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일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니 비와 함께 눈이 펄펄 날리고 있다. 기온이 영상이라 내리는 즉시 녹아버리지만 오늘이 3.1절(음력1,16) 공휴일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9시가 지나 눈이 비로 바뀌어 내리고 바람까지 불어 더 추워지는 아침에 식사를 하고 나니 금방 10시가 되었다. 아들과 딸은 오늘도 늦게 일어났는데 당장 개학을 하는 내일부터는 어떻게 등교를 할 것인지 벌써부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며 3월을 시작하는데 흐린 날씨임에도 사람들이 많아 활력이 넘쳤고 가벼운 기분으로 집에는 1시에 돌아왔다. 내일부터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되는 딸과 아들을 태우고 남영동 미성회관에 가서 탕수육 해물밥 우동 자장면을 먹으며 아내와 함께 축하와 격려를 했다. 식사 후에 건너편 금강제화 아울렛 매장에 들어가 아들이 원하는 독특한 워커를 사 주었더니 세일가격으로도 10만원이 넘는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오후에 집으로 왔다가 곧바로 내부순환도로를 달려 고척동까지 친구 남석이가 입원한 병원에 갔다. 충청도에서 친구들이 왔다고 해서 서둘러 간 것인데 점심쯤에 이미 내려갔다기에 아쉬움이 생겼다. 20대 초반에 만난 동갑내기 친구들로 술 마시고 서로간 싸움도 많이 했는데 결국 전라도 태생인 나를 인정해 주던 놈들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근처에 사는 대학 친구 재웅이가 왔고 병문안 이후 현재 운영하는 학원이 어렵다는 하소연을 길게 이야기 한다. 집으로 오는 중에 이대 목동병원 형준이 어머니한테 갔다가 중환자실에서 위급한 상황을 모면했다며 안도를 하는 친구만 위로하고 나왔다.
(고등학교 아들)
2일 모든 중,고등 학교가 일제히 개학을 하는 오늘이 나로서는 한 해를 시작하는 날이나 다름없다. 학교나 재수생을 중심으로 시작하는 학원이나 새로운 교육과정으로 입시를 치루는 겨울까지의 일정이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7시50분 식탁에 앉으니 날마다 늦잠을 자던 아들이 개학날인 오늘은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처음 이대부고 교복을 입고 나왔다. 얼마 전 중학교 때와 다르게 키와 골격이 부쩍 자라 고등학생다운 모습으로 변하였고 평소에 검었던 얼굴도 밝고 단정하다. 예쁜 동명여중 교복이 잘 어울리는 딸도 중학생이 되어 첫 등교를 하는데 밝은 모습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되기를 염원했다. 어제와 그제보다 기온이 내려간 쌀쌀한 오전에 홍제천으로 나가서 월드컵 경기장을 돌아오는 마라톤 10킬로를 달리고 돌아오니 개학식을 마친 딸이 돌아와 있다. 초등학교와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 환경이라 긴장감이 생길 것인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적응이 될 것이다. 잠시 후에 아들도 돌아와서 오늘 개학날 소감을 물었더니 첫날부터 싸워서 지도부실에 끌려갔다며 나를 놀라게 하는 농담을 한다. 점심을 하고 오후에는 학원으로 가서 3월의 첫 수업을 시작했는데 신학기답게 긴장되고 바쁜 시간이었다. 밤에는 김치전과 상추절임을 정성껏 준비한 아내 덕분에 학원에 간 아들과 딸을 제외하고 맛있게 식사를 했다.
3일 꿈까지 꾸면서 새벽에 자고 있는 나를 아내가 깨우더니 아들의 시간이 늦었다며 태우고 가라고 한다. 학생들의 수면이나 부모들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7시까지 등교시키는 이대부고 규칙에 대하여 오늘도 불만이 생겼다. 영상매체가 발달하여 늦은 시간에 자는 학생들을 이른 시간에 불러 오히려 학습효과를 떨어뜨리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집에서 준비한 식사를 차 안에서 하는 아들에게 앞으로의 3년이 인생을 좌우할 수 있으니 인내심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라고 격려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안방에 누웠는데 교복 입은 딸의 모습을 보라는 아내의 요청이 있어 다시 거실로 나왔다. 10시경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하는 중에 산에 다녀온 아내는 나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흥얼거리더니 그대로 논술교실에 오른다. 엊그제 9만원으로 홈쇼핑에서 구입한 등산복을 입고 다녀온 것인데 색깔이 마음에 드는지 흡족한 표정으로 날마다 산에 오를 기세였다. 아침 기온은 영하 1도로 쌀쌀했지만 학원으로 나가는 오후에는 10도까지 올라 포근했고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따뜻한 봄도 올 것만 같았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들이 학생증에 붙인다는 자신의 사진을 불광동에서 찍어 왔는데 볼수록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반듯하다. 우리 농산물이나 축산물을 소비하려고 3월3일을 오늘을 삼겹살 데이로 정하여 홍보를 하더니 저녁에 우리도 삼겹살 식사를 준비하여 의미있는 저녁을 먹었다.
