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본 이원수 선생의 인성
○ 정이 많다.
○ 서민적이다.
○ 정의감이 강하다.
○ 애국심이 강하다.
2. 생애
이원수는 1911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마산상고를 졸업하였다. 12세부터 ≪어린이≫와 ≪신소년≫같은 잡지를 즐겨 읽었으며, 1925년 15세 때 신화소년회원이 되어 소파 방정한을 처음 만났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아동문학에 뜻을 두었다. 1926년 ‘고향의 봄’이 당선되어≪어린이≫지 4월호에 실리면서 이후 여러 잡지와 신문에 글이 실리게 된다. 그는 〈어린이〉를 통해 아동 문학을 시작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방정환이 중심이 되었던 〈어린이〉의 영향을 많이 받다가 점점 방정환의 동심 천사주의 문학관을 버리고, 현실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어린이의 구체적인 삶에 관심을 갖는 등 그 나름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펼쳤다.
1949년 사랑과 자유의 나라를 그린 장편 동화 ‘숲 속 나라’를 발표하였고 이후 치열한 작가 의식으로 역사의 현장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작품으로 형상화하기에 이른다. 6.25 때문에 일어난 처참한 불행을 다루는가 하면 민주와 자유와 정의를 이루고자 한 4.19 정신을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1960년부터는 6.25나 시대정신보다는 부모애. 형제애, 우정, 자기희생 등의 사랑을 주제로 한 동화를 주로 썼다.
자신이 겪은 일상의 일부터 가족, 이웃, 사회, 민족에 이르기까지 세상일을 냉철한 현실관으로 풀어냈다. 그리고 그 시작과 끝에는 늘 사랑이 있었다.
우리나라 아동문학에서 불모지였던 장편 동화와 소년 소설의 장르를 개척하고 아동문학 이론을 확립함으로써 아동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동시집 <종달새> <빨간 열매>, ‘고향의 봄’'겨울 물오리’를 비롯한 수백 편의 동시를 썼다. 동화집 소년소설집 <숲 속 나라> <오월의 노래> <구름과 소녀> <파란 구슬> <초록 언덕을 가는 전차> <이원수 쓴 전래 동화집> <민들레의 노래> <산의 합창> <한국 동화집> <보리가 패면> <메아리 소년> <시가 있는 산책길> <꽃바람 속에> <눈보라 꽃보라> <바람아 불어라> <잔디 숲 속의 이쁜이> <불꽃의 깃발> <이원수 작품집> <이원수 아동문학독본> <어린이 문학독본> <꼬마 옥이> <엄마 없는 날> <밤안개> <도깨비와 권총왕> 등 40여 권을 남겼다.
8·15 해방 이후 동화작가와 아동문학 평론가로서 뚜렷한 궤적을 그린다. 그런데 이런 사실로 말미암아 이원수 문학을 해방 이전에는 시 중심, 해방 이후에는 산문 중심으로 바라보는 통념이 생겨나선 곤란하다. 동시인으로 활동했던 해방 이전은 물론이고 해방 이후에도 가장 탁월한 동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원수를 빠뜨릴 수는 없다. 더욱이 이원수 동시의 흐름에서 볼 때 이른바 해방기에 자못 중요한 성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이 시기에 씌어진 동시 「개나리꽃」(1945년), 「버들피리」 「너를 부른다」 「부르는 소리」 「오끼나와의 어린이들」 「빗속에서 먹는 점심」(이상 1946년), 「송화 날리는 날」 「이 골목 저 골목」 「민들레」(이상 1947년), 「밤중에」 「토마토」 「성묘」 「바람에게」(이상 1948년), 「들불」(1949년) 같은 작품들을 살피면 이것들이 앞선 시기의 시적 성취를 넘어서는 리얼리즘의 대표 작품임을 금세 알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을 뜨기 바로 직전에 써서 발표한 동시 「나뭇잎과 풍선」 「대낮의 소리」(이상 1980년), 「겨울 물오리」 「설날의 해」 「때 묻은 눈이 눈물지을 때」 「아버지」(이상 1981년) 같은 작품들도 이원수 동시의 명편에 속한다.
1930년 함안금융조합에 취직. 1935년 문학그룹 사건으로 경찰에 붙잡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년간 옥살이를 하심. 1936년 직장도 없이 최순애님('오빠 생각' 작사)과 결혼하여 마산 산호동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3남 3녀를 낳았으나 1950년 6·25 동란으로 상옥(3녀), 용화(3남)를 잃었다. 1937년 함안금융조합에 다시 들어가 일하면서 작품 발표. 1945년 10월 경기공업학교 교사 1947년 그만 둠. 1951년 미영 연합군 부대에노무자로 뽑혀 동두천 근처에서 1년간 천막 생활. 그는 평생 동안 296편의 동요 동시와 160여 편에 이르는 동화를 남겼다. 1981년 1월 24일 구강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3. 작품 세계
해방 전 작품
고향의 봄 (나의 살던 고향은)
보오야 넨네요
저녁이면 성둑에
아기 업고 나와서
"보오야, 넨네요."
"보오야, 넨네요."
아기는 일본 아기
칭얼칭얼 우남이
해질녘엔 여기 와서
"보오야, 넨네요."
귀남아
귀남아,
너희 집은 어디냐?
저 산 너머 마을이냐?
엄마 아빠 다 있니?
나무 나무 늘어선 서산머리는
새빨간 새빨간 저녁 놀빛
귀남아, 네 눈에도 저녁 놀빛
(1938년 『소년』지에 게재) 『너를 부른다』<176-177면>
자장 노래
자장 우리 애기 어서 자거라.
해님도 잠자러 산 넘어가고
언덕도 들도 고히 잠잔다.
까아만 이불 덮고 고히 잠잔다.
자장 우리 애기 어서 자거라.
뒷산 기슭엔 노루가 자고
나뭇가지 가지마다 새들이 잔다.
자장 우리 애기 어서 자거라.
잠 잘 자면 오신다네 둥그런 달님.
우리 애기 잠자는 베갯머리에
달나라 꿈을 가득 싣고 온다네.
자장 우리 애기
어서 자거라.
1940년 같은 <소년>지에 수록 너를 부른다』, 162면>
꽃불
어머니를 졸라서 올에 첨으로
장난감 꽃불을 사러 갔더니
가겟집 안방에서 글 읽는 소리
우리 반의 그 애다, 국어책을
아, 내일 배울 곳까지 죽죽 읽누나.
사려던 꽃불도 다 그만두고
나는 곧 달음박질, 우리 집으로
강 건너 산 위에는 별들이 나와
꽃불처럼 이룽이룽 피고 있었다.
(1942년)
일본 가는 소년
뛰― 고동 소리 배 떠납니다
우리 조선 여기 두고 떠나갑니다
'잘 가거라' 손짓하는 사람 없건만
그래도 뱃머리만 바라다보며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올는지
눈물만 씻고 씻고 또 씻으면서
절영도 섬을 돌아 떠나갈 때엔
어머님도 낯 가리고 설워 웁니다.
(1920-1930) (전집 1』, 16 면)
헌 모자
학교 마루 구석에
헌 모자 하나.
날마다 혼자 남는
헌 모자 하나.
학교 애들 다 가고
해질녘이면
가고 없는 주인이
그리웁겠지.
월사금이 늦어서
꾸중을 듣고
이 모자 쓰지도 않고
나간 그 동무,
지금은 어디 가서
무얼 하는지
보름이 지나도록
아니 옵니다.
(1939년-1945년) <『너를 부른다』, 198면>
6·25 전후의 작품
여울
단풍 든 산을 끼고 차디찬 강물
언덕 위 외딴집엔 어린 나그네
등잔불도 없이
밤이 깊어서
누워서 듣습니다
여울물 소리
"잘 가거라, 잘 가거라.
언제나 만나 보니?
혼자 가니, 너 혼자
어디 가니? 어디 가니?"
목 메인 어머니의 목소리같이
원망하는 누이의 목소리같이
싸늘히 차운 밤,
어린 길손을
여울물이 울며 가네
부르며 가네
<너를 부른다』102면>
고향 바다
봄이 오면 바다는
찰랑찰랑 차알랑.
모래밭엔 게들이
살금살금 나오고
우리 동무 뱃전에
나란히 앉아
물결에 한들한들
노래 불렀지.
내 고향 바다
내 고향 바다
자려고 눈 감아도
화안히 뵈네.
은 고기 비늘처럼
반짝반짝 반짝이는
내 고향 바다.
<『너를 부른다』, 194면.>
개나리꽃
양담배 양사탕
상자에 담아 들고
학교엔 안 나오고
행길로만 도느냐.
우리도 목 메이며
너를 부른다. (「너를 부른다」, 86-87면)
부르는 소리
해가 지면 성둑에
부르는 소리,
놀러 나간 아이들
부르는 소리.
해가 지면 들판에
부르는 소리,
들에 나간 송아지
부르는 소리.
박꽃 핀 돌담 밑에
아기를 업고
고향 생각, 집 생각
어머니 생각 ―
부르는 소리마다
그립습니다.
귀에 재앵 울리는
어머니 소리.
<『너를 부른다』, 110면>
봄 시내
마알갛니 흐르는 시냇물에
발 벗고 찰방찰방 들어가 놀자.
조약돌 흰 모래 발을 간질고
잔등엔 햇볕이 따스도 하다.
송사리 쫓는 마알간 물에
꽃이파리 하나 둘 떠내려온다.
어디서 복사꽃 피었나 보다.
『너를 부른다』 153면>
씨 감자
감자씨는 묵은 감자 칼로 썰어 심는다.
토막토막 자른 자리 재를 묻혀 심는다.
밭 가득 심고 나면 날 저물어 달 밤
감자는 아픈 몸 흙을 덮고 자네
오다가 돌아보면 훤한 밭 골에
달빛이 내려 와서 입 맞춰주고 있네
해바라기
울타리밖에 선 해바라기는 갓 났을 떄부터 버림 받았다.
