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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4
4. 흐르는 북
최 일 남
“나가시게요?”
일당을 주고 불러온 요리 전문의 파출부와 함께, 오렌지빛 고무 장갑을 낀 채 잰걸음으로 주방 안을 헤엄쳐 다니던 며느리는, 현관 앞에서 구두를 찾고 있는 민 노인 쪽을 향해 빠르지도 처지지도 않게 말했다. 비스듬히 몸만 돌렸을 뿐, 한눈 팔다간 썰고 있는 전복의 두께가 들쭉날쭉하게 될까봐, 시선을 도마 위에 못질 해두고 입만 달싹거린 셈이었다.
“응, 좀 볼일이 있어서."
칠십 노인의 해질녘 외출에 대해, 그러나 며느리 송 여사는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암호 풀이의 명수들처럼, 아 하면 어 하는 관습에 익숙해진 터여서, 굳이 가는 데는 밝힐 것도 자상하게 수소문할 것도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전혀 감정의 높낮이가 개입되지 않은 예사스런 격식을 갖추려는 가까스로의 노력이, 피차간에 잠깐 오갔다고 보면 될 일이었다.
“조금만요."
송여사는 여전히 물기 없는 건조한 어투로, 시아버지를 후딱 묶어놓은 다음 안방으로 들어갔다. 며느리의 뜻을 아는 민 노인이, 그녀의 뒷모양을 쫓던 눈에 잔망스럽게도 웃음을 비죽이 내비치는 순간 하필이면 파출부가 자기를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른 무심한 얼굴로 되돌아갔을 때쯤, 송 여사는 나왔다.
“이거 가지고 가세요."
고무장갑을 벗은 오른손으로, 며느리는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민노인의 놀라움이 실린 겸사가 뒤따랐다.
“너무 많아. 아직 남은 돈도 있는데."
“많기는요. 오늘 밤은 나가 계시는 시간이 길 텐데요."
되도록 천천히 돌아오라는 당부를 그런 식으로 휘감는 걸 뻔히 알면서도, 민 노인은 예의바른 대꾸를 다시 보탰다.
“그래도 그렇지."
“아니에요. 잘 다녀오세요."
“알았다."
민 노인이 주머니에 돈을 받아 넣고 현관문을 밀치고 나서자마자, 안에서는 이내 두 개의 자물쇠를 제깍 제깍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저놈의 소리, 민 노인은 어제 오늘 겪은 일이 아니면서도, 벽의 한 부분인 양 자기를 축출하고는 숨소리조차 들여보내지 않을 완강한 거부의 몸짓을 보이고 있는 쇠문을 향해, 소리없이 혀를 끌끌거렸다.(자물쇠 소리는 민 노인의 가족으로부터의 소외를 보여줌.)
7층에서 바닥으로 내려가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고 내려가면서야, 민 노인은 넉넉한 마음을 회복했다. 처음엔 혼자 타는 엘리베이터가 어쩐지 이상한 공포감을 몰아오는 것 같아, 동행이 나타날 때까지 엉거주춤하게 기다렸었는데, 길들여지고 보면 혼자 탈 때가 차라리 속 편하게도 느껴졌다. 더구나 지금모양 알맞게 술을 마실 정도의 돈을 지닌 데다, 단골 포장마차에서 성규 녀석과 만나기로 한 날이 그랬다. 마치 비밀 결사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그럴까 싶은 두근거림으로, 아침에 녀석의 방에 들어가 시간과 장소를 일러주었을 때, 그는 석류의 신맛까지를 뿜어내는 하얀 이를 쪼르르 빛내며 웃었다.
“오늘 밤 손님이 온대죠."
“그렇다나 보더라. 며칠 전부터 늬 애비가 냄새를 풍기더라구."
“할아버지. 이번엔 밖에 나가시지 말고 집에서 버텨보시지 그래요."
“싫다. 그러다가 저지난 짝 나면 어쩌게."
“잠자코 계시면 되잖아요."
“왜. 나하고 따로 만나는게 싫으냐."
“무슨 말씀을요. 좋다마다요. 다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할아버지께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언짢다 이 말입니다."
“천만에다. 방구석에 처박혀 술에 젖은 혀꼬부라진 소리나, 돼지 멱따는 노래를 듣고 있으니보다야 훨씬 낫지. 밤외출을 해도 좋은 당당한 명분이 생긴 데다, 늬 에미는 군자금도 다수 쥐어줄 것이고. 흐흐."
“히히히. 아무튼 좋습니다. 마침 오늘은 강의가 8교시에도 있거든요. 끝나는 대로 곧바로 달려갈게요. ‘중역의자'로 가신댔죠? 그렇잖아도 할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고2짜리 손녀 수경이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조부와 손자의 얘기는 조금 더 이어질지 모를 일이었지만, 고것이 킁킁 코를 돌려 대며 무언가를 수소문하는 표정으로 방 안의 두 사람을 살피는 기색이어서, 민 노인은 엄숙하게 근엄함을 되찾고는 자기 거처로 돌아왔다. 등 뒤에선 오뉘의 말소리가 들렸다.
“또 무슨 비밀 협상이야?"
“요게, 어따 대고 함부로 지껄여."
“나도 다 안다구. 할아버지하고 데이트 약속했지? 못 말려. 잘 어울리는 한 쌍이겠다."
“히히. 데이트라. 너 말로는 소설도 쓰겠다. 하지만 넘겨짚지마."
엘리베이트를 내린 민 노인이 아파트의 출입구를 나오며 얼핏 쳐다 본 하늘엔, 계란 반숙을 닮은 해가 걸려 있었다. 초여름, 한낮의 시퍼런 기세에 비해서는 많이 퇴색하고 기가 죽어 있었을망정, 그렇다고 쉽게 물러가지는 않겠다는 오기로 붉은 빛마저 머금고 있었다. 그 하늘에서 내려온 눈에 무언가가 걸리적거리는 듯하여 방향을 돌리려는 사이, 잔뜩 때가 낀 것 같은, 아니면 가래가 묻어 있는 게 분명한 소리가 먼저 귀에 꽂혔다.
“영감님. 다 저녁 때 어딜 가십니까?"
아파트 경비원이었다. 본래 구부정한 어깨를 한껏 오그라뜨린 자세로 턱짓을 해오는 그에게, 민 노인은 전에 없이 미움을 뿌렸다. 시건방진 녀석. 때때로 자신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게 고마워서, 요새는 제 여편네의 월경이 그치는 바람에, 그나마 세상 사는 맛이 반감되었다는 등의 쓰잘 데 없는 푸념도 들어주고, 더러는 소주 한 병에 쥐포 쪼가리 따위를 앵겼더니, 요게 나를 막보고 덤비려 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굳혔다.
