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장례와 요셉의 죽음
1절.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 맞추고 |
요셉은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을 맞춥니다. 49장 33절에 야곱은 숨을 거둔 상태입니다. 그에 대한 슬픔을 표현합니다. 야곱은 130세에 애굽으로 내려와서(47장 9절) 17년 동안 산 후 147세에 죽습니다(창 47장 28절. 49장 33절). 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땅의 삶을 마칩니다.
2절.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
요셉은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합니다. 시신 처리를 위해 전문가를 고용합니다.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합니다. 의원은 요셉의 명령을 따라서 행합니다. 몸을 향으로 처리하는 것은 방부처리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몸이 썩고 냄새도 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몸에 향 재료를 넣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미라를 만들 때는 몸의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을 가득 채워 시체를 건조 시킨 후 향유에 적신 천으로 묶고 전체를 싸는 방식으로 했다고 합니다. 몸을 향으로 처리하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3절.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
향으로 처리하는 데 40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애굽 사람들은 70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습니다. 40일과 70일은 겹치는 기간일 것입니다. 보통 바로를 위한 애도 기간은 72일이었다고 합니다(폰 라드). 그것보다 조금 못한 날 수입니다. 총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습니다. 요셉의 지위가 어떠했는가를 보여줍니다.
4절.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원하건대 바로의 귀에 아뢰기를 |
곡하는 기한이 지나자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합니다. 아마도 장례의 기간이라 바로에게 직접 나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도록 한 것 같습니다.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맹세한 것이 있기에 바로에게 허락받고자 한 것입니다.
5절.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맹세하게 한 것이 있는데 죽거든 가나안 땅 묘실에 장사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야곱이 ‘내가 파 놓은 묘실’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오기 전에 자기의 묘실을 마련해 놓은 것 같습니다. 요셉은 올라가서 아버지 야곱을 장사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헤브론은 고센보다 고지대이기 때문에 ‘올라간다’고 표현합니다. 요셉 자신은 다시 오겠다고 약속합니다.
6절. 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버지를 장사하라 |
바로는 허락합니다. 맹세시킨 것을 지키라고 합니다.
7절.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갑니다. 그 행렬에는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가 따르고 있습니다. 요셉의 영향력이 참으로 컸음을 잘 보여주는 행렬입니다.
8절.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갑니다. 어린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겨 둡니다. 엄청난 장례식입니다. 야곱의 장례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세기가 쓰일 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야곱이 모든 가족과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올라가는 영상을 그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줍니다. 야곱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따른 소망의 행동을 한 것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는 것은 관련이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야 하는지 그 뿌리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9절.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
장례 행렬에는 병거와 기병도 함께 합니다. 그 떼가 심히 컸다고 합니다. 병거와 기병은 장례식의 안전을 위한 조치입니다. 가다 보면 도둑 떼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절. 그들이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
장례 행렬은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도착합니다. 요단강 건너편은 요단강 서쪽일 것으로 봅니다. 아닷 타작마당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NIV스터디 주석에 타작마당은 바람을 이용해야 하기에 대개 마을 변경이나 성문 근처에 위치한 높은 지역에 있었다고 합니다. 타작마당은 보통 평평한 원형 형태의 땅이고 때로 바위 위와 땅을 밟아 단단하게 만든 곳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크게 울고 애통해 하였습니다. 요셉은 그의 아버지 야곱을 위하여 7일 동안 애곡합니다.
11절.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강 건너편이더라 |
그 땅에 사는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고 합니다. “애굽인의 곡함”이라는 뜻입니다. 아벨은 ‘애통’이라는 뜻이고, 미스라임은 이집트입니다. 애굽 사람이 크게 애통하는 모습을 보고 지은 이름입니다.
12절.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행합니다. 순종하는 아들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3절.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
야곱을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합니다. 그곳은 값을 주고 산 매장지입니다(창 23장 16-19절).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 묻힌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믿고 산 사람들이 들어간 곳입니다. 그 당시 곳곳에 매장지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매장지와 구별되는 것은 바로 “언약”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귀한 매장지가 될 것입니다.
