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아들들에 대한 야곱의 예언
1절.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
순서는 레아의 여섯 아들들(3-15절), 여종들의 네 아들들(16-21절), 라헬의 두 아들(22-27절)입니다.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부릅니다. 열두 아들입니다. 그들을 다 모으고 “후일에 당할 일”을 말합니다. 예언적인 성격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심이 있었습니다. 유언이면서 예언적인 말씀입니다. 후일은 어디까지 연결됩니까? 메시아 시대입니다.
2절.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
야곱은 아들들을 모으고 들으라고 합니다.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으라고 합니다. 자기들에 대해서 어떤 예언을 하고 다른 형제들에 대해 어떤 예언을 하는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미래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3절.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
3-4절은 르우벤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이고 지도자에게 필요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내 장자, 내 능력, 내 기력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도 탁월하다고 합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로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4절.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
그러나 그는 물의 끓음 같은 사람입니다. 자기를 제어하기 어려운 충동을 가진 사람입니다. 방종의 기질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탁월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힌 사람입니다. ‘내 침상에 올랐다’고 반복해서 얘기합니다. 르우벤은 라헬의 여종 빌하와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행했습니다(창 35장 22절). 큰 죄악을 범한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큰 수치심을 주었습니다. 침상에 올랐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강한 반감의 의사 표시”(데렉 키드너)입니다. 르우벤은 탁월한 아들이지만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대상 5장 1절). 르우벤의 자손은 후에 요단 동편 땅을 차지합니다(수 13장 15-23절).
5절.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
시므온와 레위는 형제입니다. 레아의 아들입니다. 5-7절은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라고 합니다. 그들의 칼은 정의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 아니고 폭력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그들은 ‘폭력’이 특성인 사람들입니다.
6절.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
시므온과 레위의 모의, 집회는 거룩하지 않은 모임입니다. 분노가 있고 혈기가 있는 모임입니다. 그들의 분노를 드러내고 악을 행하는 모임입니다. 악을 계획하는 모임입니다. 그들은 분노하여 사람을 죽이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습니다. 소를 불구로 만든 것입니다. 너무 과도한 잔인한 행동을 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임을 기뻐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5장 11절에 “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고 하였습니다.
7절.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
그들의 노여움은 혹독합니다. 저주를 받을 노여움입니다. 잔인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분기를 다스리지 못하였습니다. 분기가 맹렬하였습니다. 저주를 받을 분기였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를 저주한 것이 아니고 특정 자질을 저주합니다. 혹독한 노여움과 맹렬한 분기는 저주받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누어지고 흩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시므온 자손은 유다 지역에 흡수됩니다(수 19장 1-9절). 시므온 지파는 수도 적었습니다(민 26장 14절). 레위의 자손은 40 성읍과 인근 마을로 흩어져 살게 됩니다. 폭력, 분노, 잔인함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에서 누이 디나 때문에 할례를 이용해 성읍을 습격하여 남자들을 다 죽였습니다(창 34장 25-26절). 야곱은 그 일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창 34장 30절).
8절.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
8-12절은 유다 지파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데렉 키드너는 “계시 역사의 축소판”이라고 합니다. 유다는 이스라엘 남쪽의 지도적인 지파가 됩니다. 북쪽의 지도적인 지파는 요셉의 자손들입니다(22-26절).
유다는 야곱과 레아 사이에 태어난 네 번째 아들입니다. 유다에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고 합니다. 찬송은 유다의 이름의 관련이 있습니다(29장 35절). 유다는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고 아버지의 아들들은 유다 앞에 절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미 요셉에게 절한 경험이 있습니다. 유다는 통치권, 지도권을 가집니다. 유다의 통치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됩니다.
9절.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
유다를 사자 새끼라고 합니다.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다고 합니다. 사자는 왕권을 상징합니다. 힘이 있고 위엄이 있습니다. 유다는 사자로 여러 번 묘사됩니다(겔 19장 2절. 미 5장 8절. 민 24장 9절). 요한계시록 5장 5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 지파의 사자입니다. 유다 지파에서 메시아가 오실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메시아는 왕권을 가진 분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십니다. 만주의 주이십니다.