꽃 밭에 물 주는 누나도 이까짓 게 꽃이냐고 본체만체
뜰 쓸던 할아버지가 몇 번이나 빼버리려다 두셨다는 해바라기
해바라기야 해바라기야
너는 혼자서 외롭게 자랐건만 커다란 아주 커다란 꽃이 폈구나
언니보다 더 큰 키 부채보다 큰 잎새
그 위에 쟁반 같은 황금 꽃은 화초 밭이 온통 시드는 날도
해님을 쳐다보고 울고만 있네
해바라기야 해바라기야 너는 내 동무
해바라기야 해바라기야 너는 해님의 아들
이원수의 동화관
동화의 꿈은 현실을 더 아름답고 훌륭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현실에 눈감고 그냥 즐겁게만 해 준다는 것은 마약을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아동문학가는 그들의 작품으로서 현실에 관여하며 살아가는 아동의 자태를 바른 눈으로써 보고 그리며 그 현실이 부정적인 것일 때 그것을 강력히 배제하고 저항하는 정신으로써 작품을 써야 할 것이다. 아동의 현실 참여는 작가가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본 것이다. 현실 참여라는 것은 성인 사회의 일에 아동이 덤벼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동이 현실적으로 참여해 있는 모든 일을 말하는 것이다. 아동은 ‘아동국’이라는 별다른 곳에서 살지 않고 우리들 어른들과 같이 산다. 같이 살기 때문에 좋은 일과 또 나쁜 일이 있다. 그 좋은 일을 불려주고 나쁜 일을 없애자는 정신으로 아동의 현실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아동과 문학, 웅진출판사, 312∼313쪽)
산문을 쓴 이유
1945년 해방 직후 나는 서울에 와서 교사가 되었다. 해방의 기쁨은 또 다른 고민을 우리들에게 안겨주어 정치적 혼란과 국토의 양단, 사상적 상극으로 이리 밀고 저리 밀리는 신세였지만 나에게는 그 때까지의 시작(詩作) 외에 산문을 쓰기 시작한 산문으로서의 의미가 더 컸다. 압제자는 갔으나 감시자가 더 많아진 조국의 자리 잡혀지지 않은 질서 위에 이욕에 눈이 시뻘개진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노예근성을 가진 벼락장군처럼 사방에서 큰소리들을 치고 또 권세와 재물을 쌓아올리고 있었다. 그런 세상에서 자라는 아동들의 형편을 보고 동시를 쓰는 나의 마음은 울분과 탄식에 젖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의 시 ‘너를 부른다’는 탄식조의 동시였다. - ‘너를 부른다’ 전문 줄임 - 이런 동시로서 내 마음이 후련해질 까닭이 없었다. 동화를 쓰자, 소설을 쓰자 그런 것으로 내 심중의 생각을 토로해 보자는 것이었다. 쫓겨가는 외인에게 주먹을 들어 보이며 욕을 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외인에게는 허리 굽혀 환영을 한다. 외인의 것이면 물자 건 풍습이건 즐겨 받는다. - 이런 세상이 싫었다. (전집 30권, <나의 문학, 나의 청춘>, 257쪽)
《오월의 노래》는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 아래 살아가는 아이들 모습을 그린 이야기로 이원수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통치는 1910년 한일 합방에서부터 1945년 미국의 진주만 공격으로 2차 대전에서 패전하여 물러나기까지 만 35년 동안 이어진다. 일제는 합방 후 일체의 의병활동과 애국 계몽운동을 배제하고 군사, 정치, 문화, 경제 활동 전반을 철저하게 통제하면서 통치기반을 마련한다. 이런 식민지 통치는 우리 민족의 모든 물리적 권한과 소유를 박탈하고 민족적 역량을 소멸시키고자 한다. 우리는 경제적 기반을 빼앗긴 채 절대 가난에 시달려야 했고 저들의 탄압에 신음해야 했다.
이 시기의 아동문학은 어른들의 봉건적 관념에서 비롯된 어린이 경시 사상과 식민지 시대에 고난받는 아이들을 위한 감성해방과 미래 독립의 역군인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문화운동의 일환으로서 성격을 띄게 된다. 방정환을 중심으로 한 어린이 문화운동으로서의 아동문학은 방정환의 동심천사주의 영향을 받아 슬프고 애상적인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20년대의 이런 흐름이 30년대에 와서는 카프 아동문학의 영향으로 계급의식을 고취시키는 방편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 이후에 교훈주의, 반공주의 등 이원수가 타개한 80년대까지 우리 아동문학은 우리 역사와 더불어 혼란한 격동의 시대를 걸어왔지만 이원수는 어떤 주의에도 흔들림 없이 아이들의 현실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아동문학은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아동문학은 아이들의 현실의 삶을 다루는 것이 마땅하지만 격동기의 역사를 지나오면서 아동문학은 여러 방편으로 이용되어 오다가 이원수에 이르러서 비로소 아동문학의 본연의 위상을 찾은 셈이다. 그것도 소년소설을 통해서.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오월의 노래》는 주인공 노마를 통해서 한 시대의 불행 속에서 민족의 정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노마는 빈한한 가정에서 늦게 학교에 들어간다. 병약한 어머니와 벌이가 신통치 않은 아버지, 그리고 공장에서 여직공이 된 누나와 함께 살아간다. 노마는 급여가 적다는 말을 했다 하여 수리조합 공사장에서 난폭한 일본인들에게 무차별한 폭력을 당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을 보면서, 넓으나 넓은 벌판에서 무르익어 가는 곡식과 그것을 실어 나르는 도로꼬가 줄을 잇는데도 만날 배가 고파 비참한 현실을 민족적 고통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이원수는 보통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잠겨 있을 무렵 우연하게 ‘신화 소년회’에 가입한다. 소년회는 식민지하의 아이들에게 겨레의 문화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고 미래의 주인공답게 키우자는 애국운동 단체였다. 노마는 소년회에 들어 활동하면서 반일 정신을 키워나간다.
노마는 학교에서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소년회에 들어 열심히 활동한다. 일본 국어 상용의 방침에 따라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자 우리말 탄압에 반발하는 그룹의 일원으로 활약하면서 비밀리에 신문을 돌린다. 소년회를 지도해 주던 박 선생님이 잡혀가고 소년회가 해체 위기를 맞자 박 선생님이 갇힌 감옥 근처에 가서 소년회원들과 노래를 불러드리기도 하면서 민족을 위하는 마음을 키워간다.
우리말을 못쓰게 하는 것은 우리가 조선 사람의 정신을 버리고 일본 국민이 되어 저희들에게 충성을 하라는 것이요, 조금도 우리 민족을 위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시키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 당시 고통의 원인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는가 자각하게 하고 일제라는 외세의 지배에 저항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노마는 이제부터라도 박 선생님의 뜻을 이어 소년회를 다시 계속해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상호의 연설에 깊이 공감한다. 즉 현실은 비록 일제에 억눌려 있지만 조선 사람의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을 다지게 된다. ‘조선 사람의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외세로부터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의 정신을 심어주고자 하는 이원수 정신을 보게 된다. 계속해서 노마는 어린이 잡지를 빌려준 고마운 영순이 누나에게 주려고 일본인 집 담에 핀 장미꽃을 꺾다가 주인이 쏜 공기총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는 상처를 입는다. 상호는 이 일을 비판하는 글을 소년회 신문에 싣는다.
울타리 안에 있는 장미꽃을 꺾었다고 공기총을 쏘아 어린이 소년을 부상시킨 일본인이 있다. …… 우리들은 이런 야만적인 잔인한 행동을 하는 기무라에게 조선 사람이었기에 당한 모욕과 매맞음을 마음깊이 새겨 원수 갚을 것을 맹세해야 할 것이다. 소년들은 굳게 단결하여 민족의 힘을 길러 저들의 멸시를 부숴주어야 할 것이다.
상호가 정학을 당하는 이 사건은 이원수가 6학년(1926)때 신문에 일본 사람을 비난하는 글을 학급신문에 싣는 것이 그 배경이다.
어느 일본 사람이 자기 뽕나무밭에 들어와 오디를 따먹은 아이들 잡아놓고 염산수로 이마에 도둑이다 써서 지워지지 않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일에 흥분한 나는 그 일본 사람의 야만적인 행동을 비난한 나머지 왜놈이란 말까지 썼던 것이다.(이원수, <흘러간 세월 속에>, 《소년》, 1979년 11월호, 94쪽)
이 일로 이원수는 교장 선생님께 불려가 꾸중을 듣고 항상 ‘갑’이었던 조행 점수가 ‘을’이 되고 담임인 한국인 교사는 담임을 빼앗기고 얼마 후 사표를 쓴다.
만약 장미꽃을 꺾은 아이가 일본 아이였더라면 일본인 주인은 공기총을 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에 대한 이런 야만적인 행위는 어린 아이에게까지도 이렇게 철저하게 행해지고 있었고 이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계속해서 이원수는 상호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지금 조선 사람들이 불행하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말씀을 들었어. 우리들이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에 잘못하면 세상은 으레 이런 것이려니 생각하고 사는 수도 있대. 그렇지만 그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하셨어. 우리들의 불행을 반드시 깨닫고 알아야 하고 그 불행한 일을 비관하여 쓰러지지 말고 그 불행과 싸워 이겨야 한다고 ……. 그것이 곧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하셨어.”
상호의 말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가, 왜 나라를 빼앗기고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 이토록 괴롭힘을 당하는가? 이런 현실을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묻고 따지면서 강한 민족애를 깨달아 가는 과정은 사뭇 감동을 준다. 이야기는 노마나 상호 등 당시의 아이들을 중심으로 풀어가면서 더욱 생생한 현실을 인식하게 한다.
이런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우리 겨레에게 식민지 지배가 무엇이었는지 묻고 정리하여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작업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 동원(冬原) 이원수의 작품 세계 *
그의 작품에는 늘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고난을 겪는 아이들의 모습이 나온다.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하고, 부유한 아이들에게는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하는 힘이 있다. 〈해와 같이 달과 같이〉에 나오는, 가난한 가정을 돌보느라고 구두닦이를 하면서도 밝고 씩씩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아이들에게 많은 용기를 줄 것이다.
-- 자연과 생명에 대한 사랑이 녹아 있다. 〈잔디숲 속의 이쁜이〉에는 주인공인 이쁜이라는 개미가 규범으로 얽매인 삶에서 벗어나 자유와 사랑이 넘치는 나라를 찾아가기 위해 온갖 고난을 겪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개미의 생태나 삶의 모습이 과학적으로 그려진다.
--- 그의 동화를 읽는다는 것은 곧 우리 역사를 읽는거나 마찬가지이다. 이원수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첨예하게 갈등하며 흘러온 귀중한 순간순간의 흐름을 전혀 놓치지 않고, 그대로 어린이들에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 〈5월의 노래〉는 이원수가 해방 이후에 일제 시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년소설이다. 일제 시대라는 어둡고 쓸쓸한 공간에서 일본인의 탄압을 받아야만 했던 경험은 그대로 그의 가슴에 깊이 박혀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호수 속의 오두막집〉에는 북으로 갔던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가 물 속에 잠겨 버리는 집을 떠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즉 분단으로 인해서 우리 겨레가 겪는 아픔을 통해 통일의 당위성을 깨달아 가도록 한다. 불의한 힘을 멀리하고 정의를 옹호하는 마음을 길러 가게 하는 〈명월산의 너구리〉, 전태일의 삶을 다룬〈불꽃의 깃발〉, 4·19 혁명을 다룬〈벚꽃과 돌멩이〉 등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 준다.
그가 동화에서 다루는 주제는 통일, 민주주의, 생명 존중, 더불어 사는 삶, 정의 등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문제, 부딪치는 모든 문제이다. 그는 이 모든 문제를 아이들의 눈으로 다룬다. 투철한 역사 의식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뼈대이다.