14절.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장사한 후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옵니다. 호상꾼은 초상이 나면 장례하는 일을 돌보아 주는 사람들입니다. 친척이나 친구들, 아는 사람들이 호상꾼이 됩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에 묻힌 것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굳게 믿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②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의 백성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가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믿음의 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이 죽을 때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압니다. ③ 자손들에게 그들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줍니다. 비록 고센 땅에 살고 있지만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15절.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죽었음을 보고 불안한 마음을 가집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야곱이 그들의 “보호의 방패”(존 E. 하틀리)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요셉이 혹시 자신들을 미워할까 불안한 마음을 갖습니다. 그들이 과거에 요셉에게 행한 모든 악에 대해서 다 갚으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가 “악”이라고 분명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예전에 에서가 이삭이 죽으면 야곱을 죽이겠다, 그렇게 했었습니다(27장 41-45절). 형제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보호막이었는데 이제 그것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16절.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
형제들은 요셉에게 말을 전합니다. 누군가를 대신해서 보낸 것 같습니다. 아마도 베냐민을 보낸 것 아닐까, 보기도 합니다. 야곱은 ‘당신의 아버지’라고 하면서 그 아버지가 명령한 내용을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
17절.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
아버지 야곱이 비록 형들이 악을 행했지만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을 뜻하는 말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 하고 자신들을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겼습니다. 형제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임을 나타냅니다. 자신들을 용서해 주기를 구합니다. 요셉은 형제들이 하는 말을 듣고 웁니다. 그 울음은 복잡한 감정의 표현일 것입니다. 형제들이 아버지까지 연관시키면서 얘기하는 것을 듣고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신 것을 감사함도 있었을 것입니다. 형제들이 계속 그런 불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것도 마음을 아프게 했을 것입니다. 형제들이 계속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본 것입니다. 애굽에 노예로 팔려 와 비참하게 살았던 고통스러웠던 시간들도 떠올랐을 것입니다.
18절.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
이제 그의 형들이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립니다(37장 7절 성취). 그리고 요셉에게 “당신의 종들”이라고 말합니다. 전제도 요셉 앞에서 자신들을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는 요셉인 줄 모르고 한 말입니다(44장 9절. 33절). 지금은 다른 상황입니다. 요셉인 줄 압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을 낮추어 종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19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
요셉은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요셉은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고 합니다(30장 2절). 아마도 옳고 그른 모든 것을 판단하시고 심판과 보응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함의할 것입니다(롬 12장 19절).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앉을 수 없다고 합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을 가지고 진행해 오셨음을 의미합니다.
20절.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다고 요셉은 말합니다. 그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악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선”은 하나님의 섭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그의 성숙한 신학이 모든 것을 이끌고 있습니다. 형제들의 악한 의도와 하나님의 선한 의도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의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부모, 가족들, 형제들 모두 보존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해하려고 계획하고 행한 일은 분명히 악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마저 사용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21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
요셉은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들과 그들의 자녀를 기르겠다고 합니다. 오히려 간곡한 말로 그들을 위로합니다. 진실한 마음을 위로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근거를 둔 위로입니다. 요셉이 고센 땅을 구분한 것은 그들을 기르려고 하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자 함입니다. 먹을 양식도 공급해 주고 가축 떼로 살펴줄 것임을 의미합니다.
22절.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
요셉은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면서 110세를 삽니다. 야곱이 죽었을 때가 요셉의 나이 56세쯤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죽은 뒤 54년을 더 삽니다. 110세는 애굽에서 장수하는 나이였을 것입니다.
23절.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
요셉은 자기의 아들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습니다.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습니다. 마길은 므낫세의 첫아들입니다. 마길은 길르앗을 받습니다(수 17장 1절).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다는 것은 요셉이 마길의 아들들을 입양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요셉의 남은 생애를 그려줍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을 양육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신실하게 이행한 것입니다.
24절.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형제들은 넓은 의미로 사용된 말일 것입니다. “나는 죽을 것이다”(48장 21절)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남은 형제들을 돌보실 것이라고 합니다. 언약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것도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들은 약속의 말씀을(48장 21절)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요셉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그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믿음’을 나타냅니다. 히브리서 11장 22절에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고 합니다. 그의 유언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요셉은 죽으면서 믿음을 분명하게 고백하였습니다.
25절.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
요셉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돌보실 것임을 확신시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을 확신하면서 자기의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고 맹세하라고 합니다. 데렉 키드너는 “미래를 내다본 믿음의 의사 표시”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출애굽 할 때 요셉의 해골을 가지고 갑니다(출 13장 19절). 요셉의 유언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요셉의 뼈는 세겜에 묻힙니다(수 24장 32절).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으니까 여호수아가 세겜에 묻습니다. 여호수아도 요셉의 유언을 올바르게 감당했습니다. 모세나 여호수아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은 사람들입니다.
26절.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
요셉은 110세에 죽습니다. 애굽에서 입관을 하였습니다.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입관을 했는데 그것은 애굽의 장례 관습일 것입니다. 입관(入棺)은 죽은 시체를 관에다 넣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시체”로, “장례”로 끝이 납니다. 창조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바라보게 합니다. 야곱의 장례 행렬과 같은 행렬은 없습니다. 누가 그 요셉의 해골을 가지고 갑니까? 모세입니다. 마치 야곱의 장례 행렬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처럼 모세는 요셉의 해골을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갑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입니다(창 15장 13-16절). 창세기의 끝은 가나안 땅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역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