4일 비 내리는 새벽에 핸드폰 문자가 울려 순간 친구 어머니를 염려했는데 역시나 별세하셨다는 슬픈 소식이 왔다.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목동병원으로 3월1일 월요일 밤에 뵈러 갔다가 중환자실에 계셔 3일은 생명이 지속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의 예상이 적중했다. 7시까지 학교에 등교하는 아들을 태우려고 6시30분에 집을 먼저 나왔더니 초겨울의 날씨같이 쌀쌀하고 컴컴한 새벽이었다. 차 속에서 기다리며 현실을 무시하고 무작정 이른 시간에 등교를 시켜 오히려 학습효과를 떨어뜨리는 학교의 행정에 어제처럼 불만으로 중얼거렸다. 아들을 내려주고 곧바로 서소문 꽃시장에 달려가 친구 모친상에 보낼 조화를 주문하고 서대문 로터리를 경유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일찍 일어난 아내는 피곤한지 거실에서 잠을 자고 있고 엊그제부터 중학교 교복을 입은 딸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거울 앞에서 한참이나 서성거리고 그런 딸을 나도 흐믓하게 바라보았다. 10시에 홍제천으로 나가 달리기를 시작하여 월드컵경기장 주변까지 왕복 10킬로를 달리고 돌아왔는데 오전에 멈추었던 비가 다시 내려 땀과 하나가 되었다. 돌아오면서 체육관에 들어가 기구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화곡동 상가에 나가서 어머니를 여읜 친구를 위로하고 영정에 절을 올렸다. 친구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자주 뵈었고 고향에 갈 때마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신 분이라 슬픔이 더하기도 했다. 상가에서 잠시 머무르다 수업이 있어 성산대교와 내부순환도로를 달려 학원에 들어섰고 수업을 마치고는 일요일에 사용할 프린트까지 준비했다. 일전에 실시한 이대부고 반 편성 시험에서 2등을 했다는 아들한테 전화가 와서 칭찬과 함께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밤에 화곡동 상가로 다시 가서 초등학교 동창들과 고향에서 온 사람들까지 자리를 함께 하다가 새벽에 집으로 돌아왔다.
5일 잠을 조금 자고 일어나 6시40분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는데 요즘은 신입생이라 그런지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잘 일어나 아침마다 생긴 고민이 조금 사라졌다. 이번 이대부고 1학년 6반에 2등으로 들어가 반장으로 뽑히기도 한 아들인데 성실하고 바른 모습으로 열심히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집으로 다시 돌아오니 새벽부터 아들 뒷바라지로 분주했던 아내가 잠이 들어있어 나도 1시간을 옆에서 자고 일어났다. 10시에 마라톤을 하려다가 일정을 바꿔 안산에 올랐더니 봄기운이 완연했고 성급하게 핀 개나리는 낯선 자세로 나를 맞이한다. 중턱을 돌다가 정상에 올라 겨울과 봄이 공존해 있는 3월의 흐릿한 서울을 응시하고 산악회 운동장으로 이동하여 시간을 보내다 12시에 집으로 내려왔다. 산에서 보낸 시간은 이틀 동안의 피로와 정신을 씻어주기에 충분했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광화문과 대학로를 거쳐 학원에 가서 수업을 시작했다. 오늘 따라 선생들이 학생들보다 늦게 나와 가르치는 자세에 대하여 훈계를 했고 수업을 마치고서는 장례식장에 가기 위해 먼저 교무실을 나왔다. 시내를 통과하며 바라본 거리의 앙상한 가로수들은 아직도 겨울의 기세에 꼼짝을 못하는 지경이었지만 오묘한 자연의 순리는 이 상황을 언제까지 그대로 두지는 않을 듯했다. 성산대교를 건너 오목교와 신정동 4거리를 돌아 영안실에 들어서니 어제 온 동창들이 다시 보이고 일산에서 생활하는 성격이 좋은 (송)대의도 구석자리에 앉아 있다. 밤이 되어 장안동에 사는 나와 대학 동창인 김정식 부장이 왔고, 사업하는 등록증을 받아서 당분간 상가에 안 다닌다는 영식이한테는 부조금만 전달해 달라는 전화가 왔다. 친구는 평소에 무속적인 경향이 많은 사람이라 큰일이 있을 때 장례식장 같은 곳을 꺼리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이다. 또한 영식이와 정식이는 나를 통하여 형준이와 몇 번 만나게 되었는데 그런 인연이 오늘 상가까지 이어진 것이다. 새벽 3시에 영안실 식당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고 발인을 한다는 5시에 일어났더니 정식이도 옆에서 쿨쿨 잠을 자고 있다. 고향 선영에서 오전 11시에 하관식을 하는 일정이라 발인제를 마친 영구차에 나도 친구 몇 명과 동승하여 어둠이 남아있는 서울을 나섰다.
