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예배가 우상숭배인가?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 10:19-20)
[시작하는 이야기]
여러분!
성경에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죄가 무슨 죄인지 아십니까?
성경에서 이 문제만 나오면 언제나 하나님은 ‘질투’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는데 바로 그 죄는 바로 우상숭배라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으시며 심지어 그 죄는 삼사 대까지 갚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우상숭배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는 행위가 우상숭배입니다.
과거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 왔을 때 극심한 핍박과 박해를
받게 되었는데 그 중 단연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제사상에 절하지
않는 일 때문이었는데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기독교인들을 향해
‘서양 귀신 믿는 예수쟁이’라고 했고 ‘조상도 못 알아보는
상놈들’이라고 했습니다.
일제시대 때도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강요하여 이를 국가 정책으로
시행하였는데 이것이 우상숭배임을 알게 된 주기철 목사 등은
이 정책에 저항하다가 순교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참된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우상숭배는
순교를 당할지라도 거부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몇 년 전부터 교회 안에서 치르는
모든 장례예배가 우상숭배라는 주장이 몇 영향력 있는
목사들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장례식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모든 예배가
귀신에게 드리는 우상숭배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장례예배가 우상숭배인지를
상고하며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최근 우리나라 개신교 목사들 일부가 장례예배와 추모예배는
모두 우상숭배라고 주장하면서 우리나라 개신교회 95%가
바로 이러한 우상숭배에 빠져있다고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사람이 죽으면
안치된 장례식장 천정에는 귀신들이 우글거리며 사람들이 와서
절하고 예배하며 국화꽃을 영정에 드릴 때 귀신들이 받는다는 것이고
예수 믿는 자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귀신들에게 예배하는 것이므로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는 장례식장에 와서 슬퍼 울 수는 있지만 예배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성경에 야곱이 죽었을 때, 모세가 죽었을 때
애곡하는 것이 있지만 예배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장례식장에서 영정두기, 국화꽃 바치기, 꽃 장식,
절하기, 기도하기, 예배하기 등 모두가 다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이들은 오늘날 개신교회 대부분이 장례, 추모 예배를 드리는 것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이방인들의
제사 형태를 예배로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성경적이라고 하기 위해 성경절들을
인용하는데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케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케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저 있음이니라"(민수기 19:13)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말찌니 부모로 인하여도
더러워지게 말며"(레위기 21:11)
“그 부모 형제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민 6:7)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 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쫓으라 하시니라”(마8:21~22)
사실은 위 성경절들 중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 진다는 말씀은
주로 모세 시대 주어졌던 말씀으로 특히 같은 모세오경 중
레위기서 11장에 언급된 '부정한 동물' 등 먹지 말아야 할 것에는
대부분의 개신교회가 모세의 법으로 폐했으니 아무 것이나
먹어도 상관이 없다고 하면서도 유독 시체 부정에 관한 말씀은
문자 그대로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적용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하신 '죽은 자는 죽은 자가 장사 지내게 하라'는
말씀도 전혀 그러한 의미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인용하여
설명하는데 그렇다면 아예 그리스도인들은 장례도 치루지 말아야 하겠지요?
어쨌든 위 성경절을 인용한 후 저들이 하는 설명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말씀에서도 그 시체로 인해서 부정해지고 더럽히지 말라고
하시는데 혼합된 포도주처럼 사단이 포장해놓은 장례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추도예배, 꽃 바치는 일, 관 앞에 인사하는 행위,
관 앞에 묵념하는 행위, 관 앞에 기도하는 행위는 부정한 행위인 것입니다.
행위로 죄를 지으면서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받으시나요?
머리에 짐승의 표 666이 찍히는 것입니다.
관이 없다 해도 이 제단은 죽은 자의 제단입니다.
이 제단이 누구의 제단인지 보십시오. 하나님의 제단인가요?
장례예배, 발인예배, 추도예배는 귀신의 제사입니다.
속지마세요 귀신에게 속은 것입니다 지옥 갑니다.
우상숭배로 십계명 1계명과 2계명을 어기고 천국에 갈
자신이 있으신가요? 회개 못하면 어디로 갈까요?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담보로 우상숭배하시지 마시길 바라겠습니다.
추도예배 장례예배는 이방인의 제사를 사단이 보기 좋게
꾸며놓은 귀신의 예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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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위시하여 장례예배와 추모예배가 우상숭배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주장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장례 추모 예배는 죽은 자에게 하는 것으로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은 곧 귀신에게 하는 제사이므로
우상숭배이다.