앞으로는 이것들하고는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의지를 가다듬은 탓에 자연히 입을 단단히 악문 때문이었을까. 던진 인사의 밑천만 날린 꼴이 되어 다소 머쓱해 하는 경비원을 남겨두고 걸으며, 민 노인은 비로소 시장기를 의식했다. 집안에 있는 동안 맡은 음식 냄새가, 공복을 더 재촉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으며 말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가질 자기 시간의 즐거움이, 빈 배를 어떤 쾌적함으로 채워가고도 있었다. 당초에는, 집안에 낯선 손님이 올 때마다 자리를 비워주었으면 하는 기미를 보이던 아들 내외에게, 증오를 보내기도 했다. 싸가지 없는 것들이라고 맞대놓고 욕을 퍼부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민 노인은 억하심정이, 손님 오는 날의 외출을 통해 나름대로의 기쁨과 일종의 해방감을 확인하는 것으로 바뀐 건, 그러니까 그날 밤의 사건 이후로 보는 게 옳았다. 아마 그 날의 초청객들은 고급 관리인 아들의 고향 친구들이 주축을 이룬 모양이었다. 민 노인에게는 도무지 기억의 가닥조차 거머잡을 수 없는 안면들이었으나, 그 중의 몇몇 친구는 일부러 자기 방에까지 찾아와 인사를 했다. 아버지, 저 모르시겠습니까. 경식입니다. 아버님 댁에 닭서리 하러 들어갔다가 들켜가지고, 하마터면 뼈도 못추릴 뻔한 경식이입니다. 아버지. 저는요, 아버지 북솜씨에 반해 가지고, 정읍까지 쫓아갔다가, 삼촌의 멱살에 끌려 되돌아온 춘식입니다. 어른 앞에서 아명(아이 때의 이름)을 들먹여서 죄송하오나, 어릴 때는 동춘이라고 불렀지요. 이제 아시겠습니까. 민 노인은 그들이 이제는 밥술이나 먹는 처지여서, 깜냥(스스로 일을 헤아림. 또는 헤아릴 수 있는 능력)대로 어린 시절에 매끈매끈한 기름을 처바르려 하고, 그런 심사가 발동하여, 친구 아버지마저도 자기네 기억의 징검다리로 삼으려는 건 모르지는 않았다. 더구나 자신은 북에 미쳐, 고향에 있는 기간보다는 타향을 허위적거린 동안이 길었으므로, 느닷없는 자책감에도 사로잡히면서, 대강은 아는 척을 해 주었다. 그러기로 마음만 먹는다면야 누구 못지않게 능란한 연기력을 갖춘 터여서, 어색하지 않게 응대해 주었다. 오오라. 인제야 생각난다. 네가 장난꾸러기 동춘이 녀석이구나 식으로. 그러면서 속으로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어려서 장난꾸러기 아닌 놈이 어디 있겠느냐는, 너무나 상투적이고 속 들여다보이게 과장된 농담의 난비(亂飛, 어지럽게 날아다니거나 분분함) 앞에서, 잠시 민 노인의 가슴엔 빈 바람이 스치기도 하였다. 이 눈치 저 눈치 다 때려잡을 줄 아는 그들은 하지만 되도록 즐거운 경험을 나누어 가지려고만 애쓰는 것인지, 그 말을 듣고도 허허로운 웃음을 높게높게 날렸다. 일이 터진 건 그 다음이었다. 어쩌면 더불어 늙어간다는 표현이 걸맞을지도 모르겠고 그만큼 세상 물때가 끼었다면 낀 중늙은이로서의 그들은, 허물없는 친구집 술상을 받고는 어림없는 논다니(웃음과 몸을 파는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 기질을 마구 터뜨렸다. 다른 자리에서라면 앞뒤를 가리고, 말과 행동에 한 자락씩 비닐 차일이라도 치면서, 마지막 예의는 끝끝내 움켜쥐고 있었을지 모를 터인데도, 그날 밤은 안 그랬다. 다짜고짜 서로 부자지(남성의 생식기를 이르는 말) 튕기며 놀던 어릴 적 행실들을 까먹으며, 전혀 우습지 않는 소리에도 이놈 저놈이 날개를 달아 붕붕 웃음다발을 엮어나갔다. 방 안에서 무료하게 담배만 축내고 있는 민 노인의 귀에 그것은 의미없는 잡음으로도 들리고, 퀴퀴하면서도 척 척 가슴 속에 철썩이는 고향의 뜻을 새겨주기도 했다. 엉뚱하게 일찍 간 마누라 생각이 오락가락한 것도 그때였다. 그들은 그러기로 작정이라도 한 양, 자기들의 동질성을 되일으키는 화제만을 말꼬리 이어가기 시합하듯, 고리를 이루며 뱅뱅 몰아갔다. 돼지, 오줌통, 누룽지, 깨곰보, 죽사발 등속의 옛날 별명들을 끌어내어 공을 주고받듯이 희롱하는가 하면, 지금은 쉰 살 고개를 바라보며 온몸의 기름이 밭았을 마을 처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주워섬기면서, 희나리(채 마르지 않은 장작)에 불을 당기는, 아니면 헛구역질을 해대는 사람들의 허망한 몸짓으로, 데굴데굴 한 세월 밖으로만 굴러갔다. 호경이, 고것을 비오는 날 싸릿고개에서 만났을 때 작살을 냈어야 했다든가, 진달래를 따먹다가 몰래 훔쳐본 아홉 살짜리 정란이의 오줌보가, 훗날 생각해보니 영락없는 멍게 속살의 아름다움이었다는 등, 가당찮은 후회와 필요 이상의 미화로 얼버무려졌다. 그리고는 흥건한 노래판으로, 느끼는 감정들은 오름세를 향해 치달았다. 그때였다. 차례가 되어 시답잖은 노래를 마친 녀석 하나가, 갑자기 긴급동의라는 걸 내놓았다. 우리끼리만 어울릴 게 아니라, 기왕이면 대찬이 부친을 모시고 북소리를 들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의였다. 이미 손님이 아니라 술군이 되어 버린 작자들이, 그걸 마다할 리 없었다. 그런 좌석이 갖기 마련인 변화에으 욕구도 곁들여진 탓이었겠지. 그들은 모두 박수를 치고 옳소 소리까지 내지른 끝에, 두 녀석이 사자(使者)의 자격으로 민 노인에게 달려 왔다. 집주인과 송 여사가 펄펄 뛰며 말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북을 놓은 지 오래이며, 이제는 그런 기력도 없다면서 제지했는데도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민 노인도 물론 거절했다. 북채 잡은 지가 하도 오래되어 제대로 장단을 맞출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네들 노는 데 훼방만 놓는 꼴이라고 고사했다. 그래도 그들은 듣지 않았다. 나중에는, 저엉 그러시다면 나오셔서 저희들이 올리는 술이라도 한잔 받으시라고, 우리가 이대로 돌아가면, 어르신네께서 얼마나 섭섭해 하시겠느냐는 간청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민 노인도 딴은 그렇겠다 싶었고, 그것마저 사양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믿어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서너 잔 받아 마신 후 자리를 피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이 잔 저 잔 받아 마시는 사이, 민 노인의 가슴은 서서히 덥혀지고 부풀어갔다. 마침 북으로 기우는 마음에 불을 붙이는 말도 연거푸 뒤따랐다. 오늘 밤 아버님의 명고(名鼓) 소리를 듣지 않고는, 이 집 대문을 나서지 않겠노라고 같잖은 생떼를 쓰는 녀석도 있었으며, 세상 사람들의 눈이 삐었거나 귀에 땜질을 해도 분수가 있지, 대찬이 아버님 같은 분이 어째서 인간문화재에 끼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고, 엉뚱한 투정을 부리는 친구도 생겼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민 노인의 방에서 누군가가 북을 들고 나온 건 그럴 무렵이었다. 어쩌면 꾀죄죄하다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그 북 앞에서 손님들은 잠시 숨을 죽이는 낌새였다. 결코 존경이 실린 눈빛은 아닐지라도, 한 사람의 생애가 그 북에 요약되어 있다는 걸 실측(實惻)하는 한편으로, 각자가 어린 시절에 겪은, 북가락에 미친 대찬이 아버지와 자기네들의 들은 풍월을 새김질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간해서는 북채를 잡으려하지 않는 민 노인의 결단을 쏘삭거릴(남을 자꾸 꼬드겨서 들뜨게 하다) 심산이었는지, 또는 어정쩡한 분위기를 해까닥 흩뜨려 놓으려는 심보였는지, 그러자 춘식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던 친구가, 민 노인의 망설임에 쐐기를 박았다. 아버님. 