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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손창현
치자 빛으로 물든 노을. 또 하루와의 작별이다. 뜨겁던 태양은 오늘도 수많은 사연을 품은 채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위어간다.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하루의 신비다. 오늘은 꽁무니에 뽀얀 먼지를 매단 트럭 한 대가 아득한 주홍빛 바닷속으로 빠져들 듯 사라져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바람만 스치고 가는 언덕배기에 서서 바라본 풍경은 쉬이 발길을 놓아주지 않는다.
어머니는 목화 장수였다. 내 고향 창녕에는 목화를 재배하는 집이 많아 어머니는 목화가 나올 때마다 조금씩 사 모아 솜으로 탔다. 솜을 여러 개의 보따리로 차곡차곡 꾸린 후 지나가는 트럭을 세워 운임이 결정되면 짐을 싣고 떠났다. 정류장에서 어머니가 가실 때까지 함께 기다렸다. 실어줄 마땅한 차가 없어서 못 가실 때면 나는 차라리 좋았다. 철없는 생각이었지만 서너 달은 어머니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싫었던 탓이었다.
어머니를 태운 트럭이 흙먼지만 남긴 채 사라지면 터덜터덜 힘 빠진 발걸음을 무겁게 돌려야 했다. 마음을 달래보려고 발부리에 걸리는 애꿎은 돌멩이를 힘껏 차보았지만 발길질당한 돌멩이는 오히려 작은 내 가슴에 묵직이 돌아왔다. 텅 빈 집으로 들어가기 싫어 논둑길을 지나 언덕으로 향했다. 넓은 들판을 건너온 석양은 발갛게 타오르다 까맣게 지칠 때까지 나를 위로해주었다.
내가 겨우 첫돌을 지났을 무렵부터 어머니는 장사를 시작하셨다. 동구 밖 세상도 제대로 모를 만큼 어렸던 나였지만 강원도의 웬만한 지명은 알게 되었으니. 춘천, 원주, 양양, 속초, 강릉, 주문진. 어머니는 나를 업고 머리에는 솜을 인 채 강원도 구석구석 발품을 파셨다. 추운 겨울 빙판에 미끄러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는 골병이라는 훈장을 얻었고, 많이 업혀 다닌 나는 지금까지 팔자걸음을 걷게 되었다.
어머니는 솜만 파시는 게 아니었다. 홑청에 솜을 넣어 밤새도록 바느질을 하면 동이 틀 무렵 고운 이불이 생겨났다. 솜값과 바느질삯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으니 당신의 고생쯤이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당신 등에 붙어 새근거리는 아이의 숨결은 생면부지의 타지에서 어머니를 견디게 한 힘이었고 희망이었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어머니를 따라다닐 수 없게 되었다. 장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엄마의 편지만 손꼽아 기다렸다. 편지를 받아들면 그날부터 무작정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보름이 걸릴지 한 달이 지나야 할지 제대로 가늠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약속된 날짜는 없었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늘 해 질 무렵. 먼 길을 오셔야 하니 아무래도 저녁때나 되어서야 도착하실 것이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정류장이 보이는 낮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하루도 빠짐없이 오르던 언덕에는 내 발길에 반질반질 다져진 길이 생겨났다. 들쑥날쑥 시간을 지키지 않는 마지막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쳐버리면 어둠 속 길은 공허함만 가득했다. 어쩌다 막차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추는 날에는 움츠렸던 몸을 세워 정류장으로 내달렸다. 기다리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순간, 어린 가슴은 소금 인형처럼 녹아내렸다. 바람에 등 떠밀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노을만 붉게 타고 있었다. 내 눈은 노을보다 더 붉었다.
어머니는 하필이면 그 멀고 추운 강원도에서 장사하셨을까. 세상사 조금 알아갈 즈음 어머니께 여쭈었다. 강원도는 추워서 목화 재배가 잘 안 된다고 했다. 따뜻한 남쪽인 우리 고향에서 목화가 많이 생산되었으니 장사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단다. 거리가 멀었어도 당신의 상술만큼은 그 시절 누구보다 앞섰던 것은 아니었을까.
목화는 황백색 꽃이 피고 난 후 다래라는 열매를 맺는다. 친구들과 산이나 들로 뛰어다니던 시절. 먹을 것이 없던 그때 목화 다래는 간식거리였다. 떨떠름하면서도 달큼한 맛이었다. 다래가 익어서 벌어지면 섬유질인 솜이 비로소 터져 나온다. 잎은 바싹 말라 생명을 다했어도 눈부시게 피어나는 하얀 목화. 살아서 한 번, 죽어서 또 한 번의 꽃을 피운다는 목화의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그 목화처럼 살아오셨던 어머니. 손이 부르트도록 솜을 타고 이불을 만들어 당신보다 더 큰 등짐을 지셨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따뜻한 이불로 우리 가족을 포근히 덮어주었다.
요양원 창 너머로 청보리가 일렁거린다. 이맘때쯤이면 어릴 적 내 고향에는 목화가 푸르게 자랐다. 푸른 목화처럼 젊은 어머니는 당신의 청춘이 없었다. 하얀 목화가 된 어머니 얼굴에는 거룩한 주름이 새겨졌다. 지금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또 다른 이별을 맞이하고 있다. 장사를 떠나던 그날의 서러운 이별이 아니라 돌아올 기약 없는 영원한 작별을 준비한다. 어머니의 손에서 점점 온기가 빠져나가고 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고단했던 어머니를 홀로 누이고 집으로 가는 길. 차를 멈추고 올려다본 하늘. 지난날 내 어린 마음을 물들였던 저녁노을도 저 빛깔이었다. 붉게 쏟아지는 석양 아래 어머니를 기다리던 소년이 마을 언덕에 우두커니 서 있다. 붉은 얼굴을 감싸고 달래주는 노을 속에 어머니의 미소가 보인다.
첫댓글 이 작품이 주는 잔잔하고 아련한 감동이 노을처럼 아름답고 쓸쓸해서 올렸습니다,
'발길질 당한 돌멩이는 오히려 작은 내 가슴에 묵직이 돌아왔다.'
기다림과 이별의 아픔이 담담하게 그려진 한 폭의 그림같은 이미지로 다가왔기에....
저도 무척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내공이 대단하셔요
노을빛이 짙은 글에 한참을 머물러 있었습니다. 진솔함이 필력에 깊숙히 배어있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로사님, 그곳은 요즘 어떤가요. 여전히 산책으로 나날을?
자주 건너오세요.
@이복희 이복희선생님, 이제사 글을 읽었어요...
여기 토론토는 여전히 사정이 안좋아요
하루에 온타리오 주에서만 4백명이 넘는 위험한 상태이지요
모두가 갈팡질팡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가을은 아는지 모르는지 단픙옷을 입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디기오고 있어요...
모두들 건강 잘 지키시기를 바래요...
목화의 꽃말이 참 적절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그런 것이지요.
처연한 심정을 담담히 묘사하여 더 감동을 줍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글이네요.
여운이 남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