2. 죽은 자는 영혼이 그 육체를 떠나가면 마귀 귀신이
그 시체에 달라붙어 귀신에 씌우게 되는데
그런 귀신에 씌인 시체를 놓고 그 앞에 절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송 부르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우상숭배이다.
3. 장례예배는 이방인들이 귀신에게 하는 제사의 변형으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핍박을 면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4. 죽은 시체는 부정하다고 했기 때문에 죽은 시체를 두고 예배하는
것은 부정하게 되는 것이며 그것은 곧 귀신의 제단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들 중 대형교회를 담임하는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의 경우
위로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 등 이러한 것은 성경에
그 근거가 없다고 하면서 '성경에 없는 것은 무조건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윤석적 목사는 장례예배가 우상숭배라는 설교를 마치면서
그의 설교를 들은 초교파 모임 목사들에게 '우리 다같이 주여 삼창으로
기도합시다'라고 하면서 '주여~~ 주여~~ 주여~~'를 외치며 통성 기도를 합니다.
'성경에 없는 것은 무조건 하면 안 된다'고 설교한 윤석전 목사가 성경에 전혀
근거도 없는 '주여 삼창'을 하자는 이 모순은 또 무엇으로 설명하려는지요?
한국 교회가 설교 말미나 새벽 기도회나 부흥회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기도 할 때 하는 '주여 삼창'은 도대체 성경 어디에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가요?
'주여 삼창'은 전혀 성경에 근거조차 없는 오히려 무속적인 신앙에서 무당이
저들의 신을 절규하며 부를 때 강신(降神), 초신(初神), 초혼(招魂)을 하는
과정에서 세번 부르는 것과 유사한 형태의 미신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이 뿐 아니라 개신교 대부분의 교회들에서 드리는 수요예배,
주일 저녁 예배, 금요 철야 예배 등은 성경 어디에 근거할 것일까요?
교회에서 매 주 하는 헤아릴 수 없는 헌금들은 또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그러므로 장례예배가 성경에 근거 없다고 하는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적반하장격의 주장임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윤석전 목사를 비롯하여 일부 개신교 목사들이 장례 예배는
성경에 근거도 없는 우상숭배라는데 과연 그럴까요?
정말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모든 장례예배와 추모예배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우상숭배일까요?
먼저 우상숭배에 대한 성경적 입장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우상숭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1~6)
위 성경절은 십계명 중 첫째, 둘째 계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와
어떤 형상이든 만들어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계명 중 하나님께서 이것 범하면 삼사 대까지 그 죄의 값을
갚겠다고 하신 것은 우상숭배 계명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장례예배와 추모예배가 '우상숭배'라고 하는 분들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우상숭배'의 개념도 모르는
무지 몽매(無知蒙昧)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우상숭배는
첫째,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
둘째, 자신을 위하여 어떤 형상이든 만들거나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어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섬기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성경적인 예를 보면 다니엘서 3장에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이 금신상을
만들어 두파 평지에 우뚝 세워 놓고 모든 사람들에게 절하도록 했는데
이 때 왕의 간청에도 불구하구 극렬히 타는 풀무불의 죽음을 무릅쓰고
금신상에게 절하기를 거절했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있었습니다.
그 금신상 곧 사람들이 경배의 목적으로 만들어 놓고 절하게 한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서론에 언급한 것처럼 일제 시대 일본놈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식민정치할
목적으로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강요한 것도 바로 우상숭배의 극치입니다.
그 때 장로교회 주기철 목사는 많이 알려졌지만 일반 개신교회가 잘 모르는
안식일 교회의 최태현 목사같은 신사참배를 거절하여 순교당한 목사가 있습니다.
재미교포 최재영 목사가 쓴 방북기 중 이에 대한 상세한 기사가 있습니다.
"한편 이들 안식교 지도자들이 구속된 이유는 신사참배와 관련해 명목상으로는
'천황 폐하 대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었으며 진짜 구속한 목적은 안식교
지도부를 구속해 교회들을 자발적으로 해산하게 한 다음 교회들을 무력하게
만들어 신자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위함이었다. 일경들은 최 목사와
나머지 구속된 목사들에게 미국 스파이 혐의와 안식일 교리문제 그리고
신사참배 문제 등에 관해 취조하며 무자비하게 고문하였다.
