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근대현대문학의 작가와 작품 세계
들어가면서
백제의 도읍 공주는 ‘구구십리’로 부른다. 금강 중류에 자리 잡으면서 근방 90리 안팎에 아홉 개의 도시와 연결된 교통의 중심지라는 뜻이다. 천안, 청주, 부여, 익산, 논산, 대전, 홍성, 청양, 조치원들이 그 연결망이다.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공주고보, 영명학교 등을 건립하고 해방 이후 공주대, 공주교대, 영상정보대 등의 대학을 비롯하여 수십 개의 중고등학교를 보유한 교육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학농민전쟁의 마지막 격전지인 우금티가 있으니 당연히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토로 공간이 많았던 근대문학의 뿌리도 갖추었을 터이다.
필자가 맡은 분야는 공주의 시인과 소설가의 명단 및 작품 분석이며 그 시대적 배경은 근현대사에서 2021년 현재까지를 포괄한 시인과 소설가가 될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시인의 숫자는 넘치는데 소설가의 인원수가 부족해서 원고 작성의 불편함이 있었다. 또한 출향 작가와 작고문인을 분류하는 작업에도 한계가 있어서 모두 일괄적 순서로 거론하게 됨을 밝힌다.
처음 시작은 1920년 후반에 간행된 《백웅》을 중심으로 한 소설가 윤귀영과 시인 정용산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그리고 1988년 이후 간행된 <공주문인협회의>의 기관지 《공주문학》을 중심으로 한 작가들과 진보 문학지인《작가마루』에 수록된 공주지역의 작가들이 중심이 되겠다. 그리고 공주와 지연·학연이 연결된 출향작가들도 포함될 것이다.
제 1절 공주의 시인들
공주의 시인들,
식민지 시대와 분단조국 그리고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보내며 시나브로 공동체 울타리의 동반자가 되었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저마다 다른 체질들의 토로와 어우러짐으로 ‘공주 시인’이라는 명렬표로 합체된 것도 운명이다. 순수와 참여, 그들 모두 금강 물결과 우금티 그림자 그리고 연미산의 맥에 등을 기대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지역 공동체인 것이다.
시인의 소개 원칙은 공주 소재를 원칙으로 하되 그동안 지역사회와 소통해온 일부 출향 시인도 참조했음을 밝힌다. 시와 소설 혹은 평론, 수필 등 여러 장르를 동시에 쓰는 작가들의 경우 중복을 피하기 위해 하나의 장르만 소개했으며 가급적 현재 공주에 거주한 시인들을 우선순위로 하려고 노력했다.
먼저 지역사회의 연간지인《공주문학》을 떠올리면서 역대 회장단 명단을 소개한다. 1987년에 창립 당시의 회장은 故임헌도 시인이었으며 1990년-1991년의 1대는 故원종린 시인 그리고 2대부터 2년 임기로 조재훈, 이극래, 유병학, 구중회, 조동길, 나태주, 유병환, 이극래, 신현보, 박정란, 유준화, 정연용, 조동길, 안연옥 순으로 이어져 왔으며 2021년 현재 박용주 시인이 회장을 맡고 있다.
『공주문학』에서 활동한 시인의 명단을 무순으로 나열하면, 1994년 제 4집의 경우 강병철, 구중회, 권인주, 김명수, 김연화, 나태주, 유병환, 유준호, 이극래, 이수일, 이효범, 전병철 한상각이며, 2020년 32집의 경우, 강헌규, 김근식, 김배숙, 김승배, 김현주, 김혜식, 문희봉, 박용주, 박정란, 석용현, 손경선, 신현보, 안현옥, 양애경, 양진모, 유계자, 육근철, 이극래, 이병연, 이부용, 이수일, 이재흠, 이종옥, 이희정, 임경숙, 임영남, 임영선, 임타래, 장인무, 정금윤, 정태형, 조동수, 조옥희, 조제선, 조효순, 최대승, 최복주, 김진규, 박정란 등이 활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충남작가회의> 소속으로 공주에서 활동하는 시인은 최은숙, 김봉균, 김길태, 전병철, 故유지남, 안연옥, 김혜식, 김홍정 강병철 등이 있으며 김도석 시인은 개별 집필 중이다. <충남작가회의>는 2019년 공주와 부여에서 <신동엽 시인 타계 30주년>이라는 큰 행사를 기획하여 전국의 작가들을 초청할 때 <공주문협>의 도움을 받은 바 있다. 그렇게 <충남작가회의>의 공주 소재 시인과 <공주문협>의 시인들을 각자 정체성을 고수하면서 때때로 현안을 공유하기도 했다.
소설과 달리 시인의 명단이 너무 많아 집필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시인의 약력을 소개하고 간략한 평가 후 시 한 편의 전문 혹은 부분만 소개할 수밖에 없다. 예시로 든 시는 행을 벌이지 않았으며 다음 작가를 소개할 때만 구분을 위해 행을 한 줄 띄웠다. 지문과의 구분을 위해 인용시는 굴림체로 필체를 바꾸었다. 소개 순서는 ‘가, 나, 다’순을 원칙으로 한다.
강헌규는 공주사대 졸업 후 경희대 대학원 문학박사를 받았으며 《문학 21》로 등단했다. <충청남도 문화상>과 <동숭학술상>을 받았고 시집 『행복한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어라』외 8권이 있으며 밤새도록 책에 묻히는 간서치 체질이다.
아! 저 큰 눈/ 저 유리처럼 맑은 눈/ 저 죄 없는 그리움을 어쩐다냐/ 어느 나라 넓푸른 목장에는/ 암·숫소 부부가/ 다정하게도 풀을 뜯고 있던데// 이웃집 최崔부잣집/ 종우種牛만 황소냐?/ 아버지가 구시렁거리셨다./ “황소를 멕이면/ 차마 못할 일이 많어.” -<접붙여준 우리 집 황소 이야기> 부분
구상회는 1929년 生으로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중등 교장으로 정년했으며 <충남 문인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대전시문화상>, <대일비호대상>, <동포문학상>을 받았다. 시집, 『정오의 꿈』,『빈 하늘이 푸르다』,『그래도 꿈꾸기』등이 있으며 민족시인 신동엽 시인의 절친이다.
저 지붕 위로 솟은/ 너, 외로움 끝으로/ 햇빛 바랜 오후의 깃발이/ 바람용트림을 하면서/ 구름 한 자락 잡고/ 석양 빗긴 하늘을 저으며/ 아쉬운 듯 석별을 몸부림친다 -<푯대를 세우고> 부분
구중회는 공주사대 국어과 졸업 후 경희대에서 문학박사를 받았다. <수요문학회> 동인이며 1980년 『심상』신인상을 받았다. <공주문학회>를 결성했고 <공주문인협회> 회장을 거쳤다. 시집 『은하수 건너가며 스치는 여름밤』『걸어 다니는 명당』『한국에서 온 새 한 마리』『입맞춤에서 가을까지』등을 출간했다. <한국풍속문화연구원>을 운영하며 계룡산과 관련한 무속, 백제 관련 연구에 매진하였으며 근래 백제 기악을 연구를 하고 있다.