* 작품 목록 *
- 소년소설
<지혜의 언덕>(1979), <해와 같이 달과 같이>(1979초판, 1990개정판)
- 장편 동화
<숲 속 나라>(1995), <잔디숲 속의 이쁜이>(1998)
- 중·단편 동화
<나의 그림책>(1976), <루루의 봄>(1976), <미동이의 모험>(1975), <희수와 일락>(1976), 불새의 춤>(1970), <희야의 소라고동>(1957), <쑥>(1975), <바람과 소년>(1976), <불꽃의 깃발>(1969), <꼬마옥이>(1953~55), <갓난 송아지>(1973), <여울목>(1979), <엉겅퀴>(1969), <밤안개>, <도깨비와 권총왕>
박목월(朴木月, 1916-1978, 본성명 박영종)
경북 경주생(아들 박동규-서울대국문학과)
1955년 제3회 자유문학상 수상
[문장]에 <길처럼>, <그것은 연륜이다.>가 1939년 9월 추천, <산그늘>(12월) 등과 1940년 < 가을 어스럼>, <연륜> (1940. 9)으로 등단.
[청록집]을 통해 한국적인 자연과 전통 정서 노래. 민요조, 향토적 소재.
시세계 : 박목월의 "자연"에 대하여
1) 정한모 평 : "향토적이면서 향토적인 현실의 풍경이 아니라 공간을 초월하여 살아있는 상징적인 실재(實在)로서의 자연이다."
2) 김윤식 평 : "환상적인 자연이며, 현실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있는 자족적(自足的) 자연이다." -김윤식.김현 공저, [한국문학사] p.280
시집 : [청록집]
- 첫시집 [산도화] : 외재적 가락과 압축적인 시로서 함축미 추구
- 제2시집 [난(蘭) 기타] : 육친의 죽음과 비극적인 민족적 체험
- 제3시집 [청운(晴雲)) : 가정 생활
- 제4시집 [경상도의 가랑닢] : 고향 경상도의 언어 탐구
(cf. 김영랑, 서정주 등의 전라도방언 탐구)
자작시해설집 [보랏빛 소묘](1959)
유적지
1) 생가(경주시 건천읍 모량2리)
2) 목월시비(한양대학교 자연과학관 건물 뒤) : 시 "산도화" 새김
1. 참고 시 <가정>, <청노루>, <하관>, <물새알 산새알>, <산도화>(자작시 해설 포함), <나그네>, <난(蘭)>, <이별가>, <달>, <불국사> , <길처럼>, <그것은 연륜이다.>, <연륜>, <윤사월>
박목월 유치환 시인의 사랑 이야기
박목월(1916~1978)은 30대 후반 스스로 ‘엄청난 운명’이라고 말한 연인을 만났다. 대구로 피란갔던 1953년 봄, 목월은 교회에서 서울의 명문 여대생 H를 만나고, 환도 이후 더욱 가까워진다. 처음에 목월은 H의 태도가 존경을 넘어서 사랑으로 싹트는 기미가 보이자 후배 시인에게 H를 설득할 것을 부탁하지만 결국 사랑에 빠져 그해 가을 그녀와 함께 잠적한다. 두 사람이 제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사랑의 도피생활이 넉달째 접어들었을 때 부인 유익순 여사는 제주로 찾아가 새로 지은 목월과 H의 겨울한복과 생활비 봉투를 내민다. 부인의 충심 때문에 H와 헤어져 서울로 돌아온 목월은 ‘기러기 울어예는/하늘 구만리/바람이 서늘 불어/가을은 깊었네/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라는 ‘이별의 노래’를 짓는다.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너에게 편지를 쓴다’(시 ‘행복’)고 읊었던 유치환(1908~1967)은 해방 이듬해 고향인 통영여중에서 국어교사로 부임한 직후 신인 여류 시인이며 갓 서른에 홀몸이었던 정운 이영도를 만난다. 청마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요조숙녀의 자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사랑을 고백한다. 그로부터 스무해동안 청마는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그녀에게 편지를 보낸다. 청마가 59세 때 교통사고로 타계한 뒤 이영도 시인은 자신이 간직했던 연서들을 당시 신출내기 출판사 편집장이던 이근배 시인(현 한국시인협회장)에게 넘기고 이들의 사연은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
출처 : 경향신문 2003-11-10
흰 달빛 / 자하문(紫霞門) // 달 안개 / 물 소리 :
시간은 밤, 흰 달빛이 내리 비치고 옅은 안개가 끼어 있다. 그 가운데 자리잡은 자하문엔 물 소리가 들려 온다. 정적감이 느껴진다. 일체의 서술은 피하고 명사로만 제시하여 하나의 장면을 그려 내고 있다.
달 안개에서 시각적 이미지, 물 소리에서 청각적 이미지가 표현되고 이것이 복합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대웅전(大雄殿) / 큰 보살 // 바람 소리 / 솔 소리 : 대웅전의 큰 보살이 잠잠히 내려다보고 있는 가운데 바람 소리와 물 소리가 적적한 풍경 속에 들린다. 불교 사찰 대웅전 주변의 적막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시상의 흐름이 소리로 통합되고 있다.
범영루(泛影樓) / 뜬 그림자 // 흐는히 / 젖는데 : 범영루의 그림자가 달빛에 흔흔히 젖어 있다. 범영루와 뜬 그림자는 의미상 중복이다. 범영루의 뜻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시 전체를 통하여 서술어가 ‘흐는히 젖는데’ 하나밖에 없다. 자연의 정적한 분위기에 폭 젖은 불국사의 정경을 표현한 시구다.
흰 달빛 / 자하문 // 바람 소리 / 물 소리 : 자하문엔 여전히 흰 달빛이 내리 비추는데 무심한 바람 소리, 물 소리만이 불국사의 정적한 모습을 더 느끼게 한다. 수미상관의 형식이다. 시 구절이 반복되면서 리듬감, 안정감을 형성하고 있고, 슬라이드 사진처럼 생략된 표현이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박두진·박목월·조지훈 이 청록파로 불린 이유가 무엇인가요?
자연을 바탕으로 인간의 염원과 가치를 성취하고자...
청록파 靑鹿派는 1939년 《문장(文章)》 추천으로 시단(詩壇)에 등단한 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을 가리키는 말로 각기 시작법(詩作法)은 다르지만 자연을 바탕으로 인간의 염원과 가치를 성취하기 위한 공통된 주제로 시를 써온 세 사람은 1946년 6월에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함께 펴내면서 청록파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서정주(徐廷柱)는 이들의 공통적 주제 때문에 자연파라고 불렀다.
박목월은 향토적 서정으로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의 의식을 민요풍으로 노래하였고, 조지훈은 고전미에 문화적 동질성을 담아 일제에 저항하는 시를 썼고, 박두진은 자연에 대한 친화와 사랑을 그리스도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읊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말에 등단하여 한글로 작품을 발표하였고, 자연을 소재로 자연 속에 인간의 심성을 담은 시를 썼고, 광복 후에도 시의 순수성을 잃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박목월 시인론
박목월은 근대화 이전의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던 자본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기 전이던 세계를 그리워하였다. 그의 시는 많은 이들이 초기시·중기시·후기시로 나누고 그 시기 나름대로의 Utopia로 삼고 있었던 박목월의 "무엇"을 고향, 어머니 그리고 하나님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그의 시는 당대의 현실을 비판하고 계몽하려는 의식보다는 서정적인 성향의 표출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목월의 초기시집『청록집』을 통해 그의 초기시에 구원의 시학이 반영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청록집』의 시세계는 타락한 현실세계에서 청노루가 살고 있는 유토피아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제치하의 암울한 공간 속에서의 시골농촌의 마을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그는 그가 바라던 유토피아적인 세계를 보았다.
가정(家庭)- 박목월(<경상도의 가랑잎>, 1968)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현관에 놓인 아홉 켤레의 신발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신발에서 느끼는 가족애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고달픈 삶 속에서의 가장의 책임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고달픈 삶 속에서도 당당한 아버지의 모습
* 들깐 : 경상도 방언으로 부엌 가까이 설치되어 주로 주방 용품을 보관하는 곳간
▶ 감상의 초점
한 가정의 가장(家長)으로서 느끼는 삶의 무게를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이겨 내고 있는 우리의 아버지 모습을 신발이란 제재로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중년 이후 생활의 모습들에 시선을 많이 둔 박목월 시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성격 : 상징적, 독백적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주제 :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삶의 고달픔과 가족에 대한 애정
이 시는 힘겨운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생활인으로 돌아온 시인이 아버지로서의 고통을 토로하는 한편, 자식들에 대한 막중한 책임 의식을 스스로 확인하는 작품으로, 현실적 세계를 시적 대상으로 삼은 생활시로서의 진면목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에서는 화자와 청자의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화자는 실제의 시인과 거의 일치하며, 청자는 "강아지"라고 불린 그의 자녀들이다. 얼음판 같은 세상의 모습을 말하면서 다소 비감스러워하던 화자의 목소리는 자녀들에게 말을 건넬 때, 따뜻하게 바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1연은 화자의 귀가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피곤한 육신을 이끌고 집에 돌아온 화자는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문수가 각기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바라본다. 가난하면서도 행복한 화자의 가정이 아홉 켤레의 신발 속에 함축되어 있다. 직업이 다르고 신분이 달라도, 또는 부유하건 가난하건, 그래서 그것이 현관이건 들깐이건 사람 사는 모습은 결국 똑같다. 그러므로 "지상"이라는 시어는 힘겨운 일상의 삶이라 할지라도 일단 가정으로 돌아오게 되면, 가정은 그 가족만의 하나의 행복한 지상 세계라는 뜻이라 할 것이다.
2연에서 화자는 식구들의 신발 옆에 자신의 신을 벗어 놓는다. "눈과 얼음의 길"은 바로 화자가 살아가는 고달픈 인생길을 상징하는 것으로, 4연에서는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아홉 켤레의 신발 중에서 특히 막내둥이의 것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막내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강조하는 것이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스스로 확인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3연의 1∼2행은 비록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온 화자이지만, 자녀 앞에서는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3∼5행은 고달프게 살아가는 화자의 가정을 의미한다. "연민한 삶의 길이여"라는 6행은 화자가 삶에 대해 느끼는 힘겨움을 직설적으로 토로한 것이며, 7행에서뿐 아니라 작품 전편에 등장하는 "내 신발은 십구 문 반"이라는 구절은 막내의 "육 문 삼"과 대비되어 화자가 자신의 신발을 거듭 의식하면서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4연은 화자가 방에 들어가며 자식들에게 들려 주는 말이다.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 내가 왔다 / 아버지가 왔다"는 표현은 현실 생활에 시달리는 화자의 고달픈 삶을 극명히 보여 주는 것이며, 비록 고달프게 살아가는 가정이지만,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 존재한다"는 사실을 "십구 문 반"이라는 신발 크기로 강조하는 것은 그 큰 신발 속에 아홉 명의 자식들의 미래를 담고 있다는,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무를 강조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이 시는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자식들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아버지들의 모습을 화자의 가정을 통해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산은 날 에워싸고-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2004.5.17
필봉산 아래 살면서도 씨도 뿌릴 줄 모르고
밭도 갈 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
그저 무엇이 필요하랴
이렇게 한 때 살아가면 될 것을....
