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데기 속 나비 같은 아이
최종득(거제 외포초)
연아는 참 많은 능력을 가진 아이였다. 그림도 잘 그리고 공부도 잘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없었다. 늘 웃으면서 친구들을 대하고 친구가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섰다. 연아 주위에는 늘 친구들이 많았고 연아도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그런 연아가 혼자 있을 때는 얼굴 표정이 어둡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모든 것들을 다 잘하려고 하다보니 힘이 들어서 그런가 싶었지만 왠지 짠해 보였다.
내 마음속 악마
공부할 때는 어려워서 스트레스
그림 그릴 때는 못 그려서 더 스트레스
집에 있을 땐 오빠가 괴롭혀서 스트레스
언제부턴가 내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
(2021. 4. 9.)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 연아가 공부와 그림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물론 더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것은 알지만 자기 스스로 공부가 어렵고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하는 것이 이해 되지 않았다. 연아는 공부도, 그림도 반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살 정도로 잘하는 아이였다. 연아는 왜 자기가 가진 능력을 믿지 못하고 초조해하는 걸까?
무엇보다 연아가 받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오빠인 것 같았다. 이 시를 쓰기 전에도 오빠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오빠는 남들 앞에서는 잘해주는 척하다가 집에 단둘이 있으면 자기를 엄청 괴롭힌다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늘 오빠 편만 든다고 했다. “오빠는 원래 까칠하잖아.” 하면서.
미운 나
시쓰기 대회에서 우리 반에 상 받은 애가 있다고 했다.
사실 내가 뽑힌 줄 알고 신나했다.
마음을 다스렸지만
내가 아니란 걸 알고 슬퍼했다.
가원이를 축하해줘야 하는데
내가 안 뽑혔다고 슬퍼하는 내가 밉다.
(2021. 6. 10.)
연아는 친구들에게 이미 이름난 시인이었다. 틈날 때마다 시를 썼기 때문에 ‘날두시’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날두시’는 날마다 시를 두 편씩 쓰는 시인이라는 뜻이다. 연아도 자기가 시쓰는 것을 좋아하고 잘 쓰는 것을 알기에 시쓰기로 상을 받는다면 당연히 자기일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 생각과 달리 친구가 상을 받았다.
연아한테 자신이 쓴 시가 못 쓴 게 아니라 심사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것뿐 이라고 위로했지만 그래도 많이 섭섭해했다. 그리고 친구가 상 받은 걸 축하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상을 못 받았다고 슬퍼하는 자기 자신이 너무 밉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작은 질투의 감정조차도 연아는 힘들어했다.
여주인공 주은이
주은이는 맨날 핑크핑크한 옷을 입는다.
나는 맨날 흰색 티에 검은 옷을 입는다.
주은이는 맨날 구두를 신는다.
나는 맨날 샌달을 신는다.
주은이는 여주인공 같고
난 그냥 만화에서 지나가는 사람 같다.
(2021. 7. 9.)
연아는 옷을 편하게 입고 다녔다. 흰색 티에 까만 바지를 입고 다녀서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자기도 주은이처럼 핑크핑크한 옷에 구두를 신고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그런 옷을 안 사준다고 했다. 엄마는 편한 옷이 가장 좋은 옷이라면서 늘 같은 종류의 옷만 사준다고 했다.
연아가 옷을 편하게 입고 다녀도 아무도 연아를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한 옷 덕분에 아이들과 장난도 많이 치고 체육 시간에도 열심히 하기 때문에 인기가 더 많았다. 그렇지만 연아는 그런 자신을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까칠한 오빠
엄마는 오늘 아침밥으로
내겐 국에 밥을 말아주었다.
오빠에겐 삼겹살을 해주었다.
뭐가 이뻐서 주는지 물어보니
“니 오빠 까칠하잖아~”라며
우쭈주 해준다.
까칠한 오빠도 그런 오빠를
우쭈쭈하며 좋아해 주는 엄마도
이젠 지겹다.
(2021.7.12.)
