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청구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 할매
청승스런 얼굴과 둔탁한 음성으로
구시렁구시렁거리면서 오만간섭 다한다
지청구
까닭 없이 남을 탓하고 원망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같은 말로는 ‘꾸지람’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대부분이 잘 모르는 생소한 단어이기도 하다.
특히 ‘지청구’란 말은 조선 인조 때 정승이던 지천(遲川) 최명길이 명분을 중시하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많이 받은 데서 유래된 말이라고 전해진다.
지청구 한 바가지
내일 생일이다.
어제 고기 먹었는데 내일 또 먹을 것이냐고 왕이 묻는다.
묻기 전 얼굴살이 빠졌다고 입산을 적당히 하라고 하여 고기를 자주 먹으면 찌지 않겠느냐고 하였더니 뭔가 끌어 오르는지 대뜸 신경질이다.
본인 생일 때는 뭐 하나 챙겨주지도 않으면서 꼭꼭 챙겨 먹으려고 한다며 고릿적 시절 일들을 끄집어 낸다.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질 않지만 이럴 때는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 상책이라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더니 이번엔 거들지 않는다고 또 지청구 한 바가지 쏟아붓는다.
참 비위 맞추기 어렵다.
어묵국 한 국자 뜨러 일어나며 에고! 소리 했더니 그 소리 했다고 또 따발총이다.
외식하자고 한 마디 꺼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여기저기 알아보고는 괜한 신경질이다.
아침 일찍 입산이나 하고 들어와 어제 남긴 돼지고기 구워 소주 한 병 곁들이곤 생일상 때우려고 하였더니 내일도 비 소식이다.
이놈의 비는 왜 그리 자주 내려 입산도 못하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비가 오는 것인지 안 오는 것인지 하루 종일 가랑비 몇 방울 내리다가 멈추고 또 내리길 반복한다.
성당 후배 교통사고로 요추 추간판탈출증 수술을 하였다고 하여 병원에 들여다본다.
지난 주일 성당 봉사활동 나와 허리를 부여잡고 다리가 저린다고 하여 보나 마나 요추 3-4번 내지 5-6번 추간판탈출증이 의심되어 얼른 입원치료하라고 권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추간판탈출증 수술을 하였단다.
병원에 들어서니 환자들로 꽉꽉 들어찬 예전과 달리 텅텅 비었다.
6인용 병실에 둘이 드러눕고는 땡이다.
다른 병실도 힐끔힐끔 바라보니 사정은 마찬가지로 병원에도 불경기가 들이닥친 모양이다.
돈이 흥청거려야 병원도 다닐 터인데 경기가 좋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을 터다.
잠시 기다려 PT(물리치료) 받고 온 후배 만나 근황을 물어보니 다리 저림이 사라졌다며 내일 퇴원한다니 다행이다.
기원 쾌유 한자로 휘갈겨 쓴 금일봉 전달하고 대전으로 향한다.
왕이 뭘 사려는가 보다.
백화점 앞에 내려주고 아파트 정원을 들여다보니 끝물인 듯 노랑붓꽃 있었다.
노랑붓꽃도 오랜만에 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이번 주 토요일 신부님과 식사하는데 참석할 것이냐고 모임 총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왕이 들었으니 아마 이번 주 토요일은 오피스텔로 나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백두산 다녀오는 동안은 지청구로부터 잠시 해방이다.
귀가하여 창문 활짝 열고 대청소 후 어제 사 온 카페 빵으로 허기를 메운다.
홍국쌀식빵도 조금 떼어먹어보니 꽤나 맛깔나다.
날이 하루 종일 우중충하고 아침부터 지청구 한 바가지 듣고 나니 마음까지 찌부둥하다.
[출처] 지청구 한 바가지|작성자 허드재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