애상과 비애감을 동시에 표현하는 시적 문장의 위엄이 보이는 시인이다. 석별과 만남 사이의 애달픔과 그리움이 하나의 무니로 얼룩져 있다. 사변적 서정시를 추구하면서도, 일상을 통하여 자기 발견을 해나가는 시인으로 평가된다.
괘씸한 것 같으니. 빗자루로 쓸어내고 쓰레기로 불태워도 너는 밥 먹을 때 밥수저로 입으로 들어오고 잠잘 때 이불 속으로 들어온다./ 내 너를 위한, 한 줄의 시도 쓰지 않으리라./ 술독아지 속에 쑤셔넣고 사진틀을 다락 위에 감춰두어도 가을이 비워둔 하늘 아래서 너는 내 눈물을 타고 돌아오는구나. -<가을 1> 부분
김명수는 198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공주교대, 충남대대학원 졸업했으며 <웅진문학상>, < 대전시인상>, <충남문학대상>을 수상했다. <한국문협> 회원이며 <충남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시집 『질경이꽃』『아름다웠다』『어느 농부의 일기』등이 있으며 <충남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대교출판사>를 운영하며 후배들을 다독이는 후덕한 시인이다.
어머니 가슴은/ 하얗게 빛바랜 감자 꽃이다/ 감자밭에서 붓을 주다/ 속 고쟁이를 올리고/ 늘 감자 꽃을 만지고 있었다/ 당신의 속살 같은 것만 골라서 -<감자꽃> 부분
김길태는 1972년 공주 출생으로 <충남작가회의>와 <공주 민예총> 회원으로 건강한 노동자 서정성의 시인이다. 시집 『까치 선생 찾아오다』『Eating Together』『지상에서의 삶』을 출간했다.
그러자 한 아이가 묻는다/ 할배는 어느 별에서 왔어요?//......./ 이놈들 장난치지 말고 썩 집에나 가거라/ 엄마 기다리신다// 허리를 쪽 펴고/ 지팡이를 앞세우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돌아가셨다> 부분
김도석은 공주대 지리교육과를 졸업하고 공주에서 교직생활을 했다. 시집 『여적』을 발간하면서 독자적 집필활동 중이다. 그의 지는 싸움에서 희망을 찾는 시를 쓴다. 승리가 아니라 옳기 때문에 싸운다는 젊은 날의 그 결의이다. 굴삭기에 찍힌 은행나무 널브러진 교정에서 그가 주먹을 쥐어야 교단의 꿈나무들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표정 없이 비를 맞는 사람도 있다/ 서두름도 피할 의지가 없다/ 얼마쯤 걸어왔을까/ 어디로 가는 걸까/ 돌아갈 집은 있을까 -<觀照> 부분
김봉균은 2007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충남작가회의> 회원이며 시집으로『금강』, 『녹두꽃』이 있다. <공주농민회> 소속으로 시민운동가이기도 한 그는 금강과 우금티를 소재로 한 역사의식의 문장을 지향하며 민주화와 통일, 평등을 추구하는 글을 쓰고 있다.
한여름 이고 서서/ 마디마디마다 삭인 자리/ 가을이 가득한/ 늙은 호박 긴 주름에/ 그래도 산모의 아픔 씻어/ 태곳적 꿈이 영근다. - <호박넝쿨> 부분
김현주는 2005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했으며 <김현주 한방차 꽃차 교육원> 원장이며 현 <공주문화원 부원장>이다. < 웅진문학상>과 <금강권 문학제 소설 대상>을 받았다. 시집 『저녁쌀 씻어 안칠 때』가 있으며 착하고 서정적인 문장을 구사한다.
역마다 빠르게 내리고 지나며/ 안부 묻지 못한/ 마음 칸칸 기억의 얼굴들// 번지 없는 그리움이/ 마음 가득한 봄날에/ 묻는 근황./ -<봄에> 부분
김혜식은 공주 <새이학 식당>의 대표이며 시집『민들레꽃』이 있다. 포토 에세이집『쿠,바로 간다』,『무함마드 씨, 안녕』,『골목의 기억』,『코카커스 사진 편지』,『바간 안부』를 발간한 사진작가 시인하다. 그를 찾는 벗들에게 ‘국밥과 희망’을 대접한다.
아직 국경을 넘지 않았다면/ 밤새 손수 지은/ 아름다운 수의/ 한 번만 입고 날아 봐요// 거기선 아무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할 거예요// 그러나 연분은 거기까지/ 나를 만졌거든/ 눈 비비지 말아요// -<나비 족속> 부분
나태주는 서천 출생으로 한반도의 대표 시인이다. 1971년 《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초등교직 43년, <공주문화원장> 8년 그리고 43대 <한국시인협회> 회장으로 임한 바 있다. <김달진문학상>, <소월시 문학상>, <유심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첫 시집 『대숲 아래서』출간 이후 100여 권을 생산했으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출산물이다. <풀꽃문학관> 관장으로 <풀꽃문학상> <공주문학상>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시 「풀꽃」은 이미 한국인 전체의 애송시가 되었으며 공주 재래시장 등 몇 개의 골목에 <풀꽃 거리>가 조성되어 있으니 한국 문단에서 가장 영향력이 많은 시인 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오늘도 애썼겠구나/ 잘 자거라 일찍 자거라/ 오늘도 나는 멀리 네가 있어/ /너를 생각하는 내가 있어/ 하루해가 정답고 편안하고/ 세상이 다시 한 번 따뜻해진단다/ 너를 멀리 생각하면/ 하늘도 조그마해지고/ 어둔 밤도 환해지고/ 나의 마음은 젊어지다 못해/ 어려지기까지 한단다/ 그래서 고마워/ 너에게 고마워 -<너에게 고마워> 전문
류지남(작고 시인)은 신풍 출생으로 공주사대 국어교육과 졸업했다. 91년《삶의 문학》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내 몸의 봄』,『밥꽃』,『마실가는 길』을 발간했다. <충남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2016년 <풀꽃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시는 시린 몸 데워주는 아랫목 밥그릇 같으니 그것은 문장 온도의 솔직한 시선에서 비롯된다.
