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왕의 영화와 이스라엘의 평안은 이스라엘 역사의 중에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솔로몬 치하 지도자들의 명단이 나오는데, 이중에 파면되어 낙향한 제사장 아비아달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그가 비록 파면되어 대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죽는 날까지 그 직책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4:4).
2. 솔로몬은 전국을 12도로 나누어 12지방 관장을 세우고 각 도에서 일 년에 한 달씩 왕의 양식을 공급하게 하였습니다. 중앙집권적인 왕정시대가 됨에 따라, 이전의 전통적인 12지파의 자치 세력은 약해지고, 중앙에서 임명된 관료들이 각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부정적일까요? 긍정적일까요? 왕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지혜롭게 통치한다면 매우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지만, 만약 왕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자신의 욕심대로 통치한다면, 이스라엘 전체가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행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3. 솔로몬 시대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졌다는 것을 성경 기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20). 나라의 경계도 넓게 확장되어 유프라테스 강(강은 이 강을 가리킨다)에서 애굽 지경까지(블레셋 지경을 포함하여) 넓은 영토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21). 그리고 ‘이스라엘의 평화’가 이루어졌습니다(24). 백성들은 먹고 마시고 즐거웠으며,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평안하게 살았습니다(25). 솔로몬 시대는 풍요와 평화가 함께하는 이상적인 나라일 것이며, 마치 타락 이전의 에덴동산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이러한 영화와 평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성경 기자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평화와 안정은 솔로몬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4. 그런데 특이하게도 솔로몬에게 ‘병거의 말’과 ‘마병’이 많았다는 사실을 함께 강조하고 있습니다(26-28). 전체적인 문맥에 의해 긍정적인 묘사임에 틀림없다고 할지라도, 군사적인 영역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솔로몬의 군사정책은 신명기의 가르침과는 어긋난다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신명기는 “왕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라”고 말합니다(신 17:16).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있다고 하지만, 이 솔로몬의 다스림과 통치 안에는 반 언약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정이 있을 수는 있으나, 신앙적으로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이 못하였느니라”(마 6:29)고 하신 것은 솔로몬 왕권이 가진 이런 한계와 모순을 염두에 두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와 “심히 많은 총명”을 주셨고, “바닷가에 있는 모래와 같이” “넓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의 지혜는 동방의 모든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의 지혜보다 뛰어났습니다. 동방과 애굽은 팔레스틴을 중심으로 좌우에 있는 지역입니다. 그러니 당시 중근동 전체를 지칭하는 수사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솔로몬의 지혜가 온 세상 사람들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열왕기의 저자가 솔로몬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의 지혜 또는 솔로몬에게 주목해서는 안 됩니다.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솔로몬에게 이 뛰어난 지혜를 주신 이가 누구냐? 여호와가 진정한 지혜의 주인이 아니시냐?”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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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내각 각료들(1-6)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 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솔로몬이 왕이 되었고’라는 표현은 성경의 순서를 따라 살펴보는 입장에서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 이유는 솔로몬이 다윗으로부터 왕위를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을 새삼스럽게 언급하며 본문 4장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은 이를 통하여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그 의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포함되어있는 4장은 일종의 ‘왕정 보고서’로서 뒤에 나올 솔로몬의 내각과 행정 구역 조직, 그리고 이러한 체계적인 통치에 따른 나라의 부강함은 다른 왕이 아닌 바로 솔로몬이 왕으로 있을 때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구분 지어 알리고자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허락하신 지혜의 결과였으며, 결코 솔로몬 개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아 그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그것은 자신의 것으로 인지하기 쉽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잊고, 자신만 보이는 것이 주일 말씀을 통해 살펴본 ‘자기의 소리’이며, 이럴 때 우리는 스스로 높아지려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스스로의 위치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으며, 그래야 솔로몬과 같이 스스로 교만해져 무너지고 망가지게 되는 패망의 길을 피할 수 있습니다.
