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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조(田敏照)
<사진은 말한다>
부정선거 폭로한 朴순경, 2011년 4월 6일
기자 시절 `부정선거를 폭로한 용감한 순경` 박재표 씨(1932~2017)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20대의 순경이던 그는 1956년 8월 13일 전북 정읍 도의원 선거 당시 투표함 이송 도중 순경들이 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표를 바꾸는 장면을 목격하고 이를 언론사에 제보했다. 일명 `정읍 환표사건`이었다.
박 순경의 양심선언 후 전북경찰국은 쑥밭이 됐다. 정읍군수와 경찰간부들이 부산하게 움직였고, 경찰국장은 얼마나 놀랐던지 기자회견에서 `박재표 사건`을 `박격포 사건`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박 순경은 근무지 이탈로 체포돼 10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그러나 1959년 대법원 최종판결에서 폭로내용이 허위가 아니었음을 인정받았고, 1960년 4·19혁명 직후 경찰에 복직했다.
2011년 봄, 그의 근황이 궁금해 연락을 했더니 천안에서 텃밭을 가꾸며 소일하고 있다고 해서 카메라를 들고 텃밭을 찾았다.
6년의 시간이 흘러 그의 손녀가 "할아버지가 병중이신데, 할아버지 텃밭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쓰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고, 이틀 후인 지난 11일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몸은 하늘나라로 갔지만 그의 고발정신은 살아있을 것이다.
통신사 김성일의 비석, 2013년 4월 12일
대마도 여행 중 `서산사`라는 조그만 절간 마당에서 `조선국 통신사 학봉 김성일 선생 시비`를 발견했다.
그의 비석이 일본 땅에 있다는 게 의외였다. 김성일(1538~1593)은 임진왜란 발발 2년 전인 1590년 통신사 부사로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와 "일본이 군사를 일으킬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선조에게 보고했다.
"일본이 반드시 침입할 것"이라는 통신사 정사 황윤길의 보고와는 정반대였다.
당시 일본을 통치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서도 김성일은 "그의 눈은 쥐와 같아 마땅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 된다"고 평했다. 반면 황윤길은 "눈빛이 반짝반짝하야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김성일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곧 파직됐으나 "허물을 씻고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을 간청하는 류성룡의 변호로 간신히 풀려났다.
결국 허술한 정보로 조선은 전쟁을 대비하지 못해 7년간 나라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왕정시대나 현대나 역사는 항상 되풀이되고 있다.
카메라를 든 기업인, 2013년 10월 13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는 날이었다. 성당 마당 벤치에 잠시 앉아 있을 때였다. 어느 중후한 신사가 독일산 라이카 M6 필름 카메라를 만지고 있는 모습을 봤다. 그 신사는 성당을 찍다가 내가 앉은 벤치 앞까지 온 것이다.
그는 뜻밖에도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었다. 재벌 회장이 카메라를 들고 무엇인가를 포착하려고 세상을 돌아보는 듯해서 내가 기분이 좋았다. 사진 취미에 관심이 많은 대통령, 정치인, 기업인이 많으면 사진 예술도 많이 발전하리라 생각했다.
언제부터인가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는 게 유행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하면서부터 `휴대폰 셀카 시대`가 열리지 않았나 짐작한다. 대통령 후보가 선거운동을 위해 각 지역을 돌아다닐 때면 국민들은 대통령 후보와 함께 셀카를 찍는 경우가 흔했다.
문재인 대통령도국민과 수시로 셀카를 찍고 있다.대기업 총수들이 직원들과 휴대폰으로 찍은 셀카 기념사진이 언론에 종종 보도된다.
이제 무거운 카메라로 찍는 기념사진은 과거의 흔적이 되고 있다. 어린아이까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사진을 찍는 인증샷 시대다. 셀카가 대중화돼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세상이다
베니스의 두 남녀, 2014년 6월 6일
우연히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2014)에 사진 몇 점을 출품하게 되어 건축가들과 함께 베니스 전시회에 참석하게 됐다.
