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돌아오는 인생길목에 서 있어도 <제1집>
권두시
<1> *돌아오는 인생 길목에 서 있어도*
새벽하늘 밝아 오도록
열병처럼 신열을 토해내는 질곡
오십 오년 세월을 안고 온 허무였다
기아에 허덕이던 어린 시절
연명이 바람이었고
코뚜레에 이끌려가는 소처럼
무거운 수레바퀴를 끌고 왔다
사랑도 사치였고
행복도 과분한 욕심으로
뿌리내린 나무에 열매를 가꾸며
뒤뚱이며 걸어 온 불혹의 언덕
돌아오는 길목에 서 있어도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애써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하얗게 비워진 머릿속
나를 사랑하며 몸속에 깊은 상처
어루만지며 한 뉘를 보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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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찌 하오리까*
손이 떨려 잡을 수도 없는데
서라 하시고
발이 저려 설 수도 없는데
가라 하시면
난 어찌 하오리까
돌 지난 걸음마 인생
엄마 손잡고 발자국 떼는
아이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여섯 발 자욱 가면 엄마 품인데
얼어붙은 발걸음 떨어지지 않는데
난들 어찌 하오리까
네 박자 그림자 밟으며
가로등도 잠든 길을 밀려가노라면
시름 진 마음 달래주는
감자탕 집 불빛 밤새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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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자탕 속의 인연*
삼양길 어귀에 서면
시장한 뱃속 요동치게 하는
냄새가 난다
투박한 옹기 뚝배기 속엔
밤새 삶아 흐물대는 뼈다귀
문어처럼 흐느적거리는 우거지
수줍은 소녀의 젖가슴 같은 감자 두 개
그리고 특별한 조미료가 들어있다
구수하게 익어가는 밀어 뜨거워지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열정에
잔을 들고 건배를 외치면
서먹서먹하던 만남도
다정하게 맛 들이는 인연의 조미료다
하지만 우리 기억하자
맛들인 조미료 중독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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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랑은 열병을 앓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어둠의 세상이다
사랑에 젖은 눈 초롱거리고
목소리 청명하다
그러나 마음이 답답하여
자꾸만 어둠 속으로 기어든다
지고지순한 사랑은 항상 부족하여
누가 빼앗아 가지도 않는데
훔쳐가지도 않는데
자구만 더 달란다
깊어진 애증
금단 현상으로 열병을 앓고
중독된 사랑 아슬아슬하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끼어 있는 곡예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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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늘어진 몸은 깊은 늪 속으로
한없이 곤두박질치고
헤어나려 두 팔 휘저으며
몸부림하는 죽음의 순간이다
배신당한 삶의 잔해를 끌어안고
용서할 수 없는 울분을 삭이지 못하여
파르르 떨리는 사지
피를 토하는 고통으로 심장이 멎는다
사자의 육신은 넝마처럼 저승으로 끌려가며
억울하여 놓을 수 없는 목숨은
소리 없는 눈물바다를 이루니
염라의 판관 안타까운 듯
밝은 빛 내려주어
저승의 문턱에서 이승으로
또다시 새로운 세상을 맞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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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별연습*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게 변해가는데
사람의 마음도 시간이 지날수록 새것을 찾는다
오랫동안 지내 온 친구들
삶을 같이하던 친구 직장에서 만나는 친구
서로 인연의 고리로 묶는다
짝을 지어 무리를 이루고
친목회라는 이름으로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외로움을 달래며
숨겨진 즐거움을 찾으려 한다
얇아진 마음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짝을 잃은 기러기 의리도 상실한 채
인두겁을 쓰고 남의 밥그릇을 탐하니
그 님의 마음도 흔들리며 따라간다
고인 물은 퍼내야 맑은 물이 고이듯
떠나는 마음잡을 수 없어
새로운 옹달샘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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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
저녁노을 지고 네온 불 밝히면
쌍쌍이 모여드는 좁은 골목
하루 일에 지친 몸 방석 위에 내리면
기름진 음식 허기진 뱃속을 채워주고
한 잔의 소주가 피로를 풀어준다
청산유수처럼 입담이 좋은 친구는
연신 웃으며 자랑이 늘어지고
과부의 푸념 섞인 넋두리를 펼친다
몽롱해진 육신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저녁상이 부실한가, 속이 답답한가
맥줏집을 찾는다
횡설수설 엮어놓는 진한 농담에
노가리도 민망한지 자리를 접는다
한번 잃은 자존심 두 번 다시 잃을 수 없어
일편단심 다짐하며 그 대 마음
옥 매는 못을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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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새로운 세상*
친구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단다
때때옷 갈아입고 연분홍 립스틱에
엉덩이 흔들며 신바람 낸다
두근대는 조바심에 안절부절
들뜬 마음 억누르지 못하고
보채는 아이 등에 업고
누가 볼세라 친구 등 뒤에 숨어
강남 나들이 마냥 설렌다
강남은 강북에 있고
금속성 소리 쿵 짝 거린다
리듬이 스멀거리는 마룻바닥에
처음 본 남자 품에 안긴 순정은
물레방아처럼 밀리어 돌아간다
붉어진 얼굴엔 땀방울 송글 맺히고
멋쩍게 웃음 짓는 입가에 두려움이 묻어난다.
