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린 커스티스 제임스는 룻기는 “강력 폭발물을 담은 배낭”과 같다고 합니다. 김지찬 교수는 “여인의 향기”라고 불렀습니다. 누가 썼을까요? 알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 전통에 의하면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 사사기, 룻기, 사무엘서를 썼다고 주장을 합니다. 언제 썼을까요? 4장 18-22절에 다윗이 등장을 합니다. “다윗을 낳았더라.”고 합니다. 다윗 시대에 썼을 것으로 봅니다.
히브리 성경에 의하면 룻기는 케투빔(Ketuvim. 성문서)에 속합니다. 잠언 뒤에 나옵니다. 시편 – 잠언 – 욥기 – 아가 – 룻기 순입니다. 잠언 31장 10절에 “현숙한 여인”이 나오는데(지혜를 여인으로 비유함) 룻기 3장 11절에 룻이 현숙한 여인입니다. 폴 하우스라는 학자는 룻기는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을 구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는 사사기 다음에 룻기가 나옵니다. 룻기는 사사시대가 배경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 성경이 가지고 있는 위치도 좋습니다. 룻기는 절기 가운데 칠칠절에 낭독했다고 합니다. 아가서는 유월절에, 에스더는 부림절에, 전도서는 장막절에 낭독이 되었습니다.
제임스는(『소외된 이들의 하나님 : 룻기』) 1-5절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인 나오미가 삶에 의미를 주던 모든 것을 텅 빈(empty) 상태로 만들어버린, 계속되는 비극을 서술한다.”고 설명합니다. 삶의 대참사를 그려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떠나는 가족
1절을 봅시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居留. 남의 나라 영토에 머물러 삶. 잠시 머무는 것)하였는데”
룻기의 배경이 언급됩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입니다. 사사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사사시대의 특징은 사사기 21장 25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람들이 자기의 결정을 따라서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에 자기들 마음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보아스와 룻입니다. 그들은 분명히 사사시대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 땅은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의 집’이라는 뜻인데 떡이 없어졌습니다. 베들레헴 땅은 텅 빈 곳간이 되었습니다. 그 땅은 약속의 땅인데 기근이 왔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상태가 최악의 상태로 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기근이 왔는지 설명은 하지 않습니다. 가장 가능한 설명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비”는 아주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고, 주시지 않고 하는 것은 그 땅에 사는 백성들의 순종 여부에 달려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역사입니다. 신명기 11장 8-17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신명기 28장 23-24절에도 불순종했을 때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 가르쳐줍니다.(레 26장 14-20절. 땅의 흉년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싫어하고 순종하지 않을 때 오는 것)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베들레헴 땅에 흉년이 든 것은 하나님의 징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회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흉년을 이기는 방법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베들레헴을 떠나서 모압 지방으로 가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땅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땅입니다. 그 삶의 터전을 버리는 길, 떠나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러니까 베들레헴을 떠나는 것은 언약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모습, 합당한 결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시로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것은 하나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모압 지방은 이방 땅입니다. 신명기 23장 3절에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모압 왕 발락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던 일을 상기시킵니다.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고 했는데 반대로 여호와의 총회에 속한 사람이 모압 사람들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기근 난민으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모습 가운데 하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점점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삶이 아니라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입니다.(‘하나님께로’가 되어야지 ‘하나님으로부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압 지방에서 겪은 일
1절에 “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2절에 그 사람의 이름이 누구인지 언급합니다. “엘리멜렉”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그의 아내는 “나오미”입니다. ‘즐거운, 사랑스러운’이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두 아들은 말론과 기룐입니다.
모압 지방에서 나오미가 먼저 경험한 상실(喪失. 잃어버림)은 그의 남편입니다. 3절에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다.”고 합니다. 언제쯤 죽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는 가부장제 사회입니다. 그 사회에서 남편의 죽음은 큰 충격이 되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기근 난민으로 간 것인데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 상실감은 엄청난 무게였을 것입니다. 이제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만 남았습니다.
두 아들이 결혼을 합니다. 4절에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습니다. 한 여인은 오르바이고, 또 한 여인은 룻입니다. 룻은 ‘친구, 동료’라는 뜻입니다. 4장 10절에 의하면(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 말론과 룻이 부부이고, 기룐과 오르바가 부부입니다. 나오미가 이방 여자를 두 아들의 아내로 맞이한다는 것은 좋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이방 땅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룻과 오르바의 가정 입장에서도 썩 마음 내키는 결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은 난민이었기 때문입니다. 딸을 시집보내어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그들이 거주한 지 10년쯤 되었습니다. 그 동안 두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두 여인에게 자식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5절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마저” 죽습니다. 말론은 ‘병든(병골)’이라는 뜻이고 기룐은 ‘약한(약골)’이라는 뜻입니다. 두 사람이 다 죽습니다.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습니다.”(5절) 이제 ‘남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집이 되었습니다. 대가 끊어졌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흉년을 피해 살기 위해서 모압 땅에 왔는데 그 모압 땅에서 겪는 것은 최고의 상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죽음”입니다. 남자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한 가정의 몰락이고 죽음입니다. 모든 것이 붕괴되었습니다. 가장 불쌍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삶의 가장 밑바닥에 주저앉은 것입니다.
나오미는 지금 어떤 상태가 되었습니까? ① 땅을 상실했습니다. ② 남편을 잃었습니다. ③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④ 더 이상 남자는 없는 집이 되었습니다. 이 가정의 이미지는 “황폐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장 13절에 나오미는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가정의 전체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세상에 남은 자가 되어(3절. 남았다. 5절, 남았다) 그 삶의 무게를 다 떠안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난 것일까요?
헤세드
룻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흐르고 있는 주제는 “헤세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룻기에 세 번 나옵니다.
1장 8절. “선대” - 나오미가 며느리들을 떼어 놓으려할 때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변함없는 사랑)
2장 20절. “은혜” - 룻이 이삭을 주워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하나님의 친절함)
3장 10절. “인애” - 보아스가 룻에게 청혼을 받았을 때
룻기는 “헤세드”의 이야기입니다. 헤세드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출애굽기 34장 6절에 여호와는 “인자와(헤세드)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1-23절을 봅시다. 헤세드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헤세드는 룻기 전체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헤세드는 무엇입니까? 의무나 강요가 아닙니다. “자발적인 충성과 헌신의 사랑”입니다. 그러면서 변함없는, 성실한 사랑입니다. 룻기는 헤세드의 향기입니다. 사랑이라는 꽃의 향기가 나고 있습니다. 사사시대라는 어두운 시대를 밝히고 있는 것은 이 헤세드의 향기입니다. 신약으로 오면 아가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회는 아가페 사랑을 서로 맛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상실의 땅이고 공허의 땅입니다. 그 상실과 공호의 세상 가운데에서 참된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이야말로 상실과 공허의 땅에 피는 영원한 꽃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영원의 불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