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뉴스타임지 칼럼)/2022.01.20.
사랑 평화 루미, 나무 꽃 안준철 시에 기대어
이민숙
❂우리가 무지할 때 그 무지는 우리의 감옥이 된다/우리가 지혜로울 때 그 지혜는 우리의 성채가 된다/우리가 잠들 때 우리는 그에게 취하고/우리가 깨어있을 때 우리는 그의 손 안에서 안전하다/우리가 울 때 우리는 그의 구름이 흩뿌리는 비가 되고/우리가 웃을 때 우리는 그의 햇살로 가득하다/분노와 다툼이 있을 때 그것은 그의 분노의 반향이고/평화와 용서가 있을 때 그것이 그의 사랑의 반향이다/ㅡ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루미시집』 /시공사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는 13세기 이란의 대표적인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의 시집 <마스나비>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시집의 하나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삶을 살기위해 끊임없이 지혜를 구하고, 사랑하는 신과 하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수행하는 수행자였다. 이 시도 그의 문집 <마스나비>에 있는 것을 발췌해서 번역한 시 중의 한 편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자전거를 자빠뜨리고 쑥을 캔다//또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이번에는/자전거를 풀밭에 잘 뉘이고/쑥을 캔다//그사이/쑥을 캐는 손길도 제법 차분해졌다//한 땀 한 땀/바느질하듯 쑥을 캔다//쑥을 캐는 것이/재밌는 줄 처음 알았다//이렇게 살면 되겠다 싶다/단순소박하게//작년인가 재작년인가/마구잡이로 쑥을 캐는 둘째 사위를/마뜩잖게 바라보시던 장모님의 눈길//생각난다 --<봄, 쑥> 전문/안준철/『나무에 기대다』/푸른사상
**무수히 많은 시들, 무수히 많은 말들, 대한민국은 시의 천국이요 정치의 천국이다. 시와 정치는 무엇을 위해 있는가.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필요불가결한 것을 짚는다면 나는 시와 정치라고 과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그 안에 무엇무엇무엇이 위치하느냐는 개인의 가치일 것이다. 그 무엇을 굳이 비교하며 논란할 필요는 없으리라. 우리에겐 각자의 삶이 중요하고 그 안에 무엇을 넣어 삶의 수레바퀴를 굴려 가느냐는 소중한 목숨을 사랑하는 그(그녀)의 몫이므로. 아무튼 한 편의 시 속에 우주를 운영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 사랑과 지혜가 그러할 것이므로. 일상의 한 순간, 시집 한 권이 내게로 오고 그 시집 속에서 한 편의 시를 만나고, 지혜 한 꽃잎이 피어난다. 고마움이다. 한없이 황홀한 만남들을 시집으로 쌓아놓은 내 작은 공간이 사랑의 공간임을 부인할 필요는 없으리라. 올해 그 중 첫 번째 책이 『루미 시집』과 안준철 시집 『나무에 기대다』이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이 그의 적이다./공작새의 화려한 날개가 공작새의 적이다./아! 왕을 죽인 것은 왕의 넘치는 위엄이었다.//나는 사냥꾼의 표적이 된 사슴. 사향을 위해 피를 흘리네!/나는 사막의 작은 여우. 털을 위해 나의 목을 베네./나는 한 마리의 코끼리. 상아를 위해 피를 흘리네./내가 가진 아름다움이 나를 파괴하네./그들은 나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내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것도 모르네./오늘은 나에게 있지만, 내일은 그에게 있는 것./또 누군가의 피가 이처럼 흐를 것인가?/살아있는 자의 사랑은 우리의 정신에, 우리의 눈앞에/매 순간 신선한 싹을 틔우고 따뜻한 숨을 불어넣네./영원히 살아있는 사랑을 선택하라./그 사랑은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 한 잔의 와인이 될 테니.// ㅡ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루미시집』 /시공사
❂문득, 눈을 들어보니/아이 주먹만 한 석류 몇 알 달려 있는//그 나무 아래/석류꽃 두어 점 땅에 떨어져/색이 바래어가고 있다//생과 사의 경계가 옅어지고 있다//저 석류꽃 주검 앞에 애통할 일이 아니듯/내 몸 풀풀 날리는 먼지로 돌아간다 한들/애통할 일이 아니겠다//동네 한 바퀴만 돌다가 와도/거울 속에 비친 내 눈빛이/조금씩 옅어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한때는 얼마나 깊어지길 바랐던가//방천길을 지나다가/이따금씩 만나는 철새들과도/경계를 풀고 옅어져가고 있다//새가 나인지 내가 새인지--<옅어진다는 것>전문/안준철/『나무에 기대다』/푸른사상