양파를 썰다가/ 찔끔, 눈물이 돋기도 하는 건// 저 하얀 속살 켜켜이/ 시린 눈물 가득 스며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함께 살아도/ 그 속을 알 수 없는 매운 양파가/ 소파 끝에서 자울자울 졸고 있다 -<양파에 대하여> 부분
박용주는 공주에서 태어나 공주사대 불어교육과와 고려대, 공주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맞췄다. <한국시인협회> <충남작가회의> 회원이며 2021년 현재 <공주문인협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시집 『별들은 모두 떠났다』,『가브리엘의 오보에』,『마을로』가 있으며 산문집『달리기는 운동이 아닙니다』와 번역서『잃어버린 나를 찾아서』,『샹송꼬레엔느』『혁명, 마을선언』이 있다. 의당에서 <해맑은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며 청소년과 지역사회를 위한 소통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나는 보헤미안/ 걸으며 춤을 추고/ 춤을 추며 탈출하네/ 삶은 단순하고/ 자유는 아찔한 것/ 달콤한 피로/ 짜릿한 허기/ 따뜻한 집안은/ 실로 초라한 문명/ 바람찬 들판은 더없는 놀이터/ 어린 아이와 철없는 시인이 살판나는 곳/ 몸은 이미 당겨진 활시위/ -<걷다> 부분
박정환은 공주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충남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집 『숲속에서』, 『빈 그릇이 빈 그릇이 아니오』는 문장마다 한 폭의 서정적 풍경화를 보여준다.
수런거리는 하이얀 소리/ 어느 사이/ 그 아래 나란히 앉은/ 모습/ 잊고 싶은 시집의/ 수많은 페이지들/ 신의 날개가/ 쏟아지고 있다 -<숲> 부분
박찬세는 우성 출신으로 대전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백조> 출판사에서 일하며 시집으로 『눈만 보다 다 알아』가 있다. 그의 흔적을 바탕으로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위안을 주는 상큼한 문장을 건네준다.
모텔을 만든 것도 어른이다/ 파는 것도 어른이고/ 모르는 척 하는 것도 어른이다/ 그런데/ 왜?!/ 우리한테만 뭐라고 해 -<왜> 부분
안연옥은 《작가마당》으로 등단했으며 <연우당> 대표이다. <공주문협> 회장을 역임했으며 <이별 통보>, <사람의 생각> 등을 발표했다. 지역 사회의 후배들을 다독거리는 통 큰 대모 역할을 하는 중이다.
아마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문틈으로 정원을 들여다보니 작년 여름에 있었던 킴 노키 애나멜 수국이/ 누렇게 퇴색되어 있고 소래 포구 바람은 수국 옆에서 엉거주춤 넋인 양/ 흔들리고 있었다. - <이별 통보> 부분
이재복(작고문인)은 대전 보문고 교장을 34년 간 역임했다. 유고 시집『꽃밭』과 유고산문집 『어느 그리움에 취한 나비일러뇨』가 있다. ‘성과 속’ ‘세간과 출세간’이 모두 하나라는 법을 설파했다. 김영호 평론가는 예민하게 공명할 줄 아는 감수성의 생래적 시인이라고 평했다.
나는 보살 안에 사는도다/ 보살은 산이요/ 나는 작은 돌이로다/ 돌에도 꽃은 피는도다/ 꽃은 보이지 않고/ 향기 그윽이 들리는도다/ 보살은 내 가장 안에 사는도다. - <보살상> 전문
임헌도(작고시인)는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75년 단국대 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예총 공주 지부장 및 공주문인협회 지부장을 역임했으며 『문장원론』,『조선시대 한문소설』등의 저서가 있다. 연륜에 걸맞은 문장의 깊이를 기록하고 있다.
천선대 구름 속에서 신선을 찾아가니/ 선인은 간데 업소 동천이 그윽한데/ 송풍은 거문고요, 단풍님은 무류(舞溜)로다 -<천선대에서> 전문
박희선은 1923년 논산 출생으로 전북대 교수를 역임했다. 시집『동백』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새앙쥐와 우표』『혼자 가는 계절』 등 4권을 간행했다. 사물의 그늘 속에서 삶을 연결시키고 있다.
대적광전(大寂光殿)/ 오래 기두렸던/ 달이나 떠오를 양이면/ 체온이 스민/ 돌 하나를 남기고/ 멀리 떠나는/ 그윽한 새벽이어라 - 《지비(紙碑)》전문
성배순은 《경인일보》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푸른 시인상>, <삶의 문학상>, <웅진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세상의 마루에서』,『어미의 붉은 꽃잎을 찢고』,『아무르 호랑이를 찾아서』와 동화집『세종 호수공원』등이 있다. 그의 치열성은 일상의 감성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시적 모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명수 시인은 그가 탈모성적인 시대의 야만성을 일깨우는 문장까지 이르고 있다고 평하였다.
이것 좀 보세요! 풀잎 닮은 새끼 여치/ 쓰다듬다 주인은 그만 다리 하나를 부러뜨렸다./ 이쁜 것은 그저 바라다보아야만 하는 것을/ 왜 깜빡 잊었을까? 이를 어쩌나! -<시인과 농부> 부분
손경선은 보령 출생으로 충남대 의대 출신의 의사 시인으로 《시와 정신》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손경선 내과> 원장이다. <웅진문학상>을 수상했고 시집『외마디 경전』이 있다. 삶의 양 극단을 하나로 동일화시킬 수 있는 문장을 구사한다.
둘째 딸 호주로 유학 보냈다/ 거기서 결혼해/ 마찬가지로 잘 살고 있다// 자식 낳아서/ 교육 시키고/ 배필을 찾아주었으니// 다 이루었다// 저녁 해거름/ 적막이 속삭이는 한 마디// 다 잃었다 -<다 이루었다> 부분
양애경은 충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신춘문예 <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으로 등단하였고 공주영상정보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냈다. 시집으로 『사랑의 예감』,『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내가 암늑대라면』,『바닥이 나를 받아주네』.『맛을 보다』가 있다. 천륜을 담담히 그려낸 그의 시에서 모더니즘의 깊이를 실감케 하니 이것이 시적 행간의 깊이이다.
이젠 마트에 함께 갈 수 없게 된 엄마가/ 자꾸만 말린다/ 얘야, 가지 마/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면 안 돼/ 무거운 건 안 된다니까?/ 엄마 내겐/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무거워요 -<짐> 부분
엄기창은 공주 출생으로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정훈문학상>, <대전문학상>, <호승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서울의 천둥』『가슴에 묻은 이름』등을 출간했다. 삶의 그늘에서 시적 행간을 찾아낸다.
지워져서 더욱 빛나는/ 관음상 입가의 미소처럼// 나도 눈보라에 녹아서/ 돌로 나무로 바람으로 지워지면/ 갈매기 소리 알아듣는 귀가 열릴까// 겨울바다는 비어서 깨끗하다/ 비어서 버릴 것이 없다 -<향일암에서> 부분
유병학은 문학박사이며 공주교대 교수를 역임했다. 《심상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공주문협》 지부장을 역임했다. 시집 『문 하나 사이』,『오늘이라는 선물을』,『사랑하며 행복하며』등과 수필집『네들의 등불이 되어』외 4권을 출간했다. 공주의 후학들을 다독이며 깊은 문장을 생산하고 있다.
