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2004) 근로자문화예술제 문학분야 대통령상수상작
◎겨울, 수색역에서
金 滿 年
1
언제부터였을까 물빛 곱다던 수색역은
거대한 공룡들의 습지로 변해있었다
새벽마다 중생대의 눅눅한 바람이 음습해오는
기관고 유전지대에는
등 푸른 공룡들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었다
지상 오십 미터 상공 조명탑에 촘촘히 박힌 공룡 알들
일제히 부화등燈을 밝히면
질척거리는 유전 습지에서 불잠자던 공룡들
허연 갈퀴 앞세우고 가르릉 가르릉 일어선다
하늘 어디쯤 플러그를 꽂고 송출신호를 보내면
공룡들은 일제히 백악의 울음 하얗게 내지르고
무쇠발톱 철거덕거리며 검은 침목철선을 따라 걸어나온다
직립의 원인들이 청 녹 깃발 펄럭이며
공룡들을 일일이 호명하면 한껏 가열된 공룡들
긴 꼬리등창窓 푸르릉 흔들며
철길 위에 일렬횡대로 늘어선다
웅웅 가속의 결의를 다지는 공룡들의 붉은 눈알 속으로
일순간 파란 불빛이 번뜩이는,
2
겨울, 수색역에는 새들도 둥지를 틀지 않는다
용들이 뿜어낸 불티들 불야성을 이루며 날아올라
검게 그을린 밤하늘에 별빛으로 박히던 것
오래도록 보아왔다
날마다 삼 천 마력 터보엔진 등푸른 기관차들을 출항시키며
순간 가속음 일백 데시빌의 굉음 속으로 달아오르는 새벽
눈썹 위에 달라붙은 졸음에 걸려 넘어지며
직립보행이 언제나 하늘 길처럼 아뜩했다며
시뻘건 조개탄 위로 끓어오르는 한 젓가락의 라면
달게 먹고
면발처럼 매콤한 힘줄로 새벽을 턱걸이하는,
3
만남과 헤어짐의 발원지
난맥상으로 꼬인 철길
한 올 한 올 풀어
푸릇한 산맥으로
기차를 떠나보냈네
퇴행할 수 없는 숙명의 철길
뒤돌아보지 말자
생은 먼 기적울음,
철커덕 철커덕
붉은 산허리 돌아
간이역 어디쯤 머물러 있을
한 움큼의 눈물과 그리움들
집결시키고 분산시키는
水色, 물빛보다 고운
노동의 기지基地
*수색역: 서울역을 거쳐 경부 호남선으로 출발하는 기관차들의 집결지,
밤새 정비를 하고 새벽이면 발차순서에 의해 기관차와 객차를
연결해서 떠나보내는 기지역이다.
◈발표지면:月刊文學 9월호/단행본<겨울, 수색역에서>
◎감
시린 바람
가파르게 오르는
하늘 맨 꼭대기
선홍 감 홀로
눈시울 붉힌다
떫던 사랑
아문 아문 익혀
血血이 떠나보내고
풍상에 돌아앉아
홀로 붉어진 그리움인가
먼 기다림에
짓무른 가슴
환하게 내어놓고
또 어느 생에 가슴 쪼일
적멸의 슬픔인가
시린 햇살이
등 떠밀어 가는 시간
어둑한 하늘 끝에
외등燈 하나
말간 속살로 타는 저녁,
◎다북쑥 어머니
구월 소슬바람이 산문을 열면
싸리 꽃 푯대 삼아 그 산을 오른다
박주가리 어린 열매 단물이 탱탱하고
햇살도 굴러가는 가막골 산비탈에
봉긋이 솟아있는 어머니 젖무덤
천년의 시간에 살면서도
청추 하루 햇살이 아까웠던 것일까
발아래 뫼 꽃들 지천으로 피워 놓고
지나가는 바람 다독여
어느새 다북쑥 파릇하게 키우셨구나
뜬눈으로 별빛 빚어 쑥물 곱게 물들였구나
다북다북 살지 못한 삶이
한이 되었을까
아문아문 영글지 못한 생이
서러웠던 것일까
두 손 가득히 다북쑥을 잡으니
봉긋이 부풀어 오르는 어머니 젖무덤
뭉툭한 손길 닿을 때마다
풀썩풀썩 그리움 일어
손가락 마디마다 쑥물 흥건히 베어온다
어머니 그 속내일까
자식 보고 싶을 때마다
쑥 댓잎 같은 손 불쑥 내밀어
극성스레 다북쑥 키우시는,
▣수상소감
핏빛 곱던 날, 싸리 꽃 하얗게 흩날리던 그 강을 떠나 망망한 대해로 흘러왔습니다. 어머니 깃발처럼 세워두고 세찬 물살 가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허름한 도시 변두리에 폐선처럼 정박한 채 이제 마흔의 썰물 지는 소리 듣습니다. 귀밑머리 하얗던 실밥들 어느새 정수리까지 부풀어 올라도, 만선의 부푼 꿈은 해묵은 술잔 속에서만 출렁입니다.
