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들려주는 아가서-김광락선교사
아빠가 사랑하는 딸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최고의 이야기가 있다면 단연 아가서Song of Songs일 것이다.
아빠는 너희들이 솔로몬 같은 멋진 남자를 만나든 만나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왜냐면 아빠나 너희나 모두 백마를 타고 승리의 행군을 하시는 예수님이 우리 각자에게 멋진 신랑이니까..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아빠는 너희들이 예수님의 사랑스러운 신부로서 잘 준비되는 인생으로 살았으면 좋겠구나..
아가서는 Song of Songs 라고 하는데 히브리어에서는 '최고의 노래' '가장 거룩한 노래'란 뜻이란다.
최고의 노래는 단연 사랑에 관한 노래이지..
세상 가요에도 주로 사랑에 관해 부르지 않니? 그러나 '최고의 사랑'에 대해서 세상은 아는 것이 별로 없단다.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인 줄로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한번뿐인 인생,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실수할 가능성이 크단다.
아빠가 들려주는 아가서 이야기를 잘 듣기를 바란다. 그리고 최고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배우기를 바란다.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2절)
상담학자 존 그레이가 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을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서로 다른 존재인지 모른다. 남여의 차이를 서로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는 결코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단다. 1장은 결혼식 당일에 일어난 일들을 노래하고 있지. 앞으로 아가서를 묵상할 때마다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아가서는 '참 사랑의 본질'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오페라 대본형식으로 쓴 노래란다. 아가서에는 노래를 부르는 주체가 모두 셋인데, 신랑, 신부, 그리고 하객(친구들)이란다. 그리고 1장은 결혼식 당일에 일어나는 일들을 잘 보여주고 있지. 결혼식 날이 밝아오자 술람미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이렇게 노래하지. "그가 내게 입맞추어 주기를 내가 원한다네.." 여기서 여자의 특성이 잘 나타난단다. 여자는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지만 반대로 남자는 친밀함 보다는 일중심적인 경향이 많단다. 이런 차이 때문에 서로 오해를 빚는 경우가 많지. 남자가 일중심적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원래 남자를 일을 위해 만드셨다고 보아야 한다. 남자가 여자의 친밀한 성향을 이해해주고 존중해준다면 정말 멋지겠지?
친밀함intimacy에 대해서 좀 더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단다. 남자나 여자나 모든 인간은 나름대로 친밀함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단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친밀함에 대한 갈망은 모든 인간에게 있는 특성이라고 볼 수 있지.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그렇게 만드셨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친밀함을 깨뜨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수치심'shame이란 감정이란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죄를 안고 태어나는데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의 특징이 바로 수치심이란다. 우리가 이 수치심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되면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치명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단다. 수치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나타나는 특징이 남들과 비교하고, 남들을 조종하게 되며, 때로는 무례한 언행을 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하고, 자신이 숨거나, 자신을 숨기거나, 외모에 관심을 가지고 치장하는 데 열중하거나, 감사하지 못하고 쉽게 불평하거나 섬기지 못하고 남들에게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모습이 나타난단다. 이른바 '수치심의 증상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아가서의 첫 노래, 술람미의 첫 고백이 "그가 내게 입맞추어 주기를 바란다"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히 표현하는 술람미의 모습을 보고 아빠는 술람미가 염치가 있는 여자이지만 수치심이란 멍에로부터 자유로운 건강한 영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단다. 얼마나 당당한 모습이니?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 그러면서도 술람미는 전혀 속되거나 이상한 여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솔로몬이 왜 술람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 짐작할 수 있단다. 아빠는 아빠의 딸들이 술람미처럼 건강한 속사람, 죄의 영향력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그런 영혼의 소유자들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3절)
술람미는 솔로몬이 사랑받을만한 남자라고 노래부르고 있다. 솔로몬의 아름다움은 '기름'과 '이름'에서 비롯되는 것라고 노래하고 있지. 기름은 인품을, 이름은 명예를 의미한단다. 남자의 아름다움은 그의 외모나 소유나 학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격과 명예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인격과 인품은 외모나 경력보다 더 중요하단다. 인격이나 인품은 좋은 학교를 다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란다. 그것은 고난과 역경을 통해 연단을 받고 깎이며 부러지며 그래서 겸손을 배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배울 때 생기는 자질이란다. 그리고 명예는 사람들에게 존경받을만한 능력을 의미하는데 이 명예 또한 외모나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란다. 남자에게 있어 명예란 어떤 일을 비전과 소신과 실력을 가지고 성실하게 꾸준히 해나갈 수 있을때 생기는 것이란다. 아빠는 딸들이 남자들의 외모나 소유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 꼭 기억하렴..남자의 향기는 인격과 명예라는 것을..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4절)
