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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표현론 중심의 수필 작법
-윤오영의 《수필문학입문》
여세주
essaytown@daum.net
1.수필문학사적 위상
수필론은 1930년대에 김광섭・한세광・임화・김진섭에 의해 짧은 저널비평의 형태로 언급된 바 있다. 1950년대에도 김동리, 조연현의 문학개론서에 간략하게 소개하는 데 그쳤다. 본격적이고 구체적인 수필론은 최승범의 《수필 ABC》(형설출판사, 1965)에 이르러 씌어졌다. 이 단행본은 적절한 작품을 사례로 들면서 수필 이론을 종합・정리하고 있다. 매우 소략한 수필 작법과 문학사적 의미까지 곁들인 최초의 수필개론서로서 의의를 지닌다. 1970년대에 와서는 두 권의 수필이론서가 발간된다. 구인환・윤재천・장백일의 《수필문학론》(개문사, 1973)과 윤오영의 《수필문학입문》(관동출판사, 1975)이 그것이다. 《수필문학론》은 수필의 기원・본질・구성요소・종류를 비롯하여 타문학과 수필・수필과 국문학・세계 수필문학 등의 수필론을 다루었다. 이와는 달리, 《수필문학입문》은 수필의 개념・성격・내력・수법에 대한 수필론까지 언급하고는 있으나 실질적인 수필 작법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윤오영(1907~1976)의 《수필문학입문》은 수필 작법을 가장 최초로 비중 있게 다룬 것이어서 그 의의가 크다. 그가 수필 작법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독창적인 논의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작품을 써 본 수필가였기에 가능했다. 그는 쉰을 넘긴 나이에 수필을 쓰기 시작하여 수필집 《고독의 반추》・《방망이 깎던 노인》과 수필 전문지에 발표한 작품 등을 합쳐 총140여 편의 수필작품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한 수필 창작 방법을 《수필문학》에 연재하고, 이를 다시 정리한 것이 《수필문학입문》이다.
이 책에서는 어느 일방적인 학설의 소개나, 실제 작품과 유리된 일반론이나, 수필의 문학성을 몰각한 경향의 애매한 통설이나, 필자의 체험으론 실증될 수도 없는 그 밖의 수필론의 소개 혹은 비평 등은 일체 배제되어 있다.(윤오영, 《수필문학입문》, 태학사, 2001. 앞으로 이 책에 대한 인용은 쪽수만 기록한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언급하고 있는 집필 방향이다. 수필에 관한 일반적인 이론을 배제하고 오직 자신의 창작 경험을 토대로 삼았다. 수필 이론이 수필 창작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에서 자신의 창작 경험을 기반으로 강의하듯이 수필 작법을 풀어나간다. 그럼에도 일반 독자들이 수필 창작 과정과 방법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지 않다. 표제 항목에 학술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낯선 용어들을 상당히 내걸고 있고, 개념 설명이나 작품 해석에 어려운 한문투를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고전을 비롯한 많은 수필작품들을 예시하여 평가하면서 수필 작법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수필 창작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소중한 저서이다.
《수필문학입문》은 총2부로 나누어 구성하고 부록을 덧붙였다. 제1부에서는 <수필문학의 첫걸음>이라는 제목 아래 16개 항목을, 제2부에서는 <수필학 강론>이라는 제목 아래 6개 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제1부는 수필창작론이며 제2부는 수필론이다. <부록>에도 강연 자료 등 7개 항목을 실었으나 특별히 새로울 만한 것은 없다.
2.준비 과정과 문장 이어 쓰기의 요건 – 독서와 습작, 문맥, 문세, 문정
윤오영은 수필 쓰기의 과정으로서, 준비과정(독서와 습작), 소재 선택, 첫 문장 쓰기, 그리고 문맥文脈・문세文勢・문정文情을 고려한 문장 이어 쓰기를 제시하고 있다. 문맥은 자연스럽고 긴밀한 연결성, 문세는 정서적인 상태의 여러 표현, 문정은 품위 있는 문체를 의미한다.
