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여자.. 3번 이혼하면 백만장자(?)
- 순수와 자연의 나라, 호주 뉴질랜드를 가다..
유 헌
11월 21일 시드니.. 그곳은 여름의 길목이었다. 블루마운틴으로 오르는 길은 보라빛 자카린다가 신비로움을 더해주며 본격 여름이 왔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제 막 봄빛이 사라지고 계절은 성하의 푸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곳의 봄 색깔이 어떤 빛깔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가로수의 나뭇잎이 지금보다는 좀더 옅은 연두빛이었지 않았을까? 계절은 그렇게 우리와 정반대로 가고 있었다.
계절이 반대이듯이 문화와 풍습도 우리와는 거꾸로인 것이 많았다. 길거리의 자동차 핸들이 우측에 있고, 차 진행 방향은 좌측이고, 주택의 정원은 뒤쪽이다. 계절이 반대이다보니 겨울이 우기이고, 남쪽이 더 춥다고 했다. 스위치의 온오프 위치도 우리와는 반대이고 자동차 매연 배출구인 머플러는 굴뚝처럼 하늘을 향해 있었다. 심지어 하수구 덮게까지도 우리와 달라 여행객을 당황하게 만든다.
이제 남존여비란 말은 우리에게 옛말이 된지 오래지만 그곳은 아직 여존남비가 남아 있었다. 10년 전 뉴질랜드에서 가이드에게 들은 여존남비의 비유가 여전히 그곳에서 지금도 유효했다. 어린이, 노인, 여자, 개, 고양이 다음으로 남자였다. 그 순서대로 대우를 해준다는 얘기였다. 여성들의 천국, 개만도 못한 남자의 신세.. 이런 얘기가 문득 생각났다. 개와 경주를 하지 마라. 이기면 개보다 더한 사람, 지면 개만도 못한 사람, 비기면 개 같은 사람.. 괜히 가만히 있는 개를 가지고 노는 것 같아 개에게 미안하다.
이런 우스개 소리도 있었다. 그곳에서 남자는 4가지만 잘하면 편히 살 수 있다고 했다. 여자가..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하고, 때리는 대로 맞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돈 많이 벌어올 것.. 물론 그곳의 사회상을 재미있게, 조금 과장되게 표현한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니었다.
뉴질랜드에서는 그런 얘기도 들었다. 이혼 세 번하면 여자는 백만장자가 되고 남자는 거지가 된다고 했다. 위자료 등 여자에게 유리한 여러 제도가 새파랗게 살아 있어 이혼당하지 않으려면 여자를 떠받들 수밖에 없다고 하니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왕비모시 듯 하는 일이야 누가 탓하랴만은 쫓겨나지 않기 위해 숨죽여 살아야 한다면 그게 참다운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요즘 세상에 남존여비, 여존남비라니.. 남녀가 평등하고 서로의 인격이 중요하고, 부부는 정과 사랑으로 맺어져야 행복이라는 강가에 가장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음을 그들은 진정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새삼 우리나라 좋은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9박10일의 여정 시작되다..
처음 시드니 국제공항에 도착해 화장실에서 여름옷으로 갈아입고(여행객 모두가 그랬다. 그게 여행의 시작이었다) 시내관광에 나섰다.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까지 모래를 수출해 모래알 좋기로 소문난 본다이비치 해변을 시작으로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더들리페이지,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 스티브 멕퀸이 최후 탈출을 시도한 절벽으로 유명한 겝팍gap park(우리 가이드가 그렇게 얘기했는데 사이판의 만세절벽이 빠삐용 촬영지라는 얘기도 있다) 사이판의 만세절벽을 인터넷으로 본적이 있는데 정말 겝팍과 똑같이 생겼다. 쏟아지는 햇살, 새하얀 뭉개구름,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 부서지는 물보라, 짙푸른 바다건너 아스라한 수평선.. 겝팍의 깎아지른 절벽의 스릴 넘치는 끝자락은 그리움 바로 그것이었다.