알면서도 알면서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일까?
산 아래 살고 있는 지금도
산이 내게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는 지금도
난 그저 어리석어
속타며 사는 한 사람일 뿐인가 보다.
이별가 - 박목월
주제 : 죽음을 넘어서는 인연과 그리움
특징 : 대화체 형식, 상징적 시어 사용, 환상적 경향
시어 : 저 편 강 기슭 - 시적 화자와 대립되는 세계, 저승
동아밧줄 - 이승에서의 연결과 결합의 상징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박목월 朴木月 [1916.1.6~1978.3.24]
본명 영종(泳鍾). 경북 경주(慶州) 출생. 1935년 대구 계성(啓星)중학을 졸업하고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장하였다. 1953년 홍익(弘益)대학 조교수, 1961년 한양(漢陽)대학 부교수, 1963년 교수가 되었다. 1965년 대한민국 예술원(藝術院) 회원에 선임되었고, 1968년 한국시인협희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973년 시전문지 《심상(心像)》의 발행인이 되었다.
1976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장에 취임하였다. 자유문학상 ·5월문예상 ·서울시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받았다. 저서에 《문학의 기술(技術)》 《실용문장대백과(實用文章大百科)》 등이 있고, 시집에 《청록집(靑鹿集)》(3인시) 《경상도가랑잎》 《사력질(砂礫質)》 《무순(無順)》 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 《구름의 서정시》 《밤에 쓴 인생론(人生論)》 등이 있다 < 야후 백과 사전 >
? 성격 : 인간적, 전통적
? 어조 :소박하고 친근한 어조
? 표현 : ①방언-소박한 정감
②반복과 점층-그리움과 안타까움 심화
? 특징 : 되풀이되는 질문("머락카노") 속에 이별의 정한을 드러냄
? 제재 : 인연과 이별
? 주제 : 생사를 초월한 이별의 정한
? 출전 : <경상도의 가랑잎>(1968)
나그네
박목월
술 익은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지훈(芝薰)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작자 소개
박목월 朴木月 [1916.1.6~1978.3.24]
본명 영종(泳鍾). 경북 경주(慶州) 출생. 1935년 대구 계성(啓星)중학을 졸업하고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장하였다. 1953년 홍익(弘益)대학 조교수, 1961년 한양(漢陽)대학 부교수, 1963년 교수가 되었다. 1965년 대한민국 예술원(藝術院) 회원에 선임되었고, 1968년 한국시인협희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973년 시전문지 《심상(心像)》의 발행인이 되었다.
1976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장에 취임하였다. 자유문학상 ·5월문예상 ·서울시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받았다. 저서에 《문학의 기술(技術)》 《실용문장대백과(實用文章大百科)》 등이 있고, 시집에 《청록집(靑鹿集)》(3인시) 《경상도가랑잎》 《사력질(砂礫質)》 《무순(無順)》 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 《구름의 서정시》 《밤에 쓴 인생론(人生論)》 등이 있다 < 야후 백과 사전 >
요점 정리
성격 : 관조적,서정적,낭만적,풍류적,향토적
심상 : 시각적,후각적 심상
운율 : 3음보(민요조)
어조 : 달관의 어조
특징 : 체언 종결의 간결한 형식미
구성 : 변형된 수미 쌍관의 구성
1.향토적 배경(1연)
2.체념과 달관의 경지(2연)
3.외로운 여정(旅程)(3연)
4.향토적,풍류적 정서(4연)
5.체념과 달관의 경지(5연)
제재 : 나그네
주제 : 체념과 달관의 경지
어휘와 구절
강(江)나루 건너서 / 밀밭 길을 : 향토색 짙은 배경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 달은 세상을 버린 자의 애닯도록 맑은 정신(자작시 해설"보랏빛 소묘") 悠悠自適하고 行雲流水한 서정 - 풍요롭고 우아함. (나그네-억압된 조국 하늘 아래서의 우리 민족의 총체적인 얼. 바람같이 떠도는 절망과 체념의 모습(자작시 해설 "보랏빛 소묘")
길은 외줄기 / 남도 삼백 리 : 나그네의 고독함 . 향토적 색채. 삼백리는 추상적 정감의 거리 (작자의 서러운 정서와 감정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거리)
술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 놀 : 인간과 자연의 조화(후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의 결합-승화된 미감) 이미지 전개(밀밭 길 →술 익는 마을→타는 저녁 놀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 명사형의 종결어미(2,3,4연)-이미지의 유동성을 막으면서 감동의 집중감을 줌
이해와 감상
< 이 시는 조지훈이 `목월(木月)에게" 라는 부제로 쓴 시 「완화삼(玩花杉)」에 대한 화답시이다. 화답시답게 「완화삼」 중 한 구절인 `술 익는 강 마을의 저녁노을이여"를 부제로 달았다. 두 시의 주제는 모두 물길을 따라 가듯이, 구름에 달 가듯이 달빛 아래 길을 가는 나그네이다.
나그네는 어느 곳이든 오래 머물러서 살거나 정착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가는 길은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끝이 없다. 나그네는 끝도 없고 정해진 길도 없이 밤 하늘에 달이 구름 속을 지나가듯 자연스럽게 지나간다. `강나루"도 지나고 `밀밭길"도 그저 자연스레 지나간다. `구름에 달 가듯이"라는 말은 구름이 달을 지나가는 것인지 달이 구름을 지나가는 것인지 모르게 자연스레 지나는 나그네의 걸음과 운명을 표현한 것이다. 나그네의 길은 다른 길로 가거나 혹은 가지 않거나 하는 선택이 없는 외길이며 그 한 줄기 외로운 길은 우리의 남도 즉, 충청, 경상, 전라로 향하고 있다.
끝없이 길을 가야 하는 나그네의 고독한 운명이 간결한 두 줄 형식으로 잘 드러나 있는 이 시에는 `강나루", `밀밭길", `남도" 등의 토속적인 시어가 `술 익는 마을"이라는 정감 어린 풍경과 잘 어우러진다. 집에서 담가 익히는 술은 나그네의 음식이 아니다. 몇 달 몇 년을 내다보고 담그고 익히는 술은 농경 정착인들의 음식이다. 아마도 나그네의 고향 집에서도 술을 담곤 했을 것이다. 때문에 술 익는 냄새는 나그네의 향수와 회한을 함께 불러일으키고, 술 냄새와 어우러진 `타는 저녁 놀"은 후각과 시각으로 나그네의 향수와 고독을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이 시를 굳이 일제치하기의 우리민족의 유랑의식과 연결시키지 않더라도 술이 익는 마을의 풍요와 평화의 정취와 근거지 없이 유랑해야 하는 나그네의 고독과 쓸쓸함은 대비되어 더욱 두드러진다. [해설: 이상숙]>
< 조지훈의 "완화삼(玩花衫)"에 화답한 시이다."완화삼"의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가 이 시에 와서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로 변화되었다.박목월은 "청록파"혹은 "자연파"로 불리우는 시인으로서 그 유파의 이름에 걸맞게 "나그네"에도 시인 특유의 자연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 있다.우리는 1940년대의 상황에서 자연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일군의 시인들이 등장하게 된 연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식민지 현실 속에서 주권을 상실한 민중들의 비참한 삶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그려 내는 데는 상당한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주권을 잃고 "나그네"로 전락한 백성으로서 국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나라 사랑의 한 방편이었을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자연파"시인들의 공통적인 관심이 이해는 된다고 하겠다.그러나 이들의 "자연"은 생산 현장으로서의 우리 농촌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시인의 관념 속에서 미화된 이상적인 자연이다.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이 시는 간결한 언어로써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그려 내고 있다.두 번이나 반복된 "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에서 단적으로 들어 나듯이 인간은 자연에 비유되어 행운 유수(行雲流水)하는 유유자적함을 보여 준다.주인의 자리를 빼앗기고 나그네 신세가 되어 떠돌 수밖에 없는 이의 슬픔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강나루를 건너 밀밭 사이로 난 외줄기 길은 삼백 리나 걸어가서 만난 것은"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 놀"이다.이 낭만적인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답기는 하다.
박목월 시인의 언어 경제가 이룩한 최고의 경지다. 잘 익은 술의 빛깔을 연상케 하는 저녁 놀.그 밖에 색체감을 느끼게 하는 어휘들,명사로 끝냄으로써 연과 연 사이에 여백을 주는 솜씨 등이 돋보인다. >
박목월의 시세계
목월의 시의 특색은 정지용이 그를 잡지 "문장"에 추천하면서 한 다음의 말에 잘 드러난다.
"북에는 소월이 있었거니, 남에 박목월이가 날 만하다. 소월의 툭툭 불거지는 삭주 구성조(朔州龜城調)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 목월이 못지 않어 아기자기 섬세한 맛이 민요풍에서 시에 발하기까지 목월의 고심이 더 크다...... 요적(謠的) 수사를 충분히 정리하고 나면 목월의 시가 바로 한국시다."
목월의 시세계는 민요적 가락에 향토색 짙은 서정을 노래한 "청록집" "산도화"의 시기, 생활 속의 소시민으로 소박하고 담담하게 생활과 밀착된 현실적인 시를 쓴 "난,기타" "청담"의 시기, 토속적인 시어를 구사하면서 영혼과 내면의 세계를 추구한 "경상도 가랑잎" "무순"의 시기로 나누어진다.
제 1기 : 이 무렵의 시는 정형의 율조에서 오는 음악적인 효과와 토속적인 소재를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시각과 청각이 잘 조화된 선명한 이미지에 여운이 담긴 시풍을 보인다.
제 2기 : 초기시에서 볼 수 있었던 운율의 정형성을 탈피하여 서술적 이미지를 추구하였다. 현실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생활 속의 자아를 탐구한 시기로 주제는 거의 다 가정적인 문제로 한정되어 있다.
제 3기 : 문명 비판적인 경향을 보이면서 토속적인 방언의 묘미를 살려 신에 대한 경건한 자세를 표백한 시기로 지적 요소가 부각되어 있다.
청록파 시인의 시세계
1939년 이후 문장을 통하여 정지용의 추천으로 시단에 나온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은 해방 후 함께 합동 시집 "청록집"을 냄으로써 "청록파" 또는 "3가 시인" "자연파" 등으로 불리게 되는데 이들의 주요 관심은 자연이었다.
박목월은 흔히 향토적인 시인이라고 불린다. 그의 시의 소재는 흔히 자연이되 그는 그 자연 속에서 향토색이 짙은 용어 또는 사물을 찾아 내어 그것을 서로 연결함으로써 그 배면에서의 이미지의 연결을 꾀한다. 그의 시에서는 동사가 거의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시는 더욱 정물화라는 느낌을 준다. 사람의 숨결이 스며 있지 않음도 볼 수 있다.
조지훈은 문화적 보수주의에 바탕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일컬어질 수 있다. 그가 시에서 그리고자 하는 것은 잃어 버린 옛 질서요 옛 풍물이다. 그 옛 질서 옛 풍물에 대한 그리움이 때로 그를 우국적으로 되게도 하고 지사적인 풍모를 지니게도 만든다. 또는 그의 반근대화주의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하여 반항하는 꼴을 취하게도 만든다.