수필 쓰기에서 윤오영은 독서와 습작이라는 준비 과정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고전명작과 시문時文을 많이 읽으라고 권장한다. 독서 방법으로는, 먼저 그 글을 따라가고, 그다음으로 그 글을 정복하고, 또 그다음에는 그 글을 앞서가기 위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욕심만 부려서 새로운 글을 빨리, 그리고 많이만 읽으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계한다. 독서와 함께 습작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한다. “문예란 기술이 필요하고, 기술이란 연마가 필요하고, 여기에는 일정한 연마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20쪽)라고 말한다. 지극히 타당한 말이다. 독서량이 아무리 풍부하더라도 많은 습작을 해보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실질적인 수필 쓰기에서는 소재 선택을 가장 우선적인 작업으로 제시하고 있다. 소재 선택이 글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여긴다. 수필의 소재는 “이론적인 것, 학문적인 것, 관념적인 것을 피하고 생활의 실감에서 찾아야 한다”(23쪽)고 말한다. 즉, 일상생활의 체험 가운데 느낌이 있는 것에서 소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필 쓰기에서 정서를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설명을 하거나 논리를 펴는 수필이 아니라 정서를 표현한 수필이야말로 독자에게 공감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소재 선택 다음으로 제시한 수필 쓰기 과정은 첫 문장 쓰기이다. 첫 머리 한마디가 전편을 밀고 나가기 때문에 시작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글을 써 보려고 느낀 그 순간의 감정을 첫 문장으로 삼으면 가장 좋다는 것이다. 발상이 일어나는 그 순간의 감정에서부터 붓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고사나 명구를 첫 문장으로 삼는 것은 쓰기 쉬운 방법이기는 하나 그 영향을 받아 개성적인 내용을 살리기가 어렵다고 경계한다.
첫 문장에 이어지는 문장들은 문맥과 문세와 문정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문맥이란 감정의 줄거리이다. 일반적인 산문이 논리적인 맥락을 지닌다면, 문학적 산문인 수필은 정서적 맥락을 지녀야 하는데, 그 정서의 면면함이 물줄기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물줄기를 밀고 나가는 기세가 문세이며, 화려하거나 들뜨지 않고 침착하고 담담한 문장에서 오는 품위를 문정이라 이른다.
문맥과 문세는 표리의 관계에 있으니 막히어 껄끄럽거나 중단되지 않고 맑게 흐르는 물줄기가 문맥이라면, 이 물줄기가 반석 위로 굴러 떨어지며 가지가지 변화를 일으켜 하나의 기관奇觀을 이루는 것이 곧 문세다.(50쪽)
이 물줄기를 밀고 나가는 기세가 문세인데, 이것이 없으면 글의 힘이 없고, 생생하게 넘쳐흘러 독자를 육박하는 긴장이 없다. 수필에는 개성에 따라 온아・청신・전면纏綿이 있는가 하면, 침울・침잠・강개가 있으며, 재승才塍한 글이 있는가 하면, 기승氣勝한 글, 이승理勝한 글이 있다.(41쪽)
문정이란 반드시 애절한 감상이나 고운 서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담담한 문장에서 오는 품위를 말하는 것이다. 마음이 담담하게 가라앉아야 그윽한 정이 고이고, 그윽한 정이 있어야 문장이 방향芳香을 머금을 수 있다.(52쪽)
문맥과 문세와 문정은 감정을 유로流露시키는 방법이다. 감정을 어떻게 펼쳐나가는가에 수필작품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것인데, 이는 결국 문체의 문제에 해당한다. 즉 문장의 호흡・어휘 선택・구문의 운용 등으로 이루어지는 어조나 어투에 관한 논의이다. 작가가 드러내는 감정 상태나 태도와 관련된다. 이로 보아, 윤오영은 문장 표현을 수필 작법의 요체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수필의 주요 내용 – 서사・설리・서정・사경
윤오영은 수필의 내용 또는 소재를 그 비중에 따라 ‘서사敍事・설리說理・서정抒情・사경寫景’으로 구별하고 있다. 사건을 기술하는가, 이치를 설명하는가. 감정을 펼치는가, 경치를 그려내는가에 따른 구분이다. 사건, 이치, 감정, 경치를 수필의 주요 내용 또는 소재라고 생각하는 셈이다. 그런 가운데서, 수필은 서정과 서사를 근간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비서정적인 사경이 없고, 서사나 설리도 서정을 떠나서 존립하지 않는 동시에, 서사가 아닌 설리나 서정도 없다. 다만, 서정과 사경이 시적 표현을 소중히 여긴다면, 서사는 소설적 수법을 취하고 설리는 격언적 평론적 문장에 가깝다.(59쪽)
서사에 정이 따르지 아니하면 기록에 그치고, 설리에 정이 따르지 아니하면 평론이 되고, 풍자에 정이 따르지 아니하면 고십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으로 글의 내용을 채우면 천속賤俗한 글이 되므로 정은 항상 글 밖에 있어야 한다. 드러나지 않는 정이 귀한 것이니 이른바 침정불로沈情不露, 즉 정에 잠기되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경지요, 서정불설抒情不說, 곧 정을 펴되 말로 하지 않는 유로流露다.(79쪽)
여기서 설리說理와 사경寫景은 개념이 모호하다. 이理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 이기철학理氣哲學에서 이는 윤리, 규범, 원리, 의식, 정신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이理란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지칭하는 것 같다. 설리는 “격언적・평론적 문장에 가깝다”고 하면서, 평론이 관념적이고 지적이며 객관적인 논리에 치중하는 데 비해, 설리는 구체적이요 정적情的이며 주관에 치중한 글이라고 덧붙인다. 우리 현대수필에서는 그 예를 찾기 어렵다고도 한다.