오늘도 변함없이 흐른다/ 아시아를 호령하던/ 백제의 전설을 싣고서// 어서 하루 빨리 옛 기상을 되찾아/ 나라사랑으로 키우라고/ 금강은 소리 없이 일깨운다 -<금강을 보며> 부분
유병환은 서산 태생으로 공주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했다. 시집 『혼자 선 나무』등을 출간했으며 『구운몽의 사상적 실상』으로 구운몽의 권위자로 불리운다. 문장의 마디에 그늘이 있으며 깊은 시적 문장과 삶의 애상을 근거로 한 운율을 지니고 있다.
이제는 풀들도 쓰러지는 때/ 이제는 흙덩이도 돌아눕는 때/ 이제는 강물도 가라앉는 때/ 이제는 별들도 눈을 감는 때// 헐벗은 사랑들 허기진 자리/ 술마저 주저앉아 울고 있는 때 -<사연> 전문
유준화는 1947년 공주 출생으로 2003년 《불교문학》으로 등단했다. 《공주문학》지부장을 역임했으며 <충남시인협회> 시인상과 <충남문인협회> 작품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초저녁 빗소리 울안에 서성이는 밤』,『네가 웃으면 나도 웃는다』,『어린 왕자가 준 초록색 공』을 발간했다. 서정시의 문장을 완성시키는 섬세한 시어가 독자들의 심금을 이끌어낸다.
싸릿개비 채반으로 가을 하늘에 아내가 물질을 한다/ 싸릿개비 채반에 반달의 치어들이 가득 잡혔다/ 봄부터 가을까지 뜬 반달을 쏙 빼닮은 그놈들/ 땀방울과 눈물을 몇 종지나 흘렸을까 - <호박고지> 부분
윤강원은 명지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하고 1974년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대유공업전문대학 교수. 시집으로 『객토』가 있다. 관념과 구체성을 꿰뚫는 문장을 구사한다.
아득한 영혼의 밑바닥까지/ 그대 밀어 보내는/ 황홀한 바다/ 두려운 생애의 꿈 덩어리였어/ 처음부터/ 나는 떨고 있었고/ 비로소 나는 시작하고 있었어 -<초연(初戀)> 부분
윤석산은 공주교대를 졸업하고 한양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를 받았으며 제주대 명예교수이다. 《시문학》등단 이후 『아시아의 풀꽃』,『전철 안 홍해』,『절개지』,『나는 지금도 운전 중』등을 발간했으며 이론서『화자시학』외 6권을 발간했고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했다. 삶과 사물을 소통시키는 문장을 구사한다.
꽃을 버린 빈손과 허전하게 남은 온기,/ 그것은 꽃도 아니다. 꽃과 빈손의 거리/ 팽팽하게 떨려오는 자유, 그게 비로소 꽃이 아닐까/ -<남상 籃觴>부분
이극래는 논산 출생이며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국제펜클럽> 충남지회장, <한국문인협회> 복지위원을 역임했다. <한국 불교문학상> 운영위원장. <월간문학상> <탄리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하나 둘』,『대기실에서』,수필집『마음의 문을 열고』가 있다. 후배들의 어려움을 넉넉하게 다독이는 시인이다.
한 떨기 꽃망울/ 영겁으로 다루어// 저승에 묻지 못한 마음/ 돌 위에 피어나고// 이름 없는 그 이름// 꽃그늘로 길게 늘이어/ 바람도 가만 눈을 감는다 -<무명용사 비> 전문
이병연은 공주 출생으로 공주대 국어교육과와 대학원 졸업했다. 국어교사로 일했으며 2021년 현재 이인중학교 교장이다. 《시 세계》로 등단하여 시집 『꽃이 보이는 날』『적막은 새로운 길을 낸다』를 발간했다. 늦깎이로 등단하여 폭풍집필 중이다.
함께 했던 시간을 불러내자/ 잠시 머뭇거리지도 않고/ 꽃단장하고 나와/ 네가 기다리는 장소로/ 이끌고 가서는/ 그동안 웃을 일이 없었던 것처럼/ 끊임없이 웃게 만드는 것이다 -<방문> 부분
이은봉은 숭실대에서 문학박사를 받았고 광주대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충남시인협회>회장을 지냈으며 <유심문학상> <한국카돌릭문학상> <송수권문학상> <김달진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좋은 세상』,『생활』,『봄바람, 은여우』,『걸레 옷을 입은 구름』등과 평론집『시의 깊이, 정신의 깊이』,『실사구시의 시학』등을 출간했다. 지역사회의 민중문학을 이끌면서 실천적 문학운동 각종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재봉틀 소리/ 재봉틀 소리/ 반장 언니 신경질 팍 터지는 소리/ 재봉틀 소리// 이 뜨거운 용광로/ 타는 불 가운데/ 복덕이의 손가락은/ 손가락인가 가죽인가 기계인가/ 째지는 팝송가락/ 여기여기, 문자의 한숨소리/ 한숨인가, 소음인가, 바람인가// 재봉틀 소리/ 재봉틀 소리/ 주임언니 목청 딱 부러지는 소리/ 재봉틀 소리 -<부설학교 · 소리> 전문
이헌석은 《시와 인식》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갈채의 숲』,『네가 시인이라 하니』등이 있으며 <오늘의 문학사>를 운영하며 지역 문화에 헌신하는 중이다.
얼마나 더 흔들려야 지울 수 있을까/ 일주문을 들며, 나며/ 순정하게 씻어내고 싶다./ 흩어진 욕심의 그늘까지 찾아 지우며/ 길을 쓰는 바람이고 싶다 - <일주문 앞에서>부분
임강빈은 1931년 공주 출생으로 공주사대 졸업했으며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나는 왜 눈물이 없을까』,『바람 만지작거린다』,『초록빛에 기대어』,『한 다리로 서 있는 새』,『조금은 쓸쓸하고 싶다』등 13권을 상재했다.
나는 어디쯤 걸어왔을까/ 구두 한 켤레 맞추러 왔다가/ 모양도 가지가지/ 진열장의 구두를 보며/ 그 밑창에 눈길을 주며/ 걸어가는 방향은 서로 달라도/ 언젠가는 닳아 없어질 거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참 오랜만의 일이다 -<구둣방에서> 부분
장인무는 한국방송대 국문학과 졸업하고 <금강여성문학회> 회장과 <한국시인협회> 간사로 임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과 <방송대 최우수상>, <등룽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물들다』가 있다.
초록색 안/ 빨강/ 단단한 껍질/ 달콤한 속살// 칼 끝/ 쩍 벌어진 수박// 씨앗속 씨앗// 검은 씨앗 씹다가/ 문득/ 깨달은 진실// 세상의 어미는 모두 씨앗 -<수박> 전문
전병철은 공주사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으며 《삶의 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그래도 밥은 꼭 먹는다』와 역사서『팔만대장경도 모르면 빨래판이다』가 있다. 전교조 교사로 시국의 아픔과 현실의 간극을 메우는 문장들을 생산했다.