일고수 이명창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명창의 발까락 근처에도 가지 못한 놈이 감히 명창 흉내를 내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단가 하나 부르겠습니다. 북은 소리꾼이 있어야 울리는 거니까, 천하의 일고수를 위해 똥명창이 말 울음소리라도 내겠다 이겁니다. 그 말이 끝나자, 그는 앉은 자세로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아서라 세상사'로 시작되는 '편시춘(片時春, 중모리 장단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단가)'을 줄줄 뽑았다. 민 노인이 북채를 쥐고 뚝 딱 장단을 맞춘 건, 노래가 두 대목쯤으로 옮겨간 때였다. 민 노인이 성규에게 자랑해 마지않던 탱자나무 북채를 쥐기 전, 언뜻 살핀 아들의 표정은 형편없이 이그러져 있었으나, 이제는 그걸 개의할 처지가 못 되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북을 끼어보는 맛에 없던 힘이 새록새록 솟아나, 어제의 자기를 내팽개치는 기분으로 빠져들어갔다. 모두들 헤어지는 마당에서, 반드시 인사치레만은 아닌 것 같은 그들의 좋은 밤을 보냈다는 말을 듣고, 민 노인도 모처럼의 농담을 날렸다. 춘식이 이 사람아. 자네는 일고수 이명창만 알았지 암고수 숫명창이란 소리는 못 들었구만. 소리와 북은 공생공사이면서도 상생상극(화수목금토의 오행이 운행함에 있어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일과 서로 충돌하는 일)인 거여. 소리가 신통찮으면 북도 그 정도로밖에는 소리를 못 낸다 이 말이지. 자네 때문에 내 북만 망쳤네. 그러자 춘식이는 머리를 긁적이었다. 그러길래 제가 애당초 토를 달지 않았습니까. 실토하자면 제가 소리를 한 건, 명고 소리를 끌어내려는 수작이었지요. 히히. 그는 한낱 장난꾸러기의 입장으로 되돌아가, 그걸 즐거워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작 문제가 터진 건 손님들이 돌아가고 난 후였다. 아들은 민 노인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잡았다. 아버지는 왜 제 체면을 판판히 우그러뜨리냐는 게 항변의 줄거리였다. 그 녀석들은 아버지의 북소리를 꼭 듣고 싶어서 청한 것이 아니라, 그 북을 통해 자기의 면목이나 위치를 빈정대기 위해서 그러는 것임을 왜 모르느냐고, 민 노인의 괜찮은 기분을 구석으로 떠밀어 조각을 내었다. 아들 옆에서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며느리는, 차라리 더 많은 힐난을 내쏘고 있음을 민 노인은 모르지 않았다. 아들 내외는 요컨대 아버지가 그냥 보통 노인네로 머물러 있기를 바랐다.
아버지의 북이 상징하는 아버지의 허랑방탕한 한평생이, 일단은 세련된 입신(入身)으로 평가되는 아들의 내력에 중요한 흠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하라는 공부는 작파하고, 북을 메고 떠돌아다니며 아내와 자식을 모른 체한 민익태, 한때는 아편장이로 세상을 구른 민익태, 그러면서도 북은 놓지 않는 그와 아들의 단절은, 따라서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시아버지의 그런 생애와 전적으로 무관한 며느리가, 떼어 버릴 수도 없는 인연으로 맺어지고는 있을지언정, 자기를 올곧게만은 대할 수 없는 형편임을 민 노인은 이해하고 있었다. 심지어 다 늦게 아들네집을 찾아온 영감을 대하던 마누라의 눈에도, 당장은 증오가 앞섰으니까 더 할 말이 없다. 그래도 할망구가 살아 있던 시절은, 미움과 연민을 골고루 섞어가면서도 어지간히 바람막이 구실을 해 주어 견디기가 쉬웠는데, 외톨이로 남으면서는 운신하기가 수월찮았다. 그러나 아들이 결정적으로 자기의 날씬한 생활 속에서 아버지를 격리시키고자 하는 까닭은, 부담의 차원보다는 아버지를 접함으로써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는, 자신의 고통과 낭떠러지의 세월을 떠올리기 때문이 아닌가 하였다. 언젠가, 아들은 일부러 마신 듯한 술에 몸을 가누지 못하며, 민노인에게 포악스럽게 퍼부은 적이 있었다. 앞뒤가 잘 이어지지 않으면서도, 토악질하듯 내뱉는 그의 토막말(토막토막 동안을 두어 가며 하는 말)에는, 누르고 다져온, 비수를 머금은 원망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아버지. 왜 돌아오셨습니까. 제가 어머니와 양키 담배를 골라낸 꿀꿀이죽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있을 때, 아버지는 어디서 무얼 하셨습니까. 모리배(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사람이나 그런 무리들)들의 술자리에서 북 쳐주고 받은 돈으로, 그리고 제가 신문 배달을 해서 얻은 돈으로 겨우 겨우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아버지는 또 어디서 무얼 하시고 계셨습니까. 시골의 3류 극장에서 소리꾼들의 장단을 맞추고 있었습니까. 좋습니다. 다 좋습니다. 아버지가 돈을 못 번다 한들, 또 수족을 못 써 자리보전을 하고 있다 한들, 저는 상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할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재산을 아버지 말씀대로 예술을 한답시고 다 날린 것도 따지지 않겠습니다. 다만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있었으면 됐던 겁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아버지 자신도 피눈물 나는 고생이 있었을 테고, 그만큼 할 말도 많으실 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마지막 염치가, 우리 모자 앞에 나타나는 걸 주저하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점도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끝끝내 제 앞에 현신하지 말아야 옳았습니다. 그래가지고, 막말로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어머니는 가슴을 쥐어뜯고 저는 땅을 치며, 왜 아버지는 우리를 찾지 않아 이런 비극을 겪게 하는가 하는 후회와 원망으로 몸부림치도록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마침내 나타나셨습니다. 그랬으면 너에게 효도할 기회를 주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시고 싶겠지요. 아닙니다. 그건 안됩니다. 아니 노력을 해도 잘 안 됩니다. 흥, 그러면 또 말씀하시고 싶겠지요. 내 존재가 네 출세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로 걸리적거리기 때문이 아니냐고, 맞습니다. 부인하지 않습니다. 제 출신을 아는 사람들 중에는 한량광대라고는 해도, 필경은 떠돌이 광대에 불과한 민익태 자식치고는 꽤 올라갔다고, 경멸인지 칭찬인지 모를 소리를 하고 다니는 작자도 있습니다. 그것 저것을 모르고, 자수성가한 노력파라며 괄목상대해 주는 사람도 물론 많구요. 그러니까 너는 그와 같은 평판을 유지해 가고자 뿌리를 감추려는 거냐고 또 말씀하시겠지요. 그 짐작도 맞습니다. 민주주의네 평등주의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오히려 가면 갈수록 가문을 캐는 우스운 풍토니까요.(사회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이 담김.)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려서, 제가 아버지와 거리를 두려 하고 겸연쩍게 여기는 건, 반드시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닙니다. 제 아내가 제 입장보다 한 술 더 뜨는 것은, 여자에게 있을 수 있는 심리적 허영이라 치고, 제가 아버지를 마음 깊숙이 받아드릴 수 없는 건 바로 저 북 때문입니다.