(2) 그의 신하들은 이러하니라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이요
2절부터 6절까지는 솔로몬의 지휘 아래 나라를 이끄는 주요 관리들의 명단입니다. 2절에서 ‘신하들’로 번역된 히브리어 ‘핫사림’은 그 원형이 ‘통치하다’, ‘왕자로 행동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의 파생어로, 여기에 기록된 신하들이 평범한 신하가 아닌 솔로몬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신하들임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통치함에 있어 이러한 견고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전체가 솔로몬을 중심으로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와 동시에 이러한 통치 방법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솔로몬을 돕는 뛰어난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많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들 중 처음으로 언급되는 사람은 사독의 아들 아시리아입니다. 여기서 아들로 번역된 히브리어 ‘벤’은 아들이라는 뜻도 있지만 자손, 손자, 후손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무엘하 15장 27절은 사독의 아들이 ‘아히마아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역대상 6장 9절을 보면 ‘아히마아스’의 아들이 오늘 본문 2절에 나오는 ‘아사리아’임을 보여주고 있기에 이를 엄밀히 표현하자면 아사리아는 사독의 손자가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돕는 제사장이 가장 먼저 언급되고 있는 것은 솔로몬이 통치하는 이스라엘은 주변 나라들과 구별되는 신정 국가로서 하나님께서 이 나라의 진정한 통치자가 되심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물론 솔로몬 당시, 이방의 다른 나라들 중에도, 제사장이나 종교인을 한 나라의 중요한 인물로 여기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방 사람들이 섬기는 신은 진짜 신이 아닌 거짓 우상이기에, 신의 뜻과 종교적 의미가 얼마든지 왕의 의도를 따라 움직일 수 있었고, 왕이 아니라면 제사장이 자신의 욕심을 따라 신의 뜻을 좌지우지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왕에 따라, 제사장에 따라 그 뜻이 좌지우지되는 죽은 신이 아니십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에 오히려 왕의 잘못된 뜻을 꾸짖으시고, 제사장에게 휘둘리지 않고 직접 자신을 나타내시고 가르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특별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같이 오늘도 여전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도 동일하게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4) 시사의 아들 엘리호렙과 아히야는 서기관이요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요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군사령관이요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요
3절에 기록된 당시의 서기관들은 무역과 성업과 군사 동맹에 영향을 미치는 왕의 칙령을 준비하고 공식 기록을 보존하며, 재정 문제 또한 계산하고 기록하는 일을 감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관 역시 왕궁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함과 동시에 왕의 계획이나 통치 강령을 알리고 이를 실행시키는 일도 일부 감당했던 직책이었습니다.
여기서 서기관과 사관의 명단이 제사장 바로 다음으로 기록된 것을 보았을 때, 솔로몬 때 이미 나라가 상당 부분 안정되어 문관이 무관보다 중요시되는 시대를 맞이했음을 보여줍니다. 나라가 세워진 초창기에는 대내외적으로 혼란스러운 일이 많아 군사력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어집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나라가 안정되고, 강건해지면, 그렇게 강해진 힘을 통치하고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 행정적인 업무들이 점점 중요시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것이 사무엘하 20장 23절부터 나오는 다윗 시대의 신하들 명단입니다. 전쟁과 반란이 많았던 다윗 시대에는 전쟁을 잘하는 군대 장관들의 서열이 높았던 것에 반해, 솔로몬의 시대에는 서기관과 사관 같은 이가 이스라엘에게 더 중요한 신하로 평가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이 솔로몬의 통치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성숙해지고, 더 견고해지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는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인간적인 평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한 나라이건, 개인이건, 인간은 겉모양이나 외모를 보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내면과 마음속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5-6)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지방 관장의 두령이요 나단의 아들 사붓은 제사장이니 왕의 벗이요 아히살은 궁내대신이요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은 노동 감독관이더라
5절을 보면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지방 관장의 두령이며, 나단의 다른 아들 사붓은 제사장이자 왕의 벗이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여기서 반복되는 말이 있는데, 바로 ‘나단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나단 선지자는 다윗의 통치 당시 하나님 편에서 다윗을 책망하고 조언했던 인물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을 책망하는 것은 목숨 잃을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 안에서 다윗을 책망하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아울러 나단은 열왕기상 1장에서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할 때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나단은 아도니야의 모반 사건을 다윗에게 알렸고 이를 통해 아도니야의 반역을 무위로 돌릴 수 있었습니다.