박두진은 이 둘에 비하여 더욱 관념적이다. 그의 시는 언젠가 올 메시아에 대한 찬미로 차 있다고 볼 수 있다. 박두진의 자연은 메시아의 도래에 의해 완성될 수 있을 뿐이며 이점에 있어 그의 자연은 조지훈, 박목월의 자연을 노래한 지난 날의 자연인 것과 전혀 다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이상주의자요, 뒤에 그가 사회적 불의에 항거해서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시를 쓰게된 사실도 이 문맥에서 이해된다.
보충 자료 - 청록파의 작품 경향과 문학사적 의의
1) 시풍
조지훈 : 지사의 기풍을 지니고 고전적인 소재를 취재하여 회고적인 시정에 젖어들었다. 동양적인 선관(禪觀)를 보여 줌
박두진 : 자연에 대한 신선한 생명력과 기독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과 친화한 시를 보여줌. 기독교적인 자연관을 지님
박목월 : 민요적 가락에 짙은 향토색을 가미하여 자연에 대한 관조를 보여줌. 전통적인 정관(情觀)를 보여 줌.
3) 시형과 운율
조지훈 : 선운(禪韻)이 감도는 내재율
박두진 : 가쁜 호흡, 약동하는 생명의 호흡을 가진 내재율
박목월 : 전통적인 민요조의 율조가 혼연 일체를 이룬 연연한 비애의 가락
4) 문학사적 의의
자연의 실체 표현 : 한국의 신문학사를 통해서 한국의 자연이 실재 그 자체로서 부각된 것은 청록파의 공적이다. 이들에 의해 자연이 자연 그 자체로서 독립된 의미와 정서를 가지고 표현되었다.
시사적 맥락의 이음 : 순수한 우리말과 글의 특질을 잘 살려서 이를 통해 운율에 새로운 차원을 가져왔다는 점과 공백으로 남을 뼌했던 광복 전후의 시사적 맥락을 잇게 해준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청록파 시인들의 자연관
박두진,조지훈,박목월이 공동으로 간행한 <청록집>(1946)의 시들은 대부분 일제 말기에 씌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들은 어떤 질적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시집의 발간으로 이 세 시인을 "청록파"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들이 <청록집>에서 보여 준 공통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은"자연"을 소재로 한 시들을 통해 가혹한 시대를 견디려는 의지를 엿보게 해 준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전통 시가에서 흔히 조화로운 이상 세계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자연에 대한 지향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도 이들이 지닌 공통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적 지향이나 표현의 기교면에서는 서로 다른 양상을 보여 준다. 즉, 조지훈의 경우는 회고적,민속적인 제재를 통해 민족적 정서와 전통에 대한 향수 및 불교적 선미(禪味)를 그려 낸 데 비해, 박목월은 향토성이 짙은 토속적인 언어, 정형적인 율격, 간결한 이미지와 섬세한 서정성을 특징으로 하며, 박두진은 기독교적 생명 사상에 입각한 자연과의 친화를 노래하였던 것이다
이주홍 [李周洪, 1906 ~ 1987]
소설가·아동문학가. 호는 향파(向破). 경상남도 합천(陜川) 출생. 1925년 동화 《뱀 새끼의 무도(舞蹈)》로 작가의 길로 들어섰으나, 문단의 인정을 받은 것은 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가난과 사랑>이 입선되면서부터이다. 그는 역사적 체험에 대한 통찰, 현실문제에 대한 직시, 인생문제에 대한 관심을 격앙되지 않은 치밀한 구성, 논리적 정확성, 객관적 묘사방법을 통해 작품화하였다. 81년 이주홍아동문학상, 87년 이주홍문학연구상이 제정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단편 《완구상(1937)》 《김노인(1948)》 《불시착(1968)》, 중편 《가족(1946)》, 동화 《피리 부는 소년(1954)》 《아름다운 고향(1954)》 《해같이만 달같이만》 《귓속말》 등이 있다.
이주홍 선생님의 동화책을 펴내면서
얼마 전 일입니다. 어린이들하고 동화 이야기를 할 때였습니다.
어린이들이 내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 달라고 하더군요. 무슨 이야기를 해 줄까 하다가 이주홍 선생님이 쓴 <피리 부는 소년>이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피리 부는 소년>에는 피리를 잘 부는 영구라는 아이가 나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겠지만 우리 나라는 6·25 전쟁을 겪었지요.
전쟁이 일어나자 서울에 살던 영구는 어머니하고 피난을 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전쟁 통에 서울에서 소식이 끊어져 어머니하고 피난을 가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글쎄 남쪽으로 피난 오던 길에 영구는 어머니마저 잃어버렸답니다. 이제 영구는 불쌍하게도 고아가 된 것이지요. 6·25전쟁 때 이렇게 부모를 잃어버리고 고아가 된 아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답니다.
부모를 잃어버린 영구는 하는 수 없이 부산까지 혼자 피난을 가게 됩니다. 다행히 영구는 서울에서 같이 피난 오던 최 준 아저씨의 도움을 받지요. 영구는 최 준 아저씨와 함께 경상도 어느 마을에서 마음씨 좋은 장 노인 집에 머물게 됩니다. 그 뒤 최 준 아저씨가 병원을 차리려고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영구 혼자 남게 됩니다.
영구는 장 노인네에서 소 먹이는 일을 하지요. 들에 나가면 영구는 식구들을 생각하며 피리를 불곤 했답니다. 물론 아이들과 참외서리며 짓궂은 장난을 치느라 잠시나마 전쟁을 잊어버리기도 하지요....... 장 노인과 할머니는 그런 영구를 마치 친손자처럼 따뜻하게 대해 줍니다. 그러나 그만 도둑질을 했다는 오해를 뒤집어쓰게 되어 무작정 장 노인 집을 나와 버리지요.
최 준 아저씨를 찾아 부산으로 간 영구는 길을 헤매다가 소매치기단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갖은 고생을 하던 영구는 우연히 옛 친구 승호를 만나 그 집에서 살게 되지요. 방송국에서 일하는 승호 아버지는 영구의 피리 부는 솜씨를 칭찬하며 방송에 출현시킵니다.
영구는 승호의 도움으로 헤어졌던 어머니를 만나게 되고, 마침내 방송을 듣고 소식을 알려 온 아버지의 편지를 받게 된답니다. 그 뒤 전쟁이 끝나면서 영구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가 있는 서울로 돌아가지요.
내가 이 이야기를 들려 주니까 어린이들은 너무 재미있다면서 꼭 한번 직접 읽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동화책은 하도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 책방에서 쉽게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이주홍 선생님의 《피리 부는 소년》을 다시 내게 된 것이지요.
선생님이 살아 계시면 직접 여러분들에게 책을 내면서 하실 말씀도 있을 텐데, 선생님은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답니다. 그렇더라도 선생님이 예전에 《피리 부는 소년》을 펴내면서 하신 말씀을 여기 소개할 테니 한번 읽어보세요.
살기 좋은 곳을 낙원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낙원이 어디엔가 있으려니,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낙원이 못 되란 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어린이들은 낙원 속의 낙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학교의 선생님은 우리를 잘 가르쳐 주십니다.
때가 되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밤이 되면 재미있는 텔레비전 프로를 보다가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서 편안하게 잡을 잡니다. 이 위에 또 무엇을 욕심부리겠습니까? 이 세상 말고 또 어디에서 낙원을 바랄 것입니까?
그러나 과연 이 세상이 낙원만인 것일까요?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만족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은 즐겁다고 생각하는 만큼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입니다. 차라리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수가 더 많을지도 모를 만큼 고르지 못한 게 이 세상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 이 고르지 못한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이 되는 것일까요? 이 책에 실린 주인공들은 조금도 그런 부정에 물들지 않고 끝까지 깨끗한 마음을 지켜 나갑니다.
여러분들은 무릇 양심과 인내와 용기가 얼마나 필요하다는 것을 이 작품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이주홍 선생님의 말씀은 여기서 끝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여러분이 이 책을 일고 나서 더욱 인내와 용기를 가진 어린이가 되길 바랍니다.
1994년 8월 <산하어린이>기획위원
"어머니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 내었는지/모르겠어요/
어···머···니···하고/불러보면/
금시로 따스해 오는/내 마음/
아버지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내었는지/모르겠어요/
아···버···지···하고 /불러보면/
오오- 하고 들려오는 듯/
목소리/참말 이 세상에선/
하나밖에 없는/이름들/
바위도 오래 되면/깎여지는데/
해같이 달같이만 오랠/
엄마 아빠의"
(<해같이 달 같이만>)
1. 삶과 글
향파 이주홍 선생님 문학비
2. 작가론·작품론
·조월례, 어린이 문학과 함께 살다간 사람,《재미있는 동화 읽기 어떻게 지도할까》돌베 개,1991
·이재복, 웃음 속에 배어 있는 고통스런 현실, (우리 동화 바로읽기》(한길사,1995)
·목요동화비평, <아름다운 고향>(동화읽는어른 1996.6)
·김소원, <청어 뼉다귀>(동화읽는어른 1997.6)
·윤영애, <톡톡 할아버지>(동화읽는어른 1999.1)
·이송희, 따뜻한 마음과 날카로운 눈-이주홍의 작품세계(겨레아동문학연구회,1997)
3. 책·자료 목록
▷동화집
·살찐이의 일기 / 교학사 / 1974
·못나도 울엄마 / 창작과비평사 / 1977
·철우 요술통 / 꿈동산 / 1983
·사랑하는 악마 / 창작과비평사 / 1983
·아기곰 형제 / 종로서적 / 1987
·북치는 곰 / 견지사 1987
·청어 뼉다귀 / 우리교육 / 1996
·톡톡 할아버지 / 우리교육 / 1996
·돼지 콧구멍 / 겨레아동문학선집·2 / 보리 / 1999
·북치는 곰과 이주홍의 동화나라 / 웅진닷컴 / 2000
▷소년소설
·아름다운 고향 / 창작과비평사 / 1981
·소년 홍길동 / 인간사 / 1983
·피리부는 소년 / 산하 / 1994
▷그림책
·메아리 / 길벗 어린이 / 김동성 그림 / 2001
4. 그리고 또
·<아름다운 고향>을 읽고, 동화읽는어른 2000.12
-임행녀, 역사 앨범의 한 장면
-이은경, 나무 이야기
-강민성, 아버지 고향에 가 보고 싶다
-오명숙, 언젠가 돌아가야 할 그곳
·박찬곤,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는 큰 힘이 된다고 믿었던 향파 이주홍 (www.saramdeul.com/write/pchg/etc/leejh.htm)
일제 강점기 이주홍의 시 연구
박 경 수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Ⅰ. 서 론
최근 들어 향파(向破) 이주홍(李周洪: 1906∼1987)의 문학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그의 문학적 위치와 성격을 올바로 파악하는 데 큰 진전을 이룩했다. 특히 아동문학가로서, 그리고 소설가로서 이주홍이 갖는 면모는 새로운 자료의 발굴, 소개 등을 통해 한층 우뚝 선 자리에서 조명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이주홍의 문학에 관한 연구가 이렇게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된 까닭은 2002년 5월에 '향파이주홍문학관'이 개관된 것을 계기로 그의 생전 장서가 연구자와 일반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신소년』, 『별나라』 등 많은 문학 관련 잡지, 그리고 원고 뭉치와 인쇄 자료로 남겨진 숱한 작품들은 특히 이주홍 문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디딤돌 구실을 했다.
