던 구르카인에서 선발한 용병들이 1815년부터 공식적으로 영국군에 복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포클랜드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다양한 전쟁과 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오늘날에도 영국군의 구르카 여단(Brigade of Gurkhas)은 여전히 중요한 군사 부대 중 하나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고 그들은 여전히 용맹함과 충성심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구르카 용병들은 그들의 용맹함, 충성심, 그리고 전투 능력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구르카가 오면 적은 도망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의 전투 능력은 전설적이다.
구르카 용병의 상징적인 무기는 쿠크리(Khukuri)라는 전통적인 네팔의 단검이다. 쿠크리는 짧고 날카로운 곡선 모양의 칼로, 근접 전투에서 매우 효과적인 무기다.
원래 영국과 인도는 매년 다르질링에 구르카 용병을 선발했으나 지금은 인도정부에 의해 영국 모병이 중지되어 영국 구르카 용병은 현재 네팔 포카라에서만 모집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군에서는 계속 모집하여 구르카 연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이 지역에서 네팔계 구르카인들의 영향력이 크다.
네팔어는 시킴에서 영어, 힌디, 렙차어, 부티아어와 함께 공용어이며 실제로는 가장 많이 쓰고 있다. 1975년 시킴을 인도의 22째 주로 병합하는 찬반 투표를 했을 때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구르카계 사람들이 찬성했다. 그들은 북쪽 티베트를 강제 합병한 중국의 침략에 대한 위협을 느껴 인도에 편입하여 보호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2018년 라다크 스톡 캉그리 등반 때 주방 헬퍼인 26세의 치링 셰르파도 시킴에서 왔다고 했다. 시킴은 20여년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곳이어서 반가웠다. 그리고 오늘 시킴 땅 팔루트 톱에서 에베레스트와 캉첸중가 산군의 환상적인 파노라마를 바라보고 있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
팔루트 톱은 팔루트 롯지보다 50여 미터 더 높다. 시킴땅이다. 내려가는 길에 국경수비대가 있다.
오전 5시 22분에 팔루트 톱 도착. 추워서 모두들 완전무장했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어제 토쿰 밸리에서 만났던 인도 트레커들. 롯지가 하나 뿐이어서 같은 롯지에 묵었다.
5시 36분. 날은 완전히 밝았다.
정상에 있는 마니월 서북쪽 멀리 에베레스트 산군과 그 오른쪽 세 자매봉이 보인다.
5시 42분. 일출이 시작되었다.
인도 트레커들. 나중 하산길에 또 만났다.
잠자는 부처님 모습을 한 캉첸중가 산군
팔루트 톱 파노라마 (원본보기)
쿰부 쪽은 세계 1위봉 에베레스트(8848m)부터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8천미터 14좌 중 3개가 보인다. 쿰부에서 티베트와 국경을 공유하고 있는 세계 6위 초오유(8188m)는 여기서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보이지만 로체(8516m)가 마칼루(8485m) 보다 더 높다.
이제 모든 봉우리에 불이 들어왔다.
이번 산닥푸 트레킹 시행사인 마운틴 어드벤처 사의 배너를 앞에 두고 찍은 단체 기념사진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못내 아쉬워 머뭇거리다
6시 20분. 롯지로 내려왔다.
아침 먹고 8시 10분 힘차게 출발. 이제부터는 줄곳 내리막이니 룰루랄라 산행이다.
10여 분 내려와 뒤를 돌아 팔루트 롯지를 보았다.
곧 무성한 대나무 숲 속으로
오전 9시 22분. 알루바리 캠프(3108m) 도착.
차 한잔 주문하여 마시며 햇볕을 즐긴다.
인도 트레커들도 곧 도착했다.
콜카타(Kolkata)에서 온 30대 초반의 친구들이다. 콜카타는 이전에는 캘커타(Calcutta)로 불렸다. 영국 식민지 시절 바뀌었던 이름을 원위치시켰다. 바라나시는 베나레스, 봄베이는 뭄바이, 마드라스는 첸나이로 복원되었다.
10시 29분. 2832m 지점에서 잠시 휴식
다시 하강. 숲 속이라 시원하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트레커들 만나다.
우리 짐을 실은 말들이 추월하고
거대한 삼나무 숲을 지나
11시 40분. 오늘의 목적지 고르케이 도착. 원 안의 3층 건물이 우리가 묵은 롯지. 산닥푸 트레킹 지역에서는 호텔이나 롯지라는 이름보다 홈스테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홈스테이 간판. 마침내 문명세계로 돌아왔다. 서양식 화장실 딸린 3인실에 전기와 뜨거운 물이 짱짱하다. 보조배터리 충전하고 샤워 하고 땀에 젖은 옷가지 빨아 옥상에 널으니 천하가 태평하다.
고르케이 리버밸리 홈스테이. 객실은 2-3층이다. (구글이미지)
2층 앞이 마당이다. (구글 이미지)
점심을 기다리는 중
오후 1시 20분. 늦은 점심은 카레누들과 창 한 잔.
소박한 음식이다. 그저 몸을 지탱해주는 약으로 삼아 먹는다.
고르케이는 동쪽 계곡을 건너면 바로 시킴이다. 팔루트 톱과 달리 가려면 허가가 필요하다. 오후에 몇몇 분들이 마실 다니다가 마을 위쪽 시킴으로 건너가는 계곡 다리까지 갔는데 허겁지겁 달려온 보조 가이드 쿠샬이 말려 무사히(?) 돌아왔다고 한다.
저녁은 주방을 빌려 나와 노자님이 준비. 가지고 온 음식재료를 모두 모아 섞어 비빔밥을 만들었다. (창해님 사진)
오랜만에 먹는 비빔밥에 모두 만족했다. 녹색 통에 요리한 비빔용 반찬이 있다. (창해님 사진)
밤에는 가이드들이 모닥풀을 피워 모처럼 낭만적인 캠프파이어 분위기를 즐겼다. 숯불에 감자도 구워먹고. (거작가님 사진)
모닥불. 트레킹도 이제 내일이면 끝난다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