나단의 이러한 한결같은 모습과 신앙은 자연스럽게 그의 자녀들에게도 전달되었을 것이고, 이 자녀들 역시 솔로몬과 함께 이스라엘을 위한 중책을 받게 되었습니다. 뒤에 이어서 살펴보겠으나 솔로몬은 이스라엘 전체를 12개로 나눠 각 지역을 맡는 관장을 세우는데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이 관장들의 대표가 됩니다. 그리고 ‘사붓’은 자신의 아버지 나단과 같이 솔로몬의 벗이 되어 왕의 가까운 곳에서 왕을 돕는 제사장이 됩니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하나님의 복은 일차적으로 충성된 믿음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 복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그 신앙의 중심은 그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전달되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이 부모의 교육을 통하여 더욱 확장되고 풍성해진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솔로몬의 열두 지방 관장들(7-19)
(7-8) 솔로몬이 또 온 이스라엘에 열두 지방 관장을 두매 그 사람들이 왕과 왕실을 위하여 양식을 공급하되 각기 일 년에 한 달씩 양식을 공급하였으니 그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브라임 산지에는 벤훌이요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행정 조직을 본문 1-6절까지 소개한 중앙정부와 7절부터 19절까지 이어서 소개하는 지방 조직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지방 조직은 전국을 12행정 구역으로 나누어서 각 지방의 행정을 그곳의 관장이 관할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각 지역은 정해진 순번에 따라 일년에 한 차례씩 한 달 동안 왕과 왕실에 필요한 물자를 바쳐야 했습니다.
본문의 표현과 같이 이러한 구분은 세금 징수의 목적이 강했지만 결과적으로 중앙정부와 각 지방간의 관계가 원활해지고, 부족 연합 국가적 성격이 강했던 이스라엘에게 솔로몬을 중심으로 하는 왕정 제도를 본격적으로 정착시키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솔로몬은 특별히 유다 지파의 지역만은 지방 행정 구역에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이는 유다 지파의 지역을 왕실 직속령으로 삼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한 대우는 북부 지역 지파들의 불만을 일으켰고, 후에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의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확인하는 바 진리가 아닌 인간이 만든 제도는 그것이 당대에 아무리 탁월한 제도라 하여도, 시대의 변화를 따라 그 한계가 있기에, 그 제도 자체를 절대시 하기보다,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보완하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11) 나밧 돌 높은 땅 온 지방에는 벤아비나답이니 그는 솔로몬의 딸 다밧을 아내로 삼았으며
(15) 납달리에는 아히마아스이니 그는 솔로몬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삼았으며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8절에서 19절까지는 열두 지방 관장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 눈에 띄는 것이 11절, 15절에 나타나는 솔로몬의 딸 ‘다밧’과 ‘바스맛’을 아내로 삼은 지방 관장들입니다. 먼저 11절의 다밧과 결혼한 벤아비나답은 ‘벤’이 누구의 아들을 의미함으로 아비나답의 아들이 됩니다. 여기 아비나답이 이새의 둘째 아들이자 다윗의 형이기에, 아비나답의 아들은 솔로몬과 사촌이 됩니다. 결국 솔로몬은 자신의 딸 ‘다밧’의 남편으로 자신의 사촌을 선택한 것인데, 이러한 근친결혼은 정치적으로 유력한 계층에서 볼 수 있는 결혼 방식으로 솔로몬은 이를 통하여 자신과 왕실의 안전을 더욱 든든히 만들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15절에 표현된 납달리는 중앙 갈릴리를 포함한 갈릴리 바다 서쪽의 광활하고 긴 지역과 상부 요단강으로 이루어진 지역으로 무역과 상거래에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솔로몬의 12행정 구역 중 최북단에 위치하였기에 북쪽 이방 민족으로부터의 잦은 공격에 시달렸습니다. 이는 경제적, 군사적 요충지의 책임자와 자신의 딸과 결혼시킴으로써 혹시나 있을 배신을 막고 왕실의 위치를 견고히 하려고 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보았을 때 자신의 사촌과 결혼시킨 솔로몬의 딸 다밧은 정치적 안정을 위한 정략결혼이었고, 납달리라는 요충지의 책임자와 결혼한 솔로몬의 딸 바스맛은 군사적, 경제적 안정을 위한 정략결혼이었습니다. 아직 솔로몬의 통치 초창기이지만, 이러한 모습을 시작으로 솔로몬의 통치는 조금씩 신본주의 정치에서 인본주의 정치로 변모해 갔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러한 설명이 신본주의 정치라는 이름 아래 그 어떠한 정치적 행위도 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통치자의 마음의 중심에 ‘자신의 소리’와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 중 무엇을 최우선순위로 여기며 한 나라를 이끌어 갈 것인가는 그 지도자와 그 나라의 전체 방향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통하여 한 사람을 평가하시기도 하시고, 한 나라와 공동체를 평가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그 평가에 따라 이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방향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소리’라는 우상을 내려놓고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소리는 나를 지게 만들고, 예수님의 음성은 나를 이기게 만듭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신뢰하고 그분을 목적 삼는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과 기쁨, 만족과 생명의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이스라엘이 솔로몬 왕 시대에 이루었던 영화와 번영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이 말씀에 나타나는 것은 여호와의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의미하는 표현들입니다. 즉 오늘 본문은 여호와께서 하신 언약이 이루어졌음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염두에 둬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언약은 영원하지만 솔로몬 왕 때 이루어진 영화와 번영은 일시적이라는 것입니다(창13:15, 17:7).