특히 취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최 목사에 대해서는 더욱 잔악한 고문을
가했는데 1주일에 걸친 극심한 고문 때문에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 6월 2일 아침, 최 목사는 고문에 의해 인사불성이 되어 쓰러져 급히
경성요양병원으로 이송해 응급치료를 실행하였으나 회생하지 못하고
저녁 8시경 숨지고 말았다" (북한교회를 가다㉞ 재림교회(안식교)-중<연재>
최재영 목사의 남북사회통합운동 방북기(74회)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절하여 순교당한 안식일 교회 최태현 목사
일제 시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일본이 숭배를 강요한 신사참배같은 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우상숭배입니다.
우리가 사람이 죽었을 때 드리는 모든 예배의 핵심은 결코 여호와
하나님 외의 그 어떤 다른 신이나 어떤 형상이 아니라 살아계신
여호와 우리 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장례식에서 드리는 예배는 죽은 자를 위해
드리는 예배도 아니고, 죽은 자의 어떤 형상을 만들어 절하거나
섬기는 예배도 더더욱 아닌 것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당할 가장 극한 슬픔인 죽음 앞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슬퍼하고 좌절하는 유족들을 위해
귀신이나 어떤 영혼이나 어떤 다른 신에게나, 우상이 아닌
살아계신 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장례 예배의 본질인데
이것이 어떻게 우상숭배가 될 수 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장례식 때 드리는 예배는 상을 당한 당일에
극한 슬픔을 당한 유족들을 위하여 드리는 위로예배가 있고,
그 다음날 고인을 관에 넣는 입관 예배가 있고, 그리고 장례식장이나
고인의 집에서 매장지나 화장터로 가는 발인예배가 있고, 장지에서
드리는 하관예배 혹은 전소예배가 있습니다.
이 모든 예배의 목적과 취지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위로 예배
말 그대로 유족들을 위로하는 예배입니다.
상을 당해 보신 분들은 다 아시지만 막상 상을 당하면 유족들이 사랑하는
고인과 이별하는 그 슬픔은 이 땅에서 사람이 당하는 것 중 가장 극심한
것이며 어떤 누가 와서 손을 잡아만 주어도 위로가 되는 순간입니다.
이처럼 극한 슬픔에 처한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찬송과 기도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가 위로 예배입니다.
2. 입관 예배
오랫동안 한 집에서 동거동락하며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한
사랑하는 고인과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작별하는 시간으로 유족들에게
주께서 영광중에 재림하시는 날 의인들이 썩지 않고 죽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때 고인을 다시 만날 소망이 있음을 알려주면서 역시
찬송과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이 입관예배입니다.
3. 발인 예배
고인(故人)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던 곳을 떠나 장지로 갈 때
드리는 예배인데 우리 인생은 이 땅에 잠시 왔다가 가는 나그네 인생임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며 믿음 안에 잠든 성도가 잠시 후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그 날까지 하나님 품 안에 편히 안식하다가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하늘에서 우리와 다시 만나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함께
말씀으로 위로 받고 소망을 굳게 하는 예배인 것입니다.
4. 하관 예배
죽은 자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본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고전 15:53)게 되는 영광의 부활이 있음을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인하면서 위로 받고 소망을 얻게 하는 예배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우상숭배일 수 있겠으며 이것이 어떻게 귀신들에게
드리는 제사일 수 있겠으며 이것이 어떻게 죽은 자에게 하는 행위이며
이것이 어떻게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될 수 있겠는지요?
그리스도인들이 장례식장에서 드리는 이러한 위로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전소예배) 등이 어떻게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이며 어떻게 우리를 위해 새긴 우상을 만들거나 그것들을
섬기며 절하는 우상숭배일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개신교 각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들을 보면 새벽예배, 오전 예배,
저녁 예배, 금요 철야 예배 등 다양한 시간대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시간대에 드리는 예배 앞에 붙는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철야’라는 문구에 누가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러한 각 예배 앞에 붙은 ‘새벽’을 빌미로 새벽
우상에게 우상 숭배한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가 봐도 우상이 아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시간대
구분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마찬가지로 장례 기간 안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의 시간대를 구분하여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을 위로하는
시간과 사랑하는 고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는 작별의 시간과
사랑하는 고인이 매장이나 화장을 통해 흙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따라
우리의 생사를 주관하시고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우상숭배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엄히 명하셨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이 땅에서 치르는 장례식은 그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종교나 사상적
차이나 정치적 견해의 차이를 무론하고 다함께 참여하여 고인을
추모하고 슬픔을 당한 유족들을 위로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장례식 때 몇 번이고 드리는 예배마다 믿지 않는
유족들이나 우리와 다른 종교를 가진 자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개하고 기독교의 진정한 가치인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소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장례예배 모두를 싸잡아 우상숭배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그 배후에 누가 있을까요?