남태평양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도착한 곳은 블루마운틴.. 세상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산이라고 그들은 자랑했다. 미서부 그랜드캐년이 남성적이라면 블루마운틴은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블루마운틴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곳에 자생하고 있는 고무나무에서 발산되는 기름성분의 알갱이 때문이라고 한다. 작은 기름방울 입자가 햇빛에 굴절되어 통과하면서 푸른빛 아지랑이가 되어 나타나는데 그로인해 산 전체가 환상적인 푸른빛을 띤다고 한다. 절묘한 자연의 현상을 관광자원으로 잘 활용하고 있었다. 포트스테판의 4WD 사막투어와 모래썰매타기, 돌핀크루즈 모두 그들만의 자연을 테마관광으로 연계한 돋보이는 아이디어였다. 특히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인접해 있는 하버브릿지는 보는 관광을 넘어 체험관광으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다리에서 통행세가 아닌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1시간 줄을 서서 기다린 후 직접 다리 위를 걷는데 우리 돈으로 15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우리가 부러워만 하고 있어야 하는지..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 촬영지중의 한곳인 Botany National Park 해변을 끝으로 시드니 2박3일 일정을 마치고 뉴질랜드 남섬으로 향했다.
다시 시드니 국제공항..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입국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뉴질랜드행 비행기 탑승수속을 앞두고 모두들 짐 챙기기에 분주하다. 국내 인터넷 및 여행사의 잘못된 정보로 인해 가져온 견과류 등을 내놓고 급조된 파티가 열렸다. 뉴질랜드엔 과일은 물론 땅콩껍질 하나 가져갈 수 없다고 했다. 뉴질랜드 입국장에서 적발되면 크게 복잡해진다는 가이드의 말에 여행 중에 먹으려고 아껴두었던 것들을 내놓기 시작한다. 육포, 사과, 햄, 땅콩, 소주(병수 제한이 있었다), 심지어 일행 중에 어떤 여학생은 포트스테판 사막에서 한줌 살짝 담아온 모래까지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끝없는 초원.. 쏟아지는 햇살..
크라이스트처치의 밤바람은 차가왔다. 10년 전에 뉴질랜드와 피지를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그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기분 좋은 차가움.. 뉴질랜드는 이미 여름으로 접어들었지만 늦은 밤 기온은 쌀쌀했다. 그렇게 뉴질랜드 여행은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뉴질랜드 최고의 비경 밀포드사운드를 향해 출발했다. 남섬 2박3일 동안 1,600km을 여행할 거라고 했다. 우리 식으로 계산하면 4천리다. 금수강산 3천리보다 천리를 더 달려야 한다. 가이드는 이 나라의 기후, 정치, 문화, 사회 등에 대해 얘기한다. 대부분 주급을 받고, 저축이 없으며, 주말을 전후해 수입의 대부분을 써버리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가게 문을 닫는 집이 많다고 했다. 노후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기 때문에 저축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저축할 돈도 없다고 했다.
가이드는 이런 얘기도 했다. 호주는 죄수 등이 세운 나라지만 뉴질랜드는 선교사가 세운 나라라고 자랑한다. 개척 당시 영국 정부는 호주로의 이주 희망자가 없어 죄수와 범법자 등에게 감옥갈래? 호주갈래?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나라가 호주라는 것이다. 뉴질랜드와 호주는 조상부터가 다르다고 뉴질랜드 가이드는 열변을 토한다. 뉴질랜드와 호주는 형제의 나라라고 늘 얘기하지만 호주는 죄수들이 세운 나라라고 비하하고 호주에서는 뉴질랜드 사람의 별칭인 키위들을 촌놈이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뉴질랜드 영공은 호주 공군이 지켜주고 있다고 하니까 그들의 우정(?)이 부럽기도 하다.
