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여전히 강력한 신형 포드 레인저 랩터의 오프로드 실력
송지산 기자입력 2023. 6. 14. 16:18
픽업 트럭은 독특한 특징을 지닌 모델이다. 외관으로 볼 때는 SUV보다 더 많은 화물이나 짐을 싣기에 적합한 모습이지만 이 용도는 국내에선 1톤 트럭들이 장악한 상태고, 그렇다고 탑승객의 편안함을 논하기에는 최근 SUV들에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 이 픽업 트럭의 원조 국가인 미국에서도 소비자들은 작업에 사용하는 비중보다는 라이프스타일 쪽에 초점을 맞춰 선택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고 하는 걸 보면, 국내 시장에서의 픽업트럭 활용도가 레저나 아웃도어 쪽으로 쏠리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이렇게 레저나 아웃도어에서 활약하기 위해선 온로드는 기본이고 오프로드에서도 잘 달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문제는 ‘오프로드’의 범주 안에 다양한 노면의 길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즐겁게 떠난 여행에서 자칫 험지에서 바퀴가 빠져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고생의 추억만 남기고 싶지 않다면 다양한 노면에 대응 가능한 제품이 필요한데, 그 중 으뜸으로 꼽을만한 모델이라면 최초의 픽업트럭 모델 T를 만든 포드의 대표 모델인 레인저 랩터가 아닐까. 레인저 랩터의 오프로드 실력은 이미 지난 3세대에서도 충분히 경험한 바 있지만, 올해 레인저 랩터가 4세대 모델로 돌아왔다. 새로운 레인저 랩터의 진면모를 확인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향했다.
수도인 하노이에서도 버스로 무려 7시간이나 달려 도착한 곳은 사파라는 곳으로, 국내 예능 프로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으며, 인근에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판시팡(3,142m)이라는 산이 위치해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본격적인 시승은 여기서 다시 차를 타고 1시간을 더 달리면 나타나는 세오 미 티(Seo My Ty) 호수 주변에 마련된 코스에서 진행됐다.
이른 아침 준비를 마치고 숙소 앞으로 나가니 오늘 시승을 위해 준비된 모델들이 늘어서 있다. 재밌는 건 시승하는 곳은 베트남이지만, 준비된 차량은 모두 태국 사양이 공수됐다. 즉 우측 통행 국가에서 우핸들 차량을 운전해야 하는 상황. 한국에서 일본 내수형 차량들을 운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차에 올랐다.
준비된 차량은 총 3종류로, 레인저는 랩터와 스톰트랙(국내 미출시 사양)이 준비됐고, 국내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SUV 한 종류도 함께했는데 이는 레인저를 기반으로 패밀리카 개념으로 만들어진 에베레스트다. 즉 큰 범위에서 보자면 레인저 시리즈와 그 파생모델을 위한 시승회인 셈. 드디어 인솔 차량의 안내에 따라 행사장으로 출발했다.
얼마 전 온로드 시승에서도 경험했지만 레인저의 덩치는 제법 상당하다. 한국의 도로에서도 차선에 꽉 들어차는 크기에 운전하면서 적잖이 애먹었던 경험이 있는데, 베트남의 도로는 이보다 좁은 데다, 조금만 속도가 느려진다 싶으면 여지없이 뒤에서 추월에 나서는 모터사이클들까지 겹치니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걱정될 지경. 그나마 다행인 건 워낙 모터사이클이 많은 나라다보니 자동차 운전자들도 이에 충분히 적응하고 조금씩 속도를 줄여주기도 하며 안전하게 각자의 길로 가고 있었다.
물론 이런 여유는 일반도로까지만 적용되는 문제고, 도로에서 벗어나 좁은 마을길로 들어서자 얘기가 달라진다. 차 한 대만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길에선 반대편에서 오는 자동차는 물론이고 모터사이클마저도 부담스러워질 지경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우핸들 차량이라 차를 길 우측 끝으로 붙이기가 조금은 수월하다는 것일까. 여기에 모터사이클 운전자들도 여유 공간이 없다고 판단이 되면 아예 차를 멈춰 세워준 덕분에 아무런 사고 없이 목적지로 달릴 수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세오 미 티 호수, 계단식 논이었던 자리와 하천 주변을 이용한 코스가 넓게 펼쳐져 있다. 여기에서 오늘 레인저 랩터의 실력을 확인해볼 예정으로, 먼저 진흙구간과 모래구간, 그리고 바위와 자갈이 가득한 계곡을 건너는 구간에서 시승이 이루어졌다. 함께 동승한 인스트럭터의 당부는 천천히 이동하면서 차체의 움직임을 느껴보라는 것, 그리고 꾸준하게 달리면서 타이어의 그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간별 자세한 설명은 차차 듣기로 하고 출발선에 섰다.
첫 번째 구간은 진흙구간이다. 사실 가장 조성하기 쉽지 않았을까 싶은 구간으로, 오늘의 코스들이 과거 논이어서 물만 적당히 부어주면 금세 땅이 진흙밭으로 변하게 되니 말이다. 주행 모드를 ‘머드 & 러츠(Mud & Ruts)’로 바꿔주고 서서히 코스에 들어선다. 속도는 느리지만 레인저는 꾸준히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가속 페달을 살짝 살짝 밟아줘도 갑작스레 헛바퀴를 돌거나 하지 않고 부드럽게, 서서히 속도를 올려준다. 여기에 당연히 빠져선 안될 사륜구동 기능까지 더해져 차분하게 진흙밭을 빠져나간다.