등 뒤로 쏟아지는 네온 빛 밟으며
새로운 세상을 보는 새로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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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새로운 경험*
비좁은 골목 붉은 불빛
좁은 문으로 빨려 들어간다
조그만 방안엔 땀 냄새 가득
사랑의 흔적은 겉옷을 벗어 던진다
에헤라! 무심한 세월
알몸으로 태어나 가진 것도 없다
잃을 것도 없다
문풍지 사이로 드는 바람도
굳어진 세월을 흔들지 못하고
종이처럼 얇아진 마음만 흔드는 구나
긴 한숨 토해내는 짧은 행복은
나 아닌 새로운 내가 되어
바다 위 떠도는 갈매기처럼
하늘 닿은 수평선을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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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영종도를 오가는 갈매기*
털털거리는 버스 옆으로
창 밖에 가로수 숨 가쁘게 지나간다
산도 따라 뒤로 달린다
버스 속 손님들만 그대로 있다
도심을 벗어나는 홀가분한 마음속에
짠 바람 품 안으로 물씬 스며든다
연락선 큰 입 벌리고 자동차도 사람도
모두 삼켜버리고 모른 척 입 다물고 고함을 친다
배 따라오는 갈매기 높이 날아
던져주는 과자 조각 낚아채가고
주어도 모자라는 듯
파도 위에 앉은 갈매기
목메는 가슴 치며 끼룩 거린다
인삼 막걸리 한 잔에 여독을 풀고
갈매기 마중 받아 돌아오는 길
산처럼 커다란 마음으로 내일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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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커다란 산*
산은 말이 없고
오는 걸음 마다치 않고 가는 발길 잡지 않는다
그저 큰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사람은 괴롭게 녹아내리는 아픔을 잊으려한다
돌부리를 잡고 한탄하며 기어오르고
턱에 차오르는 원망을 소리쳐도
산은 그저 사랑으로 감싸 준다
봄이면 꽃 피워 사랑노래 불러주고
여름이면 녹음 지워 풍성한 마음 주고
가을이면 붉어진 사랑 열매를 맺어주고
겨울이면 하얀 꿈을 이루어준다
내가 찾은 높은 산은
지금도 마음속에 굵고 커다란 뿌리가 되어
쓰러지지 않는 영혼을 살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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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굵고 튼튼한 뿌리*
검은 숲은 맑은 물을 품고
한없는 사랑으로 갈증을 풀어준다
삶에 지쳐 메마른 정은
쓰리고 허전한 마음을
넓은 가슴으로 안아줄
검은 숲을 그리워 한다
한 겹 한 겹 벗겨지는 외로움은
정열의 날개 짓으로 불타오르고
슬픔은 눈물에 정한수 되어
청목의 굵고 튼튼한 뿌리에 내려
사랑으로 넘치는 옹달샘을 채운다
물 한 모금 들이면 기쁨이 일고
두 모금 들이면 행복해지는
굵고 튼튼한 뿌리가 주는
사랑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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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사랑의 선물*
사랑은 언제나 한곳에 머물러
낮은 곳을 내려다 본다
험한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위에 부딪쳐도 깨어지지 않는
넓은 마음 가진 당신
오직
하나만을 지켜온 순결한 절개
보석보다 값진 보석이었소
명예도 싫다 돈도 싫다
외롭지 않고 슬프지 않도록
따뜻한 마음으로 안아주는 당신은
이 세상 무엇보다 귀한 사랑의 선물이었소
보이지 않아도 고운 당신의 마음
영원히 잊지 않으려
디지털 영상 속에 넣고 영원히 간직하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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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윤중로에 어둠이 내리면*
여의도 윤중로에 어둠이 내리면
하얀 벚꽃 춤을 춘다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눈부신 무리 하늘을 덮고
손잡고 거니는 길 위에 깔아놓은 꽃 잎
융단처럼 곱게 드리워 있다
노래하는 사람들 춤추는 광대
캐리커처 그리는 익살스런 화상
아우성치며 젊은이 마음을 부른다
강변 주차장은 장사진을 이루고
간간이 먹을거리 노점상 벌려 놓으니
오가며 한 잔 기분을 맞추고
어둑한 구석에는 연인들의 사랑놀이
힐끗거리며 뜨겁게 불을 댕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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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국립공원에는 모기장도 칠 수 없다*
계곡에 물소리 졸졸졸
나뭇잎 하늘하늘 숲에 가린 하늘
손바닥만 하게 보인다
북한산 재개 골 계곡엔
굽이마다 더위를 벗으려 물가 그늘을 찾고
극성스런 모기 피하려
엉성한 모기장을 펼쳐 놓는다
도시락 뚜껑을 열기도 전에 빠질 수 없는 한 잔
취기가 오르면 장난기 발작하여
지나가는 등산객 눈을 피해
양념도 하지 않은 고깃덩어리 맛부터 본다
어느새 알고 찾아온 공원 관리원
모기장도 위법이니 사진을 박고
먹다가 만 고깃덩이 바지 속에 집어넣으니
십만 원짜리 지폐 눈앞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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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도봉산 오형제 바위 아래 추억*
하나 둘 셋
하늘에서 별이 반짝인다
함지박만 한 입가에 웃음이 쏟아지고
어색하게 잡은 포즈
호박꽃 인가하여 호박벌 찾아든다
산속 나뭇가지에 매달려 보고
동학사 돌담길에 기대어 보고
아슬아슬한 바위 끝에 매달려
순간의 추억을 남기려 한다
인적 없는 산속에
매미 소리 여전하고
넓은 바위 위에 돗자리 펴면
지난밤 못다 한 사랑놀이 해지는 줄 모르고
영상에 담은 추억 조각 꺼내어 보며