남자에게 중요한 것은 '리더십'이란다. 여자를 자상하게 배려하고 부드럽게 리드하는 것은 남자로서 중요한 자질이란다. 하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여자의 마음을 훔치려는 못된 남자들이 있단다. 거짓된 리더십에 속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떤 여자들은 남자들을 조종하려고 하는데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수치심에서 치유되지 못한 사람일수록 남을 조종하려고 들기 쉽지. 만약 너희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말고 구체적으로 그렇게 해달라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단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5절)
지금 술람미가 탄 마자는 솔로몬이 결혼잔치를 준비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가고 있단다. 솔로몬이 과연 어떤 여자를 선택했을까 궁금해하며 수많은 예루살렘 여자들이 나와서 구경하고 있었겠지..술람미의 눈에 비친 예루살렘 여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늘씬하고 피부는 백옥같이 희었을 것이 분명하지. 그런 도시 미인들을 바라보면서 술람미는 문득 그들과 다른 자신을 보게 되었겠지. 그러나 술람미는 그 순간에도 결코 기죽지 않았단다. 그 순간에 술람미는 매우 담담하고 당당했단다. 아빠의 딸들은 술람미가 보여준 그런 당당함과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영혼들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 '게달의 장막'은 베두인의 천막이란 뜻인데 예전에 시리아를 여행하면서 베두인의 천막에 들어가서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얻어마신 적이 있단다. 멀리서 볼 때는 시커먼 천막이지만 안에 들어가보면 화려하고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장식들로 가득차 있었지. 너희들이 매스컴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정말 잘 생긴 남여들을 많이 볼 수 있겠지만 그들의 외모에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들의 외모를 부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대부분 겉으로는 하려하지만 속으로는 공허하고 여러가지 슬픔과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란다. 아빠는 우리 딸들이 세상이 볼 때는 별 볼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 속이 꽉 차 있고, 아름다운 생각과 복된 말씀의 묵상으로 가득 차 있는 그런 영혼들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자존감에 대해서 한 마디 하려고 한다.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영혼들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쉽게 움추려들고, 영향을 받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았으면 한다. 자존감이 건강하다는 것은 남들의 시선과 말에 쉽게 의기소침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보는 것처럼 자신을 볼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단다. 사람들은 술람미를 베두인의 천막으로 보고 있을지라도, 술람미 자신은 솔로몬의 커텐으로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니?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그 누구보다 너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시선으로 너희 자신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건강한 자존감이란다. 건강한 자존감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남을 제대로 섬길 수 있고 또 사랑할 수도 있단다.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6절)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당당해져야 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술람미가 가진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녀의 외모나 피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단다. 그녀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녀의 성실함, 근면함에서 나오는 것이었단다. 술람미가 자신의 오빠들을 '어머니의 아들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마도 그녀가 어릴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 모른다. 그런 어려운 가정에서 오빠들이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였겠지. 오빠들은 하나뿐인 여동생이 얼굴을 꾸미며 집안에 가만히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지. 술람미는 엄격한 오빠들과 함께 밭에서 땀흘리면서 일해야 했었지. 술람미의 아름다움은 가난에도 불구하고 땀흘리며 노동하는 삶에서 생겨난 것이란다.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이든 그것에 땀흘리며 성실히 일하는 모습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단다. 솔로몬은 술람미의 그런 근면 성실한 노동에 반하고 말았단다.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6절)
사람은 누구나 신체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단다. 신체적인 약점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무례한 말도 없지. 술람미 역시 그러한 약점이 있었단다. 그러나 술람미는 그러한 신체적인 약점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결심했단다. 자신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신체가 갖고 있는 약점에 대해서 결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7절)
고대 근동 세계에서 얼굴을 가린 자는 '창녀'를 의미했단다. 술람미는 지금 결혼하게 되면 자신이 하릴없이 남편을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될 것에 대해 염려하고 있단다. 남편은 국정일로 바쁠 것이고, 자신은 남편을 기약없이 기다리는 그런 삶을 살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하고 있단다. 결혼은 많은 변화와 책임이 뒤따른단다. 그 모든 변화와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야 한단다.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먼저 경험한 선배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단다. 이럴 땐 어떻게 하지?라고 언니나 엄마에게 물어보렴..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을지니라."(8절)
하객들은 결혼후에 생길 변화와 책임에 대해 고민하는 술람미에게 세 가지를 조언하고 있단다.