뉴질랜드도 요즘 이민정책에 조금씩 변화가 일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체 인구 400만명중 80만을 차지하는 원주민 마오리족의 동태가 심상찮고 여기에 동양계 이민족까지 가세한다면 자칫 나라의 중요정책이 그들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염려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유색인종의 이민 요건이 무척 까다로워져 우리 이민은 갈수록 줄어들거라고 했다.
외환위기 이후 어학연수 등 유학생의 수도 급감했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어학연수 등을 가능한 보내지 말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들의 문화는 18세만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해 집을 나오고 동거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런 주변 분위기가 유학 실패의 전적인 원인은 아니겠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유학생활을 망치는 사례가 너무도 많다는 얘기였다. 귀담아 들을 내용이었다.
밀포드사운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차창밖엔 끝없는 초원이 펼쳐져 있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들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뉴질랜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양은 5천만마리 정도 된다고 했다. 교배기엔 수놈의 털에 빨강 파랑 페인트를 칠한 후 목장 안에서 기르기 때문에 암컷 엉덩이에 묻은 페인트로 짝짓기 여부를 확인하고 관리한다고 했다. 참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양 목축업의 손익분기점은 3천마리라고 하는데 한 마리가 3만원 정도된다고 하니까 목장부지를 제외하고도 대충 우리 돈으로 1억 정도는 있어야 양을 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침 9시에 관광버스로 크라이스트처치를 출발했는데 퀸스타운에 오후 6시에 도착했다. 9시간이 걸린 셈이다. 9시간 동안 뉴질랜드 남섬의 자연에 취해 있었다. 보라빛, 핑크빛의 루핀이 지천에 피어 있었고 우리 개나리와 비슷한 스카티시블름이 온 산야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왔다. 길 왼편으론 퀸스타운 와카티푸 호수에서 흘러내린 카와라우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퀸스타운은 그 자체만으로도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밀포드사운드로 향하는 길목이기 때문에 매일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퀸스타운을 지나 태아나우까지 가 1박을 하고 뒷날 밀포드사운드로 갈 예정이다. 태아나우는 밀포드사운드 트래킹의 시작 지점으로도 유명하다. 퀸스타운에서 다시 몇시간을 더 달려 밤 늦게 태아나우에 도착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아침 일찍 태아나우 호텔을 출발, 다시 밀포드사운드를 향한 긴 여정이 시작된다. 앨링턴 평원과 홀리포드 평원지역을 지나 거울호수의 신비도 맛보았다. 2천500미터의 설산 스튜던트산과 크리스티나산을 배경으로 초원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밀포드사운드 가는 협곡은 스릴 넘쳤다. 구불구불 천길 낭떠러지 버스길이 이어졌고 설산에서는 만년설이 녹아 이곳 저곳에서 폭포수되어 흘러 내리고 있었다.
20년 걸려 징과 곡괭이로만 완성했다는 1,270미터 길이의 호머터널도 지났다. 1934년 당시 금광에서 캐낸 금을 옮기기 위해 험난한 산악지대를 뚫어 건설했다는 호머터널은 지금 뉴질랜드 관공자원의 큰 몫을 하고 있었다. 터널 안에 전기시설을 작년에야 했다고 하니까 자연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려는 그들의 노력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양쪽 입구에 신호등이 설치돼 일방통행으로 차량이 지나고 있었다.
밀포드사운드는 왕복 28km 1시간 40여분동안 피요르드 지형의 신비한 모습을 바라보며 유람하는 코스이다. 길고도 긴 여정 끝에 도착한 밀포드사운드.. 밀포드사운드는 옛모습 그대로였다. 95년에 갔을 땐 펭귄을 보았었는데 이번엔 돌고래의 자유로움과 물개의 여유만을 느끼고 돌아서야 했다.