지난날의 추억마저 뒤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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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한여름 밤의 추억*
실개천 따라 늘어진 버들가지는
벌거벗은 조약돌 어루만지며
용솟음치는 폭포의 길을 막는다
한낮의 열기로 뜨거워진 삶의 열정
부딪쳐 부서지는 희열의 조각들
하나가 되어
비릿한 밤꽃 향기에 취한 모기처럼
여름밤 하늘을 마음껏 휘젓는다
별들도 지쳐 하나 둘 잠들고
주지육림 즐기던 한량들도
제집 찾아가는데
소쩍새만 외롭다. 슬피 우는구나
지난날의 추억은 책갈피 속에 넣고
내일의 추억을 그려보며
우리 꿈속에서 넓은 바다를 마음껏 헤엄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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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용유도에는 조개가 있다*
창가에 기대어 바라보는 수평선에는
범선의 황포 돗대 손을 흔들고
복스런 얼굴에
순진한 미소 띄우니
한 낯의 더위 바닷바람에 밀려간다
뭉게구름 사이로 비행기 숨어드는 국제공항
용유도 바닷가에는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대합도 가래비도 다리 벌려 속살 드러낸다
주개껍질 주워 모으며
우리는 즐거움에 함께 웃었다
해지는 줄 모르고 웃었다
어둠속을 헤메는 네 그림자
성황당 골목길 노란빛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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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네 발로 걸어라*
한 많은 미아리 고개 넘으면
빌딩 사이로 꾼들이 모여든다
소음 속에 웅성거리는 사람들
저마다 사연을 지고 엎치락 뒷치락
삶이 어질러 놓은 스트레스
모두 버리려는 듯 몸부림 쳐댄다
그 속에 묻어 있는 너와 나
서로 쳐다 보며 웃는다
뭐가 그리 좋은지
사랑의 배신이 주는 슬픔에
아픈 마음은 순배를 더하고 정신을 잃는다
경광등 요란한 앰블런스 소리에
부러진 참새다리 붕대로 쳐 매고
네 발로 걸음마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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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구렁이가 된 삼마니*
첩첩산중 인적도 없는데
하늘이 감춰 둔 뿌리를 찾는다
산사에 누워 하늘 보며
천지신명께 기원을 하면
산삼도 장뇌도 걸어 온단다
얼굴은 검고 팔뚝도 굵어서
힘께나 쓰나보다
여색에 굶주렸나 추파만 던지며
연신 뿜어대는 담배 연기에
핀찬 맞은 심마니 멋쩍은 지
구렁이처럼 봉긋한 무덤 위를 기어오른다
새고 지는 날들 창창한데
뜨거워진 마음으로 사랑을 고백하며
산삼 한 뿌리 바치려 민통선 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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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시외버스 속에 탄 여우*
도심을 지나는 시외버스는 한적하다
시내버스가 판을 치니
손님 없는 빈자리에 여우가 앉았다
맨 뒤 자리에는 의자가 높고
누가 있는지, 없는지 보이지 않는다
연인들이 즐겨 찾는 자리
아무도 없으니 여우차지다
배고픈 여우 꺼내놓은
날고기를 맛나게 먹어 치운다
숨도 쉬지 고 소리도 내지 않고
식욕이 왕성한가 보다
배부른 사자는 사냥을 하지 않는 법
먹어도 양이 차지 않는 듯 정신없이 먹다가
인기척에 놀란 여우
그래도 아쉬운지 긴 혀만 날름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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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어느 봄날의 민속촌*
신갈 저수지를 지나면
산자락 아늑한 곳에 민속촌이 있다
선조들의 생활이 담겨있고
어릴 적 추억을 깨워주는 농기구도 있고
민속놀이도 재현 한다
임에 손잡고 그네에 오르면
가슴이 오그라들고 다리가 축축해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장국밥에 농주 한 잔이면 족하다
노을 지는 하늘로 어둠이 다가오면
연인들 아무도 보지 않는 쉼터를 찾는다
만원이다
언제 다시 올 날 기약하며
거칠어진 임에 손 꼭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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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봉천동 포장마차*
영종도 바닷가에 갈매기 짝을 찾고
방갈로에는 비릿한 생선 옷을 벗는다
민머리 낙지는 난도질을 당하고
초장으로 화장하니 입맛이 절로 난다
선착장에는 입 큰 배 자동차와 사람들
마구 게워내고 또 삼킨다
배 안 객실에는 낯선 사람들이
반가운 듯 담소하며 즐거워하고
동행하자 유혹의 손을 잡으니
식구 되어 회를 치는 소래 포구를 찾는다
거나해 진 취기는 가는 길 막지 못하고
한 잔술은 또 한 잔을 거절하지 않으니
불 꺼진 봉천동 포장마차에
먹다 남은 반찬으로 밥 그릇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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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눈 내리던 날의 생일잔치*
어둑한 하늘에 하얀 점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하얀 발자국을 남긴다
해마다 맞이하는 생일인데
축하가 빌미 인가 술 생각이 간절하니
마음 맞는 친구들이 함께 뭉쳤다
생크림 케이크에 촛농이 떨어지기 전에
훅하고 불이 꺼지고
한 해 두 해 늙는 것이 서러워
한 잔 가득 허접해진 마음 소복이 담는다
거세지는 눈송이 발목을 감싸 안고
한설은 자정을 넘는다
수유리 빙판은 왜 그리도 미끄러운지
넘어지는 길에 버스도 잠들었다
마지막 버스에 친구는 갔으면 좋으련만
축하 말 한마디 더 하며