열왕기를 처음 읽은 1차 독자였던 패망한 유다의 백성들은 그때의 영광이 회복되길 소망했고, 지금도 유대인들은 그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는 그런 방법으로 여호와의 언약이 이루어 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언약이 실패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는 여호와의 언약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의심하고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이미 먼 과거에 사라진 솔로몬 왕 때의 번영과 영광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왜 지금 솔로몬의 번영과 영광을 읽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 이것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20)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먼저 솔로몬 왕 때의 이스라엘의 인구를 묘사합니다. 그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실제 인구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많은 수를 의미합니다. 특히 이 표현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창세기 22:17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라고 하신 언약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 지금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행복을 누렸음을 의미합니다. 인구가 많았지만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모든 사람이 다 그 행복을 누렸음을 의미합니다. 새번역은 “유다와 이스라엘에는 인구가 늘어나서, 마치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사람이 많아졌지만, 먹고 마시는 것에 모자람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잘 지냈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풍족해도 소수에게 편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에는 소외되는 사람들을 방지하기 위한 율법이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잘 살게 되더라도, 형제에게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손을 움켜지면 가난한 사람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신15:11). 그래서 형제와 이웃들에 대한 율법이 지켜질 때, 이스라엘에 가난한 자가 그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이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다’는 것은 형제와 이웃에 대한 율법이 성취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신명기 15:11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는 이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은 전쟁과 착취를 통해 얻은 것이 아니라, 이웃나라들과의 평화조약과 조공을 통한 것임을 말씀합니다.
(21) 솔로몬이 그 강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그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섬겼더라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주변 나라들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변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섬기며, 평화적인 관계를 맺습니다(24절). 이스라엘을 섬기는 나라들은 그 강 곧 북쪽의 유프라테스강에서 부터 서쪽 블레셋, 남쪽 애굽까지 입니다. 그리고 24절에는 딥사 곧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성읍에서 부터, 서남쪽 지중해 해안 성읍 가사까지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지배력이 미쳤던 범위를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땅에 대한 여호와의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5:18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라고 하신, 이 언약에 대한 성취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땅에 대한 언약은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붙잡아왔던 언약입니다. 약 400여 년 전에 형식적으로 가나안 땅을 점령은 했지만, 이민족과 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갈등이 모두 끝나고 평화의 시대를 맞았습니다. 25절에서 '딥사에서 부터 가사까지 모두 다스리므로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를 누렸다'고 기록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또한 약속의 성취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한 땅 만을 얻은 것이 평정했습니다. 신명기 20:10-11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그 성읍이 만일 화평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들에게 네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이렇게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 때에 이웃의 나라와 전쟁을 통하지 않고 화평한 관계를 맺으며, 섬김을 받아 경제적인 풍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제적인 풍족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22-23) 솔로몬의 하루의 음식물은 가는 밀가루가 삼십 고르요 굵은 밀가루가 육십 고르요 살진 소가 열 마리요 초장의 소가 스무 마리요 양이 백 마리이며 그 외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들이었더라
"솔로몬의 하루의 음식물”은 솔로몬 왕궁의 규모와 경제력을 의미합니다. 가는 밀가루 삼심 고르, 굵은 밀가루 육십 고르, 살진 소 열 마리, 초장의 소 스무 마리, 양 백 마리와 그밖에 수사슴, 노루, 암사슴, 새들이 사용됐습니다. 이는 14,000명의 하루치 음식량으로 추산됩니다. 이렇게 수량과 종류를 구분해서 기록하는 것은, 양적으로 풍족했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식생활을 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25)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25절은 이러한 솔모론 왕 때의 번영을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단에서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의 남에서 북까지 나라의 모든 곳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작물로 ‘그 아래 평안 했다’는 것은 최상의 수준의 삶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후에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질 이상적인 나라’를 표현하는데 쓰이기도 했습니다. 미가에서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미4:3-4)고 예언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솔로몬 왕 때 이루어진 이 일들은 여호와께서 언약을 이루셨음을 의미하고, 또한 앞으로 그 언약이 완전히 이루어질 소망하게 합니다. 즉 이 말씀은 과거의 영화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약이 앞으로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는 것으로 연결 됩니다. 그러므로 솔로몬 왕 때의 번영과 영화가 클수록, 앞으로 이루실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는 완전하고 영광스러움을 의미합니다.