설리에 낭만이 없으면 문장이 각색하고, 기경奇警한 표현을 동반하지 아니하면 청신한 맛이 없고, 유머가 없으면 문장의 고갈枯渴을 면하기 어렵고, 정열이 없으면 진실감을 주기 어렵고, 묘사妙辭의 구사驅使가 아니면 독자에게 기쁨을 주기 어려우니, 문장이란 실로 어려운 것이다.(77쪽)
사경寫景에 대한 설명도 애매모호하다. 자연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라고도 하고, 자연에서 느낀 감정의 표현이라고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분명한 개념도 없지 않으나, 이들에 대한 설명을 하는 데서는 각각의 문장 표현 방식에 치중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러한 구분은 수필문학의 종류를 일람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인접 문학과의 구별을 통해 수필 쓰기의 몇 가지 양식을 제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서사수필은 단편소설이나 콩트와 달라야 하고, 설리수필이 평론이 되어서는 안 되며, 서정수필은 단순한 감상문이 아니며, 사경수필로 초심자는 붓을 닦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의로 볼 때, ‘서사敍事・설리說理・서정抒情・사경寫景’에 대한 논의는 분류론이라기보다 창작론인 셈이다.
4.품격 있는 문장 표현 방법
윤오영은 수필창작론의 마지막에서 수필의 일반적인 문장 표현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문장의 품격을 논하는 것이 수필 문장론이라고 하면서, 수필에서는 저속한 속문俗文이나 졸렬한 악문惡文을 쓰지 않도록 해야 하며, 품격을 갖춘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품격이란 “반드시 윤리적이고 교훈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시정잡화市井雜話나 유치한 감정의 피력이나 인기를 위한 재담이나 에로틱한 문장”(107쪽)을 쓰지 않는 것이 수필 문장의 품위를 유지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품격 있는 문장 표현을 위해 “간결・평이・정밀・솔직”이 요구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수필 문장 쓰기의 요령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 문장이 간결해야 하되 함축이 있고 여운이 있어야 한다. 현학적이거나 변칙적인 표현을 하지 않고 평이하게 표현해야 한다. 치밀하고 뚜렷한 표현, 즉 정밀한 표현이어야 한다. 수식이나 과장이나 변명 없이 솔직해야 한다.
수필의 문장 표현에 대한 이와 같은 요점을 보다 자세한 부연설명을 이어간다. 간추리면 이렇다. ; 문장이 간결하되 기복起伏이 있어야 그 변화에서 오는 힘이 있고, 농담濃淡이 있어야 무의미하지 않고 아름다우며, 기경奇警과 해학이 약간 곁들여져야 조화 속에 윤기가 흘러 성공적이다. 평이하되 평범하지 말아야 하는데, 곡진하고 참신해야 하며 핵심이 뚜렷하고 함축성이 풍부해야 한다. 정밀하되 체삽滯澁(막혀서 껄끄럽다)하지 말고 생동해야 한다. 소창疎暢(시원스럽다)하되 이미지가 강해야 한다. 솔직하되 저속하거나 유치하지 않고 담아하고 품위가 있어야 한다. 율동이요 운향韻響인 리듬, 즉 호흡이 있어야 생명이 있다.
윤오영은 이러한 문장 표현을 통해서 조성되는 수필의 무드를 강조하기도 한다. 소설에서는 ‘테마’, 시에서는 ‘이미지’가 가장 중요하듯이, 수필에서는 ‘무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수필 문장의 일반적인 표현법에 있어서 우리는 전적으로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그의 수필 문장론은 오늘날의 수필 쓰기에서도 매우 유용한 전범으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즉, 윤오영의 수필 문장 표현론은 수필 문장 쓰기의 일반화된 관습이면서 요령으로서 지금까지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5.수필의 개념과 성격
윤오영은 김광섭이 그러했듯이, 수필의 개념을 ‘수필隨筆’의 자의字義를 축자적逐字的으로 읽어내는 데서 이끌어내고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서도 조금만큼도 얽매임이 없는 것이 곧 수隨이니 다른 말로 표현하면 독서성영獨抒性靈에 불구격투不拘格套, 즉 홀로 마음 속 깨달음을 펼 뿐, 투식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筆은 산문이란 뜻이니 리듬이 있으면 문이요, 리듬이 없으면 필筆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155쪽)
여기서 “수필이란 자유로운 산문이다”라고 정의한다. ‘자유로운’이라는 말은 일정하게 굳어진 양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수필의 개념을 아주 막연하고도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 윤오영이 생각하는 수필의 개념범주는 넓지 않다. 흔히들 수필을 수록隨錄・수상隨想・수기隨記・수평隨評 등의 개념으로 혼잡하게 사용하거나 서구의 에세이에서 수필의 기원을 찾지만, 이들은 문학으로서의 수필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파한집》이나 《백운소설》, 《용재수필》은 수록이며, 《계축록》이나 《한중록》은 수기이고, 철학적 깊이나 사색과 관조가 있어야 한다거나 인생문제・사회문제 내지 문화비평적 태도를 요구하는 것은 수상・수평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몽테뉴나 베이컨에서 기원을 두고 있는 서구의 시사평론적・문화평론적인 부류의 에세이도 문학의 한 장르로 정립된 본격적인 수필문학이 아니라고 본다.