1) 양떼의 발자취를 따를 것: 모든 관계의 문제는 선배들으 삶과 역사와 책에 있단다.
2) 목자들의 장막 곁에 머물 것: 술람미는 솔로몬의 입장과 사역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
3) 자신의 염소 새끼를 먹을 것: 생명을 돌보는 일, 자신의 일을 해야 한다.
결혼후에 생길 변화를 잘 대처하려면 위의 세 가지 조언을 잘 기억하여야 한다.
"내 사랑아 내가ㄴ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9절)
이제 술람미는 솔로몬과 함께 결혼잔치자리에 함께 앉게 되는데 솔로몬은 술람미를 이렇게 칭찬하고 있단다.
남자의 지혜는 멋지게 칭찬하는 데 있단다. 쉽게 말을 내뱉는 사람, 깎아내리는 말을 하는 사람을 조심하기 바란다.
인격적으로, 세련되게 칭찬하는 남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단다.
솔로몬의 칭찬을 보면 술람미가 어떤 여자인지 대충 짐작이 가지. 그리고 술람미의 어떤 면을 보고 솔로몬이 반하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지.
솔로몬은 원래부터 말을 좋아했는데 당대 최고의 말은 이집트의 말이었단다. 그중에서 이집트 왕이 타는 전차를 모는 말들은 최고 중에 최고이지. 병거를 끄는 말이라면 무엇보다 훈련이 잘 되어 있어야 하고, 힘도 있어야 하고, 적들이 화살과 창을 쏘아대어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며, 무엇보다 용감해야 하겠지. 술람미에게서 솔로몬은 그런 모습을 보았던거지. 그래서 솔로몬은 술람미에게 마음을 뺏긴 것이고..아빠가 사랑하는 딸들도 '바로의 병거를 모는 준마'처럼 성장하고 준비되었으면 좋겠구나..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11절)
시골에서 올라온 술람미가 비록 건강미가 있었다 할지라도 솔로몬은 술람미의 아름다움을 그녀가 꾸민 것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녀가 갖고 있는 본래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단다. 그리고 자신을 꾸밀 수 없었던 술람미를 아름답게 꾸며줄 것이라고 하면서 안심을 시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랑은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허물을 덮어주는 것만이 아니라 허물을 가져가고 자신의 아름다운 것으로 상대방을 꾸며주는 것이다. 상대방의 연약한 모습을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연약함을 자기 것으로 삼고, 자기가 가진 최고의 것으로 상대방을 꾸미는 것이다.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12절)
결혼잔치를 끝내고 함께 침소에 들어갈 때까지 술람미는 자신의 향기를 뿜어내지 않았다. 여자는 아무에게나 향기를 헤프게 뿜어냉서는 안된단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13절)
우리 모두는 예수님 앞에 섰을 때 품어낼 향주머니를 준비해야 하는 존재들이란다. 예수님이 내 가슴에 고이 모셔둔 향주머니가 되면 얼마나 멋지겠니..예수님을 만날 때 예수님을 위해 평생 준비해둔 향주머니가 터져서 향기를 뿜어낸다면 얼마나 굉장하겠니? 우리 모두는 이렇게 자신만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향낭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한단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 속에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처럼 꽃피는 그런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예수님을 그 가슴 속에 비밀로 고이 간직한 여자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없단다. 그런 딸들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15절)
침상에서 솔로몬은 술람미의 눈을 칭찬하고 있다. 술람미의 눈은 순결하고 정결하였단다. 이중적이지 않고, 일편단심의 마음, 한 곳만 응시하는 그런 눈길, 조종하려는 눈빛이 아니라 경외심으로 가득 찬 눈이었단다. 아빠는 딸들의 눈이 비둘기처럼 순결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러운 것, 악한 것, 불의한 것을 참아 보지 못하는 그런 눈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ㅗ 기도한다.