달도 오그라드는 금강 너머 강 건너/ 미루나무 몇 그루 다소곳이 서있고/ 가을은 코스모스 코끝에 매달려 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바람뿐인 긴긴 세월/ 이제는 쉽게 안아도 되는 사랑이고 싶다 -<그리움> 부분
정연용은 영명고와 공주교대를 나와 《대전일보》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집『달빛 사랑』,『인생길 옆 주막집』,『찻잔의 행복』동화집『숲속의 눈물』동시집『해바라기와 할머니』를 출간했다. <한밭아동문학상> <한국인터넷문학상> <충남문학대상>을 수상했으며 착하고 헌신적인 문장을 만들고 있다.
맛도 보지 않고 / 유통기한 지났다고/ 버려지는 음식물/ 아까워 버릴 수 없어/ 먹고 죽으면 때깔도 좋다고/ 인생 유통기한 되어가는/ 내가 먹는다 -<유통기한> 전문
정용기는 금성여고 교사 출신으로 2001년 《심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하현달을 보다』,『도화역과 도원역 사이』,『어쨌거나 다음 생에는』이 있다. 탄탄하고 완벽한 시적 구성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매듭을 잘 조이고 섶을 여며도/ 조금씩 조금씩 새어나오는 어둠/ 처방전도 없는 어둠이 에워싼 버스의 창에 갇혀/ 골똘하게 집으로 가네// 룰루랄라룰루랄라/ 넥타이가 내 목을 매고 퇴근을 하네 -「넥타이」부분
조재훈은 서산에서 성장하여 공주사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를 받았다. 공주대 교수를 지냈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역임했다. 시집 『겨울의 꿈』,『저문 날 빈 들의 노래』,『물로 또는 불로』,『오두막 황제』등과 연구서 『한국시가의 통시적 연구』『한국 현대시의 숲과 나무』를 발간했으며 『소리와 의미』등의 역서와 『조재훈 문학선집,1-4권』이 있다.
그가 보여주는 자기성찰적 문장의 깊이는 여타 작가들과 결이 다르다. 유한자 속성을 지닌 사물의 한계를 넘어 인간의 오랜 사상적 지층을 재생산하는 귀중한 존재로 거듭난다.
엄동설한에도 바위마다 타오르던/ 뜨겁던 산, 나무마다 골짝마다/ 촛불을 켜던 산,/ 지금은 혼도 쫓기었나/ 바람 가득찬 빈 산을/ 빈손으로 홀로 넘나니/ 호남 벌판을 헤매는/ 억울한 혼백이여/ 이 작은 통곡 어디에다 뿌리랴/ 어디에다 뿌리랴/ 골짜기마다 불어난 물이/ 저 두고 온 삼남을 적신다면/ 부드럽게 적신다면/ 아, 그런 새벽이 온다면 -<계룡산을 넘으며> 부분
최은숙은 한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봉황중, 공주여중 등에서 근무했으며 시집『집 비운 사이』, 산문집『세상에서 네가 제일 멋있다고 말해주자』,『미안 네가 천사인 줄 몰랐어』,『성깔 있는 나무』를 발간하고 『열세 살 내 인생의 첫 고전 노자』,『열세 살 내 인생의 첫 고전 장자』를 썼다. 엮은 책으로『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시』,『내일부터 빡공』등이 있다. 그의 산문 이 검인정 교과서 4종에 수록되어 있으며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진흙 같은 문집을 생산하는 중이다.
입원한 어머니 속옷 챙기러 친정에 갔는데/ 집 비운 사이/ 산고양이 내려와 몸 풀었던지/ 마루 귀퉁이에 새끼 고양이 두 마리/ 곰실거리고 있다/ 곤한 해산을 지켰던 것일까/ 마루 앞까지 다가와/ 까치발 세운 건 강아지풀/ 던져 둔 땔감나무에 돋아난 버섯과/ 펌프 우물가의 푸른 이끼며/ 삭아 내리는 것만 같은 삶 어디에/ 생명의 씨톨 깃들었던 것일까/ 처마 아래 삼줄 드리운 빗소리/눈물이 난다 -<집 비운 사이> 전문
최원규는 1933년 공주 출생으로 《자유문학》으로 등단하고 <충남도문화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겨울가곡』,『비속에서』,『불타는 밤』등이 있다. 시적 행간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문장들을 생산했다. 문장의 행간에서 그늘의 깊이가 보인다.
그대 미소가 보이지 않는 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잎새에 가려있기 때문이리/ 그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바람 속에 묻혀있기 때문이리/ 아 두고 온 얼굴을 찾아/ 하늘로 솟구치는 몸부림/ 그대 가슴에 뚫린 빈 항아리에/ 담고 담는 반복이리 -<달> 부분
한상각은 공주사대 국문과와 경희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공주사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충남문인협회> 지회장 및 <백제문화연구소> 소장을 운영했다. 시집으로 『타인의 얼굴』『강둑에 이는 바람』이 있으며 문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깊이를 떠올린다.
거기는/ 비// 우중충한 날씨가/ 마음마저 어둡게 한다// 가을비!/ 비에 젖는 텅 빈 가슴// 그저 추억에 매달려/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을 낚는다 -<가을비> 부분
황우진은 공주 출생이며 《창조문학》으로 등단했다. <웅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장막을 벗고』,『시화를 펼치다』를 발간했으며 웅장한 문장을 구사한다.
늠름하여라/ 창대히 펼쳐진 민족의 기상이여/ 팔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억조창생의 가슴 조각조각 새겨진/ 무궁화 꽃잎이 한 잎 한 잎/ 삼천리강토를 적시며 피어나고 있구나 -<무궁화> 부분
마무리하며
채록과 첨삭 수정의 과정에서 수록 여부에 대한 ‘선택의 고뇌’에 시달렸음을 고백한다. 공주의 시인 숫자는 넘쳤으나 지면과 시간, 재주가 빠듯하여 문장들의 경계를 맞추는데 신산의 노력을 기울였음도 밝힌다. 본의 아니게 누락된 시인에게는 장차 다른 지면에서 촘촘한 소개를 약속드린다. 그리고 이 문장들이 장차 공주의 문학 계보를 파악하는데 꼭 필요한 기록으로 남기를 기대한다. 난세를 함께 살아온 동반자들이여, 사연에 대한 부박한 밝힘이 벗들의 궤적에 누가 되지 않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절 공주의 소설가
이 글에서 다룰 소설가는 총 11명으로 비교적 적은 숫자이다. 그나마 조동길, 강병철, 김홍정, 손영미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출향작가이다. 소개하는 명단은 유금호, 최상규, 김상렬, 심규식, 이은식, 오대석, 김홍정, 손영미, 강병철 순인데 연령대를 감안했음을 밝힌다. 시인의 짧은 연보와 작품집 그리고 특정 작품 한편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형식이 될 것이다.