6일 고향에 가는 시간이 4시간은 될 것이라 영구차가 일찍 나선 것이고 10개월 전에 우리 어머니가 떠나실 때는 형준이가 이번에는 내가 그의 어머니를 모시고 떠나는 시간이다. 차 안에는 나를 포함하여 고향에서 함께 자란 친구 5명이 자리를 잡았고 출발하면서부터 피곤하여 바로 영구차 뒤로 가서 누웠다. 40분을 달려 서해안 고속도로에 들어섰는데 슬픔이 쌓인 차 안은 20여명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했고 얼마쯤 지난 후 대천휴게소라고 외치는 바람에 자다가 눈을 떴다. 하지만 혼곤한 잠으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그대로 있었더니 휴게실에 다녀온 친구가 따끈한 커피를 가지고 왔다. 오전 11시경 눈에도 익숙한 고향에 도착하여 평생을 사시던 집을 돌아 냇물이 흐르는 선산 입구에서 영구차는 멈추었다. 좁은 산길로 관을 들고 언덕을 오르는 중에는 갑자기 안개비가 내리더니 이내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장지에 도달하여 추도예배를 시작으로 하관식을 거행하는 도중에는 근처에 위치한 우리 어머니한테 친구들과 찾아가서 묵념을 올렸다. 어머니가 떠나신 지 10개월이 흘렀고 그 사이 잡초가 많이 자라 산소를 나올 때는 그리움과 허무함이 이루 말할 수 가 없었다. 다시 친구의 장지를 경유하여 마을회관으로 돌아왔고 주민들과 점심을 하며 추모의 시간을 보낸 뒤에 영구차는 서울로 출발했다. 춥고 피곤하여 금방 잠이 들었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서울에 도착한 뒤 곧장 집으로 왔다. 누적된 피곤함을 풀 양으로 침대에 누워 바로 잠이 들었는데 3월10일에 전국 고등학교 모의고사를 응시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공부한다는 아들이 문자를 했다. 양시론兩是論과 희화화戱畵化에 대하여 질문을 해 왔고 상세하게 답을 하고 나니 잠이 달아났다.
7일 어제 자다가 일어나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일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났는데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가 않다. 교회에 가기 위해 잠자는 가족들을 두고 8시에 집을 나서 합정역까지 갔다가 인터넷에 소개된 콩나물국 집에서 해장국을 사 먹었다. 망원동 길가에 위치한 허름한 식당인데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아 다른 사람과 겸상으로 식사를 하고 나왔다. 9시에 교회로 들어서니 우현이를 포함한 성가대원들이 예배를 시작하는 찬송가를 부르고 특별히 오늘은 입교식과 세례식이 있는 날이라고 분위기가 더욱 엄숙했다. 기존 교인들에게는 빵과 포도주를 일일이 대접하는 의식을 하는데 교회라고 왔다 갔다만 하는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 같았다. 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절실함과 성경에 몰두하는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할텐데 아직도 믿음이 가물가물하니 언제나 변화가 생길지 모르겠다. 10시에 마쳐야 할 예배가 의식을 한다고 20분이나 지연되어 11시 수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나와 빠르게 차를 몰았다. 지난 3개월은 겨울방학 특강으로 예비고 수업을 진행했고 오늘부터는 중간고사를 목표로 심화과정을 시작함에 부모나 학생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다. 고1 A반 수업 2시간을 하고 집으로 내려와 점심을 먹은 뒤에 B반 수업까지 시간이 남아서 남영동 금강제화 매장에 아들의 신발을 반환하러 나갔다. 일주일 전에 구입한 워커인데 학교에서 규정상 금지하여 신을 수 없다는 것이고 내가 판단해도 디자인이 요란하여 탐탁치가 않다. 수업을 하러 4시에 논술교실에 올랐더니 아들을 포함하여 6명이 교실에 가득하여 좁은 공간으로 학생들에게 미안함이 많았다. 아들은 1학년 회장까지 되었으니 이제부터라도 다른 학생들한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성실한 자세로 수업에 임했으면 좋겠다. 수업을 마치고 신촌에 나가 고향 후배와 식사를 했고 12시경 들어와서는 학급회장이 된 아들에 대하여 아내와 기대에 찬 마음으로 대화를 하고 잠이 들었다.