아들의 긴 푸념과 부대끼는 감정을 목격하고 난 민 노인이 이대목에서 감당하기 힘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분노와 허망함을 가가스로 다스리며 '내가 죄인이여'를 되뇐 끝에, 제의했었다. 그러면 저 북을 없애면 될 것 아니냐고. 전혀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다. 그런데 아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닙니다. 북은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저 북이 아버지와 저를 어떻게 슬픔으로 갈라세웠으며, 저 북을 대하면서 제가 얼마만큼 제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가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도, 북은 제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잔인하게 들리실지 모르나, 북을 없앤 이후의 아버지가 허깨비로 사신다 한들, 저에게 큰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부탁드리고 싶은 건, 아버지가 제 앞에서 다시 말하면 우리 가족의 면전에서는 북장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그냥 아버지로 남아 있으면 됩니다. 그래가지고, 어느 날인가는 어렸을 적의 제가, 너무나 허기져 눈앞이 가물가물한 가운데서도, 그렇게 간절하게 휘어잡으려고 애썼던 아버지의 모습을 되찾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설혹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는대도 도리없는 일이구요.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민 노인은 집안에 손님을 모시기로 한 날이면,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다시는 북채를 쥐는 '사건'이 나지 않겠지만, 혹시를 몰라서였고, 아들 내외나 자신도 그런 내력에 길들여져 갔다. 민 노인으로서는 되레 그게 홀까분하기도 했고.
포장마차 '중역의자'는 조금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텅 비어 있었다. 성규도 아직 오지 않았다. 민 노인이 사장이라고 부르는 주인은, 그릇을 챙기다 말고 아는 체를 했다.
“회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 사이 미양(微恙, 가벼운 병)에라도 걸리셨습니까?"
자기 말대로라면, 훈장질을 하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목이 잘렸다는 그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말보다 웃음을 앞세웠다. 쉰은 넘어 뵈는데도 당자는 아직 사십 줄이라고 우기며, 파직된 후, 안 해본 사업이 없었다고 언제나 화제가 걸판졌다.
“문자 모르는 놈은 서러워서 못살겠군. 누가 훈장 출신 아니랄까봐 그러우. 김 사장은 그게 탈야. 사람은 처지가 바뀌면서 말도 달라져야 한다구."
“누가 아니랍니까. 민 회장님같이 허물없는 분에게나 던지는 문자지요."
주인은 물어보지도 않고 소주병과 안주 한 접시를 민 노인 앞으로 밀어놓았다.
“회장을 너무 무시하는군. 홍합 몇 점으로 어떻게 소주 한 병을 다 비우나. 조금 있으면 약속한 술친구 한 사람이 더 올 건데."
“그래요오? 손자 청년. 그 젊은이도 요새는 코빼기도 볼 수 없더군요."
“손자가 되었건 맹자가 되었건, 오늘은 안주 한 접시 더 놓으시오. 돼지갈비를 굽는 게 좋겠소."
“그러지요. 우리야 다다익선으로 많이 팔면 되니까."
민 노인이 술 두 잔쯤 비웠을 무렵 성규는 포장을 들치고 들어섰다.
“아저씨. 항상 느끼는 건데요. 옥호(가게나 술집의 이름)가 중역의자일 바엔 나무 걸상 대신 안락 의자를 갖다 놓으면 좋지 않을까요. 서민 대중들에게 중역이 된 기분을 충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장안의 화제가 될 겁니다. 버스를 내려 걸어오는 동안, 섬광처럼 떠오른 아이디어라구요."
녀석은 민 노인에게 일별을 던지고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한 바탕 너스레를 폈다.
“충고는 고마운데 그 생각은 나로서는 구문(이미 들은 소문이나 이야기)이야. 처음엔 나도 고물 소파나 회전의자를 마련할까도 했지. 허나 수지타산이 안 맞아."
“왜요?"
“우선 포장마차의 기본 개념인 기동성을 살리는 데 불편하기 짝이 없고, 손님들의 출입이 신속해야 하는데, 폭신한 맛에 일단 앉았다 하면 엿가락처럼 떠날 줄을 모를 것 아닌가베."
“대신 매상이 오를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요. 이 장사는 택시기사들이 기본 요금에 다소의 우수리(일정한 수나 수량에 차고 남는 수나 수량)가 붙은 거리를 좋아하는 이치와 비슷하거든. 손님의 회전이 빠른 쪽이, 죽치고 앉아 시간을 이죽거리느니보다 장사로서는 훨씬 낫지."
“딴은 그렇기도 하겠네요."
민 노인은 잔소리 말고 술이나 마시라는 시늉의, 조금은 거친 손놀림으로 성규의 잔에 소주를 콸콸 부었다. 누가 보면 할아버지가 손자의 잔에 술을 따르는 모양이 이상스럽게 비칠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두 사람의, 적어도 이 포장마차 속의 관계는 그렇지가 않았다. 처음엔 두 손으로 잔을 공손히 감싸쥐고 몸을 돌려 단숨에 잔을 비우던 성규도 요즘은 자기 친구와의 술자리 못지 않게 예사로운 몸짓으로 잔을 받고 건네었다. 민 노인이 그렇게 습관을 들였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아, 그렇게 거북해 할 양이면, 나나 너나 무슨 술맛이 나겠느냐. 노소동락(늙은이와 젊은이가 함께 즐김)이란 말도 있는데 할애비와 손자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도, 신시대의 풍류라면 풍류 아니겠느냐며 성규를 편하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게 예술가를 할애비로 둔 덕이라고 어설픈 희롱으로 성규를 웃겼다. 민 노인은 성규를 무척 좋아했다. 그렇다고 손자가 자기의 평생을 제대로 양해하거나 자기 마음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올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피차가 제 것으로 단단히 틀어쥐고 있는 감정의 무늬랄지 경험의 바탕이 다른 것 외에, 당장의 생활이 그걸 방해하고 있음을 모르지도 않았다. 다만 누가 자기 옆에 있어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형편이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성규는 아주 적격이었다.