'우리 집은 백향목같고 잣나무 서까래로구나."(17절)
옛날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잣나무로 만들었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백향목으로 만들었지.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성전'을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을 '성전'으로 여기는 믿음이 없다면, 가정을 '교회'로 세우려는 비전이 없다면 결혼할 준비가 아직 덜 된 것이다. 그런 믿음과 비전이 없이 살 바에야 차라리 혼 자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하고 나을 것이다.
2장
나는 사랑하는 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말씀은 아가서라고 굳게 믿는다.
남자는 솔로몬을 통해 사랑을 하는 법을 배우고, 여자는 술람미를 보면서 사랑을 받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믿는다.
아가서는 '최고의 사랑'을 위한 '최고의 멘토'가 되어줄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있거든, 더 깊은 사랑을 원하거든 아가서를 늘 가까이 하기를 바란다.
저번에 읽을 책을 추천했는데 이번에도 읽을 책을 추천하면서 아가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선을 넘지 마라]는 책인데, 시부야 쇼조 라는 일본인이 쓴 책이다. (흐름출판사에서 출판된 책이다.)
이 책의 핵심은 상대의 영역을 아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내용이다. 사람마다 영역이 있고, 관계에도 영역이 있단다.
영역에 대한 감각이 뛰어날수록 대인관계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그런 내용이다.
특히 남여간에도 영역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직 사귈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서 사람마다 갖고 있는 '경계선'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길 바란다.
상대방의 경계선을 함부로 침범하고 넘나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영역을 존중하고 보호해주며 경계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하며 절제하는 것이다. 아빠는 사랑하는 딸이 건강한 사랑을 하기 위해 건강한 사람으로 준비가 되었으면 한다. 건강한 사람이란 다름 아니라 이 '경계선'을 잘 지킬 줄 아는 사람이란다. 성숙한 사람이란 이 경계선을 잘 아는 사람이란다.
바다를 보렴..
바다는 아무리 거센 파도가 칠지라도 경계선을 넘어서 육지로 넘나들지 않는다.
쓰나미와 같이 경계선을 마구 짓밟는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니란다.
감정이 아무리 폭발하더라도 상대방의 경계선을 지켜줄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인격이 성숙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관계영역을 알고 경험하면서 경계선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란다.
때로는 경계선을 넘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침범을 당하기도 하면서 아픔을 경험하기도 하면서 사람들은 이 경계선에 대해서 조금씩 배워가지.
그런데 이런 경계선을 모호하게 하는 잘못된 생각, 편견, 선입견들이 세상에 많단다.
아빠는 많은 청년들과 함께 수십 년을 함께 생활하면서 많은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발견했단다. 그리고 그러한 편견들이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고, 관계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을 관찰했단다.
첫째, 나의 배우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운명론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면 배우자를 만나는 일에 있어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이니 조심하기 바란다.
배우자는 정해지지 않았단다. 다만 나에게 적합한 배우자를 만나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뿐이다.
생각해보렴. 수십억 인구 중에 하나님이 정하신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니?
정해진 배우자를 만나는 그런 운명적인 사랑은 세상에 없단다. 다만 책임과 선택이 있을 뿐이지.
둘째, 나의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만나지 않은 가상의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 역시 자신의 시야를 좁게 만드는 것이니 삼가도록 해야 한단다.
많은 부모나 교사들이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는 근거는 성경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단다.
물론 이미 결혼한 상태라면 배우자를 위해 중보기도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가상의 배우자상을 그려놓고 기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배우자상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놓고 기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욕심에 의한 기도이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은 결코 아니란다.
대신 너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사랑하고 사랑받을만한 사람으로 준비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단다.
결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으로 만족하며 주님 안에서 스스로 만족하며 혼자서 잘 지낼 줄 아는 사람이 먼저 되는 것이다.
홀로서기를 잘 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결혼도 가정생활도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단다.
셋째, 좋은 감정이 반드시 행복한 가정생활을 보장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 역시 편견인데..좋은 감정이 행복한 가정생활을 보장하지는 않는단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은 신뢰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구나.