8일 어제 수학학원에 간 아들은 새벽에 왔을 것인데 오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잠을 자다가 아침 6시에 일어났다. 학교에 아들을 태우고 가려고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니 잠을 못자 지친 표정으로 내려왔고 식사는 가는 도중에 주먹밥으로 차 안에서 해결한다. 집으로 7시경 들어와 딸과 식사를 하면서 오빠가 회장이 되었다고 말을 했더니 자신은 회장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고 인상까지 쓰며 대답을 한다. 회장을 안 하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비교하는 곳에서 항상 어깃장을 부리는 딸은 상대를 인정하는 자세가 더 필요할 듯하다. 식사 후 잠을 조금 자고 마라톤 연습을 나가다가 찬바람이 심하게 불어 중간에 체육관으로 방향을 틀어 기구운동만 하고 돌아왔다. 안산에 올랐다가 내려온다는 아내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 쳤는데 오늘은 누구하고 대화를 했는지 사는 것이 코미디처럼 우습고 사람마다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를 뜬금없이 꺼낸다. 점심을 하고 오후에 성북동 학원으로 가는 중에는 눈이 올 것처럼 하늘이 잔뜩 흐렸는데 강원도에는 이미 많은 눈이 내리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한다. 6시부터 수업을 시작하여 밤 10시에 마치고 집으로 오는 중에 부산에 갔던 영식이가 12시경 서울역에 도착한다는 전화가 왔다. 시간이 늦어 내일 통화하기로 하고 그대로 돌아와 식사를 했고 오늘부터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시작한 아들은 밤 11시에 왔다.
9일 일찍 일어나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도착했는데 입실시간이 임박하여 정신이 없었고 내일부터는 집에서 더 일찍 서둘러 출발해야 할 것이다. 집으로 와서 식사를 하고 쉬고 있는 중에 영식이 전화가 왔고 부산에서 하는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평소에 하지 않는 하소연을 한다. 각박한 세상 물정도 모르고 이론이나 추상적으로만 접근하는 영식이가 안타까웠고 인격과 능력이 있다고 하여도 사업은 분명 그것과 다른 것이다. 사업 수단은 나보다 못한 것 같아 여러 번 지적을 하고 훈계를 했지만 전혀 귀담아 듣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 내세워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10시에 마라톤 연습으로 홍제천에 나가서 월드컵경기장까지 약 12킬로 1시간 이상을 달리고 돌아오면서 체육관에 들어가 기구운동을 더 했다. 흐린 날씨에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하고 오후에는 시내에서 일을 보다가 학원에 들어가 강의를 시작했다. 저녁에는 기온이 내려가 늦은 시간이라도 태우러 간다고 아들에게 문자를 해 두었는데 아들과 만나는 시간은 언제나 보람이고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눈이 더욱 거세게 내리는 밤에 집으로 돌아와 동태탕 저녁을 먹었고 거실에서 잠깐 잠이 든 10시경 버스를 타고 곧바로 수학 학원에 간다는 아들의 전화가 왔다. 결국 새벽 2시에 아들은 학원에서 돌아왔지만 4시간을 자고 또 학교에 가야 하는 일정으로 오늘 수업도 파행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구라도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집중력이 떨어져 학습의 효율성이 사라지는 법인데 문제만 풀릴 줄 알고 내일을 모르는 학원의 원장을 이해할 수가 없다.