(26-28) 솔로몬의 병거의 말 외양간이 사만이요 마병이 만 이천 명이며 27 그 지방 관장들은 각각 자기가 맡은 달에 솔로몬 왕과 왕의 상에 참여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먹을 것을 공급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였으며 또 그들이 각기 직무를 따라 말과 준마에게 먹일 보리와 꼴을 그 말들이 있는 곳으로 가져왔더라
이 부분은 솔로몬 왕 때의 군사력에 대한 기록입니다. 군사력에 있어서도 부족함이 없었음을 나타냅니다. 당시 잘살기 위해서는 군사력이 필수였고 이 문맥에서도 긍정적인 요소로 기록되었습니다. 후에 군사력뿐만 아니라 물질과 영토, 외교력이 모두 변질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처럼 당시 이스라엘의 번영은 불완전한 요소를 안고 있고, 그 때 이루어진 여호와의 언약이 불완전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29-34)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그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워서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의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34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으니 이는 그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들이 보낸 자들이더라
마지막으로 솔로몬의 지혜와 총명에 대해서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솔로몬은 다른 왕들에게는 없었던 특별한 지혜를 가졌습니다. 그 지혜는 추상적인 지혜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지혜였습니다. 행정, 군사, 외교, 경제, 자연과학, 사법과 인문학에 까지 모든 부분에 특별한 능력이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이루셨는데, 그 방법으로 솔로몬에게 특별한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이루셨습니다. 갑자기 기적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솔로몬이라는 왕의 지혜로 나라가 다스려짐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택된 왕과 그 왕의 지혜가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약속하신 약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고 부귀와 영광도 주어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열왕기상3:12-13).
오늘 말씀에서도 솔로몬의 지혜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셔서, 그 지혜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솔로몬과 같은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적용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과 같은 왕이 이스라엘에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열왕기상 3:12b이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고 증거 합니다. 이는 과장법이기도 하지만, 내포하는 의미 중 하나는 솔로몬 왕은 인간 왕으로 최고치를 보여주었고, 더 이상 같은 방법으로 더 이룰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런 성취가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소망해야 합니까? 그렇다면 솔로몬 왕 때 이루어진 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레미야 23: 5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예레미야 23:5)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리고 이사야 11장에서는 한 왕이 오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며 이상적인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최고의 지혜를 가진 왕이었던 솔로몬도 이루지 못한 것을 다른 왕을 통해 이룰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에 대한 진술과 연결됩니다. 고린도전서는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다”(고린도전서1:30)고 증거 합니다. 그리고 에베소서에서는 그를 통해 지혜를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부르심과 그의 영광과 그가 하시는 일과 그의 경륜을 알게 하셨다’고 진술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 왕 때의 번영과 영광은 그 이후 메시아가 오실 것이란 약속과 같습니다. 솔로몬의 번영과 영광이 클수록,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언약을 더욱 환전하고 큽니다. 그 메시아는 2000년 전에 태어난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는 예수께서 ‘모든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영원 전부터 하나님 속에 감추어져 있던 비밀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다고 진술하는 것입니다(에베소서3:9).