풍경이 아름다운 베니스에 감탄하면서 언제 또다시 베니스에 오게 될는지 의심스러워 밤낮으로 카메라를 들고 손이 아프도록 사진을 찍었다.
5일째 되는 날에도 어김없이 새벽의 산 마르코 광장을 찍기 위해 천천히 걷고 있었다.
이때 인적이 드문 컴컴한 성당 기둥에 서 있는 두 남녀를 목격했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인 듯, 남성이 여성의 발 아래 무릎을 꿇고 마음을 애절하게 전달하는 풍경이 클로즈업되었다. 베니스에서 찍은 사진 수천 장 중에 가장 가슴이 흔들리고 숨이 막히는 유일한 사진이 되었다. 나는 돌아서면서 이들이 부디 잘되기를 기원했다.
셰익스피어는 "사랑이란 깊은 한숨과 함께 솟는 연기, 또한 맑아져서는 연인의 눈동자에 반짝이는 불도 되고, 흐트러져서는 연인의 눈물에 넘치는 대해로도 된다. 그뿐 아니라 아주 분별하기 어려운 광기, 숨구멍도 막히는 고집인가 하면, 또 생명을 기르는 감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장면 총리가 피신했던 수녀원, 2015년 2월 5일
5·16군사정변 때 장면 총리가 군인들에게 체포당할까 두려워 피신했던 가르멜 수녀원 건물이 지하철 경복궁역 부근 골목에 아직도 있었다.
장 총리는 새벽 3시 반께 반도호텔에서 자고 있다가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모든 것은 제가 지휘하고 있으니 조금도 염려 마시라"고 했으나 두 번째 전화에서는 "피신하시는 게 좋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 말에 장 총리는 바로 가르멜 수녀원으로 숨어들었다. 장 총리 체포에 나선 박종규(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장)는 그가 갈 만한 곳을 샅샅이 뒤졌으나 실패했다.
장 총리의 정치 고문이었던 도널드 휘터커가 수녀원을 찾아가 "사임하는 것 이외에 다른 도리는 없다"고 말하자 장 총리는 모든 것을 체념했다. 그는 "유혈사태 없이 수습해야 한다"는 말만 했다고 한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12·12 내란을 일으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했을 때에도 노재현 국방부 장관이 피신하는 바람에 최규하 대통령이 고생하기도 했다.
북쪽으로 달리는 경원선 열차, 2015년 2월 6일
아침에 눈이 내린 것을 보고 북쪽으로 달리는 경원선 열차를 찍기 위해 한탄강역에 내렸다. 한 달 전에 봐둔 언덕 위 촬영장소를 찾아서 올라갔다. 마침 동두천에서 출발한 열차가 철원 백마고지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영화 `의사 지바고`에서 눈길을 헤치며 달리는 설국 열차 같았다. 현재는 철원 백마고지역까지만 도착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개통(1914년)된 경원선은 원산까지 연결된 노선이었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한반도가 제발 평화의 길로 들어섰으면 하는 간절한 꿈을 꾸고 있는 중이다.
유라시아 횡단철도가 지나는 러시아·중국·북한·동유럽 국가들이 회원국인 국제철도협력기구 정회원으로 한국이 올해 가입한 것을 보면서 한국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중국 횡단철도를 거쳐서 유럽까지 내달리는 여행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닌지 앞일은 알 수가 없다.
비운의 최원일 함장, 2016년 6월 24일
퇴직 언론인들이 진해의 해군사관학교를 방문하는 날 최원일 중령(해사 45기)이 거수경례로 언론인들을 맞이했다. 그는 북한이 천안함(PCC-722)을 폭침할 당시 함장으로 부하 46명을 순식간에 잃고 10년간 음모론에 시달린 군인이었다.
그는 패장의 멍에를 쓴 채 보직해임되고 8개월 뒤 징계 유예 처분을 받아 `만년 중령`으로 사관학교에서 교리 교범을 작성하는 비전투 임무를 맡고 있었다. `부하를 잃은 죄인`이란 죄책감으로 천안함 좌초설과 괴담에 시달려야 했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어떠한 책임 인정이나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남북관계를 앞세운 현 정부에서는 천안함이 일종의 금기어가 되다시피 했다. 최 중령은 지난 2월 30년간의 군 생활을 마감하고 전역했다.