빈 택시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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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감악산 토종닭의 갈기*
악산 중에 악산 그래서 감악산인가
입구부터 험한 바위산이다
짊어진 배낭은 무게를 더 하고
올라도 보이지 않는 정상 왜 왔나 싶다
먹은 마음 지울 수 없어
임에 손잡아주며 올라온 산마루
마음속에 찌든 삶에 찌꺼기
모두 토해 버린다
멀리 보는 인천 앞바다 하늘
뿌연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고
산허리 둘러싸인 구름도 외로워
하염없는 넋두리 펼친다
정상 소나무 가지에 쌓인 시름 걸어놓고
내리막 인생길에 꽃을 피우려
토종닭 정수리에 갈기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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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관악산 등산로엔 여우가 많다*
아침부터 관악산 입구 정류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알록달록 값비싼 등산복에
앞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고글 안경
어느 임을 홀리려나 화장도 여우같이
관악산 공원 길을 두리번거리며 기어오른다
내려오는 길 7080 공연이 한창이고
춤과 노래가 등산객 시선을 잡으니
집에 갈 생각도 않고 자리 잡고 주저앉는다
정자 놓인 연못에는 고기들 노닐고
높이 솟은 분수 시원스럽다
조각상의 손때 묻은 머리통을 만지니
다리는 휘청거리고 온몸에 전율이 흐르니
뛰는 가슴은 물침대 쿠션처럼 출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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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바람에 흔들리는 유명산 갈대*
도시락 풀어헤친 갈대밭에
가벼워진 마음 바람에 흔들린다
유명산 봉우리 멀리만 보이는데
신발 끈 옥 잡아매고
끌어주고 밀어주며 바위산을 엉금엉금 오른다
땀방울은 눈을 가리고
가빠진 숨은 목구멍을 막아도
한 번잡은 손은 놓을 수 없다
붉어지는 얼굴은 단풍잎 같고
땀으로 지워진 화장 번진 아이샤도우
그것마저 예쁘다
구름다리 계곡 아래 흐르는 물줄기
바위 뒤에 숨어서 쏟아내는 임의 오줌 줄기 같아
보고 또 보아도
돌아서야 하는 마음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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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6.3빌딩 위에서 보는 나*
쳐다만 보아도 어지럽다
모래 위에 높이 쌓은 6.3빌딩
바람에 흔들리며 버티고 서 있다
수족관에 잡아놓은 물고기
어디서 왔는지 신비롭기만 하고
재주 부리는 돌고래 재롱떠는 물개
우둔한 곰도 한껏 재주를 부린다
옥상 넓은 전망대 멀리 바다가 보이고
아래로 보이는 길에는 개미처럼
작은 사람들이 기어가고 있다
모두 갈 길이 바쁜 사람들
한 번쯤 높은 곳에서 저 아래 있을
자신을 돌아보며 힘들고 어려운 삶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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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진달래 피는언덕*
진달래 만발한 북한산 능선 따라
곱게 단장한 사람들이 몰려온다
눌러 쓴 모자 속에는 땀이 흐르고
토해내는 숨소리 거칠어지면
넓적한 바위는 식탁을 차린다
나눠주는 인심에 덕담도 잊지 않고
끌어주고 밀어주며 오르는 능선
연분홍 진달래 입 벌리고 뽀뽀 하잔다
내려오는 길목마다
사랑의 밀어 알알이 굴러다니고
산사가 내어주는 탁배기 들이키면
갈증은 사라지고
능안길 골목마다 여흥의 소리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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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삼각산 계곡에 흐르는 물*
솜털 보송보송한 복숭아 두 개
누르면 단물이 터져 나올 것 같다
산새 소리 매미 소리 진동이 일고
물소리도 청량한 삼각산 계곡
한 낯의 더위를 피하여 발을 담그고
어린 아이처럼 물장구 친다
튕겨 오르는 사랑의 방울들
애써 피하지 않아도 좋다
젖는 옷자락 가슴에 달라붙어
입은 듯 벗은 듯 계곡을 자랑하며
안아줄 가슴은 내가 더 크다고
바위에 무릎 베고 누어보니
나뭇잎 사이로 손바닥만 해진 하늘
두 눈을 가리니 어둠 속에 나신이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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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등대는 말이 없다 *
먼 바다 바라보는 등대는 말이 없고
갈매기 끼룩 이며 버려진 물고기
뱃속 창자를 뜯어 삼킨다
시커먼 속살 드러낸 갯벌에
옆걸음으로 제집 찾아드는 게
뻘 위를 껄떡이는 망둑어
민대가리 깊이 숨긴 세발 낙지도
술안주로는 그만이다
썰물에 긴 몸뚱이 드러낸 선착장에는
낚시 드리운 태공들의 헛손질 잦고
한 모퉁이 술자리 잡은 아낙네
비릿한 바닷바람에 깊이 취하여
토악질 하고 나서 들어 눕는다
바닷물 밀려와도 등대는 말이 없고
뒷걸음치는 태공의 빈 망태 집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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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복 날 찾아오는 닭들의 수난*
복날이면 찾아오는 닭들의 수난
자지러지는 비명도 없이
고대산자락 정기 담은 장 닭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주리를 틀린다
바짓가랑이 걷어붙이고
물속 바위에 붙은 다슬기 주워 담는 손
굳어진 삶의 각질을 한 겹씩 벗겨내고
달라붙은 시련도 씻어 버린다
목욕 재개하고 가마솥에 찜질하면
구수하게 끓는 온탕 속에서
팔공산 똥통에 비 쏟아지는 소리 들으며
알몸 껍질 벗겨 고도리 입속에 집어넣는다.