감정은 신뢰에서 따라나오는 열매이지, 감정에서 행복한 삶이 뒤따르는 것은 아니란다.
이제 아가서 2장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아가서 1장 2절에서 2장 7절까지는 결혼식 당일에 일어난 일을 노래하고 있단다.
그리고 아가서 2장 8절부터는 오페라의 2막이 시작되는데
술람미가 어떻게 해서 솔로몬을 만나게 되었는지 첫 만남에 대해 회상하는 장면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술람미는 첫날밤에 신랑 앞에서 자신의 초라함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데..아무리 바로의 병거의 준마라 할지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술람미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지 않니?
술람미는 참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솔로몬이 그녀에게 반할 만도 했다. 지난번에는 술람미의 내면의 아름다움과 건강함에 대해서 말했는데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사람의 아름다움은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사람의 참 아름다움은 그의 내면에 있다.
무엇보다 술람미는 '염치'가 있는 여자였다. 부끄러워할 때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은 아름다움의 진정한 조건이란다.
술람미는 그러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다. 자신을 '들꽃'으로 보았으니 말이다.
사론은 이스라엘에 있는 큰 평원인데 그곳에서는 봄이면 들꽃을 수없이 볼 수 있는 곳이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런 꽃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고백하고 있단다.
건강한 염치를 갖는 것은 수치심을 갖는 것과는 다르단다.
나를 사랑하는 주님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과도 같은 것으로 아름다움의 특징이란다.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2절)
술람미의 이런 고백에 솔로몬이 얼마나 재치있게 지혜롭게 대답하는지 보렴..
솔로몬은 "당신은 이름없는 들꽃과 같소. 하지만 그대에 비하면 다른 여자들은 가시나무와 같소."
첫날 밤에 신랑과 신부가 이렇게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그려보면 아름답다 못해 거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여자들은 유머감각이 있는 남자들에게 마음이 끌리는 거겠지. 자신을 비난하고 놀리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움으로 자신의 부끄러움을감싸줄 그런 남자에 마음이 끌리는 것이겠지..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아가서에는 이 표현이 세 번 반복되고 있단다. 그만큼 아가서에서 매우 중요한 구절이고, 주제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단다.
3장 5절, 그리고 8장 4절에도 반복되고 있단다.
이 구절은 '순결을 지키는 것'을 말하고 있단다. 누구나 사랑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고, 그 요구는 가장 원초적인 요구인데 그런 욕구를 함부로 깨우면 안된다. 그러한 욕구는 불과 같은 것이어서 함부로 깨웠다간 자신의 인생 전부가 불타버릴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단다.
그런 사랑을 깨우는 것은 결혼이라는 언약의 테두리 안에서만 깨울 수 있어야 한단다.
영적인 순결이나 육적인 순결이나 원리는 같은 것인데
이러한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은 노루와 들사슴과 같은 민첩한 성품이란다.
작은 소리에도 놀라서 뛰어나가는 임팔라를 본적이 있지?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그러한 민첩함이 필요하단다.
요셉이 보딜발의 아내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왔을 때 겉옷을 버리고 도망간 것과 같은 성품이란다.
결혼 전에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잠자리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보더라도 부러워하지 말기 바란다.
혼전동거는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 흔들고 깨운 것'인데 평생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기는 것이고, 가정생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누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란다.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사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8절)
이제 2막이 시작되어 술람미는 어떻게 해서 솔로몬을 만나게 되었는지 회상하고 있단다.
술람미는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는데 자신도 알기 전에 솔로몬이 자신을 만나려고 얼마나 부지런히, 민첩하게 행동하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아셨고,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하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준비하셨는지 모른다.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 많은 것을 하되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하는 것이다.
솔로몬은 술람미를 만나기 위해 왕복을 벗어던지고 목동의 옷으로 갈아입고 그녀를 보기 위해서 빨리 달리고 있단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위해 많은 것을 하되 상대방이 모르게 하는 것이란다.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9절)
솔로몬이 얼마나 민첩하게 행동하는지 보렴.
솔로몬은 술람미가 눈치채지 못하게, 술람미가 부담을 갖지 않게끔 '노루처럼' 행동하고 있단다.