유금호는 전남 고흥 출생으로 공주대 국어교육과와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목포대 교수를 역임했다. 1964년 소설 <하늘을 색칠하라>가 《서울신문》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장편 『아아, 바람이 분다』,『내 사랑 풍장』, 『만적 1,2』, 단편집 『새를 위하여』, 『하늘을 색칠하라』,『허공중에서』, 『배꽃 이파리 하나』『한 마리 나의 작은 꿩』등을 출간했으며 <수요문학회>동인이다. <한국 소설문학상> <펜 문학상>을 수상했다.
마라의 눈길이 허정의 시선을 따라 강 언덕 쪽을 향하다가 나무 밑동을 움켜쥐고 있는 매영의 모습에 멈추었다. 그 곁에 소예가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서 있었다.
“사내와 계집의 인연이란 질기고 질긴 것이다. 피해갈 수도 벗어나갈 수도 없는 게 사내와 계집의 인연……훗날에라도 인연이 되면…….”
“혹시 사내아이로 태어나거든……마라, 너와 소예가 아이의 스승이 되어 주거라.”
허정이 고개를 들어 언덕 위쪽 인마 속을 천천히 움직여 사라져가는 백마를 찾아 머물렀다.
-『만적』에서
그의 소설 문장에는 현란한 장인의식이 보인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실패한 쿠데타’로 굳어버린 만적의 자유에 대한 꿈과 처절한 의지도 보인다. 피투성이 사내의 시신 앞에서 손가락 끝에 불을 붙이는 여자 금소예의 원시적 사랑이 현란하다. 산문의식이 고갈된 작금의 인터넷 시국에 특히 유금호의 역사소설 『만적』이 우물처럼 뿌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한껏 꽃 피운 문장과 함께 시대를 초월한 애절함에 젖을 것이다.
최상규는 연세대를 졸업했으며 공주교대 교수를 역임했다. 《문학예술》로 등단했으며 <현대문학신인상> <대한민국문학상> <박영준문학상> <조연현문학상> <대전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겨울잠행』,『나방과 거품』,『포인트』,『새벽기행』, 번역서『현대소설의 이론』,『단편소설의 이론』,『소설의 수사학』,『시학』등이 있다.
다시 얼마가 지난 뒤 기호가 아내의 부축을 받아 억지로 문밖에 나가 서서 폐허가 된 논밭을 둘러보며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을 때, 천둥산을 올라간 사람들은 용마루가 바로 머리 위에 올려다 보이는 골짜기에 멈춰 서 있었다. 거기 그들의 발 아래 아무렇게나 파헤쳐놓은 용마루의 돌과 흙이 간밤의 비로 사태가 되어 쏟아져 내려쌓인 무더기 속에서 병주 노인의 반백의 뒤통수와 기수의 속이 빈 바짓가랑이가 삐어져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곤(乾坤)』에서-
특히 그의 소설 『새벽기행』은 바로 내 안의 투쟁이요, 분신의 출현이다. 어차피 삶은 항상 결핍과 회한의 연속이며 주체가 불가능한 꿈이다. 이때 분신의 출현은 그 불가능을 회복시키는 동시에 시간으로부터 일탈의 계기가 된다. 이 주체 탐색의 종결점은 허상으로부터의 복귀가 된다. 이와 같이 그는 끊임없는 실험정신으로 소설 문장을 만들어간다.
김상렬은 1947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7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소설 <소리의 덫>이 당선되었다. 주로 역사와 현실의식이 짙은 사실주의 바탕에 개인의 감성적 성찰을 접목시키는 경향으로 창작활동을 이어왔다. <독서신문>과 <한국문학>, <민족문화추진회> 등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공주 마곡사 근처에서 시(詩)에 몰두하고 있다. 작품집으로는『붉은 달』,『달아난 말』,『카르마』,『그리운 쪽빛』, 『온 겨레가 읽는 백범일지』,『사랑과 혁명』,『따뜻한 사람』등이 있다. <채만식문학상>과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회의하며 내 얼굴 위로 자연스럽게 겹쳐 떠오르는 또 다른 얼굴 하나, 애봉이었다. 그녀의 눈물 흐르는 소리, 고통의 신음이 귓가에 쟁쟁하였다. 아, 너는 지금 황량한 세상 어디를 별처럼 홀로 헤매고 있느냐? 살았는가, 죽었는가, 만약 너마저 저주받은 저 세상의 별로 사라졌다면, 나는 과연 아픔으로 어떻게 제대로 숨 쉬며 버텨갈 수 있을 것이냐!
어디 한번 속 시원히 대답 좀 해봐.
나는 차창에 어리는 애봉이를 향해 속으로 울부짖었다.
- 『지상의 별』에서
그는 70년대에 출발한 작가로서 우리 소설이 노출하고 있는 취약점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과제로 삼았다. 당대 소설이 지닌 소재주의와 민중의 맹목적 우상화, 표면적 사회 현상에 대한 지나친 집착, 흑백 논리적 차원의 도식적 비판과 같은 단세포적 조망을 비판한 작가이다. 그의 소설 「객사」역시 새로운 대립과 모순의 양상을 찾아낸 작품이다. 주로 역사와 현실의식이 짙은 사실주의 바탕에 개인의 감성적 성찰을 접목시키는 경향으로 창작활동에 임한 작가이다. 공주 지역사회에서도 그의 소설을 조망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심규식은 공주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문예사조》와 《청구문화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창작집『그곳에 이르는 길』,『돌아와요 부산항에』,『사로잡힌 영혼』,『우리 시대의 영감님』『내 말다듬이의 말 더듬기(공저)』그리고 대하소설 『망이 망소이』와 수상록『낭만의 에뜨랑제 세상을 향해 나아가다』가 있다.
저놈이 명학소 장사 망이다.
짱똘이를 절구통으로 후려친 놈이다.
군졸과 관노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완연했다. 그 틈을 타 망이가 훌쩍 몸을 솟구쳐 말에 올라앉으며 고함을 쳤다.
“이놈들 비키지 못할까?”
망이는 말을 몰아 앞을 가로막고 있는 관노와 군졸들을 돌파하고 포위망을 벗어났다. 그는 질풍처럼 한길을 달리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다 봤다. 더 이상 그를 뒤쫓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망이 망소이 1권』에서
『망이 망소이』는 고려 명종 5년(1175년) 천민들의 차별과 억압에 대항하여 ‘명학소의 난’을 일으킨 형제들의 사연이다. 소설은 고려 중엽 봉건 계급사회의 부조리와 차별을 체험하면서 횃불을 들고 투쟁하는 대장정의 스토리이다. 소설의 후반부 공주 점령을 위한 싸움 장면은 1000년 전 공주를 실감나게 복원하면서 이상향 건설을 위한 신념과 맞물려 소설적 가치를 배가시킨다.