그러나 이주홍의 문학, 좀더 넓게는 예술 전반에 관한 연구는 이제 비로소 제 방향을 잡고 출발을 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의 업적이 시, 동시, 동화, 아동극, 소설, 희곡, 문학론, 수필, 만화, 그림, 서화, 작곡 등 예술 전반에 걸쳐 있으면서, 이들 각 분야의 성과가 자료를 뒤지면 뒤질수록 계속 새롭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문학과 예술 세계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그의 업적을 꼼꼼하게 찾는 서지 작업을 서둘러 진행해야 하며, 동시에 이를 토대로 한 장르별 논의가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야 한다.
이주홍은 사실 동화나 소설 작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주홍의 문학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동화나 소설 작품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가 시집 『풍경』(보리밭, 1984)과 동시집 『현이네 집』(보리밭, 1983)을 남기는 등 시와 동시 분야에도 상당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그에게 시와 동시는 여기(餘技) 정도일 것이라 생각한 탓도 있으면서 동화와 소설의 풍성한 업적에 가린 탓에 오랫동안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더구나 일제 강점기에 발표한 시와 동시는 21세기를 맞고서야 비로소 조사되어 논의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이주홍 자신에게 문제될 수 있는 저간의 사정이 작용되었을 개연성이 많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에 발표한 시와 동시의 대부분이 당시 계급의식에 입각한 사회주의 사상에 깊이 경도되어 있었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인데, 그러한 문학적 경사를 남북분단의 상황과 자신의 문학관 변모 등을 고려할 때 굳이 소상하게 밝히고 싶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시인이 작고한 한 지 2003년 현재 15년이 지났다. 이제 그가 남긴 문학은 어떠한 것이었든 더 이상 가리거나 쉬쉬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문학활동을 온전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그리고 정당하게 해석, 평가하기 위해서 그가 남긴 문학성과들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찾아서 공개해야 한다. 더구나 남북한의 통일을 지향하는 문학 연구와 문학사 서술의 과제가 우리에게 부여되어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와 해방기에 사회주의에 경도되면서 이루어졌던 이주홍의 문학은 어떤 선입관에 따라 배제하거나 폄하하려는 태도는 온당하지 못하며, 해당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공개하는 동시에 학문적 논의의 장에서 객관적으로 검토되고 엄정한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
이 글은 바로 이주홍의 문학업적 중에서 일제 강점기에 발표한 시를 가능한 대로 폭넓게 조사하여, 좀더 충실한 작품 서지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당대 그의 시가 어떤 작품세계의 특징을 보여주는가를 고찰하기 위한 목적에서 쓰여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주홍의 시와 동시에 관한 기존의 연구를 통해 찾아진 일제 강점기 이주홍의 시작품 목록을 거듭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면서, 혹시 살피지 못했거나 실수로 빠뜨린 작품들을 찾는 작업부터 진행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발표한 이주홍의 시를 조사하고 연구한 이는 지금까지 김지은뿐이다. 그만큼 그의 시에 관한 연구가 부족했음을 알 수 있다. 김지은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기에 쓴 이주홍의 시를 폭넓게 찾는 일을 해서 시 17편(11편은 해방기 이후 작품임), 동시 9편을 목록에 추가하는 성과를 거두는 한편, 그의 시의 전반적 전개과정을 개관하면서 그 두드러진 특징을 밝히고자 했다. 그런데 충분한 서지 확인을 하지 못한 채 작품을 목록에 올리다 보니, 미처 찾지 못한 작품들도 많았고 다시 서지 사항을 확인해야 하는 작품들도 있었다.
필자는 일제 강점기 이주홍의 시작품을 조사한 결과 3편의 시작품을 새롭게 추가하고, 기존에 불명확했던 4편의 작품 서지를 분명하게 확인함으로써 현재까지 모두 10편의 작품 목록을 만들 수 있었다. 앞으로 자료 조사를 확대하면 목록에 드는 작품이 좀더 늘어날 것이지만, 일단 지금까지 이들 작품들의 발굴과 관련된 문학 서지를 구체적으로 밝힌 다음, 이들 작품들을 대상으로 시 세계의 특징을 파악하는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고자 한다.
Ⅱ. 이주홍 시의 서지적 고찰
이주홍은 잡지 『신소년』의 편집 일을 보기 이전에 신문지상에 작품을 투고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일개 두메산골인 「배암골」의 草野에 묻혀 手工業的인 私製 잡지 『新少年』을 만들고 있었던 稱 無名 編輯者가 일약 대도시 서울에서 발행하는 大企業의 진짜 『新少年』의 편집자로 등단을 했으니 말이다.
이에 앞서 詩作品도 朝鮮日報 같은 대신문에 투고했더니 面마다 친절히 게재해 주고는 했다.
위에서 이주홍은 『신소년』의 편집 일을 보기 이전에 시작품을 "조선일보 같은 대신문에 투고"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소년』의 편집 일을 보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1929년 말 이전에 조선일보의 문예란을 아무리 살펴도 이주홍의 시작품을 작품을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당시를 회고하는 글이다 보니, 시작품을 발표한 신문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이주홍의 시작품은 『중외일보』와 『동아일보』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홍의 시 또는 동시는 『중외일보』나 『동아일보』 지상에 드문드문 발표되었다. 현재까지 『중외일보』에서 시 「살구 」(1928. 4. 8)이 찾아졌고, 『동아일보』에서 동시 「 간부채」(1929. 7. 7), 시 「舊曆 설날」(1930. 2. 4), 동시 「꿩」(1936. 3. 1)이 조사되었다. 여기에 당시 신문을 좀더 자세히 보면, 『중외일보』에서 시 「고향의 동무들이여」(1928. 3. 30), 『동아일보』에서 동시 「녀름밤」(1929. 7. 8)을 더 확보할 수 있다.
이로써 『중외일보』와 『동아일보』에서 각각 이주홍의 시와 동시를 1편씩을 더 찾은 셈인데, 특히 시 「고향의 동무들이여」는 현재까지 찾아진 그의 글 중에서 가장 먼저 활자화된 작품이라는 의의를 가진다. 지금까지 이주홍의 첫 활자화된 작품이면서 문단 데뷔작은 『신소년』 1928년 5월호에 발표된 동화 「배암색기의 무도(舞蹈)」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이상의 시와 동시 작품들은 문단 데뷔작과 같은 의의를 가질 수는 없으나, 이주홍의 시 습작 과정뿐만 아니라 문단에 등장하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사항만은 아니다. 물론 1930년 이전에 신문지상에 발표된 이주홍의 시나 동시 작품들은 독자 투고에 의해 게재된 것으로, 기성 문인의 대우를 받으며 발표된 작품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들 작품의 발굴을 통해 이주홍이 문학활동의 초기에 시 창작에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1930년대 전반기에 발행된 '사회과학계몽' 잡지 『우리들』에서 이주홍의 시를 2편 찾을 수 있다. 잡지 『우리들』에 관한 구체적인 서지 사항이 현재까지 알려진 바는 없지만, 『신소년』을 발행했던 중앙인서관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사회주의 사상의 계몽을 목적으로 발간했던 월간 잡지『아등(我等)』의 후속으로 1932년부터 발행된 잡지이다. 현재 『우리들』은 제4권 제5호(1934. 5)까지 간행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사회주의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점점 심해졌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얼마 가지 않아 폐간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런데 이 『우리들』 제3권 제7호(1933. 7)에 이주홍의 시 「너의들의 얼골」이 게재되었으며, 제4권 제2호(1934. 2)에 「적막(寂寞)한 아츰」이 발표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여기서 시 「적막한 아츰」은 이미 김지은이 찾은 바 있으나, 시 「너의들의 얼골」은 처음 조사되는 것인데, 아쉽게도 이 작품의 실체를 보지 못한 단계에 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사회주의 사상의 전파를 위한 계몽 잡지였던 만큼, 여기에 수록된 작품의 성격도 그에 상응하는 작품일 것이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아등』과 『우리들』 잡지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이주홍을 비롯한 당시 사회주의 문학의 면모를 한층 폭넓게 살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주홍은 1930년대 후반 이후에는 작품의 성격을 사뭇 달리 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이런 면모를 알 수 있는 시가 『시학』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陸史와는 「風林」에서 말고도 一九三九年 尹崑崗이 주간해 낸 「詩學」사 등에서 종종 만나 酒談으로 즐기곤 했는데 …(중 략)…. 그때에 나는 그 「詩學」에 시 「榴卵集」「死都의 노래」등을 발표하고 있었고, 동시에 표지와 컷을 그리고 있었다.
『풍림』과 『시학』이 간행되던 1939년이면 더 이상 사회주의 색채를 지닌 작품을 발표하기는 불가능했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이주홍은, 뒤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겠지만, 자의식의 내면적 갈등을 심하게 나타내는 시작품을 『시학』에 발표했는데, 그것들이 「유란집(榴卵集)」(제2집, 1939. 5), 「사도(死都)의 노래」(제4집, 1939. 10), 「발의 年譜」(제5집, 1939. 12) 등이다.
그리고 이주홍은 일제 강점기 말기에 『동양지광(東洋之光)』 제6권 제5호(1944. 5)에 일본어로 쓴 시 「전원에서(田園にて)」를 발표한 바 있다. 작품의 발표지는 친일잡지이지만, 작품 자체가 친일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이주홍은 당시 『동양지광』에 시작품 외에 수필, 콩트, 단평, 만화 등을 남기고 있어서, 이들 글을 종합적으로 살펴서 이주홍의 문학활동을 신중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Ⅲ. 이주홍 시 세계의 특징과 양상
1. 고향의식과 객수(客愁)의 서정
일제 강점기 이주홍의 시작품으로 현재까지 10편이 조사되었다. 이러한 작품 편수는 동시를 포함한 전체 작품에서 4분의 1 정도에 해당한다. 이주홍이 성인 대상의 시보다 동시에 주력한 결과이다. 그런데 10편에 불과한 작품이지만, 이들 작품이 이주홍 시 세계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별도로 고찰될 필요가 있다.
일제 강점기 이주홍의 시는 시작품의 경향을 중심으로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단계는 1930년 중반 이전에 쓴 시들로, 이주홍이 아직 작품을 통해 계급적 관점의 사회주의 의식을 뚜렷이 드러내지 않은 시기의 작품들이다. 두번째 단계는 1930년 중반 이후부터 1935년경까지의 시기에 해당하는데, 이 시기의 작품들은 사회주의 의식을 뚜렷이 작품을 통해 구현하고 있다. 세번째 단계는 1935년 이후부터 광복까지의 시기를 포괄하는데, 급격히 변화하는 역사 현실을 대면하면서 겪는 자아의 내면적인 갈등을 심각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 해당된다.