10일 어제부터 내린 눈이 아침에는 폭설이 되었고 3월에 내린 서울의 눈으로는 6년 만에 최고치라고 아침에 방송을 한다. 기온은 영하 4도로 겨울에 비하여 강추위는 아니라도 길이 미끄러워 도로는 차량들로 홍수를 이루어 아름다운 그림으로 나타난 안산과 대조를 이룬 아침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모의고사를 실시하는 아들을 태우고 가면서 객관적으로 실력이 평가되는 시험이니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했다. 집에 돌아와 학교에 가는 딸에게 날이 추워 태워준다고 하니 친구들과 가겠다고 극구 반대를 하여 엘리베이터 앞에서 배웅만 했다. 오전에 영어를 배운다는 아내가 동사무소에 오르고 나도 10시에 체육관으로 가서 평소처럼 운동을 하고 점심쯤에 돌아왔다. 영어를 마친 아내도 들어오더니 논술교실에 간다고 바로 나가 혼자 라면으로 점심을 먹었고 2시에 성북동 학원으로 출발했다. 저녁에 수업을 하면서 오늘 모의고사를 응시한 아들이 궁금하여 초저녁에 집으로 전화를 하니 잠을 자고 있다더니 잠시 후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 오라는 문자가 왔다. 성격이 깔끔한 영식이가 사업으로 고민이 많다는 중에 일주일 전 자신의 이름으로 내가 대신 낸 친구 어머니 부조금을 보내왔다. 10시에 집으로 오면서 마트에 들어가 아들이 부탁한 여러 가지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샀는데 살면서 평범한 이런 과정이 살아가는 의미가 아닐까. 읍내에 나가 약주를 하고 고등어 한 마리나 풀빵 한 봉지를 사 들고 돌아오는 애환이 많았던 가난한 우리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익숙하게 기억하고 있다. 오늘은 내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길 위에 서 있지만 나를 사랑했던 아버지와 지금의 아들을 사랑하는 내 마음이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집에 들어서니 정작 아들은 자고 있고 식사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짜증으로 가는 밤이 되었다.
11일 아내의 잠자는 소리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 피곤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래도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 오전 시간에 일요일 강의를 위하여 교재를 정리했다. 신사임당 모임으로 강남에 간다는 아내가 나간 후 흰 눈이 쌓인 안산에 올랐는데 거실에서 본 것과 달리 물이 흥건하고 땅까지 지저분하여 최악의 산행이었다. 오늘 낮 기온이 10도까지 올랐으니 금방 녹았을 것이지만 군데군데 아직 남아 있는 눈 덮인 모습은 지나간 겨울의 시간을 되돌리기에 충분했다. 1시30분에 집으로 내려와 라면으로 점심을 먹었고 오후 3시에는 이수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방배동 카페골목 들어가 영식이를 만났다. 친구는 사업에 관한 자기주장이 여전히 강하여 대화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자본을 많이 투자한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내 싸인이 벽에 걸려 있는 전주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다가 건너편 중국레스토랑(거목)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고 10시경 집으로 가려고 752번 시내버스를 탔다. 술도 마셨지만 바깥 공기에 비하여 따뜻한 차 안에서 바로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차는 이미 무악재를 지나 역촌동을 넘어서고 있다. 쑥스러운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거실에 있는 아내와 딸이 나를 외계인처럼 빤히 바라만 보고 있다. 나도 상대들을 더 이상한 외계인이라 여기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거실을 건너 방으로 들어갔다.
12일 어제 집에 오자마자 잠을 자서 6시30분에 일어났고 새벽에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왔다. 콩나물 김칫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잠을 자고 일어나니 어제에 이어 오늘도 모임이 있다고 아내는 외출을 한다. 나도 집을 나서 친구의 아들이 입원해 있는 서울대병원에 문병을 갔는데 어렵게 살아가는 마당에 아들까지 입원을 하여 보는 나로서 안타까움이 많았다. 12시가 지나 성북동학원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서 줄까지 서면서 기다리다 먹었는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맛이 없어 실망만 했다. 식사 후 차를 몰고 아현동 가구매장으로 이동하여 3단 책장을 샀고 바로 이대부고에 들어가 부탁한 아들에게 전해 주었다. 학생들의 개인노트를 비치할 용도라는데 아들이 학급회장이라 맡은 것으로 어제 요청을 하여 오늘 구입한 것이다. 