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절공 정성근 선생은 감찰공 선조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어제
처음으로 그 존재를 알게 된 인물인데, 그 여운이 쉽게 떠나지 않아 어떤
식으로든지 그 생애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간단하게나마 남겨둔다.
충절공의 부친은 바로 감찰공의 조카사위인 정암공 정척 선생이다.
이번에 정암공의 문인 함종부원군 어세겸 선생이 찬한 신도비명을
읽으면서 그 생애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문과에 급제한 이후 실로 다양한 벼슬을 지냈는데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벼슬은 수문관대제학이라 생각한다.
대제학은 흔히 문형이라 하는 것인데, 품계에 있어서 영의정보다는 낮다고
할 수 있으나 그 권위는 영의정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러한 벼슬을 하였다는 자체로만 봐도 정암공이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그러한 인물이 감찰공의 조카사위였다는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충절공은 1446년에 정암공과 감찰공의 매부 암탄공 이양몽 선생의 따님
사이에 탄생하였다.
정성근 선생은 무오사화가 일어나게 된 핵심적인 계기가 되었던 '조의제문'을
지었던 점필재공 김종직 선생의 문인으로서 생원시와 진사시를 비롯해
문과까지 연속적으로 급제한 대단한 실력파라 할 수 있다.
다양한 관직생활을 했는데 특히 왕의 비서라 할 수 있는 승지를 역임하였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충절공의 인생에 있어서 불행한 사건이 닥쳐오니 그것은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군기시에서 처형을 당했다는 것인데, 지금으로부터 520년전에 발생한
일이다.
사실 충절공이 어떤 경위로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세상을 떠나야만 하였는지
그 구체적인 내력을 아직은 모르나 59세라는 연령에 불의의 사건으로 그 포부를
좀더 펼쳐 보이지 못한 것이 못내 애통하게 생각된다.
사실 충절공 정성근 선생은 감찰공 선조의 행적을 추적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 존재 여부를 전혀 몰랐을 터인데, 이번에 그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일 또한 믿어지지 않는다.
정성근 선생의 시호가 충절공이라는 것인데, 이 시호에 충신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끝으로 충절공 정성근 선생의 서세 520주기를 애통한 심정으로 추모하며, 그의
생애가 우리사회에 널리 알려지길 바라마지 않는다.
2024년 6월 13일(목) 문 암 올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