작가는 오랜 세월 고뇌하며 ‘차별과 억압이 없는 대동 세상’이라는 이상적 세계를 정리해냈다. 이는 역사 속의 망이 망소이가 간직했던 간절한 소망인 동시에 작가의 인간 세상에 대한 사상과 태도이다. 특히 계층과 지역에 걸맞은 적절한 언어구사와 당대 풍속의 재현은 경탄을 자아낸다.
조동길은 논산에서 태어나 공주에서 중·고교와 대학을 졸업 후 고려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공주대 교수를 역임했다. 고교 시절 <토요문학회> 회원이었다가 공주사대에 진학해 <수요문학회> 제 5집에 처음 소설을 발표했다. 모교인 공주사대 교수가 되어 소설을 가르치면서 긴 세월 소설연구와 창작을 병행했다. <충남문학발전 작품 대상> <충남도문학상> <황조근조훈장>을 수상했다. <충남문협> 사무국장, <공주문협> 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작가회의> <한국교수작가회의> 회원이다. 소설집 『어둠을 깨다』『쥐뿔』『달걀로 바위치기』발간, 전공서적으로『한국 현대 장편 소설 연구』『현대문학의 이해』『우리 소설 속의 여성들』을 발간하고 산문집『낯선 길에 부는 바람』이 있다.
“아직도 진경씨에게 나쁜 감정 있어?”
“천만에 혹 있었다고 해도 이 마당엔 다 잊고 버려야지.”
“고마워. 그이는 경호 씨에게 늘 채무자처럼 주눅 들어 있었어. 사실은 그이 잘못이 아니라 모두 내 탓인데 말이야.”
“이제 그런 걸 따져 뭣해? 다 지난 일인걸.”
“맞아. 경호 씨 그 말 듣고 이제 그이도 편안히 잘들 수 있을 거야.”
그 사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강 위엔 유명한 공주의 그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암곰이 강 건너로 떠나가는 남자를 애절하게 부르짖으며 그 새끼들과 함께 빠져죽었다는 고마나루 근처를 휘휘 감돌면서 승천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밤새 잠자던 소나무의 잎들도 막 깨어나 부스스 눈을 떴다.
- 『고마별곡』에서
조동길에게 있어 한국 사회는 근심과 사유의 배경이다. 군부 독재 시대는 차치하고라도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정치 풍토, 물질만능주의와 인간성의 상실 등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가 여전히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부조리의 시국에 작가 혼자 심도 있는 문제의식으로 접근하는 그의 글이 소중하다. 조동길 소설의 미덕은 개인의 삶을 위협하는 일상적 폭력 요소들에 대한 근원적인 탐색을 통해 현대사회를 비판하면서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사유를 드러내는데 있다.
이은식은 정안에서 태어나 공주사대부고와 한남대를 졸업했다.《삶의 문학》동인으로 1987년 소설집 『땅거미』를 발행했다. 당대의 가장 진보적인 소설로 6.25전쟁의 어두운 과거사의 조명과 통일을 갈망하는 내용이다.
갑자기 대문 밖이 시끌해졌고, 상여를 메고 나섰던 상두꾼들이 하나 둘씩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리 급혀두 단추구멍이나 바루 꾀구 나올 노릇이지. 그랴, 갸운허냐?”
서까래를 집어넣던 사내가 딴전을 피우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그 아무리 궁짜들었어두 성님허구 구멍동서 맺을 생각 읎으닝께 엠헌 걱정 말유.”
난데없는 사내의 너스레에 처음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청년은 뒤늦게 말뜻을 알아차리고 사내의 말을 도막치며 술통 마개를 열었다. 주전자가 넘치도록 술을 따라 가득 붓자마자 바쁘게 술잔들이 오갔다.
-「빈들의 소리 1」에서
그는 민중소설의 선구자였다. 80년대 초반 『삶의 문학』등 무크지 운동을 주도하였고 반포면 공암리 농민들을 취재하면서 최초의 농민 공동창작시 「옹매듭두 풀구유」를 끌어내었다. 그는 이데올로그와 농민 노동자 교육현장의 실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을 썼다. 그의 소설집 『땅거미』는 80년대의 엄혹한 시국 상황을 극복하면서 6.25 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은바 있다.
오대석은 유구 출신으로 공주사대를 졸업했고 서울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퇴임했다. 《월간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삼류작가의 비좁은 서재』,『서울함의 봄』,『교장 선생님과 아이들의 반란』,『마스코트』,『존재의 그늘』등이 있다.
그렇다면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에 새로운 사정이 생겼단 말인가! 난 바보 같이 알겠다는 말을 남기고 교문을 나왔다. 기껏 불쾌함을 표시한다는 것이 최대한 퉁명스런 표정으로 출입문을 꽝하고 메다붙인 정도였다.
오늘 면접결과를 심 장학사에게 알려주기로 한 게 생각나서 근처의 다방으로 들어갔다. 변두리 다방답게 적당히 실내장식이 천박하였고, 종업원의 옷차림이며 마담인 듯 보이는 여자의 한복 매무새도 어설펐다. 겨울인데도 눅눅한 습기가 콧속을 자극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중국무술영화가 한껏 볼륨을 높인 채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속물』에서-
사실주의나 자연주의기법은 현실에서 허구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허구를 현실에 녹여냄으로써 소설이 완성된다. 동시에 주인공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서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서 욕망 그 자체를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생존 형태로 끌어내려서 바로 민초들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욕망의 보편화와 절망, 어쩌면 그것은 오대석이 만들어내는 소설의 궁극적 목표일 것이며 필연으로 사건들을 옭아매는 가장 강력한 매개물인 것이다.
안학수는 어릴 적 척추에 장애를 입었던 동화작가이다. 금세공을 배워 세공사로 일하다가 1993년 《대전일보》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동시집 『박하사탕 한 봉지』, 『낙지네 개흙 잔치』, 『부슬비 내리던 장날』, 소설집『하늘까지 75센티미터』가 있다.
어린 시절 첫 기억이 엄마가 자신을 업고 차가운 물속으로 걸어가 죽으려 하는 것이었다면 얼마만큼 힘이 든 세파였을까? 수나는 어린 시절 뒷집 형이 먹을 감자를 먹었다는 이유로 걷어차인 뒤 심하게 앓게 되었고 그 뒤 곱추가 되었다. 곱추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리에 힘이 생기지 않아 걷지를 못하고 누워있게만 되었다.