그는 왕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권력과 힘을 가진 왕이었음에도 그가 사랑하는 술람미 앞에서는 겨우 '엿보는 바보'peeping Tom처럼 행동하고 있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도 그렇게 하셨단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고,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이실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영역을 존중하셨고 경계선을 넘어오지 않으시고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 때까지 우리를 오래동안 관찰하시며 기다리시는 분이시지.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거란다.
상상해보렴. 왕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강제로 소유할 수 있음에도 지금 시골 총각처럼 문지방 넘어 구멍에 눈을 갖다대는 바보처럼 행동하고 있는 모습을..
사랑은 그런 것이란다. 힘과 권력이 있음에도, 상대방을 지배하고 정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보처럼 구는 것이다.
내 힘과 권력을 내려놓고 바보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바보가 아니라 온갖 지혜와 민첩함과 사려깊은 행동이란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 상대방을 정복하고, 소유하고, 지배하고, 부담을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란다.
그러기 위해 얼마나 조심스럽고 지혜롭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른다.
솔로몬은 매우 은밀하게, 술람미가 눈치채지 못하게 행동하고 있단다.
솔로몬은 아주 은밀하게 술람미를 관찰하고 있단다.
솔로몬의 행동은 아주 조심스러운 것이고, 술람미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사려깊은 것이고, 술람미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매우 은밀한 것이지. 솔로몬이 그렇게 민첩하게 행동하면서 술람미는 관찰하는 동안 술람미는 전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
솔로몬은 술람미를 매우 좋아하고 있지만 지금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술람미를 관찰하고 있단다.
그리고 술람미의 영역을 절대로 침범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지.
사랑은 경계선을 넘지 않는 것이란다. 사랑은 상대방의 영역을 잘 알고 보호해주는 것임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쉽게 남의 영역에 끼어들고, 침범하고, 그래서 불쾌하게 하고 부담을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님을 기억하기 바란다.
사려깊게 행동하지 않으면, 민첩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상대방의 영역에 침범하는 무례를 범하기 쉬운 존재란다.
사랑은 무례히행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10,13절)
드디어 관찰의 단계가 끝나고 솔로몬은 술람미에게 용기를 내어 데이트를 신청하고 있다.
서로 함께 알아가는 시간을 갖자고 정중하게 제안하는 모습을 보렴.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 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11,12절)
솔로몬은 술람미를 관찰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솔로몬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술람미가 마음을 열고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주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이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겨울이 지나기 전에 비가 그치기 전에 솔로몬은 참고 기다렸지.
사랑은 상대방을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성품이란다.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14절)
아무리 솔로몬이 변복을 하였을지라도 솔로몬의 제의에 술람미는 두려워서 바위틈에 숨어 있는 한 마리 비둘기처럼 움추러들었겠지만 솔로몬은 술람미가 마음을 열도록 부드럽게 리드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랑은 결코 강제하거나 억제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상대방이 마음을 열도록 부드럽게 리드하는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15절)
이제 솔로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서로 함께 알아가던 술람미에게 문제가 생기게 되었단다.
술람미는 솔로몬과 함께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는 동안 자신이 해야 할 일(포도원 관리)에 소홀히하게 되고 그 틈을 타 여우가 포도원을 침범하여 망쳐놓게 되었단다.
우리가 하나님을 처음 알아가는 시기에도, 혹은 결혼을 위하여 배우자와 함께 서로 알아가는 단계에도 이런 여우가 나타날 수 있단다.
작은 여우 한 마리 때문에 소중한 관계가 깨어질 수 있지.
이럴 때 술람미의 태도를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술람미는 자신의 힘으로 그 여우를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겸손히 상대방에게 자신의 문제를 오픈하며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였다.
종종 우리의 문제를 상대방에게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해보려고 하면 더 문제가 커지고 복잡해질 수 있단다. 종종 우리는 겸손히 우리의 문제를 공개하고, 겸손히 도움을 상대방에게 요청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구나."(16절)
드디어 관계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깊은 사랑의 단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든 관계가 성숙해지고 깊어지고 발전하려면 반드시 '작은 여우'를 함께 잡아야 한다.
관계에서 갈등을 처리하면 더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관계에서 생기는 어려움과 문제를 두려워하지 말기 바란다.
그것을 '밥'으로 여기고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결코 회피하거나 도망하여서는 안 된다.
