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이것이 울트라 스포츠 카! 메르세데스-AMG SL 63 4MATIC+
조회수 1,0552023. 10. 2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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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을 살아온 벤츠 SL이 AMG 밑에서 근육질의 스포츠카로 변신했다.
메르세데스-AMG SL 63 4MATIC+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메르세데스-벤츠에서 SL이라고 하면 오랜 기간 라인업에서 살아남고 있는 것과 동시에 2인승이라는 독특함을 고집하는(물론 4인승도 있었다) 자동차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SL이라고 하면 추억을 어느 정도 겸하고 있는 모델이다. 알고 지내던 어떤 분이 어느 날 '근사한 차가 필요하다'면서 중고 SL(R230)을 구매했던 것이다. 출시된 지 8년 정도 지난 후에 중고로 구매한 것이었지만, 그때는 꽤 멋있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충격적이었던 것이 바로 지붕이 금속으로 된 하드톱이었다. 벤츠 내에서는 SLK가 먼저 한 것이지만, SL의 그것은 자세가 달랐다. 지붕을 닫으면 완벽한 쿠페의 형태가 되었고, 열면 근사한 컨버터블이 되었다. 지붕 길이나 기울어진 형상 때문에 하드톱이 어정쩡한 자세를 만든다고 느껴지는 차들도 있었는데, 벤츠는 태생부터 자세가 달랐던 것이다. 그렇게 만들었으니 오랜 세월을 이렇게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메르세데스-AMG SL 63 4MATIC+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그 SL이 이번에 다시 소프트톱으로, 4인승 모델로 돌아온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그런데 이제 그 SL을 벤츠가 아니라 AMG에서 만든다고 하니 살짝 의문도 들긴 하지만, 그 정도면 달리기 성능만큼은 제대로 챙기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도 들었다. 그리고 이제 눈앞에 8기통 엔진을 탑재한 벤츠 SL, 아니지 이제는 메르세데스-AMG가 된 SL이 서 있다. 세세한 디자인이나 자세가 조금 다르긴 해도 과거의 SL(R129)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 살짝 든다.
메르세데스-AMG SL 63 4MATIC+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AMG가 만들었다는 증거
신형 SL은 보자마자 벤츠가 아니라 AMG가 만들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단순히 세로 슬릿이 들어간 '파나메리카나 그릴'을 사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헤드램프도 역삼각형의 형태로 날카롭게 다듬었고, 차체를 따라 흐르는 라인도 잘 보면 우아함보다 날카로움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앞 범퍼 하단을 장식하는 거대한 에어 인테이크와 Z 윙도 그런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그릴에는 벤츠 엠블럼이 있지만, 보닛 끝부분에는 AMG의 엠블럼을 새긴 것도 독특하다.
제일 큰 변화는 바로 소프트톱이다. 아마도 자동차의 무게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 같지만, 생각 외로 따뜻한 느낌을 준다. 센터페시아의 터치스크린을 통해 작동시키면(원터치가 아니라 작동하는 내내 누르고 있어야 한다는 게 함정이다), 약 15초 정도면 완전히 열거나 닫을 수 있다. 트렁크 리드에는 가변 리어 윙이 있는데, 작동 각도가 꽤 크기 때문에 뒷바퀴를 확실히 지면에 눌러줄 수 있을 것 같다. 네 개의 머플러 홀은 여전히 아름답다.
소프트톱을 적용한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내는 4인승으로 다듬어졌다. 단, 뒷좌석은 키 150cm 이하의 사람만 앉을 수 있을 정도다. 사실상 앞 좌석을 눕히는 공간을 마련하거나 가방 등 간단한 짐을 적재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할 것이다. 앞 좌석은 버킷 시트 형태로 근사하게 만들어졌고, 붉은색의 나파 가죽이 고급스러움을 자랑한다. 물론 차체 색상에 따라 다른 색의 실내를 선택할 수도 있다.
메르세데스-AMG SL 63 4MATIC+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계기판은 보자마자 AMG의 그래픽이라고 알 수 있다. 아무리 디지털이라고 해도 속도계에 최고속력 시속 360km를 새길 필요가 있겠는가. 그 정도로 주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시다. 스티어링 휠도 하단에 주행모드 변경 다이얼을 적용해 AMG의 것이라고 알린다. 센터페시아를 장식하는 대형 스크린은 다양한 기능을 품고 있는데, 각도 조정이 되기 때문에 드라이빙 포지션이나 햇빛의 각도에 따라 조정해서 사용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AMG SL 63 4MATIC+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날카로운 달리기 성능! 그런데 여유는?