10절.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
왕권을 상징하는 규가(민 24장 17절) 유다를 떠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유다는 영원한 왕권을 가질 것임을 의미합니다. 다윗 언약을 함의합니다(삼하 7장 16절. 창 17장 6-8절). 통치자의 지팡이도 왕권을 상징합니다. 영원한 왕권을 가진 분이 오실 것임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실로가 오실 것이고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할 것임을 말합니다. ‘실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첫째, ‘그의 아들’로 보는 해석입니다(칼빈. 제롬). 둘째, “그것(통치자의 지팡이)을 가진 자”(70인 역. NIV)로 보는 해석입니다(겔 21장 27절). 셋째, 메시아에 대한 칭호를 보는 해석입니다. 실로는 ‘안식, 평강’의 뜻으로 봅니다. ‘안식의 사람, 평화의 사람’(사 9장 6-7절)으로 이해를 합니다(메러디스 클라인. ‘평강의 왕’으로 봄). 넷째, 장소로 보는 것입니다(델리취). 에브라임 지파의 지명으로 봅니다.
분명한 것은 실로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유다 지파의 자손으로 오실 것입니다. 모든 백성이 그에게 복종합니다. 실로의 통치는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의미합니다(시 72편 8-11절. 슥 9장 9-10절). 그는 모든 백성의 “주”가 되실 것입니다.
11절.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
유다는 물질적인 풍요, 번영을 이룰 것임을 의미합니다. 나귀의 고삐를 포도나무에 맵니다. 포도주를 옷을 빠는 물로 사용합니다. 메시아의 나라는 풍요로울 것입니다.
12절.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게 될 것입니다. 잔치의 이미지인 것 같습니다.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13절.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할 것입니다. ‘해변에’는 ‘해변을 향하여’로 보아도 좋습니다.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고 합니다. 스불론의 경계는 시돈까지입니다. 후에 스불론 지파는 아셀 지파와 므낫세 지파 사이에 끼어 있게 되고, 지중해 해변 가까이에 위치합니다(약 16km 이내. 수 19장 10-16절). 스불론은 해상 무역을 했을 것입니다. 바다의 풍부한 것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신 33장 19절).
14절.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
14-15절은 잇사갈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라고 합니다. ‘꿇어앉은’은 노동으로 기진한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15절.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
스불론은 토지를 경작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갈릴리 남쪽 지역을 차지합니다.
16절.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
16-18절은 단 지파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5-8절에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지파에서 단은 빠져 있습니다. 단은 그의 백성을 심판한다고 합니다. 심판은 다스림을 의미합니다. 사사를 배출할 것임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삼손에게서 성취가 됩니다(삿 14-16장).
17절.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
단을 길섶의 뱀, 샛길의 독사로 표현합니다. 사나운 독사로 표현합니다. 그들은 사나울 것임을 의미합니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합니다. 독사가 말을 물면 말이 놀라게 될 것이고 그 말을 탄 자는 떨어지게 됩니다.
18절.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
야곱의 짧은 기도입니다. “주의 구원”을 기다림을 고백합니다.
19절.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추격할 것이라고 합니다. 갓은 요단 동편에 위치합니다(수 13장 24-27절). 그들은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후에 다윗을 돕는 용사들 가운데 갓 지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대상 12장 8-15절).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한다는 말씀에서 원수의 최종적인 패배에 대한 소망이 나타납니다.
20절.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
아셀 지파는 북쪽 지중해 근처 비옥한 농경지를 얻습니다(수 19장 24-30절). 신명기 33장 24절에 “그의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고 하였습니다. 아셀은 왕의 식탁에 올라갈 재료를 공급합니다.