연아는 집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오빠한테만 잘해주고 자기는 함부로 대한다고 했다. 자기를 괴롭혀서 싫은 오빠가 엄마 때문에 더 싫어졌을 것이다. 오빠만 감싸고 도는 엄마도 덩달아 싫어졌을 것이다. 그런 집이 싫어지고 지겨워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연아 손전화에 엄마 이름이 ‘욕잠화’로 저장되어 있다. ‘욕잠화’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 ‘욕 잘하고 잠만 자고 화를 내는 엄마’라는 뜻이라고 했다. 물론 웃으면서 이야기 했지만 오빠만 좋아하고 자기한테는 신경을 안 써주는 엄마가 원망스러워서 그랬을 것이다.
교실
교실에 가면 제일 먼저 걱정해주는
선생님이 계셔서 좋다.
교실에 가면 그 다음으로 걱정해주는
내 친구들이 있어서 좋다.
이래서 몸이 아파도 교실 올 맛 난다.
(2021.7.8.)
집에서는 존재감이 없던 연아가 학교에 오면 존재감이 확 올라갔다. 교실에 무슨 일이 생기면 연아는 발 벗고 나서서 그 일을 해결했다. 최대한 친구의 마음을 살펴서 말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친구들은 다 연아를 좋아했다.
그런 연아가 조용히 앉아 있거나 어디가 불편해 보이면 친구들은 연아한테 다가가서 말을 걸고 걱정을 해주었다. 그래서 연아는 아파도 학교에 왔다. 보건실에도 잘 가지 않고 그냥 교실에서 친구들의 관심을 받으며 조금씩 회복했다.
바보 같은 로또
우리 집 강아지 로또는
비가 와도 해가 미칠 듯 눈부시게 나와도
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집으로 쫌 들어가라 해도 안 들어간다.
눈에 비가 들어와 눈을 간신히 떠서
우리를 바라본다.
그걸 보면 나도 비를 맞으며
안아줄 수밖에 없다.
(2021. 7. 13.)
연아는 자기 집 진돗개를 엄청 자랑스러워 했다. 오빠가 자기를 괴롭히고, 엄마는 자기한테 관심도 주지 않지만 로또는 다르다고 했다. 자기가 학교 갈 때 개집에서 나와서는 집에 올 때까지 집 문 앞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해가 너무 강한 날도, 비가 오는 날도 늘 문 앞에 있기 때문에 집에 늦게 갈 수가 없다고 했다. 연아에게는 로또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로또를 안고 있을 때가 집에 있는 시간 가운데 가장 행복한 때라고 했다.
해를 좋아하는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해를 좋아해서 해바라기다.
해가 없으면 고개를 푹 숙여 해가 있는 쪽을
바라만 본다.
해가 오면 덩실덩실 춤을 추는 듯
당당하게 서 있다.
해는 참 좋겠다.
자기만 바라보는 사람이 있어서.
(2021.7.16.)
연아는 자기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존재가 있길 원했다. 물론 학교에 오면 많은 친구들이 연아를 좋아하고 바라봐주지만 해바라기 같은 존재는 아니다. 연아는 엄마가 자기만을 바라봐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엄마는 늘 오빠만 챙기고 아빠도 오빠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몽골에 계신 외할머니는 자기를 엄청 좋아했다고 했다. 연아에게 해바라기 같은 존재는 외할머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외할머니는 몽골에 계시기 때문에 자주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에는 몽골에 자주 갔었는데 코로나19가 유행하고 부터는 한 번도 가지 못했단다. 외할머니를 못 뵌 지 삼 년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구름 여행
구름은 하늘에서 계속 움직인다.
나는 집에만 박여 있는데.
혼자 놀러 다니는 구름이 부럽다.
구름아, 우리 할머니 있는 몽골로
한 번만 데려다 주렴.
연아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외할머니가 있는 몽골을 가고 싶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힘도 세고 멋있다고 했다. 연아가 친구들에게 너그럽게 대하고 감성이 풍부한 것은 몽골의 푸른 초원을 누비던 외할머니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사과
엄마는 나한테 화를 낸 뒤
미안했다는 말 한마디 하고
내 용서 따윈 생각 안 하고
끝난 줄 안다.
난 안 끝났는데.
내 마음은 싸운 일을
스펀지처럼 머금고 있다.
(2021. 11. 5.)