어머니! 돌아가고 싶습니다. 고티재 넘어 호롱불 흐릿한 그 집으로, 좌판 가득히 찐빵이 익어가고 어머니 때 묻은 전대가 날마다 만삭으로 부풀어 오르던...,그리움도 지극하면 詩가 된다는 것을, 어머니를 놓친 다음에야 알았습니다.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저에게 몸소 시가 되어주신 어머니, 때늦은 장남의 수상 소식에 오늘은 또 무덤이 환해지도록 함박꽃을 피우시겠습니다.
감사해야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철길 위에서 석탄가루 같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푸르스름한 새벽을 달려가는 민들레꽃 철도원들, 그 쌉싸름한 땀방울의 행진에 동참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뜬금없는 소식에도 언제나 변함없이 반겨주던 청량산 벗들, 어느 봄날에 만난 봉화문학 회원님들, 빠듯한 일상들을 닦으며 멀리 달아나지 않고 기꺼이 살아주는 백년지기 아내, 아내에게 힘이 되어주는 영주 누님, 그리고 알게 모르게 도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제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시를 함부로 대하지 않겠습니다. 언제나 질펀한 좌판 위에 엎드린 채, 싱싱한 삶을 시처럼 길어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총평
-뜨거운 체험과 문학열정-
(시, 소설, 희곡, 수필, 꽁트 심사를 마치고)
올해도 근로자문화예술제(1496편응모)에서 보여준 문학부문 공모 작품들의 뜨거운 체험과 문학 열정의 우수성은 기대 이상이었다. 시, 단편소설. 수필. 희곡. 콩트 별로 나눈 본선 심사위원은 모두 4명이다.
시에는 金昌完, 소설. 수필에는 吳仁文, 희곡. 콩트에는 金永武제씨, 그리고 심사 위원장엔 필자 (申世薰)가 당연직으로 맡게 됐다. 왜냐하면 文協과 공동 주관하는 공모 행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심. 본심 심사 위원 역시 문협 임원들이 돌아가며 하게 돼 있다. 아쉬운 점은, 응모 작품이 다양한 데 비해 소설. 수필을 소설가 한 사람이 본선심사를 해야 되고, 희곡. 콩트 역시 극작가 한 사람이 봐야 하는 애로가 있었다는 데 있다. 그렇지만 주최측의 결정이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심사위원들은 부문 별 본선 위원이 따로따로 나누어 심사를 맡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튼 시와 희곡. 수필 쪽은 당선작이 나왔으나, 소설은 좋은 작품을 낸 사람이 근로자가 아니라서, '月刊文學' 에 실릴 만한 작품을 내지 못했다.콩트 수상작은 문단 등단이 못되기 때문에 규정에 의해 '月刊文學' 에 게재하지 못한다. 시. 희곡. 수필 쪽의 최우수 작품만 文協 기관지에 소개하고, 당선자 예우를 하게 된다.
당선작을 낸 시부 심사평(김昌完)은 '시인은 삶을 이해하는 기술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말을 아끼고 다듬어 가며 생활의 아름다움을 찾아 줄 것을 당부했다. 소설과 수필 심사를 맡은 분(吳仁文)은 '체험 발효된 글이 특히 돋보인다' 면서, 수필 '영혼 재활용'(권병진)을 당선으로 예우했다. 희곡 최우수 당선으로 올린 '첫눈 나리는 날' 은 김영무 심사위원 말을 빌면 '연극적인 재미를 계산할 줄 아는 능력을 인정해 주고 싶었다' 면서 그 우수성을 확인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인기 있는 '근로자문학제'가 작년부터 文協과 공동 주관으로 문학부문 공모작을 같이 뽑았다는 것은 문단을 위해 획기적인 일이다. 전국 규모인 만큼 그 수준 또한 해마다 높았으나, 올해는 특히 공동 주관이라서 그런지 실력 면에서는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더 뜨거운 축하를 하게 되어 다행스럽다.