솔로몬이 가졌던 지혜와 총명은 여호와의 언약을 일시적으로 이루고, 앞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언약을 보여주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지혜의 원본입니다. 그 지혜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복음을 지혜로 여깁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지혜로 사는 하루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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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4장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던 솔로몬이 어떻게 내각을 구성하고, 얼마나 번영했는지를 소개합니다.
먼저, 2-6절을 보면 반복해서 나오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의 아들’입니다.
(2-6절) “그의 신하들은 이러하니라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이요 시사의 아들 엘리호렙과 아히야는 서기관이요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요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군사랑관이요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요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지방관장의 두령이요 나단의 아들 사붓은 제사장이니 왕의 벗이요 아히살은 궁내대신이요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은 노동 감독관이더라”
즉, 이들은 모두 아버지 다윗 시대에 중요한 직책을 담당했던 참모들의 후손들입니다. 즉 솔로몬은 아버지 시대의 참모들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내각을 구성한 것입니다.
(7절) “솔로몬이 또 온 이스라엘에 열두 지방 관장을 두매 그 사람들이 왕과 왕실을 위하여 양식을 공급하되 각기 일 년에 한 달씩 양식을 공급하였으니”
여기서 주목해서 봐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열두 지방 관장’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전역을 12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고 이를 관할하는 관장을 세운 것입니다. 오늘날 도지사쯤으로 볼 수 있습니다. 행정구역은 12지파가 차지했던 지역을 근거로 나눴습니다. 12개의 행정구역은 순번대로 1년에 1회씩 세금을 내도록 했습니다. 다만 다윗가문의 지파인 유다지파가 언급되지 않은 것은, 세금 납부를 면제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 20-28절을 보면, 얼마나 솔로몬의 통치가 번영했는지를 보여줍니다 .
(20절)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본문에 따르면 크게 당시 솔로몬의 통치영역은 블레셋과 애굽 지경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국들로부터 조공을 받을 만큼 강성했습니다. 또한 25절에 보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다고 합니다. 즉 그들이 수고하고 거둔 것에 만족하며 살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27절에 보면, 12지방 관장들은 각각 자기가 맡은 달에 부족함이 없도록 세금을 꼬박꼬박 잘 내었습니다.
그로므로, 솔로몬의 통치로 인해 단부터 브엘세바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와 주변 나라와 평화를 이루며, 그야말로 솔로몬의 통치시대는 태평성대였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4장은 29-34절에 솔로몬의 지혜에 대해 언급하며 마무리 짓습니다.
(29절)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총명으로 사방 모든 나라에 그의 지혜로움이 소문이 났고, 그의 지혜를 들으러 천하 모든 왕들이 사람들을 보낼 정도였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솔로몬은 강력한 군사력과 통치력으로 인해 12개의 행정구역으로부터 세금을 풍족히 받았고, 주변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아, 경제적 풍요로 울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백성들에게 평화와 안정을 보장해 주었고, 주변국들과 평화를 누리며 태평성대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두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말미암아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말미암아, 솔로몬 시대에 태평성대를 이뤘다는 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세금을 즐거이 낼 때 태평성대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솔로몬 시대가 태평성대였던 것은 하나님의 돌보심속에서 12개의 행정구역 모두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수고하여 얻은 것에 만족하고, 세금을 내는 것에 부족함 없이 즐거이 냈기 때문입니다. 바로 12 지방관장 모두 세금을 내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나눔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금이 나눔이다’는 이 내용은 사실 2014년 6월14일 중앙일보 한 칼럼에 나온 내용입니다. 물론 저와 성도님들도 익히 담임목사님 설교를 통해 들어 알고 계시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 칼럼에 보면, 납세의 의무가 없으니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세무서 직원에게 세금을 받아달라고 했던, 오히려 세무서 직원들이 번거롭다고 말렸던 담임목사님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나눔이 바로 세금을 잘 내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도네이션은 두 번째 나눔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세금을 즐거이 내는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태평성대를 위한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평화는 풍요와 안전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의 통치시대는 정말 풍족하고 안전했습니다. 4장22-26절을 보면, 솔로몬 왕궁에서 소비된 하루의 음식물은 어마어마 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 정도는 1만 4천명이 풍족하게 먹을 양이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26절에 보면 병거의 말 외양간이 ‘4천이요 마병이 1만 2000명’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막강한 말와 마병으로 군사력을 높였던 것은 애굽 공주와의 정략결혼의 결과였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신명기 17장14-17절에 따르면 왕을 세울 때 크게 세 가지를 명심하라고 했습니다. 첫째로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라’그리고 ‘자기를 위해 은금을 많이 쌓지 말라’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인생을 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말미암아 부와 명예 그리고 해박한 지식을 가졌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풍요롭고 평화로워 보 일 수 있지만, 과연 어떻게 얻게 된 부와 명예인지, 누구를 위한 부와 명예인지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부와 안전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한 휘페레테스와 마르튀스로 살아가는 이들 속에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지 않는다면, 겉으로 들어난 부와 안전은 잠시요, 온전한 하지 않으며 오랫동안 존속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조록, 오늘 하루 기도로 시작하면서,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동안 부와 안전 그 자체만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를 통해 이 땅 가운데 온전히 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며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휘페르튀스와 마르튀스로 살아가기를 다시금 다짐하는 그리고 살아내는 한날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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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에서는 솔로몬의 지혜로운 재판을 통해서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 순종하는 것이 곧 지혜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한 빼앗지 않으면 빼앗기고,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 속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 주시는 지혜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생각해보았습니다.