할아버지한테서는 이조 시대의 노인네게서나 맡을 수 있음직한, 조선 간장의 퀴퀴한 냄새가 난다고 톡톡 쏘기는 할망정, 이쁘기야 수경이란 년이 나았다. 그러다가도 마음이 내키면, 할아버지는 왜 오빠만 예뻐하느냐며 알록달록한 사탕 한 움큼으로 아양을 질질 흘릴 때의 수경이는 마치 자기 같은 시들은 호박덩굴의 끄트머리에 매달린, 앙증맞은 애호박의 싱싱함으로 비쳤다. 그것은 그년 말대로, 조선 간장의 갈색과 찝찝함으로만 도배질한 자기 생애의 종장을, 어떤 때는 흐뭇하게 어떤 때는 또 한번의 진한 뉘우침으로도 연결시켰다. (조선간장은 천대를 받으며 전전했던 민 노인의 어두운 삶을 의미한다. 이 단락은 고수로서 명성을 얻지 못한 채 방황했던 민 노인의 삶에 대한 회의가 나타나 있으며, 민 노인은 뒤늦게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성규는 이쁘다는 것의 다른 측면을 깨우치게 해 주었다. 자기 얘기의 청중 자리를 잘 지켜주는 것만도 다행스러운데, 그 알량한 얘기를 차곡차곡 쟁이려고(물건을 차곡차곡 포개어 쌓아두다), 어린 녀석이 노상 마음을 비워두는 게 기특했다. 민 노인이 허튼 소리를 하다가도, 이래서는 안 되지 하고 스스로 제동을 거는 것도, 성규가 자기에게 쉽사리 빨려드는 데 대한 두려움의 확인에 다름 아니었다. (성규가 민 노인의 삶의 궤적을 밟으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타남) 녀석이 탈춤반에 들어간 것도, 알고 보면 민 노인의 영향으로 돌리는 며느리의 흰눈질에 접한 다음부터는 더욱 그랬다. 그래도 민 노인은 몸에 붙은 끼를 버리기가 힘들었다. 술이 어지간히 들어가면, 왕년의 고향 사람들 손가락질쯤은 발길에 툭툭 채이는 돌멩이쯤으로 여기고, 이리저리 싸다니면서 겪은 행적들을 솔솔 풀어 먹었다.
“너 지난번에 만난다던 처녀허고는 그 뒤 어떻게 됐냐."
한동안 입을 봉하고 부지런히 잔만 비우던 민 노인이, 웬만큼 술배가 채워졌다 싶자 먼저 운을 떼었다.
“걔 말이죠. 그저 그래요."
“그게 무슨 뜻이냐. 포기했다는 말로 들린다."
“포기라기보다도, 그동안 제가 딴 일로 바빴거든요."
“그 처녀에 대한 생각을 아주 버린 건 아니란 말이지."
“그런 셈이에요."
“젊은 녀석이 어찌 그리 대답이 시원찮느냐."
“제가 어쨌게요."
“아니면 아니다. 기면 기다. 사내대장부가 맺고 끊는 데가 있어야지."
“에이 할아버지두. 그전이나 지금이나 그냥 친구로 지낼 뿐인데요 뭐."
“임마."
“네."
“내가 지난번에 일러준 말 잊지 않았지. 북을 치면서 소리하는 사람에게 책잡히지 않고 일고수 소리를 들을랴거든, 상대가 아무리 명창이라도 내 무르팍 밑에 그 소리를 꽉 잡아넣어야 한다고."
“와아. 할아버지의 인생 철학 제1조 또 나왔다."
“이 녀석아. 허풍 그만 떨고 잘 들어둬. 그 이치야말로 세상 만사에 다 통하느니라. 남녀관계도 마찬가지야. 네가 듣기에, 그럼 할아버지는 그 이치에 얼마나 충실했소 이러고 싶겠지. 하나, 나는 바담풍 할지언정 너는 바람풍 하라는 게 웃 사람의 심사인게야."
“오늘은 할아버지가 재미없는 얘기만 하신다."
“고리타분하다 이 말이지."
“그게 아니라요. 이치라는 것에 대해서는, 학교나 집안에서 너무 많이 들었다 이거지요."
“그럼 날더러 실지 문제를 가르치라 이거냐. 시대도 다르거니와, 그런 건 네가 내 선생뻘인데."
민 노인은 언제나 그랬지만, 손자와의 이런 자잘고롬한 티격태격이 괜찮아, 일부러 성규의 화를 돋구는 식으로 몰고 가는 수도 있었다. 꽤 능글맞은 녀석은, 그래도 이리저리 빠져 나가되, 할아버지의 아픈 구석을 한번도 건드리지 않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갈등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한가운데로 덤벼들지는 않고, 끝내 국외자로 맴돌면서도 민 노인의 숨은 후견인 노릇을 제법 잘 해내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지혜도 갖고 있었다.
“그건 그렇구요. 할아버지."
두 번째 손님 셋이, 한꺼번에 포장을 제치고 들어오는 걸 곁눈질로 맞으며 성규는 말소리를 낮췄다.
“부탁이 있어요."
“뭔데."
민 노인은 덤덤하게 받았다.
“다음 주 토요일 오후, 우리 써클 아이들이 봉산 탈춤 발표회를 갖기로 했거든요. 학교 축제의 하나예요."
“그런데?"
민 노인의 물음에는, 그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북장단을 맡아주셨으면 하구요."
“뭐라구? 그건 나와 번짓수가 달라. 해 본 적두 없구."
“한두 번만 맞춰보시면 될 건데요."
“연습까지 하고? 아서라. 더구나 늬 애비가 알면 큰일난다."
“염려 마세요. 저하고 비밀만 지키면 되잖아요. 애들한테도 다 말해 놨구, 지도 교수의 하락두 받았다구요."
“임마, 그건 너희들끼리 해도 되잖아. 나까지 끌어내지 않아도."
“나는 무대나 안방에만 앉아봤지. 넓은 마당에서는 북을 쳐 본 경험도 없어."
“그게 그거 아닙니까. 말을 안 꺼냈다면 몰라도, 이제 와서 제 체면도 좀 봐주셔야죠."
“이 녀석들 보게. 애비는 애비대로 내 북 때문에 제 체면이 깎인다는 판에, 자식은 또 북으로 체면을 세워달라니 무슨 조화 속인지 어지럽다."
“아버지와 저와는 생각이 다르니까요."
“그 말도 못 알아듣겠다."