-심사위원장 申世薰(시인.문협이사장)-4337(2004). 6.15.'自由文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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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공무원문예대전 우수상(행자부장관상)
명파리에서 /金 滿 年
1
더는 갈 수 없어
7번국도 끊어진 길 위에서
나는 오랫동안 북녘 땅을 바라보았네
녹슨 바람 가르며
오래전에 떠난 길 하나
묵은 곰솔 수북이 키우며
아슴아슴 늙어가고 있었네
저 길을 따라 자박자박 걸어가면
은모래 넘실대는 명사십리지
저기 구선봉 발아래 잠길락 말락
가뭇이 떠있는 섬이 해금강이지
걸어서 시오리 길
흐린 날에는 바다 새 울음소리도 들리지
송곳니 세워 가르릉거리는 철책너머로
통절痛切한 길 하나
그렇게 가물가물 울먹이고 있었네.
2
허리 잘린 절개지
명파리 바닷가에는 언제부터인가
기다림에 짓무른 눈빛들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 했었네
그리움도 오래되면 박제 되는 걸까
명태처럼 쪼글해진 눈빛들
쪽빛대문에 걸어놓고
낡은 세월 한올 한올 깁고 있었네
허기진 기억 한 톨이라도 붙잡고 싶은지
구부정한 지팡이 탁탁 치며
밀려오는 졸음 쫓고 있었네
먼 바다로 늙은 귀 열어 두고
나직한 해조음 따라
느릿느릿 북향 길 떠나고 있었네
3
이제 그만 통문痛門을 열어야겠네
어메 허리춤에 촘촘히 박힌
녹슨 대못 불끈 뽑아
꽃삽을 만들어야겠네
들쭉 꽃 애기진달래 빼곡히 심어
톡톡 꽃물 터지는 소리로
한나절 울어 누울 꽃밭을 만들어야겠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겠네
툭 터진 실핏줄 따라
아배 떠나오던 쑥국 길
절룩이며 걸어가야겠네
철책 마디마다 말간 혈이 돌아
찔레꽃 하얗게 피어나는 길을 살아서
살아서 돌아가야겠네
늙은 길이 돌아눕기 전에,
*명파리: 강원도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휴전선 접경마을로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
▶심사평[詩]
예년에 비해 응모 편수가 점차 늘어 가고 있다는 것은 퍽 반가운 일이다. 올해에는 총 응모 편수2818편 가운데 시 작품이 1913편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마지막까지 올라온 작품들은 상당한 수준작들이었다. 시의 구성력, 이미지 처리, 그리고 리듬과 호흡들이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인다운 신선감은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기성인들의 시적 분위기 보다는 소박하면서도 진솔하고 참신성을 주는 시가 오히려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최우수작으로 뽑힌 김영희의 '아이'는 호수 주변을 거닐며 물속에 투영된 내재적인 세계를 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심도 있는 이미지화에 호감이 갔다. 일상어를 무리 없이 구사한 작품으로서 엄밀한 시적 구조와 의미의 명징성이 드러나 있고, 리듬감 있는 구성력을 높이 사 최우수작으로 결정하는 데 이의가 없었다.
우수작으로 선정한 김만년의 '명파리에서', 지영환의 '날치 횟집', 임종훈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평범한 소재에서 정제된 언어를 가지고 자신이 말하고 싶은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세 편 모두 주정적인 이미지의 내면세계가 차분하게 형상화됨으로써 전체적으로 시의 내용이 쉽게 전달되고 있다.
장려상으로 뽑힌 정승렬의 '지금은 참선 중'외 다섯 편도 우수작에 거의 근접한 수준들이었으나 안이한 시적 발상, 시적 구조와 섬세한 시적 표현 등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끝으로 이름을 숨겨 응모한 기성이 있거나 표절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후보작 세 편을 예비해 두었음을 밝혀 둔다.
이제 문단의 일원으로 등단의 영예를 안게 되는 최우수작 입선자(月刊文學당선자와 동일한 예우를 받게 됨-편집자)와 그 밖의 입선자들의 치열한 투혼과 미래를 기대하면서 더욱 분발해 주기를 바란다.
권용태, 신세훈
첫댓글 맨 첫 작품이 무척 맘에 듭니다. 물론 내가 추구하는 그런 시형이랄까요. 쓱 맘에 드는 수작이라 봅니다. 그런데 공무원 작품상의 최우수작은 없고 동일인의 우수작을 올려 놓았네요. 아무튼 무척 애쓰셨군요. 고맙고 고맙습니다.
이분의 개인카페에서 퍼온거니까 물론 그분의 작품뿐이죠....저는 시조를써서 그런지 구구한설명이많은시는 축늘어진 빨래줄 같아서 재미없네요....시는 언어절제의 미를 살려야한다고 배워서인가봐요. 시인이 말하고자하는 것을 설명하지않고 깔끔하게 이미지화 한 꼭 필요한 시어를 적재적소에 놓음으로써 시의 탄력과 파헤쳐보는 재미를 느낀답니다....ㅎㅎㅎ저는 '명파리에서'를 인상깊게 읽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