정부는 며칠 전까지 `천안함 재조사`를 만지작거리다가 생존 장병과 유가족이 `나라가 미쳤다`고 강하게 반발하자 조사를 중단했다.
나만도 못한 것들, 2016년 12월 10일
서울 광화문에서 연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시위가 계속될 때 시위에 참석한 한 청년이 반려견을 데리고 나왔다. 강아지 몸을 덮은 천에 적힌 `나만도 못한 것들`이라는 글을 보고 시민들이 파안대소했다. 국정을 농단하거나 이에 눈감은 권력자들과 정치판을 비웃는 그 글귀에 많은 이가 웃음으로 공감을 표시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정치는 여전히 그날 광화문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권력자들의 오만과 불통은 여전하다. 국정 잘못을 통렬하게 꼬집은 청와대 국민청원 `시무 7조`가 회자될 정도다. 언제쯤이면, 한국 정치가 희화화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가장 존경했던 분 사진 들고, 2017년 11월 1일
매일경제 `사진은 말한다` 연재 중에 국회에 출석한 `양택식 주택공사 사장의 시선`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나간 적이 있었다. 며칠 후 촬영자인 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사진을 본 순간 돌아가신 분이 환생한 듯한 기분이었다"고 하면서 "가장 존경했던 분의 특별한 모습을 포착한 촬영자를 꼭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만나고 보니 1968년부터 1980년까지 양 사장을 12년간 비서로 모셨던 장옥수 부국증권 상임고문이었다. 첫 수행비서 시절 아랫사람들에게 따뜻한 양 사장의 인간미에 반했다고 했다. 그래서 추운 겨울 양 사장이 따뜻한 구두를 신고 출근할 수 있도록 구두를 이불로 덮어 놓기까지했다.
그의 이런 정성이 소문이 나 당시 김재규 건설부 장관이 그를 비서로 데려가려고 할 정도였다. 김 장관은 나중에 중앙정보부장이 돼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는 궁정동 사건을 겪게 된다. 장 상임고문은 김 장관의 비서로 옮기지 않아 그 역사적 사건을 피해 갔다고 말했다.
노루와 철새는 잘 어울렸다, 2018년 2월 10일
철새 사진을 찍기 위해 철원평야에 나가봤다. 한탄강에서 청둥오리와 두루미 수천 마리가 모여 먹이를 찾는 모습을 관찰하다가 전혀 어울리기 힘든 광경을 목격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노루 한 마리가 철새들 속에 섞여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400㎜ 망원렌즈로 포착했다. 숲속에서 먹이를 찾던 노루가 칼바람 추위에 먹을 것이 없어 철새들이 모여 있는 곳까지 내려온 것 같았다.
철새들과 동물들은 어디서든지 구역을 따지지 않고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자연에서는 이념, 혈통, 학연, 지연 등을 따지는 시시한 갈등이 없어 보인다. 그런 것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것 같다.
연천 허허벌판에 땅간판, 2018년 2월 18일
경기도 연천의 허허벌판에 `땅`이라고 쓴 부동산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언젠가는 통일이 될 테니 북한과 가까운 연천에도 땅에 투자하라는 유혹의 간판 같았다. 올해 정기 재산공개로 중앙부처 공무원 759명 중 절반 이상이 주택 외에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기의 유혹에서 고위 공직자들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일까. 입법, 사법, 행정부 공직자들의 1인당 평균 재산이 국회의원(298명)은 28억4000만원이고 고위 법관(144명)은 37억6400만원이며 1급 이상 청와대와 정부 고위 간부(1885명)는 14억1297만원으로 집계됐다.
한국인은 어느 민족보다 집 한 채로 만족하지 않고 땅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강한 민족이 아닌가 여겨진다.
