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2월 9일 "광해군은 반드시 재평가되어야 한다" 칼럼을 쓴 바 있다.
그로부터 4년후인 2012년 10월 28일 대한민국 인구의 5/1이라 할 수 있는 천만명의
인구가 관람하였다는 광해-왕이 된 남자를 필자도 관람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
솔직히 필자가 몇년전에 칼럼을 쓸 때는 너무나 억울하게 폐위된 광해군의 영혼을
위로하여 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인데 이렇게나 광해군이 국민들로
부터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것을 보고 참으로 놀라웠다.
2시간에 걸친 영화를 보면서 비록 가상의 역사이기는 하나 광해군을 소재로 하였다는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것만이 광해군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것은 바로 그에게 딸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평소에 광해군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 필자도 그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역사칼럼니스트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구체적으로 영화를 관람한 이후 집에 와서 "광해군"이라는 책을 보고 있는 중에 그의
혈육이 아들을 포함하여 딸도 있는 귀절을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이었으니 적어도 필자의
뇌리에는 이 책을 보기 전에는 이런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필자는 참으로 묘하게도 역사상 많이 알려진 인물보다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으니 잊혀진 증조부,종조부,재당숙을 비롯하여 그동안 발굴한 독립
운동가가 대부분 크게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광해군의 딸도 이러한 잊혀진 역사적 인물중의 한명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딸의 존재를 알기 전에는 광해군에게는 왕세자로서 부왕인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강화도에서 자결하여 생애를 마치었던 폐세자가 유일한 혈육인 줄로만 알았는데 오늘
그러한 사실이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서 깨닫게 된 것이니 결국 그 동기부여는
광해-왕이 된 남자로 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여기서 광해군의 옹주라 할 수 있는 잊혀진 딸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기로
하자.
옹주가 태어난 것은 광해군이 페위되기 불과 4년전인 1619년이었으며 그녀가 불과 어린
5살때인 1623년 조선의 임금이었던 부왕이 인조반정으로 페위된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야말로 그녀의 불행도 시작되는 것이다.
옹주의 어머니는 숙의윤씨로서 윤홍업의 딸인데 광해군이 폐위된 바로 다음 날에 죽음을
당하게 되며 그의 이복오빠가 되는 왕세자도 1623년 자결이라는 비극적인 죽음을 택하게
되니 왕의 딸로 태어나 비극적인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니 참으
로 가슴이 아프다.
이리하여 20살까지 외가댁에서 지내다가 결국 사촌오빠가 되는 인조의 명에 의하여 음성박
씨 문중의 박징원에게 하가하게 되면서 2남 3녀의 자녀를 두었으며 광해군의 유일한 혈육
으로서 그의 제사를 모셨으며 결국 1664년 46세라는 젊은 나이로 통한의 생애를 마치게 되
니 오호 통재라~~~!
한 나라의 옹주의 신분으로 태어나 비극적인 운명에 의하여 신분이 하루 아침에 격하되어
결국 불운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광해군의 딸의 영혼을 애절한 마음으로 위로하면서
이만 마치고자 한다.
2012년 10월 28일(일) 역사칼럼니스트 문 암 박 관 우 올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