어려운 형편에도 엄마는 수나를 낫게 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시골에서 대천으로 이사를 온 뒤 부모님은 힘겹게 일을 하셨고, 수나는 늘 혼자 갑갑하게 집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수나의 장애로 인하여 집주인 부부 외에도 동네 아이들에게 수나는 놀림거리가 되었다. -『하늘에서 75센티』에서
주인공이 사고로 다친 척추로 세상을 원망하며 숨어 살게 된다는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하지만 자신이 몸이 가져다 준 불행의 크기가 그렇게 큰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소중한 가족들의 품에서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새롭게 적응하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일단 많이 슬퍼한다. 그리고 작가의 이슬처럼 맑은 영혼을 만나게 됨을 기뻐한다. 고통 받는 만큼 성숙해 진다는 말처럼 상처받은 만큼 성숙해 지는 주인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김홍정은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계간지《문학사랑》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충남작가회의>와 <유역문학회>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중이다. 소설집으로『창천이야기』,『그 겨울의 외출』,『호서극장』, 장편 소설 『의자왕 살해사건』등과 역사문화 기행서인 『이제는 금강이다』가 있다. 대하소설 『금강(전 10권)』은 혼탁했던 조선사회인 16-17세기를 그린 내용이다.
수련은 배에 앉아 쏟아지는 햇살을 마주보고 앉는다. 배는 서해로 향한다. 흐드러지게 핀 강둑의 갈대꽃들이 흰 눈송이처럼 반짝인다. 붉은 노을이 출렁이는 금강을 멀리서부터 물들이며 다가온다. 이제 해는 저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될 것이다. 불꽃이 튄다. 세상은 온통 불속으로 빠져든다. 금강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불을 바라보며 소원을 빈다. 뱃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두 손을 모으고 절한다.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는 불덩이 속에서 양지수가 있고, 창 대장군이 있다. 그리고 한산사에 모신 그 숱한 대장군들이 하나하나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금강은 그렇게 활활 타오르고 있다.
-『금강 10권』에서
대하소설 『금강』은 홍산을 배경으로 한 이몽학의 정의로운 싸움을 담고 있다. 작가는 그 현장을 드러내기 위해 『조선실록』등의 역사 기록들을 더듬으며 현장에 배어있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널리 수집하였다. 그가 보여준 세계는 기록에 갇힌 그것이 아니라 기록을 바탕으로 기록을 뛰어넘는 민중의 강물 같은 삶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벽초의 『임꺽정』이 청석골의 임꺽정을 중심으로 한 사내들의 이야기라 한다면, 『금강』은 장사치 판의 상인들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려는 여성들의 내밀한 서사다. ‘연향 ·부용 · 미금 · 수련 · 영은’ 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민중의 힘이 그러하다. 난국을 헤쳐 나가는 여성들의 모상과 지혜가 여기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조재훈 시인은 그를 야생마 같은 작가라고 표현했다.
손영미는 《월간 신인》으로 등단하고 <웅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백제궁녀 연부겸』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 스토리에 당선되었다. 작품집으로 『아직도 미혹』이 있다.
밤, 잠자리에 누우니 창문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 빛을 타고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우가 오려나, 소연은 홀린 듯 마을로 향하는 길목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건 탱글탱글 여문 밤송이가 툭툭 떨어져 내리는 소리였다.
모진 비바람을 견뎌낸 산밤나무, 소연은 쪼그리고 앉아 밤송이를 뒤적여보았다. 밤은 스스로의 부피와 욕망을 이기지 못해 쩍쩍 갈라지며 세상 밖으로 나오려 애쓰고 있었다. 소연은 벌어진 밤송이를 이리저리 굴려보며 문득, 아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울가 숲에서는 늦반딧불이가 하나, 둘, 여린 빛을 뿜으며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 <소안 가는 길>에서
그는 서정적인 문체로 마음을 울리며 등장인물 모두가 따뜻하고 애틋하다. 그래서 독자들은 탐독과정에서 배경과 인물이 일체감을 느끼기도 한다. 글의 구성을 마치려고 서두르지 않으면서 설득시키는 마력이 있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오래도록 작품의 풍경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강병철은 숭전대 국문학과와 공주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대전·충남작가회의>와 <충남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소설집으로『비늘눈』,『엄마의 장롱』,『초뻬이는 죽었다』,『나팔꽃』, 성장소설『닭니』,『꽃 피는 부지깽이』,『토메이토와 포테이토』를 발간하였다. 시집 『유년일기』,『하이에나는 썩은 고기를 찾는다』,『꽃이 눈물이다』,『호모중딩사피엔스』,『사랑해요 바보몽땅』그리고 산문집『선생님 울지 마세요』,『쓰뭉 선생의 좌충우돌기』『우리들의 일그러진 성적표』등을 발간하였다.
나는 갯바람 쐬러 휑 나와버렸다. 억새풀들이 달빛을 부여안고 우우 흔들리고 있었다. 웬일일까? 민수도 천수만 염판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네가 시인이 되면 내가 이다바하는 짜장면 집에 놀러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허리끈만 만지작거리며 갯바람을 쐬는 중이었다. 초록빛 바다가 꽁꽁 얼고 있었다.
울지 말아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슬픔 속에서 더 단단해지는 조역돌이 되고 싶었다. 개나리 울타리 밑으로 민들레 새순들이 뽀드득뽀드득 굳은 땅을 헤집고 있었다. 내일부터 우리는 6학년이 될 것이다.
-『닭니』에서-
성장 소설 『닭니』의 마지막 장면이다. 기실 위의 작가가 지금 이 글을 쓰는 필자이므로 평론을 생략하고 도종환 시인의 발문으로 대신한다.
강병철의 『닭니』는 정겨운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이 넘치고, 배를 곯아도 흙 묻은 손으로 잡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옵니다.// 이 책은 드러내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렇게 흙 향기 묻어 있는 알토란 같은 이야기를 써 놓고도 자랑하거나 떠벌이지 않고 장승처럼 서서 벙긋이 웃는 작가 강병철의 질박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 그러나 서정적인 문체에 감겨 더욱 애잔하고 풍요로운 이 이야기를 단숨에 읽고 난 뒤 아직까진 나는 ‘슬픔에 더 단단해지는 조약돌이 되고 싶어’ 하던 강철이의 첫사랑 연화가 그 뒤에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시인 도종환)
마무리하며
이상으로 11명의 작가들을 소개하였다. 전체적으로 공주에 거주하는 작가와 출향 작가로 나뉘며 공주에서 학교를 졸업했거나 교편을 잡은 작가들도 있으며 더러는 작고문인도 있다. 소설가의 명단이 유독 부족한 시점에서 지역 사회의 작가들을 조명하는 진한 토로의 장이 필요함을 절박하게 느낀다. 짧은 지면상 이번에는 여기에서 그치고 세부적으로 소개하는 작업은 다음 공간으로 기약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아직 드러나지 않은 젊은 작가들을 밝히는 과정이 가장 필요한 작업이 될 것임을 주장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