✏✔화려한 공작새와 석류꽃... ...그 두 사물에 묘사된 두 시인의 삶의 통찰이 명료하다.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화려한 명예, 두툼한 돈봉투, 무소불위의 권력, 그 많은 소유욕의 거대한 결과물을 위해 피흘리는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루미의 시에서 가감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지 못 한다면 우리는 현실적 거대 환상의 하루를 살기 위해 일생의 피흘림을 선택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또 한 시인 안준철은 발견한다. 땅에 떨어져 색이 바래가고 있는 그 이뻤던 석류꽃의 하루를, 그런 와중에 그의 한 마디는 얼마나 고운가! '생과 사의 경계가 옅어지고' 있는 오늘에 애통한 눈물 없이 마음의 손을 모은다는 것! 한 때 생의 깊이를 위해 애쓰던 일들이 경계를 풀고 서로를 위무하고 있다. 저 하늘을 나는 새처럼 말이다. "새가 나인지 내가 새인지"
❂아침에 걸었던 숲길을/다 늦은 오후에 다시 찾았다//늘 다니던 길이 아니다/스무 살 적에나 와본 적 있는//아침에 앉았던 의자에 다시 가서 앉았다/두 번째 생에 와 있는 기분이랄까//아무것도 하지 않아도/생이 가득 찰 때가 있다//아침에 한 생을 살았고/또 한 생이 지나가는 중이다//무얼 하러 이 생에 온 것 같지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전문/안준철/『나무에 기대다』/푸른사상
✏✔하루하루의 삶이 수행이라면, 우리는 마뜩찮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해찰인가? 시인의 삶은 시를 낳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냥 시가 왔을 뿐, 그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스무 살 적으로 갔다가 되돌아온 40년의 하루다. 수십 년을 하루 속에서 살았다니... ...그 젊음과 추억, 그 시간을 품고 있는 오늘 속에 사랑이 있다. 그대의 오늘이 그렇다면 그대는 시간의 그물을 온몸으로 자유롭게 풀어주었을 것이다. 숲은 인간의 수억 년 역사를 함께 살고있다. 그 숲이 준 깨달음이 시의 결기다. 숲으로 들어가 본 기억은 이 짧고도 가파른 생을 펴주고 늘여주고 깊게 해주고, 옅어지게도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살았다고 한 말을 읽게 하는 시이다. '아침에 한 생을 살았고/또 한 생이 지나가는 중'이라니, 여러 생이 한 편의 시 속을 헤엄치고 있다. 참으로 거대한 시심이다. 그 안에 숲의, 나무의, 의자의, 수십 만 년도 함께 수행에 들었으려니.
❂
굳이 갈래를 치자면
나는 낙천주의자에 가깝지만
낙천주의자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관주의자를 좋아한다
삶을 비관할 만큼 삶을 사랑했으리라는
나의 낙관론에 근거한 것이긴 하지만
삶을 비관한다는 것은
어떤 선이 있었다는 얘기도 된다
삶이 거기에 닿지 않아
혹은 거기에 닿게 하려고
몸부림을 치기도 했을 것이다... ...(중략)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비관주의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럴 만큼 당찬 사람도 못 된다
그럼 연꽃주의자는 어떨까
진흙밭에서 저리도 곱게 피었다가
갈 때가 되면
연한 바람에도 후두둑 져버리는 꽃잎들
-- <연꽃주의자> 부분/안준철/『나무에 기대다』/푸른사상
✏✔맞다! 그는 분명 연꽃주의자다. 그의 시처럼 연꽃의 피어남과 사라짐을 그의 생에서도 치열하게 드러낸 시인! 삶이란 태어나 죽는 그 어떤 특별한 시점을 응시하게 된다 하더라도, 행여 매일 태어나고 매일 죽는 건 아닐까? 가장 아름다운 삶의 한 단면은 그런 순간성이 내재된 비극적 황홀일 것이다. 오늘도 태어나지만, 오늘 또 죽는 생명들의 축제 속에서 안준철은 연꽃주의자다! 날마다 피고 날마다 져 내리는 꽃들, 진창에 피어 가장 아름다운 미학주의자 연꽃! 어디에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 누구를 위해 웃었다가 누구 때문에 우는가. 왜 사는가. 왜 피었는가. 낙천주의자니 비관주의자니 시인은 그런 이야기를 하려니 지루하다. 아니 정의 내릴 근거를 찾기 힘들다. 그래서 결론은 연꽃주의자!