이 한 몸 바쳐 기쁨을 줄 수 있다면
뜨거운 유황불도 두렵지 않다며
찢기고 남은 유골 고대산 자락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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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들무새 찻집에 가면*
광릉 내 골짜기 커피 향 발길을 잡고
높다란 굴뚝에 기절할 것 같은 심벌
눈길을 끌어 모은다
보이는 것마다 사내의 힘줄
잡히는 것마다 남자의 거시기다
값비싼 찻잔 손잡이
뭉클해지는 감촉에 마음 설레게 한다
연못 가운데 버티고 선 사나이
쉴 사이 없이 무언가 흔들어대고
껄떡이는 손놀림에 웃음이
줄줄이 따라나온다
가고 싶지 않은 화장실 찾아가고
문고리 잡고 히죽거리며
네놈이 서방보다 크지 않지만
단단하게 키웠으니
밤새 녹여도 시들지 않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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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월미도 유람선이 나를 부른다*
바다는 고요한데 월미도 앞
수평선에 놓인 점들을 보며
바닷가 분수 용솟음 친다
오가는 연락선 고동 소리만
잔물결 일구며 지나가고
월미도 둘레길 따라 연인들 숨어들어
값비싼 사랑의 댓가를 치른다
바라보는 유람선엔 외국 여인들의
춤사위 호객도 화려하고
노래 따라 춤 따라 가고 싶지만
얇아진 주머니 바지 자락 끌어 당긴다
젊은이 줄지어 선 놀이마당에는
흥 돋우는 디제이 객담이 걸작이다
여기도 나이는 푸대접인가
어르신들 집에 가서 손주나 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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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자전거 처음 사던날*
넘어지고 깨어지는 아픔
울퉁불퉁 상처투성이 자갈길
한 바퀴 두 바퀴 페달을 밟는다
아파트 재활용품 산더미처럼 쌓인 마당
손잡이 따로 안장 곁에 뒹구는 몸뚱이
멍 조각들 꿰매고 나니
번듯한 이름으로 내 몸에 맞는구나
시원스레 늘어선 길 스쳐 지나면
두 바퀴로 구르는 마음 하늘을 날고
속속들이 묻어 있던 시름 길가에 뿌려놓는다
시험이 되었던 낡은 쇳덩이 버리고
새까만 자전거 새로 사던 날
즐거움에 밤잠 이루지 못하고
잠 깨어 만져보고 기뻐하던 베란다에
행복이 소복이 쌓여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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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조용한 아침 고요마을 공원에서*
산 중턱 구릉에 정기 흐르는
아늑한 곳에 자리 잡은 아침고요 공원
승마장 아저씨 말 단장 바쁘고
희희낙락 아낙네 수다 소리에
재잘대는 아가씨들 꽃 속에 코를 박는다
종소리 은은한 조그만 교회
공원 한편에 오롯이 서 있고
꽃길 따라가는 길목에는 희귀한 고목들
걸음을 멈추게 한다
실개천에 쌓아놓은 돌탑 앞에는
내 사랑 영원 하라 기원을 하고
징검다리 건너는 순이 몸매를 자랑하고
김매던 동네 할아버지
꼬불꼬불 흔들리는 길가에서
고추 잡은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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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허브향이 반겨주는 마을*
높은 하늘에 떠있는 뭉게구름
조는 듯 게슴츠레 내려다 본다
포천 고을 산언덕에 허브향기 모아
지나가는 나그네 쉬어 가라고
커다란 대문 열어 놓았네
인공 폭포 줄기 끝에 황금 잉어 노닐고
병풍처럼 둘러놓은 집 속에는 알 수 없는
허브의 향들이 가득 차 있다
오르는 계단마다 웃음이 따라오고
내려오는 길 따라 행복이 가슴에 안긴다
손잡고 걸어가는 연인들
허브처럼 아름답고 향기만큼 즐거우니
분위기 지우지 않으려 식도락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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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하늘 닿은 땅끝 마을까지*
따가운 햇살 곡식을 영글게 하고
머루 다래도 맛을 들인다
산골길 굽이돌아 찾아간 땅끝 마을
인적도 없고 누렁이 혼자 집을 지킨다
길가엔 머루넝쿨 나무 잡고 하늘에 오르고
까맣게 익어가는 송이마다
새콤한 사랑의 밀어가 달렸다
호두나무 가지엔 주근깨 가득한 알맹이
겉옷 벗어버리고 속살 드러내기만 기다린다
하늘 끝 길이 막혀 뒤돌아보니
발아래 구름이 솜이불 펴 놓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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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황포 돗대*
꽃 잔디 곱게 놓인 길가에
가는 임 오는 임 지켜보는 석상
갈 길을 알려 주는구나
북쪽 하늘 희미하게 아른거리고
수마가 할퀴고 간 다릿목에
찢겨 넝마가 된 나뭇가지들
다리 잡고 매달려 하소연한다
황포로 치장한 장대 높이 들고
창연한 목소리에 뱃노래 들으며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 따라서
오르락내리락 뱃놀이 흥겹다
임진강 나루터엔 노를 젓는 사공은 없고
황포돛대 올린 동력선
통통거리며 오던 뱃길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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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친구의 생일을 맞으며*