문재인 정권이 성공하려면 부동산 안정이 필수일 텐데 전국 기초의원까지 땅 사재기로 극성인 것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땅 때문에 나라가 어지럽다.
롯데월드타워 위 비행기 2018년 3월 10일
경기도 하남 지역에서 아침저녁으로 롯데월드타워 빌딩을 보면서 살고 있다.
서울공항 비행장으로 착륙하려는 비행기가 롯데월드타워 옆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면 불안한 느낌이 든다. 날씨라도 안 좋고 안개라도 잔뜩 낀 날에는 수도 서울을 방어하는 비행기를 띄우고 내리는 조종사들이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비행장 주변에 높이 500m 이상인 건축물이 존재하는 나라는 드물지 않나 싶다.
롯데는 1987년 송파구 잠실 용지를 서울시에서 매입해 2002년까지 초고층 빌딩을 완공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공군 측 반대로 건설허가를 받지 못했다. 서울공항 활주로 진행 방향과 마주보고 있어 비행기 운항에 위험하다는 게 공군 측 의견이었다.
그러나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정부에서 건설 허가가 났다. 대신 비행장 활주로를 변경하기로 했다. 롯데월드타워는 아시아에서 3번째, 세계에서는 6번째로 높다.
바라만 보는 북녘 해변, 2018년 10월 13일
강원도 최북단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해금강 해변이 손에 잡힐 듯 아름답게 보여서 여행자들이 모두 감탄했다. 여행이 자유화돼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세상인데도 북녘땅은 바라본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여행자들은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북녘의 금강산과 오른편의 파도 치는 해금강 해변을 바라보며 모두들 안타까워했다. 당장이라도 겹겹이 둘러친 철조망을 걷어 버리고 철로를 놓아 북녘을 향해 달려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70년의 시간이 흐르도록 북녘에 두고 온 가족에게 편지 한 장 보내지 못하고 전화 통화도 할 수 없으니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싶었다. 북녘땅이 지척인데 망원경으로 바라만 봐야 하는 분단국 현실이 참으로 답답했다.
첫눈, 2018년 11월 24일
올겨울 첫눈은 24절기 중 스무 번째 절기인 소설(小雪)을 지나 찾아왔다. 지난 24일 서울 등 중부 곳곳에 첫눈이 내렸다. 서울을 기준으로 올해 첫눈은 지난해보다 7일, 평년보다 사흘이 늦어진 것이다. 기상청 예보와 달리 서울 7㎝ 이상, 경기 일부 지역에는 10㎝ 이상이 쌓이면서 시민들 불편도 이어졌다.
어른들에게는 불편일지 모르지만 아이들에게는 반가운 설국이다. 눈이 펑펑 쏟아진 24일 경기 하남시 한 아파트 단지 인근을 지나다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눈이 쌓인 육교 경사로가 눈썰매장으로 변신한 것. 어느새 아이들은 썰매까지 가지고 나와 씽씽 바람을 가르며 눈썰매를 탔다. 지치지도 않는지 쉼 없이 육교를 오르내리며 미끄러져 내려갔다.
눈이 내리면 교통이 불편해질 것을 먼저 걱정하는 `현실적인` 어른들과 달리 은빛으로 변한 겨울왕국에서 썰매를 타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에서 절로 미소가 번졌다.
북한산 강아지, 2018년 12월 10일
북한산 육모정에서 영봉으로 올라가는 바위 능선에서 강아지가 우이동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산까지 강아지를 동반한 주인이 풀어놓은 것으로 착각하고 주변을 살폈는데 주인이 없는 것을 보니 들개가 된 강아지였다.
너무 어려 주변에 어미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찾았지만 혼자였다. 어린 강아지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6개월 후 백운산장 부근에서 산을 헤매는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고 있는 40대 청년을 우연히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영봉에서 만난 강아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영봉 코스에서 만난 강아지를 기념해 `영봉`이라 이름을 짓고 1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먹이를 들고 와 `영봉아`, 부르면 나타나고 먹이를 주면 잘 먹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6개월 전부터 아무리 불러도 나타나지 않는다며 잃어버린 자식처럼 안타까워했다.
