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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을 교체했습니다. 우리 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투명한 백열전등입니다. 입주 때부터 베란다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것이니 참 오래도 썼습니다. 겉 장식 유리를 여니 뽀얀 세월의 더께가 역력합니다.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잖아도 효율이 낮아 사람들이 푸대접하는데, 한 번 닦아주지도 않은 나의 게으름까지 한몫했기 때문입니다.
전기라면 제법 안다는 나 답지 않게 구닥다리를 여태 끼고 있었습니다. 다른 가정에서도 그럴 수 있겠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이고, 사용해도 아주 짧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집 전기요금 삼만여 원에는 0.1%도 차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둘 만도 하지요. 그렇지 않다면 예쁜 형광램프 등으로 진작 바꿨을 것입니다.
백열전구는 빛이 따뜻하지만, 밝기보다 전기를 많이 먹습니다. 효율이 낮다는 얘기니 곧 에너지 낭비가 많다는 얘기죠.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이유지요. 수명도 퍽 짧습니다. 눈부심도 많습니다. 그러니 형광등에 밀려 사실상 퇴출당한지도 제법 오랩니다. 언젠가는 정부가 생산도 수입도 하지 말라고 법으로 금지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잘사는 유럽국가도 그렇다니, 전력 에너지가 절대 부족한 우리나라도 그럴 만도 합니다. 그래도 인류발전에 전무후무한 공헌을 한 에디슨에게는 퍽 미안한 일입니다.
마트 전기용품 진열대에서 백열전구 몇 개를 보았습니다. 찾는 사람이 없으니 폐기해야지만, 혹시 찾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 가지고 있는 것일 겁니다. 관리자의 고민을 알만합니다. 공간만 차지한다고 구박을 받을 만도 합니다. 앞자리 밝은 곳은 LED전등 같은 예쁜 애들에게 뺏기고 뒤쪽 으슥하고 구석진 곳에 몇몇이 옛날의 영광을 되씹으며 불편하게 앉아 있습니다. 세상은 변하는 것이니 같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 변할 수 없는 전구의 신세는 처량합니다.
얼마 전 경복궁을 아내와 거닐다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을 밝히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때가 1887년이랍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지 십여 년이 흐른 뒤입니다. 너무도 신기하고 놀라운 사실에 경복궁에 모인 임금과 신하들은 기절할 듯이 놀랐답니다. 전기가 무언지도 모르며 나무 그늘에 앉아 시조나 쓰고, 잔뜩 늘어진 소리로 읊어대던 베짱이 같은 백면서생들이 들어나 보았겠습니까. 발전기가 큰 소음을 내고 돌아가고, 뜨거운 물은 연못으로 흘러 물고기가 죽기도 했으니, 세상이 망할 조짐이라고 수군댔다는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망할 일은 퍽 많습니다.
그런 세계 최초의 발명품을 이제까지 쓰고 있었다는 것은 참 웃깁니다. 물론 전구의 성능은 크게 개선된 신제품이지만…. 최신형 LED 전구로 교체했습니다. 그 비싸던 LED 전구가 이젠 불과 4~5천 원이면 살 수 있습니다. 사실 조금 더 싸지면 좋겠지만, 수명도 검증된 마당이라 그만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모든 문명은 일취월장 발전합니다. 특히 컴퓨터나 전화기 텔레비전의 발전 속도는 눈이 부십니다. 그러나 전등은 좀 다릅니다.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를 성능과 모양만 겨우 개량한 채로 6~70년 사용했으니까요. 예전엔 방에서도 마루에서도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흔들흔들 그네를 곧잘 탔습니다. 한데, 이것 때문에 어색해진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죠. 서캐를 태우고, 졸다 머리카락을 태웠던 등잔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는 긴 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런 중에 모양도 불빛도 멋없기로는 일등 갈 형광등이 등장하였습니다. 획기적인 발명임이 틀림없습니다. 밝기는 크게 나아지고 전기 소비량은 크게 줄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에게 안경을 끼도록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창 공부하던 청소년들에는 영향이 컸습니다. 전기 없는 시골에서 중고시절을 보낸 나는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형광등은 전기 사정이 열악하고 전구 자체의 성능이 시원치 않아서인지 푸르르 떨다가는 껌뻑대기 일쑤였습니다. 불빛은 마치 늦가을의 초승달 빛처럼 서늘했습니다. 켤 때는 한참 만에 켜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형광등'이란 별명이 흔했습니다. 행동이 굼뜬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러던 중 LED라는 기가 막힌 발명품이 등장하니 마치 들불처럼 바뀌어 나갔습니다. 세상은 온통 LED 불빛으로 넘칩니다. 전등은 물론, 텔레비전도, 전화기도, 광고판도, 교통신호등도, 휴대용 전등과 자동차의 등까지 빛을 발하는 것, 영상이나 신호를 보여주는 것은 모두 LED로 바뀌고 있습니다.
빛에 관한 한 LED는 만능이며 전기소비도 기막히게 줄었습니다. 텔레비전을 이렇게 크고 얇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이것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에디슨의 백열전구 발명 못지않은 대단한 발명입니다. 그런 LED 전구를 잘 알면서도 그간 쓰지 않았던 것은 높은 가격과 의심스러운 수명 때문입니다. 십여 년 전에 처음 등장했을 때 보통 2만 원 안팎이었습니다. 아무리 전기요금을 아낀다 해도 이건 곤란하죠. 더욱이 사용 시간이 아주 적은 곳이니 본전을 뽑는 데 삼십 년은 걸릴 겁니다. 경제성은 꽝입니다. 투자가 아까운 이유죠.