하늘을 위협하던 독수리
길을 잃고 우리 속에 오롯이 앉아
던져주는 고깃덩어리 귀찮은 듯 쳐다본다
날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부러진 날개 고통으로 퍼덕이며
감악산 구릉에 넋을 묻는다
나들이 가는 차량행렬 끝이 없고
흔들릴 수 록 부풀어 오르는 설레임
적성 고을 비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느 임에 생일인가 벌어진 만찬에
애꿎은 송아지 갈비뼈를 뽑히고
그것도 모자라 엉덩이 살점을 베어 내준다
축하주 한 잔에 달아오르는 열정 삭이지 못하고
붉어진 노을 속에 시름을 담그며
오늘을 위한 내일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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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복숭아꽃 살구꽃 공원 찻집*
찻집 문 앞에서 반겨주는 허드레 장승
수줍은 듯 인사를 한다
뜰 안에 들어서니 장승이 수줍어하는
까닭을 알겠구나
집 모퉁이 돌아갈 때마다 부둥켜안고 있는
남과 여 옷도 입지 않은 채
몸을 맞대고 있다
유리 상자 안에서도 지붕 끝에 매달려
사랑놀이 리얼하게 펼친다
갓 쓰고 장죽 물고 아낙의 치마폭을 들추며
커다란 방망이를 들이대고 있는 모습
손가락 사이로 쳐다보는 여인들
입가에는 침이 지르르 흐르고
홍조 된 얼굴에 가슴은 방망질하여
허둥대며 서방님 찾아가는 꼴이라니.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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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충주호에는 유람선이 있다*
차가운 겨울 안개 가득하고
이른 아침 공기는 가슴을 시리게 한다
충주호 유람선 선착장에는
한길이나 되는 물속 물고기 한가롭고
물 위를 걷는 오리도 평화로이
붉게 물든 단풍에 혼을 빼앗긴다
물길 가르며 거슬러 오르는 뱃머리에
아우성인지 탄성인지 관광객 부산스럽고
가다 보면 물에 잠긴 고향이 있는데
갈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단양팔경 기암은 웅장한데
변해버린 산천에 그리움 내려놓고
임에 손잡고 옛 노래 흥얼거리면
충주호 유람선 하얀 거품 게워내며
오던 길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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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어린이 낙원이었던 그 자리*
맑고 푸른 마음이 솟는 어린이 공원
이제는 정서에 굶주린 삶에 휴식 터다
사계절 푸르고 아름다운 꽃 즐거움이고
가족이 단합하는 도심 속의 여유다
시원스런 분수는 용기를 돋우고
생활 속에 파고드는 장인들의 손길은 존엄하다
먼 외국에서 온 짐승들 외로움 잊고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임과 같이 웨딩 길을 걸으면
신혼의 추억을 그리며 행복을 찾으려
한 발 두 발 봄날을 밟는다
놀이공원 뒤뜰에 넓은 잔디밭
서로 안고 있는 석상들 외롭지 않겠지
쏟아지는 햇살 맨몸으로 받으며
대공원에 심은 꿈 한 아름 펼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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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철원 고석정의 여름*
기차여행은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새로운 삶의 원동력이 된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표지판을 뒤로하고
마지막 역에서 철원행 버스를 타면
고석정 임꺽정의 활동지며
새롭게 꾸며진 유원지로 급류를 타기도 한다
무덥고 비 오는 날 고석정의 강물은
황토를 쓸고 와 황하를 이루고
깍아 지른 절벽 또한 장관이다
정자에서 굽어보는 강줄기에 넋을 잃고
임걱정 동상 앞에 위엄을 느끼며
오는 길에 동족상잔의 아픔도 보고
쓰디쓴 잔의 고배를 마시는
고석정 골짜기에 제비 둥지 지어놓고
해거름 귀경길에 머리 맞대고 내일을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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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자전거 타고 가는 서울 숲 공원*
날씨가 화창하니 온몸이 근질거리나
역마살 지병이 도지나 보다
머리 질근 동여매고 운동화 감발하고
자전거 바퀴에 바람도 탱탱하니
우이동 개천가에 패거리들 기다린다
굼뱅이 걸음아 물렀거라
경적 울리며 머플러 휘날리면
삶이 구겨놓은 심사 길가에 뿌려놓고
중랑천 끝 서울공원을 달린다
사슴도 멀뚱멀뚱 구름다리 쳐다보고
하늘대는 갈대숲에 몸을 숨기며
가득 찬 뱃속 시원스레 쏟아놓고
보는 이 없는가 두리번거리니
유람선도 시침 때고 게 거품만 게워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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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물안개 피는 남이섬*
눈꽃이 성성한 섬 안에
벌거벗은 석상들 와들와들 떨면서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길섶에 높이 자란 나무 사이로
손잡은 연인들의 웃음꽃 피어나고
토굴 속에 깨어진 항아리들 널브러져 있다
둘레둘레 돌아보는 남이섬 자락에
함지박만한 엉덩이 자랑하는 여인이 나를 부른다
찬 바람에 옷깃 여미며