도시의 노조 깃발, 2019년 2월 23일
서울 종로 1가 관광공사 옆 빌딩 앞에 노총의 대형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직원 채용은 기업의 권한인데도 관련 문제가 생기면 빌딩 앞에 텐트를 치고 스피커를 틀어 시끄럽게 한다. 이런 횡포가 다반사로 발생하는 곳이 한국이다.
현재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합쳐 조합원이 200만명을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청와대 국민 청원 홈페이지에는 귀족화한 건설노조 횡포를 고발하는 청원이 수시로 올라오는 실정이다. 노조가 기업 임원을 폭행하는폭행하는가 하면, 국회 담장까지 무너뜨린다. 대검찰청 청사까지 점거해도 금세 풀려난다.
노총이 법질서를 파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정부는 검찰과 경찰 수사권 조정에 앞서 노조의 폭력 행위부터 근절시키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한국의 공권력은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폭력 앞에서 흔들리는 공권력이 과연 시민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세먼지는 언제 없어질까, 2019년 3월 7일
최근 지독한 먼지가 한반도 하늘을 계속 덮었다. 하늘을 나는 오리들도 뿌연 아파트 숲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1987년 멕시코의 서울 멕시코시티에서 극심한 대기오염 탓에 수천 마리의 새가 떨어져 죽은 사건이 한국에서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당시 죽은 새를 검사한 결과, 사인이 대기오염으로 밝혀진 바 있다.
한국이 겪는 미세먼지는 상당 부분 중국에서 왔는데, 중국 정부는 `근거 자료`를 대라고 발뺌하고 있는 상황이다. 환경부는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쳐도 문자만 보내고 외출 자제와 마스크 착용만을 독려하고 있을 뿐 실질적인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정부에 미세먼지 저감을 적극 요구하고, 국내에서도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기를 소망한다.
트럭에 매달린 청년 2019년 7월 2일
새벽에 산책을 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하남 아파트의 사람들`을 찍고 있을 때였다. 상가 앞에서 20대 초반의 앳된 청년이 쓰레기 봉투를 차량에 싣고는 차량 끝에 매달려 출발하는 뒷모습을 발견했다. 이때 차량을 따라가면서 신형 600㎜ 망원렌즈로 그 장면을 포착했다.
트럭 끝 난간을 양손으로 위험하게 붙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매달려 있는 청년의 모습이 지쳐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앞날의 꿈을 위해 온갖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삶의 경험을 쌓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차량에 매달리는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했다. 노력하는 삶은 아름답지만, 자기 몸을 소중하게 아껴야 한다.
숨막히는 폭염, 2019년 8월 3일
입추가 다가오는데도 폭염이 꺾이지 않고 계속됐다. 슬슬 걸어 다녀도 뒷잔등에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였다. 서울 남대문시장 입구, 에어컨 100여 개가 흉물스럽게 붙어 있는 건물을 지나가는 청년이 무더위를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땀을 닦으며 "에어컨 수백 개를 동시에 틀어도 뜨거운 몸을 식히지는 못할것 같다"고 탄식했다.
올해에도 폭염은 여지없이 찾아왔다. 기상청이 지난 3일 노인들에게 외출 자제를 당부할 정도로 재난 같은 폭염이 찾아왔다. 전국 곳곳에서 폭염특보가 발효된 이날 서울은 수은주가 36도로 치솟고 안성은 40도로 가장 높았다.
충북 청주와 경남 밀양·합천 등 대부분 지역이 최고 36도까지 올라갔다. 천안에서는 부산 방면 선로가 휘어져 물을 뿌려 식히기까지 했다. 더위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영등포 일대 일부 주민들은 여의도 한강변에 텐트를 치고 잠을 청했다.
언더우드 4세의 축하 2019년 9월 21일
등산 친구인 행주교회 장로 이종길 씨가 사재를 털어서 헌 교회를 새로 건축해 교회에 바치는 헌당식을 한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이날 언더우드 4세(한국명 원한석)가 행사에 참석해 장로 부부에게 "개인으로 큰일을 했다"고 축하의 악수를 했다.