그러면 첫번째 단계의 시작품을 보자. 이 단계에 드는 작품으로는 「고향의 동무들이여」(1928. 3. 30), 「살구 」(1928. 4. 8), 「구력(舊曆) 설날」(1930. 2. 4)이 있다. 먼저 「고향의 동무들이여」를 보자.
동무들아이졋느냐푸른녯날을
발가벗고노든 의낡은記憶을
살구나무밋헤서 싸움하고
네 거속곱짓든어린그 를
순악이가 더온 쟁이로
국 리고흙밥짓고놀앗더니만
그는발서시집가서어머니가되엇다지
이내의턱밋헤도수염낫이감실감실
그리운고향의동무들이여
녯날의흙손목다시한번쥐고십다
나그내의선 에벗의생각간절코나
버들가지 거서피리나부러보자
―「고향의 동무들이여」 전문
이 작품은 제목 자체가 고향의식을 나타내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작품을 발표한 1928년에는 이주홍은 일본 동경에 있었다. 그의 자필 이력서에 따르면, 그는 1925년 4월부터 1928년 3월까지 일본 동경에 있는 정칙영어학교를 다녔으며, 그해 4월부터 1930년 1월 말까지 광도(廣島; 히로시마)에 있는 광도사립근영학원에서 교무주임을 맡아서 한국 교포의 자녀 교육을 맡고 있었다. 이주홍은 바로 이 기간에 외종형인 강의범(姜義範)이 다니던 광도고사의 유학생이 발간한 잡지에 소설을 투고한 바 있으며, 신문 등에도 시작품을 투고하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위 작품은 이주홍이 동경정칙영어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투고한 작품이다.
위의 시는 이상의 전기적 사실에 기초해서 보면, 어린 시절 고향에서 겪었던 일들을 먼 일본 땅에서 아련히 떠올리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시는 이주홍의 문학에서 가장 먼저 활자화된 작품이지만, 상당히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제1연에서는 "푸른녯날" 또는 "어린그 " 친구들과 지냈던 추억을 환기시킨 다음, 제2연에서는 현재로 돌아온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세월의 거리감을 나타냈다. 그리고 제3연에서는 가족사의 현실을 역사 현실의 문제로 시야를 넓히면서 "나물갱죽먹기실튼이봄", "붉은핏줄한가닥씩 고가는이봄"과 같이 가난한 현실을 진지하게 성찰한 다음, 제4연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녯날의흙손목다시한번쥐고십다"고 하여 미래적 소망으로 전환시키면서 객지에서 느끼는 시름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처럼 이 시는 기승전결의 짜임새를 갖추고 있으면서 고향의식을 근간으로 한 개인사와 역사 현실의 인식을 포괄하고 있는 작품이다.
다음의 시 「살구 」 역시 고향의식을 바탕으로 하면서, 개인사와 연관된 추억을 한층 은밀한 부분까지 떠올리고 있다.
위의 시는 각 연마다 작품의 제재인 살구꽃에 얽힌 유년시절의 개인사를 추억하고 있다. 제1연에서는 살구꽃이 피어 있던 처갓집, 제2연에서는 살구꽃을 시제(詩題)로 주었던 서당 선생님, 제3연에서는 남강 뱃놀이에서 살구꽃을 던져 주었던 어떤 색씨, 제4연에서는 자신에게 살구꽃을 몰래 내밀었던 어린 시절 '순희'를 떠올리고 있다. 이 시는 이런 점에서 개인적인 체험을 은밀하게 독백하고 있는 고백시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이주홍의 시는 거의가 개인적 체험의 장을 바탕으로 형상화된 특징을 보여준다. 위에 언급된 두 시도 그렇지만, 다음의 시 「구력 설날」도 이점에서 마찬가지이다.
내 턱에수염이나니 모두들어른이라고 손가락질하네
나희먹고 허터진 인생이라고
아이들이 모다 손짓을하네
{여게는 못들어온다]고다리를 벌리고서
솟곱터에서나를모라내네
수염이 나도 주럼이저도
그래도 내 가슴속에는아즉도
파릇파릇싹이 돗는듯지만
사람들은 모두다 설이깃브다하나나는하나도깃분것엄네
해마다 한번씩 이곳에서 다리를 쉬어가건만
쉬일 마다 마음이 서럽네
치마ㅅ폭의주름가티 해마다
접히는이주럼살이
사람의 목숨을 달어올리네
자 자 어올리네
제절로오는설맛기야맛는다만
이설이 다가면 나는어대로
가는고 나는 어대로 가는고
새옷빗가티 사람들은 마음속
부터 하게 깃버하지만
내 이설이 서러워 이아츰에
내홀로 서른노래 부르고잇네
―「구력(舊曆) 설날」에서
이 시는 제목처럼 설날의 풍속을 제재로 한 일종의 풍속시다. 그런데 설날의 풍속 자체가 갖는 의미를 새기기보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느끼는 세월의 무상함과 고독감을 노래했다. 세월이 바뀌어도 마음은 "파릇파릇싹이 돗는듯지만", "치마ㅅ폭의주름가티 해마다/접히는이주럼살이/사람의 목숨을 달어올리네"라고 했듯이, 세월의 무상함에서 느끼는 허전함과 서러운 감정을 객지에서 맞는 설날을 통해 더욱 강렬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상에서처럼, 첫번째 단계의 시는 고향의식을 매개로 유년시절의 즐거웠던 경험들을 추억하면서 향수의 심정을 노래하는가 하면, 먼 객지에서 느끼는 고독감과 삶의 허무감을 나타내는 시작품들이다. 부분적으로 개인의 가족사를 포함하여 일제 강점기의 역사현실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성찰이 계급적 관점의 사회주의 의식과 연결되어 있는 단계는 아니다. 이런 점에서 첫번째 단계의 시는 다분히 개인적 경험에 기초한 주관주의적 정서를 형상화하는 작품들이다.
2. 계급적 현실인식과 삶의 비극성
이주홍은 1930년에 들면서 점차 역사현실을 계급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사회주의 의식을 작품을 통해 나타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 경향은 193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주홍의 시에서 두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이 시기의 작품들이 시 「새벽」(1930. 8), 「너의들의 얼골」(1933. 7), 「적막(寂寞)한 아츰」(1934. 2)등이다.
지금막 첫잠드른 남편의얼골 털치면엇지노
그래도 새벽밥지어야 남편을 일터로보내지
어느놈이 밤에잠자라고는 마련해노코
어느×할놈이 밤에잠도 못자게하노
한달에 보름식을 저 로만드는구나
말너가는저얼골 못보겟고나 악이나는구나 이가 독 독 갈니는구나
우리가 얼마나 밥을쑤시먹는다고
밤에 지 잠을못자야되나
그래도 너희들은 자는구나
그래도 너희들은 잘 잡바저서 자는구나
비단이불 고덥고 큰게집 작은게집 이리 고 저리 고
잘자는구나 쿠룩쿠룩 ××를 잘자는구나
×
…(중 략)…
×
밤새도록 술먹고 유성긔틀고 지랄하고
왜 무슨늣잠이냐 왜 쿠룩쿠룩 달게자느냐
아이구 심술나죽겟네 조놈의낫 대기 집어 비트리고십허라
×
그래도나는 쌀채 글거가지고 부억간으로 나가네 래일 네놈의 ×××을×일 우리남편의배를
히할려고 그래야힘차게×우지 배가튼튼해야 무섭게 긔운이나지
×
소핑경 ―
동대문에서 ―
너도 나무팔너왓나 너도밤잠 못잣구나
―「새벽」에서
이 시는 공장 노동자인 남편을 둔 아내를 시의 화자로 삼으면서, 자신들과 너무나 상반된 삶을 살아가는 집주인을 계급적 관점에서 대립시켜 놓고 있다. 여기서 공장 노동자인 남편과 나무장사를 하는 아내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전형이며, "비단이불 고덥고 큰게집 작은게집 이리 고 저리 고" "밤새도록 술먹고 유성긔틀고 지랄하"는 집 주인은 유한계급(有閑階級)이자 유산계급(有産階級)인 부르주아의 전형으로 설정된 것은 물론이다. 이 시는 바로 이러한 계급적 대립 구도와 그 모순 상황을 적실하게 나타내고자 '새벽'의 시간을 설정하고 있다. '새벽'은 공장 노동자인 남편에게, "어느×할놈이 밤에잠도 못자게하노/한달에 보름식을 저 로만드는구나/말너가는저얼골 못보겟고나"라고 했듯이, 노동의 피곤함으로 지쳐서 곤히 자는 시간이면서 얼마 후 다시 노동 현장으로 가야 할 정도로 생존의 절박함과 연결된 시간이지만, 집주인에게는 늦잠을 달게 자는 시간으로 휴식과 여유를 갖는 시간이다. 이처럼 새벽이란 동일한 시간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계급적 차이에 따라 모순되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하여 시의 화자는 분노와 야유를 표시하면서도 "아이구 심술나죽겟네 조놈의낫 대기 집어 비트리고십허라"고 했듯이, 상대 계급에 대해서는 부러움이 섞인 심술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서 인간이 흔히 갖는 심리적 이중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인간적 진솔함이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 시가 아직도 계급적 세계관을 명확하게 정립하지 못한 단계에서 쓰여진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계급적 대립 구도를 공식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추상적 관념에서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설정된 한계를 보여준다.
위 「새벽」에 비해 시 「적막한 아츰」은 비슷한 시간을 시적 서술의 배경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시적 상황이 작위적으로 설정되지 않고 시인의 체험적인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추상적 관념의 한계에서 벗어나고 있는 작품이다.
祜야!
구태여 이렇게 가고는 말것을
모진 목숨은 너를 이날까지 괴롭혓나니
찬바람이 窓밖 호박닢을 흔드는 인제는 제법 서널해진 七月의 이날 아츰에
너는 찬 돌과같이 숨을 그치고 드러누엇다
아즉도 자식의사랑에는 철이없는 절믄 네애비가
없어지는 너를 이러케도 애태울일은 없기야하다
또 이런 넓은 天地에 하필 나만이 자식을 업새는것은 아니엇만은
오― 너는 이저도 이저도 아모래도 잇처지지못할
너무도 悲慘한 아조 조그만 푸로레타리아이엇다
그것이 그것이 나를 뚜다려치는구나
…(중 략)…
그렇나 祜야!
