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요계는 트롯이 대세다. 한 방송사의 ‘미스트롯 선발대회’에서 진으로 뽑힌 여자 가수가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부르고 있다. 단장이라 하였으니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노래한 것이다. 작사가 반야월이 한국전쟁 당시 직접 겪은 고통의 기억을 가사에 담은 것이라고 한다.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이별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한 많은 미아리 고개
어찌 미아리고개에서 만이었겠는가. 전쟁의 참화 속에서 가슴 저린 사연이 어디 그 뿐이었겠는가. 멍울진 아픔을 담은 그녀의 노래는 여느 가수의 노래보다도 더 애절하다. ‘진도아리랑’의 고장에서 나고 자란 그녀가 전라도 육자배기의 곰삭은 맛을 더해 부르기 때문이리라. “송-가인이어라.”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그녀의 인사말이다. 공연 포스터에 “송-가인이어라”라고 쓰여 있는 이 말이 전라도 토박이인 내 귀에는 “송-가인이어라우.”로 들린다. 국어사전에도 ‘-라우’가 ‘-요’의 전라도 방언이라고 되어있다. 따라서 “송-가인이어라우.”를 표준어로 말한다면 “송-가인이어요.”이다. 만약 그녀가 “송-가인이어요.”라고 했다면 기억에 남는 인사가 되었을까. 송가인을 송가인답게 한 것은 다습고 정감이 묻어나는 자신의 고향말로 맛깔나게 인사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의 말이 그 사람의 고향말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신의 고향말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표준말이 온 국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나라에서 정한 무미건조한 지금의 말이라면 고향말은 한 지역에 살고 있는 민초들의 입에서 버무러진 지역 냄새가 물씬 나는 오래된 말이다. 표준말이 무색무취의 증류수 같은 말이라면 고향말은 그 땅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미네랄이 풍부한 샘물 같은 말이 아닐까. 어느 나라의 지역 방송국에서는 그 지역의 자체 프로그램은 지역말로 진행한다고 해서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그들의 깊은 속내가 읽혀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쓰지 않으면 사전에나 존재하는 옛말이 되어버릴 고향말을 지켜야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송가인이 대중 앞에서 자신의 고향말을 스스럼없이 쓰는 것은 감동적인 일이다. 문득 고향말에 얽힌 일화가 생각난다. ‘거시기’는 국민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진 나의 고향말이다. 어느 날 아침 부부가 사는 집에 옆집 아이가 심부름을 왔는데 아내가 나와 보니 아이 이름을 모르겠더란다. 그래서 방 안에 있는 남편에게 “애 아부지, 옆집 거시기 왔어라우”라고 했더니 남편이 대꾸하기를 “아니 이 사람아 거시기가 머여 이름을 말해야재” 하며 나와 보니 자기도 이름을 모르겠는지라 “응, 머시기 왔구나.”라고 했다고 한다. ‘찌크러부러라’는 시험문제로 친다면 난이도가 ‘거시기’보다 더 거시기한 말이다. 선배가 군대생활 중에 겪은 일이라는데 내무반에서 세숫대야 물에 발을 씻고 서울 출신의 후임 병사에게 “이 물 갖다 찌크러부러라.”라고 했더니 멀뚱하게 서 있더란다. 선임 말을 안 듣는다고 눈을 부라렸는데 생각해보니 콩트 같은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알아듣는 독자는 분명 내 고향 사람임이 틀림없다. 나고 자란 고향에서 60여년을 살다가 은퇴 후 손주들을 돌보기 위해 타향에서 살고 있다. 이 곳의 전통시장에 가면 고향말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굳이 출신을 밝히지 않아도 그들의 말에서 고향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채소가게 사장님도 어물전의 주인장도 나와 동향이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고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싶다던 이호우 시인의 시조처럼 시장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면 손이라도 잡고 싶고 고향의 푸른 바다와 너른 들판의 일렁이는 보리밭에 대해 우리들만의 말로 얘기하고 싶어진다. 고향말은 타향살이에서 나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는 유일한 흔적이다. 왼쪽 어깨위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종두자국처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기억인 것이다. 오늘은 기타 동아리에서 알게 된 고향 후배에게서 온 전화를 받지 못해 뒤늦게 전화를 걸었다. “어이 전화 했등가?” “예, 두 번이나 했는디ⵈⵈ 머 바뻤오?” 의사소통을 넘어 가슴 가득 넘쳐나는 정의 교감이다. 고향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고향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기꺼운 정이 묻어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머시 바쁘겄능가. 낼이 목요일이제. 기타 매고 여섯 시에 거그 정자에서 만나세. 내가 막걸리 세 병하고 안주 갖고 가께.” 고향말을 주고받으면 오래된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하고, 함께 자란 벗을 만난 것처럼 정겨운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2020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