“설명하자면 길구요. 이번 일은 꼭 해 주셔야겠습니다. 이런 말씀드리기는 뭣하지만, 제 딴에는 모처럼 할아버지께서 신바람 내실 기회를 드리자는 의미도 있습니다."
“얼씨구. 이 녀석 봐라."
일단 손자에게 타박을 덮어씌우기는 했을망정, 성규가 말하는 신바람이라는 말이 민 노인의 가슴 복판을 쿡 찌르고 달아났다. 꼭 신명이 솟구쳐서만 북 앞에 앉는 건 아니었다. 뱃가죽 속에 꽉 쩔어 있는 북가락이 마침내는 신 바람을 일으키는 것인지, 신바람이 예상되는 자리를 얻기만 하면, 드디어 북가락이 저절로 곬을 타고 흐르는 것인지는 자신도 분명치가 않았다. 어느 쪽이 선후라기보다는, 대강은 두 가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찾아오는 것인데, 북만 잡으면 없던 힘이 느닷없이 뼈마디를 간지럽히는 형태로 나타나는 건 사실이었다(민 노인의 북과의 뗄 수 없는 운명과 열정을 보여줌). 그렇다 치더라도, 북이 주역도 아닌 생소한 장소에 나간다는 게 꺼림직했으며, 아이들 노는 데 늙은이가 흰쌀의 뉘처럼 섞인다는 것도 좋은 모양이 아닐 것 같았다. 이런 망설임을 훤히 꿰뚫어 보듯, 성규는 슬슬 민 노인을 구슬렀다. 실실 웃으며,
“단역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물론 춤이 주이기는 하지만, 할아버지 말씀대로 그 녀석들의 춤을 할아버지의 무릎 밑에 꽉 잡아넣으면 판이 더욱 어울릴 것 아닙니까."
“너 나를 무시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않다구요. 하지만 할아버지의 예술을 모독할 생각은 없습니다. 연출자로서의 제 욕심입니다."
“네가 연출자냐?"
“히히, 부끄럽습니다. 목중의 하나로 나가기도 하구요."
“북만 가지고 장단을 맞추는 건 아니잖니."
“물론이지요. 북 말고도 장구, 꽹과리, 피리 등 여섯 가지 악기가 동원되지만요, 할아버지가 떡 버티고 앉아, 노상 말씀하시는 강약 약강의 뜻을 잘 터득한 북으로, 그것들을 끌고가면서 휘어잡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남의 북으로는 못 친다."
민 노인은 어느새 성규의 설득에 기울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이게 아닌데 싶었다. 성규는 그 틈새로 비집고 들어왔다. 집안에 있는 북을 밖으로 내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민 노인의 걱정을 곧 간파한 것이다.
“염려 마세요. 제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도록, 감쪽같이 학교로 모셔다 놓겠습니다."
“글세다. 잘하는 짓인지 못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전 할아버지의 그런 태도가 싫습니다. 사람마다 할 일이 있고, 할아버지의 할 일은 북을 치는 겁니다. 저는 할아버지의 표정인 북이 울릴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 안에서 곰팡이가 슬어가는 걸 볼 때마다 안타깝기 짝이 없다구요. 아시겠어요?"
금방 히히 웃던 것과는 달리, 성규의 눈빛에 차가운 광채가 일었다. 술기운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볼에는 신선한 취기가 번져 있었다. 민 노인은 녀석의 어깨를, 당장은 별반 의미가 곁들여 있지 않은 손바닥으로 툭 쳤다.
포장마차에 다녀온 이튿날 오후, 동네 영감들과는 실없는 잡담을 나누고 돌아온 민 노인은, 자기 방 옷장 위에 비닐로 싸 얹어 두었던 북이 없어진 걸 알았다. 언제 어떻게 가지고 나갔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낭패스러운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면 이상했다. 무슨 일이고 간에, 일단 마음을 정하면 제깍제깍 해내는 젊은 놈들의 당돌한 실천력을 어쩌면 부럽게도 느꼈다. 그런데다 성규는 자기를 다그치는 시간도 빨랐다. 도무지 벙벙한(정신이 얼떨떨하다) 생각을 이렇게 저렇게 되작거릴(자꾸 뒤적뒤적하다) 여유마저 주지 않았다. 그 다음날 아침엔, 학교에서 만나자고 제멋대로 통고를 해 온 것이다.
“이건 교통비에요. 진행비라는 게 쬐끔 있거든요. 어렵게 여기지 마시고 바람쐬는 셈 치고 한번 들러주세요. 저희들은 매일 손을 맞추어 보지만, 할아버지는 그러실 필요도 없겠고, 분위기나 익혀주시면 족하겠죠."
성규는 천 원짜리 몇 장을 쥐어주었다.
“아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연습 없이는 무대에 서는 법이 아녀. 하물며 내가 북을 멀리한 지가 얼만데."
“같이 해 주시면 더욱 좋구요. 참. 제가 어저께 북 내갔습니다."
“안다."
“그럼 이따 뵙기로 해요. 애들이 영광이래요. 히히."
돌아서는 손자의 등 뒤에서, 민 노인은 날렵한 숫사슴의 냄새를 맡았다.
물어물어 처음 가 본 손자의 대학은, 민 노인에게 우선 크고 넓은 것의 시원함을 댓바람(일이나 때를 당하여 단 한 번에)에 안겨 주었다. 거기에는 또, 좁은 구석을 맴도는 데만 익숙해진 자를 한꺼번에 위압하고 겁먹게 하는 바람이 불고도 있었다. 그런 세계와는 등지고 살아온 민 노인에게는 한결 그랬다. 서너 명의 친구들과 함게 미리 교문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성규는, 민 노인을 보자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그의 친구들은 한꺼번에 꾸벅 절을 하더니 와주셔서 고맙습니다를 합창했다. 영광이라고 말하는 녀석도 있었다. 연습장이라는 운동장 한 구석에는, 더 많은 연희 출연자들이 제각각의 몸놀림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성규를 통해 얘기를 들었는지, 하던 짓을 멈추고 일제히 인사를 했다. 여학생도 적지 않은 수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 가서 성규로부터 대충의 줄거리에 대해 설명을 듣고, 종이에 따로 적은 과장(科場, 탈놀이에서 현대극의 막이나 판소리의 마당에 해당하는 말)을 훑어 본 민 노인은, 자기 역할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았다. 성규의 어거지 성화에 밀려 온 꼴이기는 해도, 가볍게 떠맡고 나선 데 대해 조금은 후회도 되었다. 북을 끼고 둥둥 치면서는 더 그랬다. 그런 한편으로, 멀리 내던져 여간해서는 만나지 못할 것으로 여겼던, 자기 체온이 듬뿍 스민 옷을 다시 걸쳐입는 순간의 감동을 맛보기도 했다. 낯선 장면과 마주쳐 다소 어리벙벙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빽빽 소리를 질러대며 팔과 다리를 흥겹게 올리고 내려놓는 아이들과, 따지고 보면 북가락의 이웃 동네인 꽹과리나 피리 소리에 섞여 팔에 힘을 보아 북을 두드리는 동안, 그런 무색함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민 노인은 하루 연습만으로는 실력이 부쳐 안되겠다며, 며칠 더 나올 것을 자청했고, 그러자 아이들은 환영의 박수를 쳤다. 연습이 끝나고 막걸리집으로 옮겨갔을 때도, 아이들은 민 노인을 에워싸고 역시 성규 할아버지의 북소리는, 우리 같은 졸개들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명인의 경지라고 추켜올렸다. 그것이 입에 발린 칭찬일지라도, 민 노인으로서는 듣기 싫지가 않았다. 잊어 버렸던 세월을 되일으켜주는 말이기도 했다.