전망 좋은 이 층 식당 창가에 앉아서 건너다보니
물안개 피어나는 호수 위에는
연락선 고동소리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준다
돌아서는 발길은 천길 높은 망루에 멈추고
거꾸로 매달린 아찔한 점프
내일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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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산악회 시산제를 청계산에서*
여명이 걷히기 전에 자명종 울리고
행장을 꾸리는 손길 바쁘다
관광버스 안에는 음악이 흐르고
흥에 겨운 아낙들 엉덩이 흔들어 대면서
다리 건너 가로수 손짓하는 산행길
들뜬 마음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구릉 속에는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는데
모닥불 위에는 벌거벗은 도야지 지글거리고
올 한해 무사 무탈 기원하며 굽신거린다
산이 좋아 산에 살고픈 마음
오르는 길목마다 산새들 반겨주니
마지막 잎새마저 바람에 팔랑 이고
꿈속에 두고온 임이야 어디 갈쏘냐
옆에 앉은 남정네 멋지게 보이니
팔다리 휘저으며 코 먹은 소리로 잠꼬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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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천안에서 물 먹고 소래까지*
쾌속으로 달리는 열차는
낯선 마을 넓은 들을 뒤로 밀친다
처음 보는 사람들의 틈 속에 들어
쭈꾸미 찾으러 천안 바닷가 찾아 간다
쭈꾸미는 간 곳 없고 따가운 시선에
뒷목이 화끈 거린다
뒤돌아 오는 길은 멀기만 하고
기차는 왜 그리 힘이 없는가
마주 보는 입가에 멋쩍은 미소 흐르고
닭 대신 꿩이라 했던가
돌아, 돌아 찾은 소래 항 포구
갈매기 반겨 주는 창가에 앉아
시커먼 먹물 젖은 칼국수에
소주잔 대보지를 외치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행복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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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빌딩 공사장은 고양이 놀이터*
빌딩숲 사이마다 낡은 집 버리고
새집을 짓는 공사장에는 모기장 같은
헝겊으로 둘려있다
낯이면 기계 소리 망치 소리 요란하고
먼지 속에 인부들 땀에 젖는다
하루 일을 마무리 지으면
목구멍에 쌓인 먼지 씻으려
땀 냄새 나는 작업복 선술집 문턱을 넘고
불 꺼진 공사장에는 아무도 없다
길잃은 유기견 잠자리 찾고
도둑고양이 몰래 숨어드는 한적한 곳에
비를 피하고 바람을 막아주니
사람들의 눈길 피하는 고양이
스티로폼 펼쳐놓고 유희를 즐기면
공사장 바닥은 사랑의 흔적이 널브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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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한여름 밤의 놀이터*
동네 골목 안 조그만 놀이터에는
낯이면 꼬마들 그네도 타고 미끄럼도 탄다
어둠이 내리면 젊은 연인들 그네에 흔들리며
알알이 쏟아지는 사랑에 밀어
미끄럼틀 위에서 옹알거리고 있다
칠흑도 그네를 감추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
헛기침 소리 간간이 들리고
창문 밖으로 새어나오는 불빛도
연인들의 눈치만 살피다 꺼져버리고
멀리서 번쩍이는 경광등 불빛에
이루지 못한 사랑놀이 아쉬움 남기고
멋쩍게 돌아서는 발걸음 흐느적인다
사랑에 굶주려 잠 못 드는 과부의 투정인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심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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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안개 짙은 에버랜드 공원*
어두운 하늘은 눈발을 희뿌옇게 날리고
찬바람은 앞섶을 여미게 하던 날 오후
용인 자락에 에버랜드 공원의 넓은 주차장에
잃어버릴세라 손 꼭 잡고 버스를 내린다
한 계단 두 계단 오를 때마다
먼 나라 여행을 온 듯 황홀하다
뾰족이 솟은 지붕 위에 화려한 장식
멀어진 입 다물지 못하고
입장료 팻말은 보니 신발이 얼어붙는다
멀리 담장 넘어 즐거운 비명 들리고
겉만 봐도 좋은데 속이야 오죽할까
임에 손 따뜻한 체온 느끼며
봄날 되면 다시 찾아오마 웅얼거리며
기울어지는 해 헤집으며 오던 길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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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초대받은 창단 정모*
초대받은 모임이 낯설기만 하다
처음 만난 사람 멋쩍어 서먹서먹하고
찾아가는 길도 편하지 않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모임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과자 부스러기 앞에 놓고 갑론을박
뭐가 뭔지 모르는 대거리를 해댄다
자기 글을 자랑하는 목소리 높고
출판을 할까 문학회를 만들까
카페 만든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가관이다
뒤풀이는 빼놓을 수 없는가 보다
회덮밥에 호프 잔을 부딪치며 성님을 외친다
그것도 모자라 밤새도록 길을 헤매는