오빠만 좋아하는 엄마가 싫지만 그래도 엄마라서 미워할 수 없다고 했다. 자기를 위해 일을 하고 한 번씩 오빠한테서 자기를 구해주기도 한단다. 그렇지만 엄마가 자기를 너무 쉽게 대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실컷 화를 내고 나서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면 끝인 줄 안다며 화를 냈다. 자기는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말이다. 자기는 엄마가 자기한테 한 말과 행동을 가슴 깊이 생각하고 있단다. 그래서 엄마가 더 싫어진단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아이들 마음을 참 모른다며 안타까워했다.
오빠
오빠가 나랑 싸워도
나한테 사과 한번 안 한다.
오빠를 쓰레기통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다 버렸으면 좋겠다.
내 인생에서 오빠에 손톱 하나도
보이지 않았음 좋겠다.
오빠가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걸어가다가 길 잃었음 좋겠다.
(2021.11.12.)
드디어 연아가 오빠한테 하고 싶은 말을 시로 썼다. 연아는 자기를 괴롭히는 오빠 때문에 늘 힘들어했다. 엄마도 도와주지 않고 아빠도 도와주지 않아서 연아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활발하던 아이가 집에 갈 때는 풀이 죽어 힘없이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늘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말을 연아는 있는 그대로 다 토해내었다. 얼마나 오빠가 미웠으면 오빠를 쓰레기통에 싹다 버리고 싶다고 했을까? 자기 인생에서 오빠가 아예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빠가 자기를 괴롭힌 대가를 톡톡히 치렀으면 하는 마음에 길을 잃고 힘들어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속이 후련하다며 활짝 웃는 연아를 보면서 연아가 참 많이 컸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가슴속 이야기를 시원하게 풀어내는 연아가 참 용기 있어 보였다. 그리고는 오빠가 자꾸 괴롭히면 이 시를 들려주라고 했다.
겨울을 막는 방법
겨울이 살며시 다가온다.
가을 느낌 나던 낙엽이 내려온다.
또 따뜻한 공기가 가득하던 날씨가
비가 온 것처럼 공기가 차갑다.
그러면 내 손은 당연하게
차가워지기 시작한다.
그런 내 손을 잡아주는 내 친구는
내 마음까지 녹여버린다.
(2021.11.26.)
<오빠>라는 시를 쓰고 난 뒤부터 연아는 많이 편안해 보였다. 예전보다 더 많이 웃고 혼자 있을 때도 힘들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빠가 여전히 자기를 괴롭히지만 스트레스는 덜 받는다고 했다.
학교에 오면 친구들 속에 파묻혀 즐겁게 생활하는 연아는 이제 더 이상 해바라기 같은 존재를 바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친구들과 함께 다 같이 해바라기도 되고 해도 되면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 같았다.
꽃잎이 일곱 개인 코스모스
길을 지나가다 코스모스를 봤다.
예뻐서 중간에 구경하는데
코스모스 잎이 일곱 개다.
코스모스 잎이 일곱 개라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다.
예쁜 건 똑같으니.
멀리서 보면
똑같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예쁜 꽃, 코스모스니까 괜찮다.
(2021. 11. 26.)
연아는 지금까지 자기가 꽃잎이 일곱 개인 코스모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자기 스스로 남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면서 생활했던 것 같다. 그림을 잘 그리면서도 못 그린다고, 공부를 잘하면서도 못 한다고, 시를 많이는 쓰지만 잘 쓰지는 못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아마 그런 마음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조금씩 연아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꽃잎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 똑같은 코스모스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번데기 속 나비
4학년 마지막 쫀드기쌤 시 시간이다.
언제까지나 쫀드기쌤과
함께 일 순 없다.
번데기 속에서 기다려온 나비는
오랜 정이 들어
번데기 속에서 떠나기 싫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나 있을 수 없는 곳.
멋진 나비가 되어
세상을 구경 가길.
오랜 정 많이 든 4학년에서
정 들러 가는 5학년 길.
(2021.12.19.)
마지막 시쓰기 시간에 연아는 <번데기 속 나비>라는 시를 썼다. 자기를 번데기 속 나비라고 말하는 연아. 자기가 얼마나 많은 능력을 가졌는지도 모르고 그냥 잠자듯이 번데기처럼 생활했던 연아. 이제 조금씩 자기를 믿고 자기가 가진 능력을 마음껏 펼치기 시작한 연아.
연아는 분명히 멋진 나비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연아가 지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갔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