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는 야곱
1절.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
‘이 일 후에’라고 했는데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합니다.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고. 내용 전개를 보면 야곱의 병은 나을 병이 아닙니다. 죽음을 가져오는 중병입니다. 요셉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야곱을 찾습니다.
2절.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1절에 요셉에게 야곱의 소식을 알린 어떤 사람과 같을 것입니다. 야곱에게 아들 요셉이 왔다고 알립니다. 이스라엘은(하나님께서 얍복 강가에서 야곱에게 주신 새 이름) 힘을 내어 침상에 앉습니다. 힘을 내어야만 침상을 앉을 수 있는 정도로 힘이 약해진 상태입니다. 몸이 아주 연약한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10절에 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삭도 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창 27장 1절). 신명기 34장 7절에 눈이 흐리지 아니하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던 모세와 다릅니다.
3절.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
야곱은 요셉에게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 즉 벧엘에서 있었던 일을 말합니다. 루스는 벧엘의 옛 지명입니다(창 28장 19절). 야곱은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창 17장 1절. 35장 1절) 자기에게 나타나셔서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역사의 주권자로서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심을 함의합니다. 창세기 28장 3-4절에 이삭은 야곱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의 내용을 얘기했는데 내용이 같습니다. 이삭에 야곱에게 신앙의 유산을 계승한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야곱도 요셉에게 계승합니다. 야곱의 삶을 지금까지 붙들어 주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무엇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왔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루스 즉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이 그의 인생 전체를 지배해 왔음을 의미합니다.
4절.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의 내용은 두 가지라고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야곱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야곱에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창 12장 2절. 7절. 28장 14절). 또 하나는 가나안 땅을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17장 8절. 13장 15절). ‘후손’에는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 함의되어 있습니다(창 12장 3절. 22장 18절. 28장 14절).
5절.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
야곱은 요셉에 애굽에서 낳은 두 아들을 자기의 아들로 입양합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자기의 아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장자는 므낫세입니다(41장 51절). 그런데 야곱은 에브라임을 먼저 언급합니다. 20절에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다”고 합니다. 의도적입니다. ‘르우벤과 시므온처럼’이라고 합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입니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장자의 자리에 둡니다. 요셉에게 장자권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역대상 5장 1-2절에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6절.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
에브라임과 므낫세 이후 태어난 아들이 있다면 요셉의 것이 될 것이라고 하고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이름을 계속 지속시킬 것입니다. 후에 가나안 땅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로 나누어 줍니다.
7절.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
야곱은 갑자기 라헬의 죽음을 언급합니다. 라헬은 밧단(밧단아람. 창 25장 20절)에서 올 때 야곱을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 죽었습니다(창 35장 16-19절). 라헬이 죽은 곳은 에브랏까지는 길이 아직도 멀어서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습니다(창 35장 16절). 어떤 의도로 라헬의 죽음을 언급할까요? 야곱은 라헬을 자기의 아내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아들이 장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라헬이 죽지 않았다면 낳았을지도 모를 아들의 자리에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둔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8절.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들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만난 적이 없을 수도 있고 눈이 보이지 않아서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9절.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
요셉은 그의 아버지 야곱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자기에게 주신 아들들이라고 합니다(시 127편 3절).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야곱은 그들을 데리고 자기 앞으로 나아오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축복하겠다고 하면서.
10절.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
이스라엘은 나이로 말미암아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였습니다. 요셉은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입 맞추고 그들을 안습니다. 12절에 야곱의 무릎 위에 앉혀 놓은 상태에서 행한 것 같습니다. 입양을 의미하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클라인은 “법적인 의미의 몸짓”이라고 하였습니다.
11절.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 |
야곱은 요셉의 얼굴을 보리라고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셉의 아들들까지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의미를 갖습니다.
12절.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
요셉은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하나님과(11절에 하나님을 언급함) 아버지께 존경을 표하는 의미일 것입니다.
13절.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
요셉은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므낫세는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이스라엘에게 가까이 나아갑니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축복한다고 하니까 그렇게 한 것입니다.
14절.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
그런데 이스라엘이 요셉의 기대와는 다른 행동을 합니다. 오른손을 펴서는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는 장자 므낫세의 머리에 얹습니다. 팔을 엇바꾸어 얹은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을 나타냅니다. 야곱의 선지자적인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눈이 어두워서 실수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행위입니다. 데렉 키드너는 “하나님의 손길이 지금 그들에게 얹혀져 있는 손의 배후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15절.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
야곱이 요셉을 위하여 축복합니다. 요셉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21절에 “너희”라고 합니다. 과거에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처럼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내 조부(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고 이삭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셨다”고 합니다. 야곱의 전 생애를 주권적으로 기르신 하나님이십니다. 존 E. 하틀리는 “인생의 복잡한 요정을 하나님이 사랑과 보호로 내내 인도하시고 돌보아주셨다는 것을 전달한다.”고 말합니다.
‘기르다’는 말은 ‘양을 치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목자이심을 의미합니다. 시편 23편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하였는데 ‘나를 기르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 백성인 야곱을 돌보셨습니다. 그를 인도하시고 먹이셨습니다. 그의 인생 전체를 그렇게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선한 목자가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에게 목자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요! 우리의 인생을 의미 있게 길러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6절.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
또한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창 16장 7절. 32장 29절). 브니엘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주신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31장 11절. 13절). 그는 자기의 삶이 “환난”의 삶이었다고 합니다. 그 환난에서 건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두 아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구합니다. 자신의 이름과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기를 구합니다. 언약 백성으로 살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의 기업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를 구합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을 따라 번성하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어야 축복이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의 말씀에 근거를 둡니다. 복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하여 복을 빌 때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에 근거를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축복하는 삶은 첫째, 자기의 삶이 먼저 복되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길러주신 삶임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삶,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이 복되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축복하는 것은 복으로의 초대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에 근거해서 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축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7절.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
그런데 요셉은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오른손을 들어 므낫세의 머리에 옮기려고 하였습니다.
18절.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
요셉은 그의 아버지에게 장자 므낫세의 머리에 오른손을 얹으소서 라고 요청을 합니다. 요셉은 그의 아버지가 모르고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19절.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
그러나 야곱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나도 안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모르고 행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그의 아우 에브라임이 므낫세보다 큰 자가 되고 에브라임의 자손에 여러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합니다. 후에 분열 왕국 시대에 에브라임의 후손은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강한 지파가 됩니다. 북이스라엘 전체를 에브라임이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사 7장 2절. 8-9절. 호 9장 13절. 12장 1절. 8절). 사실 야곱 자신도 장자는 아니었습니다.
20절.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하기를 하나님께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요셉의 두 아들을 통해 복을 받기를 구합니다. 야곱은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습니다. 야곱 자신이 장자권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문제와 에서와 싸웠던 사람입니다.
21절.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
이스라엘은 요셉에게 “나는 죽는다”고 말합니다(50장 24절. 요셉도 형제들에게 말함).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들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너희는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 즉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야곱은 죽지만 하나님께서 야곱과 하신 약속은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는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가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시는 역사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는 증거입니다.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역사는 계속 진행됩니다.
22절.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
야곱은 요셉에게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다고 말합니다. 세겜 땅은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34장 25-29절을 말할 것)이라고 합니다. 후에 요셉은 세겜에 묻힙니다(수 24장 32절. 요 4장 5절).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굳게 의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