가련한 문인들의 방황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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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벙개 모임의 의미를 찾아서*
휴대 전화에 메일이 왔다
문인들의 모임 갑자기 회동하는 자리
미아삼거리 선술집이다
면식이 있는 사람이니 조금은 편하다
막걸릿잔을 앞에 놓고 서로 칭찬을 하며
용기를 갖게 하는 응원이다
시가 뭔지 모르던 내가 글을 쓰니
어색하다 그것도 도움을 받아서
하지만 읽고 보는 것으로 충분하니
재미가 새록새록 피어난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고 성격도 다르니
새로운 만남에 의미를 담고
거나해진 술기운 농담도 덕담도 좋다
종씨도 있으니 종친회도 하자며
구실을 붙여 건배를 외치며 깊어가는 밤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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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또 다른 모임의 등단식*
방안을 가득채운 사람들
모두가 시인 작가란다
목소리 높여 식장을 좌정시키고
인사말로 시작하는 시상식, 등단식
지인이 시인되어 등단하는 날
초대를 받아 축하하는 자리다
문인들은 자랑하기를 좋아하나 보다
시 낭송에 열을 올리고 박수를 보낸다
뭐! 자기들 멋에 겨워 수선 떠는데
차려놓은 밥상이나 즐기련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나
잘난 사람 많으면 의견이 분분하여
잘난 척 승강이 목소리 높아지고
울근대는 심사 문을 박차니
작가도 어쩔 수 없는 똑같은 인간 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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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너를 보내면서도 그리워한다*
우산 셋이 맞대고 걷는 길 위에
함박웃음 알알이 떨어지고
몇 날을 고민하던 질펀한 그리움
흐릿한 네온 불빛 아래 흐드러진 다
그동안 친구의 안부를 묻고
인고한 삶의 고뇌를
등 두드려 위로하며 감싸 안으니
어깨에 짊어진 괴로움일랑
술잔 속에 휘저어 넣고
단숨에 마셔버리자
오늘 걷던 이 길을 다시 올 수 있을까
아쉬워하는 발길 뒤돌아보며
내일이면 또 너를 그리워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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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무덥던 닐의 일산 호수공원*
닦을수도 없고 씻을수도 없는
땀방울
삼키지 못하고 떨어뜨린다
정발산역 뜨락에 넓은 마음
펼쳐놓은 호수
바라만 보아도 임의 마음 인줄
알겠구나
바람도 잠든 회색빛 하늘
한줄기 소나기라도 내려줄려나
돌아서는 발걸음 바쁘기만하다
오늘도 한 장 일기장을 메우며
길거리 공연하는 젊은 열기를
즐겁게 바라보면서
뒤쫒는 비구름피해
지하철 레일위에 몸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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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친구의 집을 찾아서*
내가간다 기다려라
갑작스런 호출 하던일 멈추고
뒤틀린 허리 펴면서
친구의 전화 반갑게 받는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
안부도 뒤로 한 채 건네는 술 잔
말을 앞선다
한 잔 웃음에 두 잔 푸념
삶에 허무를 느끼며
부러움을 한껏 부풀린다
새로 지은 집도 좋다
넓은 텃밭에 마음껏 자라는 채소
돌담 옆으로 늘어 선 과일나무
포근히 감싸준다
늘어지는 술자리 마다않고
가는 길목에 두고 갈 정마저
안아주던 친구
난 네가 있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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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몸 따로 마음 따로*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줄기차게 내리는 빗속에 육신을 구겨 넣고
질척대는 발걸음 홍등가 문턱을 넘는다
빗소리인지 샤워기 물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천둥번개에 깜빡이는 형광등
죄지은 사람들 간이 오그라들겠다
늘어진 몸뚱이 일어나라 소리쳐도
미동도 없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
천 길 낭떠러지 늪 속으로 기어든다
황혼에 낡아진 세월
밤마다 쓸어안고 몸부림치는 아쉬움
원망하고 후회한들 다시 올 수 없는 젊음
오물 같은 시름 토하며 깊은 꿈속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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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네가 떠난 빈자리
하늘이 파래서
내 마음도 파란 줄 알았는데
뒤집어보니
검은 마음이었구나
맑다 하여 찾아온 두물머리
깨끗한 젖줄인 줄 알았는데
흐린 날 마음이
왜 어두운지 알겠구나
네가 떠나면 빈자리
채워질 줄 알겠지만
그곳엔 너 아닌 다른 네가 있을텐데
네가 가면 그만인걸
다시 온다 생각마라
그냥 가면 올 수 없는
빈자리라는 걸 잊지 마라…
-------------------
--돌아오는 인생길목에 서 있어도 제1집--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