우리가 드리는 장례식장에서의 위로예배, 입관예배, 하관예배,
추모 예배에서 도대체 우리가 여호와 외의 어떤 신의 형상을 만들거나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숭배'한단 말인가요?
장례 의식은 각 나라마다 고유의 풍습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우리 한국의 경우 사람이 죽으면 그를 곧바로 장례식장 안치실에
안치하고 장례식장의 빈소에는 고인의 영정 사진을 걸어 놓고
평소 고인의 생전 지인들과 가족 친지 이웃 친구들이 문상하면서
고인의 죽음을 유족과 함께 슬퍼하며 유족들을 위로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빈소에서 죽은 자가 주 안에 편히 잠들고
부활의 아침에 일어나 다시 재회하기를 소망하고 슬픔을 당한
유족들이 주 안에서 위로 받고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갖는 기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목사와 장례 위원들은 슬픔을 당한 유족들을 위해 위로 예배도 드리고
다시는 고인의 얼굴을 이 땅에서 볼 수 없도록 입관할 때도 예배하면서
유족들이 꼭 하늘에서 고인을 다시 만나도록 권면하고 발인과 하관할 때도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을 굳게 하는 설교와 위로의
기도와 찬미를 드리는 것이 장례 예배의 전부입니다.
우리가 매년 고인을 생각하며 드리는 추모예배의 경우도
여러 장례예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의 어머님의 경우 돌아가신 날이 되면 우리 가족끼리
모여 간단하게 살아생전 어머님의 신앙을 되짚어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활의 소망을 굳게 하고 우리도 어머님이
남겨주신 믿음을 따라 예수 믿음을 잘 지켜서 주님이 오시는 날
부활의 아침에 꼭 나의 어머님을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는
기회로 만드는데 이것이 어떻게, 왜, 우상숭배라는 것인가요?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님 혹은 일찍 사고나 병으로 죽은
사랑하는 자녀, 친구, 이웃을 추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그 예배가 왜 우상숭배로 둔갑해야 하는 것인가요?
도대체 이 모든 과정과 절차에서 도대체 무엇이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며 도대체 무엇이 어떤 형상을 만들거나
그것들에게 절하고 그것들을 섬기는 것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과 정서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고
결혼식장에, 장례식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셔서 소망과 위로를 주시고
때로는 죽은 자를 살려내어 어미에게 필설로 묘사하기 어려운
기쁨과 감격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는데 그 죽은 사람을 애도하며
슬퍼하며 추억하며 국화 꽃 한 송이를 올려놓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이것을 과연 하나님이 우상숭배라고 정죄하시고 삼사 대까지
그 죄 값을 물으실까요?
성경에서도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맞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신34:5~8)
하나님의 사람,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주의 종 모세가 죽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30일 동안 모세를 위하여 애곡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도자 모세가 죽었을 때 얼마나 슬펐으면
3일도 아닌 한 달 동안 슬퍼하며 애곡했겠습니까?
성경에는 단순히 30일을 애곡했다고 되어 있지만 울기만 했겠습니까?
당연히 살아계신 주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했을 것입니다.
어디 모세뿐입니까?
믿음의 사람 야곱이 죽었을 때는 어떠했습니까?
“요셉이 아비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 재료로 아비의 몸에 넣게 하매 의사가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 재료를 넣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창 50:2,3)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호곡하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비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창 50:10)
야곱이 죽었을 때 아들 요셉은 애굽의 장례사들에게 “명하여”
아버지 시신에 향을 넣게 했는데 무려 40여일이 걸렸고
애굽 사람들이 야곱을 위해 호곡하고 70일 동안 애곡한 것은
저들이 이방인이라고 해서 그렇다 치고 믿음의 사람, 평생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성경의 인물 중에 거의 흠이 없는 성화의
표본으로 제시된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위해 7일 동안 애곡하였던
기록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장례예배를 우상숭배라는 자들의 논리대로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은 자' 모세를 위해 30일 동안 애곡하고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위해
장례사들에게 40일 동안 시신에 향을 넣게 하고 요셉 스스로도
7일 동안 애곡한 것도 ‘죽은 자’를 위한 우상숭배를 했다는 것인가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도 '의인'으로 인정하셨던 욥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욥 1:4-5)
동방의 의인 욥의 가정도 매년 자녀들의 생일 날마다 잔치를 베풀고
그 잔치가 끝나면 자녀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면서 잔치 중에도
혹 자녀들의 마음이 세상에 빠졌지 않았을까 하는 믿음을 나타냈습니다.