21절.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
납달리는 놓은 암사슴 같습니다. 납달리는 갈릴리 북쪽 산악 지역에 살았습니다. 암사슴은 발이 빠름을 의미할 것입니다(삼하 22장 34절).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 같아서 독립 정신이 있었습니다. 납달리는 드보라 때 바락을 도와 전쟁에서 큰 승리를 하도록 합니다(삿 4장 10절).
22절.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
22-26절은 요셉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요셉은 그의 아들 에브라임으로 이어집니다. 무성한 가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샘 곁에 무성한 가지. 요셉은 번성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뿌리에 물이 마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가지가 담을 넘습니다. 그의 영토를 넘어서 확장해 갈 만큼 강할 것입니다. 가지가 높이 올라가 담을 넘는 모습입니다.
23절.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였습니다. 적개심을 가지고 쏘았습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핍박을 받은 것을 암시합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서 애굽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24절.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었고 그의 팔은 힘이 있었습니다. 요셉을 이은 에브라임 지파는 전쟁에서 자주 승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수 17장 18절). 그들은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 목자이신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였기 때문입니다. ‘손’은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능력이 함께 하였습니다.
25절.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복을 주실 것임을 예언합니다. 요셉을 도우시는 하나님은 전능자이십니다. 위로 하늘의 복을 주십니다. 비를 주심을 의미할 것입니다. 아래로 깊은 샘의 복을 줍니다. 샘물과 강에 의해 물을 공급될 것입니다.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 있습니다. 자녀를 많이 낳아 요셉의 가문이 번성할 것입니다.
26절.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
요셉이 그 형제들보다 뛰어날 것임을 예언합니다. 훗날 에브라임은 북쪽 지파들을 지배권을 가지고 다스립니다.
27절.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
베냐민을 물어뜯는 이리라고 합니다. 호전적인 성격을 가질 것입니다. 아침에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게 됩니다. 에훗이 베냐민 지파이고(삿 3장 12-30절) 사울이 베냐민 지파입니다. 사사기 20장에 베냐민은 이스라엘과도 전쟁을 치르기도 합니다.
28절.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
야곱의 열두 아들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고 합니다. 야곱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열두 지파를 합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게 됩니다. 축복의 근거는 무엇인가 할 때 그들 각 사람의 분량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각 사람의 신앙과 기질과 관계가 된 것 같습니다.
29절.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
야곱은 열두 아들에게 명합니다. 그는 자기의 조상들에게도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죽음을 그렇게 표현합니다. 33절에는 “그의 백성”에게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이전에는 요셉에게 말하고 이제 열두 아들에게 자기의 죽음을 말하면서 어디에 장사해야 하는지 말합니다.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고 유언합니다. 선조가 묻힌 땅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고향입니다. 그곳은 약속이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굳건하게 가지고 있음을 야곱은 드러냅니다.
30절.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
야곱은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이 어떤 굴인지 설명합니다.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굴입니다. 그 굴은 아브라함이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샀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매장지로 삼았습니다. 그 매장지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믿는 믿음의 표입니다.
31절.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
그 매장지에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장사 된 곳입니다.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장사 되었습니다. 야곱은 레아를 그곳에 장사 하였습니다. 레아는 야곱이 애굽 땅으로 내려오기 이전에 이미 가나안 땅에서 죽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라헬이 아니라 레아가 묻힌 것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야곱이 레아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인정하였다는 뜻입니다. 사라, 리브가와 같은 언약 백성임을.
32절.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
밭과 굴은 헷 사람에게서 값을 지불하고 산 것임을 다시 강조합니다. 그것은 단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밭 사고 굴을 사는 것과 그 의미가 다릅니다. 그곳을 소유로 삼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믿는 믿음의 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안에 들어온 백성임을 표합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임을 표합니다.
33절.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칩니다. 야곱은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갑니다(25장 8절). ‘그의 백성’은 언약 백성,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죽음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그리스도께서 계신 하늘로 가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언약 백성들이 있는 그곳으로 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죽으면 만나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