“얘들아. 꺼져가는 떠돌이 북장이 어지럽다.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말아라."
민 노인의 겸사에도 아이들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닙니다. 벌써 폼이 다른 걸요."
“맞아요. 우리가 칠 때는 죽어 있던 북소리가, 꽹과리보다 더 크게 들리더라니까요."
“성규, 이번에 참 욕보았다."
난데없이 성규의 노력을 평가하는 녀석도 있었다. 민 노인은 뜻밖의 장소에서 의외의 술친구들과 어울린 자신의 마음이, 외견과는 달리 퍽 편안하다는 느낌도 곱씹었다. 옛날에는 없었던 노인과 젊은이들의 이런 식 담합(談合)이, 어디에 연유하고 있는가를 딱히 짚어볼 수는 없었으되.
두어 번의 연습에 더 참가한 뒤, 본 공연이 열리던 날 새벽에 민 노인은 성규에게 일렀다.
“아무리 단역이라고는 해도, 아무 옷이나 걸치고는 못 나간다. 모시 두루마기를 입지 않고는 북채를 잡을 수 없어."
“물론이지요. 할아버지 옷장에서 꺼내 놓으세요. 제가 따로 가지고 갈게요."
“두 시부터라고 했지?"
“네."
“이따 만나자."
일찍 점심을 먹고, 여느 날의 걸음걸이로 집을 나선 민 노인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설레임으로 흔들렸다.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한 아들 내외에 대한 심리적 부담보다는, 자기가 맡은 일 때문이었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어우러져 돌아가는 춤판에 영감쟁이 하나가 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어색하기도 하고, 모처럼의 북가락이 그런 모양으로밖에는 선보일 수 없다는 데 대한, 엷은 적막감도 씻어내기 힘들었다. 그러나 젊은 훈김(훈훈한 기운)이 뿜어내는 학교 마당에 서자, 그런 머뭇거림은 가당찮은 것으로 치부되었다. 시간이 되어 옷을 갈아입고 아이들 속에 섞여 원진(圓陳, 둥근 진)을 이루고 있는 구경꾼들을 대하자, 그런 생각들은 어디론지 녹아내렸다. 그 구경꾼들의 눈이 자기에게 쏠리는 것도 자신이 거쳐온 어느 날의 한 대목으로 치면 그만이었다. 노장이 나오고 취발이(한국의 가면극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대개 노장과 소무가 어울리는 부분에 나타나서 힘으로 소무를 빼앗는 노총각 역)가 등장하는가 하면, 목중들이 춤을 추며 걸쭉한 음담패설 등을 쏟아놓을 때마다, 관중들은 까르르 까르르 웃었다. 민 노인의 북은 요긴한 대목에서 둥둥 울렸다. 째지는 소리를 내는 꽹과리며 장구에 파묻혀 제값을 하지는 못해도, 민 노인에게는 전혀 괘념할 일이 아니었다. 그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공연 전에 마신 술기운도 가세하여, 탈바가지들의 손끝과 발목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의 북소리는 턱 턱 꽂혔다. 그새 입에서는 얼씨구! 소리도 적시에 흘러나왔다. 아무 생각도 없었다. 가락과 소리와, 그것을 전체적으로 휩싸는 달작지근한 장단을 내맡기고만 있었다.
그날 밤, 민 노인은 근래에 흔치 않은 노곤함으로 깊은 잠을 잤다. 춤판이 끝나고 아이들과 어울려 조금 과음한 까닭도 있을 것이다. 더 많이는, 오랜만에 돌아온 자기 몫을 제대로 해냈다는 느긋함이, 꿈도 없는 잠을 거쳐 상큼한 아침을 맞게 했을 것으로 믿었는데, 그런 흐뭇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다 저녁때가 되어, 외출에서 돌아온 며느리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성규를 찾았고, 그가 안 보이자 민 노인의 방문을 밀쳤다.
“아버님. 어저께 성규 학교에 가셨어요?"
예사로운 말씨와는 달리, 굳어 있는 표정 위로는 낭패의 그늘이 좍 깔려 있었다. 금방 대답을 못하고 엉거주춤한 형세로 며느리를 올려다보는 민 노인의 면전에서, 송 여사의 한숨 섞인 물음이 또 떨어졌다.
“북을 치셨다면서요."
“그랬다. 잘못했니?"
우선은 죄인 다루듯하는 며느리의 힐문에 부아가 꾸역꾸역 치솟고, 소문이 빠르기도 하다는 놀라움이 그 뒤에 일었다.
“아이들 노는 데 구경 가시는 것까지는 몰라도, 걔들과 같이 어울려서 북치고 장구 치는 게 나이 자신 어른이 할 일인가요?"
“하면 어때서. 성규가 지성으로 청하길래 응한 것뿐이고, 나는 원래 그런 사람 아니니. 이번에도 내가 늬들 체면 깎았냐."
“아시니 다행이네요."
송 여사는 후닥닥 문을 닫고 나갔다.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며느리는 퇴근한 남편을 붙들고, 밖에 나갔다가 성규와 같은 과 학생인 진숙이 어머니한테서 들었다는 얘기를 전했다. 진숙이 어머니는, 민 노인이 가면극에 나왔더라는 귀띔에 잇대어, 성규 어머니는 그렇게 멋있는 시아버지를 두셔서 참 좋겠다며, 빈정거리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아들은 민 노인에겐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냥 덤덤한 낯빛이다가 식구들이 저녁을 마친 후에야 돌아온 성규를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너더러 누가 그런 짓 하랬어."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한 발자국 내어 딛는 순간, 노기를 한꺼번에 모은 호령이 그를 사로잡았다. 영문을 몰라 아버지와 어머니 쪽으로 눈알을 번갈아 돌리는 성규를 향해, 이번에는 어머니가 차디차게 말했다.
“잘하는 일이다. 할아버지를 끌어내지 않으면 늬네들 춤판은 성사가 안 되니?"
나는 또 뭐라고, 하는 식의 가벼운 대응이 성규의 안면에 퍼지면서, 입으로는 씩 웃음을 흘렸다.
“너 날 놀리는 거니?"
첫마디와 달리 착 가라앉은 아버지의 음성에는, 분에 떠는 사람에게 일쑤 있음직한, 삭지 않은 가래가 조금 끓었다. 정색을 하고 쳐드는 성규의 눈빛에도 서리가 내린 인상이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웃었잖아."