이제라도 바꾸니 좋습니다. 전기는 십 분의 일도 안 들면서도 밝기는 더욱 밝아졌습니다. 거기에 수명은 거의 잊어도 됩니다. 모양도 우윳빛 백열전구를 닮아 제법 예쁘고 따뜻하기도 합니다.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학자가 말했죠. 행복은 소유에 비례하지만, 욕망에 반비례한다고. 그러나 인류의 발전은 사실 욕심쟁이들의 공로입니다. 오늘은 생각도 못 한 획기적인 기술이 또 나타날 겁니다. 당연히.
나도 욕심이 생기는 것은 영화에서 기막힌 문명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엔 전등은 없지만, 창도 없는 방은 은은한 빛이 있습니다. 물론 햇볕도 아닙니다. 전등이라는 특별한 기구도 없이 빛을 낼 수 있다는 얘기겠죠. 작가의 상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명은 모두 지난날 망상이라고 손가락질한 것들이 현실화한 것입니다. 라이트 형제가 기껏 몇 미터 날다 떨어지는 비행기를 만들어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듯이 말입니다. 기다려집니다. 전등도 없이 방안이 환해지는 그 날이….
첫댓글 부드러운 필력에 아주 편한마음으로 잘읽고 공감합니다. 저희집도 다 LED등이죠.
그리고 바깥은 태양열 등을해서 전기요금과 상관없구요. 아들이 집에 있으면서 태양열로 바꾸더라고요.
참 신기했습니다.
에디슨의 발명으로 지금까지 발전해왔으니 인류적으로 고마운 일이지요.
푸름이 더해지니 아침공기가 어찌나 시원하던지..정암님의 농장을 잠시 떠올려봅니다.
아드님이 태양전지를 설치했다니 참 잘 했네요. 많이 써야해요.
한데 아직은 수명이 짧아서 문젭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제 남산문학제는 제법 성황을 이루었답니다. ^^
@靜岩 유제범 남산문화제에 참석하셨나요? 저는 참석못하고 딸아이가 엄마대신 다녀왔습니다.
다음행사때는 참석하여 정암님도 뵙고싶네요. 예비부터 함께 걸어온 끈끈한 무언가 정암님과
아직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네요. 이번 행사를 계기로 저도 서정에 조금이나마 힘이 될까 합니다.
열심히 서정을 위해 뛰고 싶은 열정이 생기네요. 서정이 잘되야 우리한테도 좋은 거니까요.
제 글밭의 뿌리 서정을 늘 응원합니다.
수필의 묘미를 잘 느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에 전봇대가 아직도 도로가에 즐비하는걸 보며 가끔은 7,80년대를 살고 있는 듯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기의 발전은 참으로 삶에 많은 변화를 이끌었지요 ㅎㅎ 편하게 읽는 재미가 좋았습니다 건승하십시요
읽어주시고, 답글까지 주시니 대단히 고맙습니다.
선생님도 건승하십시오.
글을 읽으며 제 어린시절이 생각 났습니다.
시골 여자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읍내로 전학을 갔습니다
처음으로 본 전깃불이 얼마나 밝은지 너무 좋았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밝은 빛이 있다니요~~
그리고 자취하는 동안 가끔 전깃불을 켠 채 잠이들어 주인 할머니한테 야단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전기요금 때문이요... ㅎㅎㅎㅎ
덕분에 어린시절 추억이 소환되었습니다~~
그랬겠어요. 혼날 일이죠. 전기가 얼마나 귀한 시절이었는데....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전기를 배우고, 전기회사에 취직을 했어도 우리 집에는 전기가 없었답니다.
전깃불을 처음 본 것은 다섯 살 때 병원에 가서.... 허 허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주시니 감사합니다.
남산에서의 노고를 치하드립니다.
우리집도 앞 뒤 베란다엔 입주할 때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등이 그대로 있습니다.촉이 떨어지질 않으니 열어볼 필요도 없고...
그 속에 백열등이 있겠군요?ㅎㅎ
그러고보니 전기 제품도 많이 발전을 했군요. 오늘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나무 식탁 위에 둥그런 고무 깔판이 놓여 있기만 한데 거기서 음식이 끊고 있는거에요.ㅎㅎ
정암님 덕분에 전기의 발전과 효율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새겨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정암님 건강하세요~^^
별 탈도 없는데 갈아 끼울 필요는 없겠죠.
저야 워낙 전기에 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그렇지만.^^
여하튼 아무리 요금이 싸다지만, 아낄 수 있으면 아끼는 게 좋겠죠.
남산에 한 번 놀러 오시지 그랬어요. 기부도 하셨으면서...
고맙습니다.
하여간 님의 글에는 인정이 사물을 바라보시는 그 넉넉함이 그리고 그 세심한 시각이 넘 좋습니다
늘 아껴두고픈 마음입니다...^^*
제가 지나치게 쎈티한 점이 있죠? ㅎㅎ
거동이 불편하심에도 이번 행사를 지휘하시느라 큰욕 보셨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전등을 갈고 이런 글을 쓰시다니 대단한 발상입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그냥 일상인 것을 기막힌 수필하나 건졌으니 큰 수확입니다
제가 명색이 전기기술자라서‥‥ 허 허
고맙습니다.예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