그가 많이 아파서, 꼭 이런 시를 썼을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의 몸에 파릇파릇 젊음이 아니 더는 아프지 않기를... ...아! 이 시를 읽는 그대는 무슨 주의자인가. 오늘 진정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어디를 주시하며 가고 있는가. 가슴에 가득찬 그 무엇! 무엇인가? 시는 묻는다, 그래서 위대하다. 시를 위해 종이 위에 가슴을 풀어놓고, 잠 들다 말다 걷다 말다 읽다 말다 울다 말다....아니 사랑하다 말다 죽다 말다 하며 지금도 쓰고 있을 시의 짐승이 시인이다. 나는 안준철의 시 속에서 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읽으며 어느 아침부터 눈물 흘렸던 적 있었는가?
❂
봄이 온다는 것은
아직 세상이 끝나지 않았다는 거다
봄이 온다는 것은
아직 세상을 끝낼 마음이 없다는 거다
저 아득한 나무 우듬지까지
꽃을 매단 것을 보면 안다
고마운 일이다
봄이 딴마음을 품지 않은 것이
--<봄이 온다는 것은>전문/안준철/『나무에 기대다』/푸른사상
✏✔ 봄의 마음과 시인의 마음이 우주 형통해버린 사태를 표현한 이 한 편의 시는 이 시집을 대표할 만한, 아니 또 다른 세상의 많은 시를 대표할만한 시다. 물론 시의 언어가 태어나는 오늘의 운세는 만사형통의 행운이다. 그러나 모든 운세가 어찌 우주현황의 그 오묘한 이치를 꿰뚫을 수 있을까? 때로는 슬퍼서 억울해서, 기운차서 머리가 형형하게 돌아가서 태어난 시어들도 많다.
루미의 시는 명상적이고 수행적이며 종교적이다. 그러나 공해 가득한 삶에 대한 성찰이 하루하루의 진탕길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지혜를 준다. 안준철의 시는 그에 비해 시와 삶을 온전히 드러내는 단순소박한(시인 자신이 천명하듯) 시어들로 빼곡하다. 너무도 여려서 어찌 겨울 바람을 견딜까 하지만, 시인의 길을 따라 걷다보면 만경강도 눈길도 자전거 한 달음에 오고 간다. 여려서 여유만만한 자연주의자, 연꽃주의자 안준철의 덕목이다. 그것 참!
'고마운 일이다/ 봄이 딴마음을 품지 않은 것이' 그 봄은 무엇인가. 너와 내가 아프게 살아갈 세상, 너와 내가 살갑게 사랑할 세상, 우리 함께 어화둥둥 춤 출 하루, 어쩌면 이 존재의 시작과 끝....아니 끝나지 않을 우주의 스스로 그러함, 끝난 것 같으나 어느 새 시작하는 봄의 둥근 위무위(爲無爲: 노자 3장 참조: 함의 없음을 행함)를 노래한다고 느낀다. 시인은 꽃을 피우는 봄날에 어느 나무-'아득한 나무'-의 우듬지 끝을 우러르며 미소 짓는다.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또 갈 것을...그러나...또 다시 봄은...!! 어느 면에서 시 한 편은 우주에서 보내온 영혼의 소리임을 일깨워준 눈물 나는 오늘이다.
......<여수뉴스타임지> [인문학 칼럼]을 청탁 받고 썼으나, 이 글은 그 좁은 지면에는 태부족해 대폭 줄여서 실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