“웃은 게 잘못이라면 사과할게요. 할아버지를 그런 자리에 모신 건, 그러나 사과할 것이 못됩니다."
“할아버지까지 동원한 게 잘한 짓이니?"
“동원이란 말이 싫습니다. 누가 누구를 동원한단 말입니까? 또 그 일이 어째서 잘하고 잘못하고로 구별돼야 하는지, 저는 통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잘 하고 잘못하고의 인식에서는 벗어나는 일입니다. 누군가가 어떤 일에 합당한 재능을 갖고 있을 때, 한 쪽은 그걸 표현할 기회를 주어야 마땅하며, 한 쪽은 기꺼이 그 기회에 편승해서, 일이 잘 되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너는 이제 보니 참 똑똑하구나. 그래서, 일이 잘 됐니?"
“대성공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기꺼이 응하지 않았을 게다. 네가 유혹했어."
“결과는 마찬가지에요. 저는 그날 할아버지에게서 그걸 확인 했습니다."
“너는 할아버지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 특히 내가 취하고 있는 입장에 대단히 불만이지?"
“그럴 것도 없습니다. 아버지의 할아버지에 대한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그 논리를 그대로 저와 연결시키고 싶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기특하구나. 그러니까 너만이라도 할아버지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겠다는 거냐 뭐냐. 지금까지의 네 행동을 보면 그런 추측을 가능케 하더라만."
“그것도 맞지 않는 말이에요. 도대체 할아버지와 저와의 갈등이 있었어야 말이죠. 처음부터 갈등이 없었는데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고 말고가 어디 있습니까. 할아버지와의 갈등이 있었다면, 그건 아버지의 몫이지 저와는 상관이 없는 겁니다. 오히려 전세대끼리의 갈등이 다음 세대에서 쾌적한 만남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환영할 만한 일이고, 그게 또 역사의 의미 아니겠습니까?"(성규의 항변을 통해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아버지 세대의 가치관이 비판의식 없이 자식 세대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또한 시대와 역사를 배경으로 한 세대 간의 이해와 용서, 화합을 모색하고 있다.)
“뭐야, 이놈의 자식. 네가 나를 훈계하는 거얏!"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버지의 손바닥이 성규의 볼때기를 후려쳤다. 옆에 있던 어머니의 쇳소리가 그의 뺨에 달라붙었다.
“또박또박 말대답하는 것 좀 봐."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에요. 그렇다고 아버지의 생각 속으로만 저를 챙겨 넣으려고 하지 마세요."
성규는 얻어맞은 자리를 어루만지지도 않고, 되려 풀죽은 목소리가 되었다.
“네가 알긴 뭘 알아. 네가 내 속을 어떻게 알아."
“그런 말씀은 이제 그만 좀 하셨으면 해요, 안팎에서 듣는 그 말에 물릴 지경이거든요. 너는 아직 모른다. 너도 내 나이가 되어 보라…… 고깝게 듣지 마세요. 그때 가서 그 뜻을 알지언정, 지금부터 제 사고와 행동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뜻에서, 제가 할아버지를 우리 모임에 초청한 사실을 후회하지 않을 뿐더러,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심리적으로 격리시키려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해하려는 모순을 저도 이해합니다. 노상 이기적인 현실에의 집착이 그걸 누르는 데 대한, 어쩔 수 없는 생활인의 감각까지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고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 나이는 또 할아버지의 생애를 이해합니다. 북으로 상징되는 할아버지의 삶을 놓고, 아버지와 제가 감정적으로 갈라서는 걸 비극의 차원에서 파악할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광대기질에 철저하여 가족을 버린 건 비난받아야 할 일이나, 예술의 이름으로는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나름대로의 예술을 완성했니?"
아버지의 입가에 냉소가 머물렀다.
“그건 인식하기 나름입니다. 다만 할아버지에게서 북을 뺏는 건, 할아버지의 한(恨)을 배가시키고, 생의 마지막 의지를 짓밟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만은 갖고 있습니다."
방 안의 민 노인이, 천천히 응접실로 나온 건 그때였다. 자기 때문에 성규가 궁지에 몰려 있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였는데, 아들은 집안의 분란을 더 키우고 싶지 않았든지, 민 노인 쪽엔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 성규에게만 소리를 꽥 질렀다.
“건방 그만 떨고 어서 가서 잠이나 자. 다시 그런 짓을 했다간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줄 알아."
제 방으로 돌아가던 성규는, 민 노인과 눈이 마주치자 재빠른 웃음을 보냈다. 음모꾼끼리의 신호 같았다.
정작 일이 크게 터진 건 그런 일이 있은 지 일주일쯤 후였다. 저녁 준비를 하다 말고, 성규의 친구로 짐작되는 학생의 전화를 받은 송 여사는, 대뜸 신음으로도 착각할 만한 의식불명의 소리를 지르더니 이내 펄쩍펄쩍 뛰었다.
“뭐라구? 우리 성규가 데모하다 잡혀갔다구. 언제 어디서. 지금 어딨어? 이 일을 어쩌지. 이 일을 어떡한다지."
송 여사는 곧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고, 만날 장소를 약속하고는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 나갔다. 황급히 서두르다 지갑을 안가지고 갔기 때문에 다시 되돌아왔을 때, 민 노인과 수경이가 자세히 말 좀 해보라고 매달리는데도, 누구 신경질만 돋구느냐는 투의 외마디 말을 남기고 사납게 문을 닫았다.
“난들 아니, 가봐야지."
며느리의 자기를 쳐다보던 눈이 사뭇 비뚤어져 있었다고 느낀 민 노인의 가슴에도, 갑자기 구멍이 뚫리는 걸 의식했다.
아들 내외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다. 민 노인은 수경이를 시켜, 아들이 먹다 남은 양주를 찾아 안주도 없이 조금씩 조금씩 홀짝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취기가 야금야금 전신으로 번지자, 민 노인은 극히 자연스럽게 북을 껴안고 북채를 잡았다. 뚝 딱 둥 둥, 둥둥둥 뚝 딱. 북소리를 듣고 들어온 수경이는, 북 한 번 할아버지의 눈 한 번씩을 교대로 쳐다보고는, 그전 모양 궁상맞다는 타박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소곳이 민 노인 옆으로 다가앉으며 엉뚱깽뚱한 질문을 했다.
“할아버지 이 북으로 팝송 반주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수경아, 늬 오래비가 붙들려간 게, 나나 이 북과도 관계가 있겠지."
둥 둥 둥 딱 뚝.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아니에요. 그보다도 궁금한 게 있어요. 오빠와 저와는 네 살 터울이거든요. 그런데 오빠는 할아버지의 북소리에 푹 빠져 있고, 솔직히 저는 잡음으로만 들려요.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그 녀석이 내 역마살을 닮은 것 같아. 역마살과 데모는 어떻게 다를까."
딱 둥둥 뚝.
“할아버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세요. 제 말은 들은 둥 만 둥 하구요."
손녀의 새살거림(자꾸 실없이 까불며 웃다)을 한옆으로 제쳐놓으며, 민 노인은 눈을 지그시 감고 더 크게 북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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