다음은 모래구간. 여기서도 인스트럭터가 빨리 달리지 말라고 한 번 더 강조했는데, 랠리카가 아닌 이상에야 모래밭에서 어설프게 속도를 내다간 진흙에서와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멈추지 말고 꾸준히, 거의 대부분의 오프로드에서 통용되는 기본 규칙으로 삼는다면 곤란을 겪을 일은 없을 듯하다. 주행모드는 ‘샌드(Sand)’로 변경했는데, 앞서 사용했던 다른 주행모드들과 마찬가지로 타이어 그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동력을 끊어지지 않고 꾸준히 전달해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다만 각 노면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설정이나 세팅이 달라지는 부분들이 있으니 적극적으로 사용해보면 어떤 노면에서도 겁날 일이 없을 것이다.
모래밭도 금세 빠져나왔고, 다음은 도강 코스다. 그렇다고 레인저에 별도의 도강 모드가 있는 건 아니고 계곡 바닥의 상태에 따라 맞춰야 하는데, 이곳은 딱 보기에도 온통 바위와 자갈 투성이다. ‘록 크로울(Rock Crawl)’ 모드로 변경하면 끝인가 했는데 인스트럭터가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또 하나의 기능을 작동시킨다. 바로 '트레일 컨트롤(Trail Control)' 기능이다. 크루즈 컨트롤은 온로드에서 일정한 속도로 달릴 수 있게 하는 기능인데, 트레일 컨트롤은 오프로드에서 일정한 속도로 달리게 하는 ‘오프로드용 크루즈 컨트롤’인 셈이다. 그렇다고 온로드처럼 대단히 빠른 속도로는 달릴 수도 없고 그러면 위험하기에 오프로드에 적합한 속도, 최저 2km/h에서 최대 30km/h까지 사용자가 0.5km/h 단위로 세밀하게 조절해서 달릴 수 있다. 운전을 잘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큼직한 돌을 타넘는 상황에서도 일정하게 구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여기에 좌우로 스티어링 휠까지 조작해야 한다면? 이런 점들을 생각한다면 오프로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능이 바로 트레일 컨트롤이다. 코스에 들어서니 유독 피해야 할 크거나 뾰족한 돌들이 많이 보여 스티어링 휠을 바쁘게 돌려야 했는데, 트레일 컨트롤 기능 덕분에 신경 쓸 요인이 하나 줄어들어 조향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각 코스마다 인스트럭터들이 배치되어 코스나 조향에 대한 부분을 알려주고 있지만, 그래도 직접 눈으로 전방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안심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주행하는 내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건 불편은 둘째치고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방법. 다행히 레인저 랩터에 탑재된 '서라운드 뷰' 기능이 있어 보닛에 가려진 전방 시야까지 여유 있게 확보할 수 있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특히 오프로드 주행에서는 끊어짐 없이 길게 작동하기 때문에 좁은 구간을 안전하게 빠져나오는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한 코스를 돌며 주요 기능들을 쭉 테스트해봤지만, 하나 테스트하지 못한 기능이 있다. 바로 '바하(Baja) 모드'가 그것. 앞서 ‘랠리카’를 잠깐 언급했는데, 레인저 랩터를 랠리카처럼 달릴 수 있게 하는 주행모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름의 유래가 된 ‘바하 1000’ 랠리 경기에서 레인저랩터가 활약해온 만큼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의지로 이 바하모드를 넣은 것이리라. 앞선 주요 오프로드 주행 모드들은 대부분 사륜구동 저속모드에서 사용 가능하지만, 이 바하 모드는 반대로 사륜 고속에서 사용할 수 있다. 세팅을 변경하고 안내에 맞춰 부드러운 흙밭으로 차량을 몰아 들어간다. 첫 번째 커브에서 흙먼지를 흩뿌리며 돌아가는 픽업트럭의 모습을 그리며 빠른 조향 후 가속 페달을 단숨에 끝까지 밟았는데, 맹렬한 배기음과 함께 커브를 돌아나가지만 생각보다 뒷바퀴 주변에서 불안함이 느껴지진 않았다. 커브를 빠져나와 다시 방향을 바로잡고 풀 가속을 시작하자 날 듯이 달려나간다. 그 거대하던 레인저 랩터가 이렇게 경쾌하게 달려나가다니! 점점 가속 페달에 힘이 들어간다. 랠리 경기에 참가한 선수가 된 기분을 잠깐이나마 느껴보니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다.
국내 첫 출시 당시에도 경험했었던 포드 레인저 랩터의 오프로드 실력은 세대가 바뀌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사실 변할 것도 없는 것이 이미 오프로드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고, 이는 바하 1000 같은 레이스에서의 계속된 수상으로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 여기에 업그레이드된 실내외 장비들, 특히 강화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SYNC4가 더해진 덕분에 차량 주변의 정보도 선명한 화질로 받아볼 수 있어 온로드에서도, 오프로드에서도 안심할 수 있는 점도 좋다. 여기에 오프로드를 즐기기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의 부담을 덜어주는 ACC 기능과 차선유지보조 시스템, 오프로드에선 어떤 노면에서도 겁내지 않아도 되는 다양한 주행모드들까지 갖춰져 있으니 이제 운전자가 고민할 건 목적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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