우리는 끗끗내 너를 한번도 大邱에도 晉州에도 못보내보고
듣기가싫도록 꽁꽁알는 해참스러운 너를 그냥
그냥! 오뉴월 파리끌는 두덱이우에만 눕혀둘수밧게는 없엇더니라
돈만 있엇든덜 정말 돈만잇엇든덜 고까짓 病쯤이야 의심없이 쪼처버릴것을
호야 긔어코 너를 보내버리지안코는 어쩔수없든 우리는
너를 일부러 죽엿다는 죄를 써도 달게 더달게 받는다
그렇다 어데까지라도 싹싹한 同志이어하는 또 너는
나보다 더큰 죄가 딴군데 잇다는것을 잇지는않으리라
…(중 략)…
한줌의 불근 황토밑에서 가마귀 밥이되고
주린여호떼에게 너의살을 기어보내드래도
호야! 너는 어데까지도 붓그럼없는 푸로레타리아이라
흙속으로! 다못 흙속이 너의 가는곳이다
그것이 이세상 唯物論者의 저들에 대한 큰 영예인것이다.
―「적막(寂寞)한 아츰」에서
위의 시는 첫 아들 호(祜)를 잃고 쓴 작품이다. 자식을 잃은 애절한 심정을 감정적 여과 없이 구구절절 쓰다 보니 상당히 긴 작품이 되었지만, 작품의 곳곳에서 자식을 잃게 된 상황적 현실을 계급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위 인용시에서도 '호'를 "조그만 프로레타리아"로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돈만 있엇든덜 정말 돈만잇엇든덜 고까짓 病쯤이야 의심없이 쪼처버릴것을"이라고 한탄하면서 '호'의 죽음이 "나보다 더큰 죄"인 가난의 현실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호'가 "붓그럼없는 푸로레타라아"로 살다 갔다고 하면서 "그것이 이세상 唯物論者의 저들에 대한 큰 영예인것이다"라고 했다. 여기다 이 작품이 발표된 잡지 『우리들』이 사회주의 사상의 계몽을 목적으로 발간한 카프(KAPF)의 기관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작품은 사회주의 의식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서 이주홍은 자식의 비극적인 죽음까지도 사회주의 의식으로 무장된 시각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철저함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는 자식의 안타까운 죽음 자체가 갖는 비극성, 자식의 주검을 대면한 부모의 애절한 심정과 자책감, 그리고 사회주의 의식을 서로 융합함으로써 관념적 도식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선전·선동시와는 구별되며, 경험적 현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시적 리얼리티를 일정하게 확보하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3. 자책과 자학의 내면적 갈등
일제의 탄압에 의한 카프의 해체는 이주홍의 문학활동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935년 카프 해체 이후 그의 문학작품이 보여주는 경향이 상당히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경우, 이 시기 작품들 중에 일부 하층민의 궁핍한 삶을 다루고 있기는 하나, 그것은 사회주의적 관점보다는 인간애를 중시하는 휴머니즘의 관점을 취하고 있고, 다른 대부분의 작품들도 지식인의 전향과 소시민적인 삶, 낭만적 사랑과 애욕의 파탄, 현실과 자연에 대한 순응 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시의 경우에도 이 시기의 작품이 몇 작품 되지 않지만, 사정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시학』에 발표된 「유란집(榴卵集)」(1939. 5), 「사도(死都)의 노래」(1939. 10), 「발의 연보(年譜)」(1939. 12)와 『동양지광』에 발표한 일어시 「전원에서(田園にて)」(1944. 5)가 이 시기에 드는 작품들이다.
먼저 『시학』에 발표한 작품들을 보자.
① 싫것 울고싶으나
사람이 성가시어
내 오날도
어둠을 기다리다.
옆에 앉지도 말고
제발 혼자 두렴아
네 구린내나는 文學論엔
뒹굴어 發狂이라도 하고싶다.
―「유란집(榴卵集)」에서
② 불꺼진 거리처럼
내 가슴은 사철 어두어
智慧의 새는 해마다 가고
靑春이 鬼神인양 울도다.
娼女의 經帶보다도
너 더러운 나의 心臟이여
煌한 僞善의 꽃다발에
貪慾은 번처럼 짓드리라.
…(중 략)…
가자 쓰레기통으로 내心臟아, 너는
雨비(傘)가 없어 남의집 첨아밑에 섯너니
良心의門은 굳게 닫쳐
거미줄이 네 알범을 쫓지않는가.
―「사도(死都)의 노래」에서
③ 소같이 미련하기에
벌레같이 어리석기에
오늘도 썩은 胴體를 지고서
너는 산쵸(동키호-테의 從者)처럼 잘도 섬기다.
오, 一生을 내 거짓에바친 어리석은 발이여
이제는 그마저 따르질 못하리니
人生의 그믐은 물결처럼 밀려와
金蓮의 깨소링수레가 너를 맞이러 올께다.
이상 세 작품은 상당한 수준의 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들인데, 모두 심각한 내면적 갈등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①에서 "싫것 울고싶으나/사람이 성가시어" 또는 "옆에 앉지도 말고/제발 혼자 두렴아"라고 했듯이, 시적 화자의 정신적 충격은 대인 관계를 기피하는 자폐증의 심리마저 보인다. 이러한 심리는 철저히 사회와 상호작용을 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무관심'의 표현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왜 이러한 정신적 충격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단서는 찾기 어렵다. 다만 "네 구린내나는 文學論엔/뒹굴어 發狂이라도 하고싶다"라고 한 것을 보면, 시적 화자가 과거에 몰입했던 문학태도와 어떤 관련이 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여기서 "구린내나는 문학론"이 시인이 한때 경도되었던 사회주의 이념에 바탕을 둔 계급주의 문학론을 지칭한다면, 그는 1939년 당시 역사적 현실의 변화가 주는 엄청난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과거의 문학적 신념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어떤 운명적 상황을 맞이했던 것이리라.
②의 시는 시인의 이러한 자기 번민과 갈등을 한층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智慧의 새는 해마다 가고/靑春이 鬼神인양 울도다"라고 했듯이, 지성의 칼날을 날카롭게 세웠던 젊은 시절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 이제 시인은 스스로 "娼女의 經帶보다도/너 더러운 나의 心臟"으로 비하하고 모멸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비하와 모멸이 " 煌한 僞善의 꽃다발"과 "貪慾"에 물들었기 때문이라고 표명하며, "良心의門이 굳게 닫"친 자아를 비판하면서 결국 "가자 쓰레기통으로 내心臟아"라고 하는 상태의 자기부정에 이르게 된다.
③의 시도 자학과 자기부정의 심각한 내면적 갈등을 표출하고 있다. 시적 자아 스스로 "소같이 미련하"고 "벌레같이 어리석"다고 자기비하를 하면서 "一生을 내 거짓에바친 어리석은 발이여"라는 하며, 자학에 가까운 회한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존재를 가위에 날개가 잘린 '참새'의 처지와 동일시하면서, "살구꽃마냥 내 옛노래나 쪼으라"고 하며 동심의 세계를 노래했던 과거로 회귀하고자 한다.
이상의 작품들에서 보았듯이, 일제 강점기 말기에 쓰여진 이주홍의 시는 자기 번민과 좌절, 그리고 자폐와 자학의 심각한 내면적 갈등을 표출하면서 역사현실이나 사회현실과 마주하려는 자세는 더 이상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양심의 문'을 닫고 탐욕의 꽃다발에 유혹되기도 하며 현실과 타협하는 소시민적 인간상을 보여주거나, 역사현실을 등진 채 철저히 자기 고립적인 과거의 세계로 퇴행하는 자아의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일제 강점기에 가장 늦게 쓰여진 일어시 「전원에서(田園にて)」도 이러한 자기 고립적이고 소시민적인 자아상을 보여주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둠 속을
동굴 안을
나는 가만히
아이들의 숨소리를 듣는다.
옆에 놓인 라디오에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전쟁상황을 들으려고
귀를 가까이 세우는데
아이들의 숨소리가
더 높아진다.
늙은이에게
행복이 있으라고 기도하면
댕-
댕- 소리에
아버지가 일어난다.
재털이를 치는
그리운
금속 소리
닭은 또 울려고
멍석을 치는 소리가 나자
날개를 치기 시작했다.
―「전원에서(田園にて)」에서
이 시가 쓰여진 1944년 5월이면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드는 때로 일본의 패색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기 시작했던 때이다. 1943년 이미 징병제가 실시되어 한국인들이 전쟁의 희생양으로 강제 동원되었고, 내선일체의 황국사관과 전시 참여를 위한 국민정신을 선동·고무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당시에, 일어로 쓰여진 위의 시는 다행이 이런 시대적 조류에 휩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일어로 쓰여진 한계는 있으나, 이 시는 소박한 소시민적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라디오를 통해 전쟁상황에 조용히 귀 기울이면서도 특별히 심각한 역사현실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늙은이에게/행복이 있으리고 기도하"는 것이 전부이며, 그러다 닭이 홰를 치는 소리를 들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새날이 찾아온 것을 일상의 일로 평범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이주홍의 일제 강점기 시는 바로 이 단계에서 마감된다. 그러나 광복을 맞이하면서 그는 사회현실과 치열하게 대면했던 과거의 자아를 다시 되찾으면서 역사의 격랑을 타게 된다.
Ⅳ. 결 론
이 글은 지금까지 일제 강점기에 이주홍이 발표한 시를 가능한 폭넓은 자료 조사를 통해 찾아서 그 목록을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의 시가 보여주는 작품세계의 특징을 고찰했다. 그 결과를 간략하게 요약하여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 강점기에 발표한 이주홍의 시작품으로 3편을 새롭게 발굴하고 4편의 작품 서지를 분명하게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둘째, 새로 찾아진 이주홍의 시는 『중외일보』에 발표된 1편, 『우리들』에 발표된 시 1편, 그리고 『동양지광』에 게재된 시 1편이었다. 그리고 작품의 서지사항을 분명하게 확인한 작품이 『우리들』에 발표한 1편과 『시학』에 발표된 3편으로 모두 4편이었다.
셋째, 이주홍의 시 세계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여 파악했다. 첫번째 시기의 시는 1930년 중반 이전의 작품들로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느끼는 향수를 노래했으며, 두번째 시기의 시는 1930년 중반 이후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에 발표된 작품들로 계급적 관점의 사회주의 의식에 기초하여 계급 모순의 현실을 비판하거나 삶의 비극성을 구체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번째 시기의 시는 1930년대 중반 이후부터 광복까지의 시기에 발표한 작품들로 자폐와 자학의 심각한 내면갈등을 표출하거나 현실과 타협한 소시민적 인간상을 보여주었다.
이주홍의 시 연구는 그 범위가 확대되어야 할 것은 물론이다. 앞으로 광복기 이후의 작품들에 관해서도 좀더 치밀한 자료 조사 작업이 필요하고, 이를 토대로 이주홍의 시와 동시에 관한 전체적인 이해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가 요청된다. 그동안 이주홍의 문학에 관한 연구가 동화나 소설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나머지, 시나 동시 분야의 연구가 소원했다는 반성과 함께 그의 시문학에 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논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참 고 문 헌
박경수
[612-756]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 <대림2차 아파트 202동 1703호>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전화번호: 051-640-3131 / 휴대전화: 016-870-5623
전자우편: kspark@pufs.ac.kr
○ 논문접수: 2003년 10월 31일
○ 심사기간: 2003년 11월 11일 ∼ 2003년 12월 10일
○ 게재결정: 2003년 1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