이제 여정은 밀포드사운드를 출발해 퀸스타운을 거쳐 다시 크라이스트처치까지 가는 긴 여행을 준비해야 한다. 이번에 뉴질랜드를 또 찾은 작은 이유 중의 하나는 퀸스타운 때문이기도 하다. 퀸스타운의 감동을 한번 더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10년전.. 퀸스타운은 동화속의 작은나라 바로 그곳이었다. 언덕위에 하얀집, 노랗고 빨간집, 짙푸른 와카티푸 호수의 그 출렁거림.. 중턱엔 색색의 꽃들이 만발하고 정상엔 만년설을 뒤집어 쓴 리마커블산.. 정말 그때 그 정경을 얼마나 자주 그리워해 왔던가.. 10년이 지난 지금.. 그러나 퀸스타운은 그때 그대로의 동화가 아니었다. 언덕 위에는 난개발로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여기저기 공사장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와카티푸 호수만은 지금도 그 맑디맑은 모습으로 석양의 노을을 물들이고 있었다.
퀸스타운을 지나 세계 최초의 카와라우 번지점프장을 보는 스릴도 잠시 일행은 남반구 최고봉이라는 마운틴쿡을 보기 위해 다시 설레임 실은 버스여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몇시간 후 우리는 옥빛 푸카키 호수에서 설산 3,754미터의 마운틴쿡을 바라보는 감동에 오래도록 젖어 있었다.
연가의 섬 모코이아가 있는 곳..
뉴질랜드 북섬 오클랜드.. 밤 비행기로 크라이스트처치를 출발해 도착한 곳이 뉴질랜드 최대 도시 오클랜드이다. 우리 일행은 유황온천의 도시 로토루아로 향한다. 적도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와 대칭점에 있는 나라, 세계에서 사회복지가 가장 잘 된 나라 중의 한곳, 34개 각종 정부 수당 중 과부수당이 유독 많다고 하는 특별한 나라, 순수 자연 그대로를 최고의 자부심과 자산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나라..
1999년 뉴질랜드에서 APEC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우리나라의 김대중 대통령은 나주배를 가져갔고, 태국 국왕은 코끼리를 선물로 가져갔다고 한다. 우리는 팔아먹을 수 있는 실리외교를 펼쳤고 태국은 검역문제 등으로 끝까지 뉴질랜드 정부에서 접수하기를 주저했던 코끼리를 우기다시피 가져갔다고 한다.
코끼리는 3개월여 동안 그동안 먹은 풀과 사료를 토하게 하고 코끼리 몸속에 들어 있는 모든 걸 배설케 하는 등 검역을 완벽히 마치고 들여갔다고 한다.
나주배도 마찬가지이다. 흙, 농약 등 환경문제를 완벽히 해결한 후 3년이 지난 후부터 수입하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올림픽에서 뉴질랜드 선수가 조정 첫 금메달을 땄는데도 나뭇잎으로 된 월계관을 국내로 가져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 만큼 환경과 자연을 그들은 국가 최고의 자산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클랜드에서 로토루아까지는 버스로 약 4시간.. 중생대 식물이 많아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 중의 하나인 마타마타 돈바트 농가를 지나 점심 무렵에야 로토루아에 도착했다. 도착 후 양털깎기 쇼, 간헐천, 마오리 민속촌 등을 둘러 보고 로토루아 호수로 나왔다.
거기엔 우리에게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로 시작하는 노래, 연가의 배경이 된 모코이아mokoia 섬이 기다리고 있었다. 슬프디 슬픈 연인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노래(Po-Kare-Kare)는 뉴질랜드 북섬에 전해져오는 민요였고, 우리에게는 호수에서 바다로 가사가 바뀐채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로토루아 호수의 모코이아섬..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니 내사랑 영원히..’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용히 ‘연가’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모코이아mokoia섬에 노을이 짙게 내리고 있었다.
9박10일의 시드니와 뉴질랜드의 여정도 끝이 났다. 순수와 자연의 나라.. 그 감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끝.
첫댓글 유헌 시인님 때문에 오늘도 몇개국을 여행했습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