이로써, 윤오영은 수필의 개념을 매우 좁은 범주로 축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필은 문학이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문학작품으로서의 자유로운 산문’이라고 다시 정의한다. 찰스 램의 <고도자기>나 <꿈속의 어린이>, 노신의 《조화석습朝華夕拾》의 작품들, 주자청의 <아버지의 뒷모습>을 수필의 표준으로 삼는다.
수필이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지성을 기반으로 하되 정서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필수 조건으로 내세운다. 수필의 성격에 대한 이와 같은 판단은 알베레스(R.M.Alberes)의 말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에세이는 그 자체가 원래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신비적 이미지로 되어진 문학’이라고 한 알베레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것이 수필의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고 언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성이 결여된 감정은 저열하며 감정이 크면 클수록 생명력은 약동한다고 생각한다. ‘지성을 기반으로 하는 정서의 표현’을 수필문학의 속성 내지 본질이라고 보고 있다. 궁극적으로 서정을 수필의 기본 요건으로 여긴다. 문학적 정서에서 출발하지 아니한 것은 잡문이며 문학작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감정을 표현해야 문학으로서의 수필이 된다는 그의 입장은 확고부동하다.
6. 윤오영의 수필 작법 넘어서기
윤오영의 수필창작론은 문장 표현 방법을 그 핵심으로 다루고 있다. 명작 감상에서도 주로 문장력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고, 수필 문장 발달사를 고찰하는 데서도 이러한 경향을 드러낸다. 내용 및 소재의 비중에 따른 ‘서사・설리・서정・사경’을 설명하는 데서도 각각의 문장 표현을 이야기하는 데에 치중한다. 그런 점에서, 윤오영의 《수필문학입문》은 문장 표현론 중심의 수필창작론이다.
윤오영은 《수필문학입문》에서 수필 쓰기의 과정에 따라 논의를 펼치고 있다. 이 책이 ‘독서와 습작으로 수필을 쓰기 위한 연마, 소재 선택, 첫 문장 쓰기, 그리고 문맥・문세・문정을 고려한 문장 이어쓰기, 서사・설리・서정・사경의 문장 표현 방식, 수필의 일반적인 문장 표현 방법’의 순서로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글쓰기 과정은 분석주의 글쓰기 이론을 근간으로 삼은 것이다. 문장을 이어가면 단락이 되고 몇 개의 단락을 묶으면 한 편의 글이 된다는 관점이 그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문장 표현력이 글쓰기의 핵심에 있을 수밖에 없다.
문학이 예술이요, 수필이 문학이라면 수필은 하나의 기술적인 표현일 수밖에 없다. 내용이 아무리 좋고, 심오한 사상이 축적되어 있어도 표현의 기술이 없으면 문학은 될 수 없다. 문학은 결국 표현형식이다.(172쪽)
그런데 글쓰기란, 체험이나 지식을 통하여 새롭게 생각한 바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라는 구성주의 글쓰기 이론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가. 이런 관점에서는 문장 표현력보다는 새로운 생각, 즉 참신한 주제가 중요하고 그 주제를 배치하는 방식인 구성이 수필창작론의 선두를 점유하게 될 것이다. 윤오영의 수필창작론에 주제론이나 구성론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런 관점에서 수필 작법을 고민해 보지 않은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오영의 《수필문학입문》은 수필 작법을 가장 먼저, 가장 비중 있게 다룬 저서로서 한국 수필문학사의 큰 획을 그은 업적으로 평가된다. 특히, 수필 문장 표현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그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범이 되고 있다. 그 점에서 우리는 윤오영의 수필창작론에 크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여세주
문학평론가. 《수필미학》 발행인. 저서 《새롭게 쓴 수필창작론》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