행주교회는 1890년 말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초가집에서 최초로 선교를 했던 유서 깊은 교회로 알려져 있다. 그는 평생을 조선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학교)를 세우는 데 공헌했다. 병으로 미국으로 돌아가 사망했으나 시신은 조선으로 옮겨져 안장됐다.
행주교회 헌당식에 참석한 피터 언더우드. 그는 선교사 활동이 아닌 기업 컨설팅 비즈니스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이 이제 가난에서 벗어나서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없기에 `한국인들이 세계의 리더로 우뚝 서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 2019년 9월 24일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대가로 평가받는 고(故) 정범태 씨를 좋아했던 사진인들이 벽에 고인의 사진을 붙여 놓고 모임을 가졌다. 소리꾼 장사익 씨가 `찔레꽃` 노래로 그를 추모했다.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라며 구성지게 불렀다. 고인의 얼굴(김녕만 사진)이 `역시 노래는 장사익 씨가 최고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정범태 씨는 젊은 시절부터 말년까지 책상에 앉아 있기를 거부하고 평생토록 보도사진과 춤꾼들의 무대 공연을 찍은 사진가였다.
일간지 사진기자 시절에는 4·19 직전에 고려대생들이 정치 깡패들에게 테러를 당하는 피습 현장을 생생하게 찍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찍은 이 사진은 4·19 혁명의 불길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그는 1960년 구정 이틀 전 발생한 서울역 압사 사고 등을 특종보도한 민완기자로 이름을 남겼다.
성경책을 읽는 사람, 2019년 12월 29일
탑골공원 거리를 걷는데 누워 있는 노숙인 옆에 앉은 노인이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그러니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또한 `내게 힘을 주시는 분을 통해서 저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마지막 부분을 반복해서 크게 읽었다.
그는 노숙인이 세상을 체념하고 누워만 있지 말고 벌떡 일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성격책의 좋은 말을 들려주는 것 같았다. 성경책을 읽는 사람이 내게 노숙인에게 힘을 주는 말을 부탁한다면 나는 어니스트 헨리의 `불굴의 영혼`을 해주고 싶었다.
`잔인한 환경의 손아귀 속에서 나는 움츠리거나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운명의 몽둥이질 아래서 내 머리는 피투성이지만 굽히지 않았다. 세월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나를 볼 것이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이다.`
신년에는 꿈이 있는 사회로 2019년 12월 29일
북한산의 백운대·만경대·인수봉 앞으로 청둥오리 떼가 지나가고 있었다. 새들이 분단의 경계에 가로막히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하늘을 바라보며 새해에 바르게 나아가는 사회를 그려봤다.
새해부터는 정치인들이 중대한 법안을 통과시킬 때 야합과 꼼수로 싸우는 일은 없어야겠다. 광화문광장에서 시위대의 시끄러운 스피커 소리가 더 이상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음주운전을 강력 처벌한다는 법을 우습게 여기고 음주운전을 계속하는 강심장들이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른바 엘리트들이 학맥과 인연을 만들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지위를 대물림하는 일도 없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과거보다는 미래를 생각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희망한다. 한국인이 모든 패악을 털어내고 법을 지키며 지구촌 나라들로부터 신뢰받는 이웃이자 파트너가 될 날이 오기를 바란다
118층 전망대에서, 2020년 1월 10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118층 전망대에 올라가면 북한산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했다. 막상 올라가 보니, 잠실 지역의 모든 아파트가 발 아래에 놓였다.
현 정부 들어 아파트 가격이 한참을 오르더니,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을 전면 금지한 12·16 부동산 대책 이후에는 전세금이 천정부지로 뛴다고 한다. 급등한 집값·전세금에 분노한 주민들이 아파트를 발로 짓밟고 있는 듯한 이미지 같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안정을 위한 대책을 계속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도시공학 박사인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장대로 서울에 80층 아파트를 허용하는 게 집값 안정에 더 큰 도움이 될 것만 같다.