4장의의 전반부는 솔로몬이 자신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라를 세워가는 정치.행정적인 조직이 기술되고 있습니다. 즉 솔로몬왕정의 신하들과 열두 행정구역 및 그 장관에 대한 기록입니다. 정치, 외교, 행정, 군사의 영역 등 다양한 필요에 따라 사람을 기용하고 그들에게 직임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이러한 기술을 통해 우리는 솔로몬의 태평성대가 물론 그의 지혜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결코 솔로몬 혼자의 힘이 아니라 동역자들의 동역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 또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자신이 받은 지혜를 통해 먼저 실행해야 할 일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사람들을 선택하고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솔로몬의 행정 각료들은 각자는 따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되어야 했으며, 이러한 인사 배치의 근간에는 종교와 정치, 경제 , 군사 등 모든 방면의 것들이 신앙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전제가 그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능력이 많은 사람이 많은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일의 실상을 더 깊이 살펴보면 우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을 봅니다. 성경의 사람들 또한 그렇습니다. 그들은 모두 동역을 통해 신앙의 유산을 일구고 남긴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에게는 실라와 디모데라는 동역자,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신실한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초기 기독교의 기초를 세웠던 그 놀라운 업적은 동역자들과 함께였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의 시대에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세상을 향한 당신의 일을 허락하실 때에는 솔로몬처럼, 바울처럼 그것을 감당하기 위한 동역자들을 주변에 허락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더불어 선을 이루어 가는 사람입니다.
다음으로 본문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게 되었으나 먹고 마시는 일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말함으로써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의 번영과 평화를 나타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번영과 평화의 증거를 여러 측면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영토가 유프라테스강에서 애굽지경에까지 이르렀고, 그 사이에 있는 나라들이 조공을 바쳤다고 합니다. 또한 솔로몬 왕실의 엄청난 하루 소비 식량을 언급하여 이스라엘이 물직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었음도 나타내고 있습니다. 25절에는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다’고 표현합니다.
이처럼 솔로몬의 통치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놀랍고 완전한 평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궁극적으로 마지막 때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루실 의의 통치와 천국의 기쁨을 예표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예표가 그러하듯이 예표는 실제 약속에 비하면 그것은 그림자일 뿐입니다. 더욱이 오늘 본문의 열왕기서가 작성된 때는 예루살렘 멸망 이후였음을 감안할 때, 솔로몬 시대의 번영은 결국 역사 속에서 흘러간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의 솔로몬의 통치가 영광스러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거기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26절의 언급을 보면 그는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는 동시에 군사적인 힘도 의지하고 있었음이 엿보입니다. 더욱이 그것은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는 율법의 정신과는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신17:16) 그리고 이것은 이후 솔로몬 통치의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은 한마디로 최고의 절정기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다윗이나 솔로몬의 통치력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절정의 원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이 당신을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들 자신들은 물론 그들이 다스리는 이스라엘과 함께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동일한 원리입니다. 그 원리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의 심령이, 우리의 가정이, 우리 사회가, 우리나라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기를 소원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