자, 이제 본격적으로 달려볼 차례다. SL은 몇 개의 엔진 라인업을 갖고 있지만, 시승차는 AMG의 엔지니어가 정성을 들여 매만진 8기통 트윈 터보 엔진을 탑재하고 9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네 바퀴를 굴린다. 처음에는 스펙을 잘 몰랐는데, 스티어링 휠을 돌려보고 바로 사륜구동 자동차라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8기통 엔진은 이제는 소중한 존재가 됐다. 앞으로의 AMG는 하이브리드 체계로 갈 것이니 이 엔진이 사라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가속 페달에 서서히 힘을 주면, 그만큼 묵직한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AMG이니 당연히 소리에도 신경을 썼을 것이지만, 왠지 모르게 반갑다. 그리고 엔진이 회전하는 중에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것 같은 '그릉그릉~'하는 소리도 좋다. 아마도 8기통 엔진 아니라면 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느껴지는 막강한 토크와 엔진 회전이 올라가는 숫자에 따라 따라오는 막강한 출력은 SL의 차체를 그대로 앞으로 쏘아 버린다.
그 힘을 받아주는 차체는 그야말로 완벽을 추구한다. 애초에 벤츠가 아니라 AMG가 처음부터 제작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알루미늄과 강철에 마그네슘, 탄소섬유 등을 치밀하게 조합해서 그런지 엄청나게 탄탄하다. 나중에 설명서를 읽어보니, 기존 AMG GTC(컨버터블 모델)와 비교해도 비틀림 강성 50%, 굽힘 강성 40%가 향상됐다고 한다. 이 정도면 오히려 어떻게 운전해야 차체가 비틀릴지 의심이 될 정도다.
메르세데스-AMG SL 63 4MATIC+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그러니까 간단히 이야기하면, 신형 SL은 '지붕을 열 수 있으며 완벽을 추구하는 스포츠카'가 되어 있다. 시승 장소가 일반도로니 한계까지 밀어붙일 수는 없었지만, SL을 서킷으로 가져간다면 현재 스포츠카라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자동차들은 그 앞에서 나가떨어지고 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빠른 것도 그렇지만, 출력이 네 바퀴에 빈틈없이 전달되는 과정, 그리고 코너링 시 느껴지는 마치 기차 레일을 타는 것 같은 감각도 그런 생각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SL이 좋다고 느낄 수 있다. 만약 이전 SL에 대한 경험이 없다면, 이 신형 메르세데스-AMG SL을 타고 '스포츠카 잘 만들었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기억하는 SL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분명히 직선을 똑바로 달릴 수 있고 스포츠 주행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렇게 달릴 수 있지만, 그렇게 운전에 힘을 주지 않고 여유 있게 조작해도 풍성한 느낌으로 운전자와 탑승객을 포용해 줄 수 있는 그런 자동차였다.
메르세데스-AMG SL 63 4MATIC+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그러니까 퇴근할 때 슈트 상의 단추를 모두 풀고, 넥타이도 풀은 후에 셔츠 단추도 2~3개 정도는 풀고 바지를 조이는 벨트도 약간 느슨하게 만든 후 운전석에 앉아 여유를 즐기며 달려도 괜찮은 자동차가 이전까지의 SL이었다. 그런데 이 AMG SL은 그런 여유가 없다. 레이스용 슈트까지 입을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 입고 있는 슈트를 느슨하게 풀고 운전한다거나 하는 그런 여유는 전혀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물론 AMG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나의 차대를 갖고 SL도, AMG GT도 만들어야 하니 AMG GT는 완전히 레이스용 자동차로 전환하고, 그 레이스의 뼈대, 그리고 소재를 갖고서 럭셔리를 구현한 게 SL로 정해졌을 것이다. 레이스에서 럭셔리가 됐다는 것으로 이야기한다면, 1세대 모델인 300 SL이 이 시대에 와 컨버터블로 훌륭하게 부활했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SL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방법으로써 최선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SL의 방향 전환이 아쉽다. 기억 속의 SL은 이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것이다. 마치 어느 날부터 몸을 건강하게 만들겠다며 닭가슴살과 브로콜리만 먹더니, 1년 후 온몸이 '파이터 바키'에 등장하는 '한마 유지로' 못지않은 근육질로 변모한 지인을 만난 것 같다. 그것도 바늘 하나 들어갈 틈새도 없을 것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그래서 이제 평범하게 SL이라고는 못 부르겠다. 반드시 AMG SL이라고 강조할 필요가 있겠지.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705×1915×1365mm
휠베이스 2700mm | 공차중량 1970kg
엔진형식 V8 터보, 가솔린 | 배기량 3982cc
최고출력 585ps | 최대토크 81.5kg·m
변속기 9단 자동 | 구동방식 AWD
0→시속 100km 3.6초 | 최고속력 시속 315km
연비 6.3km/ℓ | 가격 2억336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