학교에 들어온 김에 담임을 만날까 하다가 다음 주 공개수업 시간에 볼 수가 있어 그대로 나왔고 입원해 있는 친구 남석이에게 전화를 하니 비용때문에 신정동 정형외과로 병원을 옮겼다고 한다. 늦은 오후에 날이 어두워져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았고 수업을 준비하는 중에는 책장을 사다 줘 고맙다는 아들의 문자가 왔다. 강의를 마치고 일요일 수업을 준비하다가 10시경 집에 오니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오늘 친구네 집에서 자겠다며 막무가내 현관을 나간다. 내일이 토요일이기는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한 초기라 처리할 일도 많을 텐데 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13일 화창한 토요일이다. 산에라도 가면 좋겠다 싶었는데 마침 우현이가 전화를 하여 교회 50대 남자들 북한산 등반이라고 동행을 하잔다. 교회에는 여러 조직이나 단체가 많지만 친목도모라고 해도 결국은 교회를 유지하는 목적과 수단일 것이다. 나는 독실한 신자도 아니고 평소에 교인들과도 거의 교류가 없던 터라 주저했지만 친구의 요청이고 익숙한 북한산이라 망설임 없이 나갔다. 교회에 도착하여 봉고차를 타고 단체로 이동하면서 보니 장소가 바뀌어 김포외곽 강화대교 근처에 있는 문수산으로 향한다고 한다. 현장에 도착하여 오른 문수산은 1시간도 걸리지 않은 야트막한 뒷동산으로 유유히 흐르는 한강 하류가 멀리 보이는 정도였다. 가져간 누룽지탕으로 점심을 하고 오후에 산 입구로 내려와 편을 갈라 족구를 했는데 겨울의 끝이라 운동장 사정도 나빴지만 상대가 모두 장로나 집사들이라 기도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게임을 시작할 때도 이기거나 져도 기도를 하는데 심지어 어떤 장로님은 한 골만 성공해도 모두가 주님의 뜻이라고 두 손을 모은다. 운동을 마치고 강화대교 건너편 대명항으로 이동하여 광어 우럭 등 생선회를 먹는데 술대신 콜라를 마시는 시간이라 나로서는 어색하기만 했다. 김포를 거쳐 교회로 돌아와 차를 몰고 집으로 오는 중에는 허리에 통증이 생겼고 교통체증까지 심하여 고생하며 늦게 도착했다. 며칠 전부터 과제물 완결을 아들과 약속하여 오늘이 최종 기일이라 점검을 했더니 아직도 그대로여서 날을 새워서라도 마무리하라 다그쳤다.
14일 어제 족구게임으로 근육이 놀라서 그런가 아침까지 허리에 통증이 있어 오늘은 교회에 가는 것도 포기하고 누워 있다가 식사를 했다. 오전에 교재 연구를 하다가 10시30분경 논술교실에 올랐고 11시부터 시작한 고1 수업은 엊그제 모의고사를 응시한 직후여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와 점심을 먹고 쉬는 중에 오늘이 화이트데이라고 딸이 안방까지 초콜릿을 가져 왔다. 아빠라고 생각하는 딸의 마음이 고마웠고 이후 홍제역 근처에 함께 나가 노트와 연필을 구입하고 아내가 주문한 피자까지 들고 돌아왔다. 오후 4시에 논술교실에 올라 고1 B반 중간고사 범위 소설을 시작하는데 아들이 또 지각을 하여 수업 시작이 편하지 않았다. 저녁에 수학을 배우러 간다는 아들을 홍제역까지 태워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는 의미도 제대로 모르면서 초콜릿을 구입하여 아내와 딸에게 주었더니 얼굴에 금방 미소가 번졌다. 아들은 오늘도 새벽에 올 것이지만 건강하게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나에게는 화이트데이 초콜릿보다 백배의 가치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15일 허리가 아파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중에 아들이 돌아왔다. 오늘이 월요일이라 학교 수업이 걱정이 되었고 아무튼 잠깐 자다가 새벽 6시에 일어나 아내와 아들을 동시에 깨웠다. 이른 시간에 아들을 태우고 학교에 가면서 잠이 부족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외모조차 초라해져 보기가 싫으니 공부를 한다고 해도 최소 5,6시간은 자야 한다고 일렀다. 아침식사를 하고 비가 내리는 오전에 체육관으로 나가서 허리 통증을 풀며 12시30분까지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점심은 어인 일인지 아내가 조기매운탕을 만들었고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얼큰시원한 맛이라서 땀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먹었다. 오후에 하늘이 쾌청하여 봄이 오고 있나 싶었는데 그것과 별개로 허리가 아파서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 알게 된 시간이었다. 밤에 수업을 마치고 생각해 보니 학원을 운영하는 것도 일종의 사업인데 요즘은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는 것이 아닌가 반성을 하게 되었다.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였고 그것을 위해서는 더 많은 집념과 철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친구(정이식)가 개업하는 식당에서 오늘 모이기로 했지만 허리가 아픈 나는 불참을 했고 일찍 집에 돌아와 3월 중순의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