아름다운 풍경, 2020년 4월 4일
해 질 무렵 하남 미사 강변의 숲, 50m 거리에 고라니가 꿩의 목덜미에 다정하게 얼굴을 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내 생전에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800m 망원렌즈로 셔터를 누르면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데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자연에서 고라니와 꿩은 사람만 피할 뿐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도 없는 것 같았다.
자연에 대하여 몽테뉴는 "자연은 길의 친절한 안내자다. 현명하고 공정하고 상냥하다" 고 했다.
루소는 "자연을 보라, 그리고 자연이 가르치는 길을 따라가라, 자연은 쉼 없이 아이를 단련시킨다"고 했다.
인간의 손이 자연을 개발하겠다고 건드리면 자연이 훼손되면서 새와 동물이 사라진다는 것을 느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내버려둬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광화문의 황조롱이, 2020년 5월 25일
천연기념물 323호인 황조롱이가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 20층에 둥지를 틀고 서울 빌딩 숲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빌딩 간판에 나뭇가지를 날라서 쌓은 둥지에서 태어난 어린 황조롱이가 성장해서 비행을 앞두고 마지막 워밍업을 하는 듯했다. 그러고는 곧장 하늘로 비행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황조롱이는 매과에 속하는 맹금이다. 주로 숲에서 말똥가리나 새매의 둥지를 이용해 4~6개의 알을 낳는다. 여름에는 산에, 가을·겨울에는 들로 내려와 쥐와 두더지, 작은 새, 곤충 등을 잡아먹는다.
간혹 황조롱이는 도시 건물이나 아파트 베란다에서 번식해 화제가 되기도 한다. 대형 맹금류는 먹이 부족으로 도시에서 멸종되다시피 했지만, 황조롱이는 쥐나 참새를 먹이로 도시 생활에 적응한 사례들이 꽤 있다. 서식지는 유럽, 아프리카, 말레이시아, 한국, 일본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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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봉은 나의 신이었다, 2020년 6월 10일
"백운산장에서 지낸 60년 동안 아침마다 인수봉을 바라보며 기도를 했다. 인수봉은 나의 신이었다."
백운산장 관리인으로 북한산에서 일생을 보낸 김경자 씨(82)가 산장을 떠나면서 한 말이었다.
고향이 충남 공주군 반포면이었던 김씨가 백운산장에서 주인 이경구 씨와 결혼(주례는 이숭녕 박사)했을 때 나이는 22세였고 남편은 33세였다. 산에서 아이들 2남2녀를 낳고 `어떻게 하면 굶기지 않고 먹여 살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옛날 우이동에서 도선사로 올라 오는 길은 두 사람이 지나치면 부딪칠 정도의 오솔길이었다. 5·16혁명 후에 도선사 아래에 기생집 선운각이 들어서고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도선사를 찾으면서 그 오솔길이 시멘트 도로로 변했다고 했다.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산악구조대 같은 것이 없어 인수봉에서 사고가 나면 부부가 환자를 직접 등에 업고 우이동까지 내려가는 일이 많았다. 김경자 씨는 "지난날 시련을 이겨낸 것은 다 인수봉이 지켜준 덕분"이라고 했다.
[출처] 사진작가 전민조(田敏照)의 『사진은 말한다』 Ⅴ [2010~2019]|작성자 ohyh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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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의미 있는 사진들이 많이 있네요.....
근데 작가의 의식이 쫌 우측에..ㅋ
@여파 찍부랄이군요...ㅋ
@여파 그래서ㆍ현실적으로 더 와닿아 좋았어여~^ㅡ^
나에게 인수봉은
커피 마시는 곳이다 ㅋ
사진과 스토리가 함께 있으니 다시 보게되고 좋네요..
내용이 참 좋네여~^^
황윤길 주장이 먹혔다고 한 들, 무능한 선조가 전쟁에 대비했을까? 백성을 버리고 그 누구보다 도망갈 생각만 하던 선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