생일은 인간들이 가장 기뻐하는 날로서 우리 성도들도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기념해 주고 때로는 우리도 욥처럼 생일 날 잔치를 베풉니다.
그런데 생일보다 더 중요한 날이 바로 사람이 죽는 장례식입니다.
남의 생일날은 안가도 장례식은 가야 할 정도로 중요한 날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전 7:2-4)
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말씀입니까?
생일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날이지만 장례는 인간들이 가장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 예식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전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들로 알고 지내는 교우, 이웃, 친지, 친구 등이
이러한 슬픔을 겪을 때 찾아가 위로하고 기도해 주고 찬송해 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활과 영생과 신천신지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해 주는
장례예배와 추모예배가 우상숭배라는 주장은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장례예배는 믿지 않는 유족들에게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전하고
믿음이 연약한 유족이나 친지, 이웃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전도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정말 없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유족들에게 부활과 생명의 주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죽을지라도 썩지 않고 죽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수 있다는
복음과 더불어 이러한 슬픔, 죽음, 이별, 아픈 것이 영원히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강력하게 소개할 가장 좋은 전도의 기회인 것입니다.
1년에 한 번씩 고인을 추모하면서 드리는 추모예배도 마찬가지로
남아 있는 유족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성경은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전 9:5)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장례예배가 죽은 자를 위하여 드리는 제사라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장례와 추모 예배 모두 죽은 자에게 혹은 죽은 자를 위해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산자를 위한 위로와 소망을 주며 궁극적으로 영생의
소망을 주는 기회로 활용한다면 더 없이 좋은 전도의 기회인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인 다음의 성경절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 10:19-20)
여기서 말씀하는 것은 장례예배나 추모예배 금지하게 하는 의미가 아니라,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이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방인의 제사를 드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결론]
장례예배 추모예배 모두가 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지
귀신에게 드리는 제사가 결코 아닙니다.
이방인의 제사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제사상을 차리고
술잔을 돌리고 죽은 자를 위해 애곡하며 절을 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장례예배와 추모예배는 성경을 펴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돌아가신 고인의 살아생전의
신앙과 삶을 회상하며 유족들을 위로하고 유족들에게 고인의
신앙의 유산을 잘 물려받아 더욱 신앙생활에 매진하고
믿음을 지켜서 우리 주님 오시는 재림의 아침에 고인과
재회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상숭배’라는 성경적 정의와 개념을 간과 한 채
그리고 우리가 살아계신 주 여호와 하나님 앞에 찬송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리는 예배의 기본마저 무시한 채
그리스도인들이 장례식장에서 드리는 모든 예배의 절차들을 싸잡아
무조건 과거 우리 조상들이 드리는 제사처럼 살짝 모양만 바꾸어
사실은 귀신에게 제사하고 우상 숭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전혀 잘못된 주장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오직 살아계신 주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고
오직 그만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임을 잊지 맙시다!!! 아멘!
첫댓글 아멘
슬픔을 당한 유족들을 위해 위로 예배도 드리고
다시는 고인의 얼굴을 이 땅에서 볼 수 없도록 입관할 때도 예배하면서
유족들이 꼭 하늘에서 고인을 다시 만나도록 권면하고 발인과 하관할 때도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을 굳게 하는 설교와 위로의
기도와 찬미를 드리는 것이 장례 예배의 전부라고 믿습니다
가시는분에 대한 이별예배이며 남은분들에 슬픔을위로하는예배라고 믿었습니다
목사님 !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운 일들이 너무 생기네요
솔이 사모님,
마지막 때가 되니 별 별 마귀들이 다 등장하는 요즘입니다.
가뜩이나 전도도 잘 안되는 세상에
세상과 더 담을 쌓게 하는 요상한 주장들이 판을 칩니다.
그것도 교묘하게 성경에 근거한 것처럼 가장하면서 말입니다.
정말 깨어 기도할 때이며 영의 눈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