관계문제를 극복한 술람미의 사랑은 아가서에서 세 단계에 걸쳐서 발전하고 있단다.
16절에, My lover belongs to me
6장 3절에, I belong to my lover
7장 10절에, His desire is for me.
사랑의 초보단계는 내가 상대방을 알고 있고 소유하고 있다는 것으로 기뻐하는 단계이지..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것이 초보적인 단계임을 알아야 한다.
사랑의 중급단계는 소유개념이 아니라 소속개념으로 바뀌는 것이란다. 내가 누구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속해있다는 것이 주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단계이지.
사랑의 최종단계는 내가 사랑받고 있고, 사모함을 받는 존재임을 깨닫는 단계란다.
이렇게 사랑은 그냥 머물러 있는 어떤 개념이나 감정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을 해소하며서 점차 깊어지고 성숙해지고 성장하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란다.
사랑하는 딸들이 사랑의 성장을 경험하는 그런 삶이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사랑하는 딸들에게..
아빠에겐 아가서는 너무나 귀하고 사랑스러운 성경이란다.
아가서를 보며 묵상할 때마다 나를 사랑하는 예수님을 느낄 수 있고, 내가 예수님께 사랑받는 술람미같아서
아빠에게는 아가서가 최고의 성경이지..우리 딸들에게도 아가서가 최고의 성경이 되어서 읽고 묵상할 때마다 사랑받는 자beloved one임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은 배우는 것이란다. 참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는 것이 중요하단다.
세상이 말하는 사랑은 '테크닉'과 '정보'일뿐 참 사랑이 어떤 것인지 그 본질을 이야기해줄 수 없지.
왜냐면 세상은 참 사랑을 배우지도, 경험하지도 못했거든..
오늘은 아가서 3장을 함께 살펴보기 원한다.
"내가 밤에 침상에서.."
지금 술람미는 솔로몬과 결혼하기 전 서로 사귀는 단계에 있을 때 꾸었던 꿈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단다.
꿈이란 일상생활에서의 의식이나 고민, 스트레스 등을 보여주는 것이지.
술람미가 꾼 꿈의 노래(1-5절)에서 우리는 술람미가 솔로몬과 사귀면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있단다.
사실 사랑한다는 것은 즐거운 것만 아니라 고민과 걱정 스트레스도 많은 것이란다. 왜냐면 참 사랑에는 큰 책임이 뒤따르는 것이니까..
그러면 술람미는 어떤 고민을 했을까? 술람미가 꾼 꿈을 통해 엿볼 수가 있단다.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1절)
술람미는 솔로몬과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했겠지. 혹은 결혼하고 나서 바쁜 솔로몬을 자주 보지 못할 것에 대해 걱정했을 수도 있겠지..
사랑의 반대는 두려움이지..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잃어버릴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그 외에 모든 두려움은 사랑 안에서 온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것이지..다시 말해 사랑이 결핍하여 생기는 감정이 두려움이란다..
그러나 참 사랑에도 두려움은 있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가 끊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바로 그런 두려움이란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가 단절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예수님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었고 걱정이었단다.
술람미가 꾼 꿈에서 우리가 한 가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에는 크나큰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이란다.
어쩌면 결혼하면서 생길 삶의 변화에 대해 염려했기 때문에 솔로몬과 사귀는 과정에서 이런 꿈을 꾸었을 수도 있겠지.
사랑은 좋아하는 것 그 이상이란다. 사랑은 큰 변화를 책임질 것인지, 한 인생을 책임질 것인지, 충분히 고민하는 것이란다.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두루 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2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것을 의미한단다.
우리가 간절히 찾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어야 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서로를 찾는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겠지만 결혼한 이후에는 함께 한 분 하나님을 찾아야 한단다.
결혼 이후에도 계속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면 그 관계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단다.
언제나 하나님 한 분만을 간절히 바라고 찾는 딸들이 되기를 바란다.
"성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3절)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고민이 있단다. 좋은 고민이지. 모든 두려움이 다 나쁜 것은 아니란다. 오직 한 가지 두려움인 내가 사랑하는 이와 단절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만 빼고..신앙의 초기단계나 결혼을 목적으로 사귀는 단계에서나 누구나 고민을 한단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혼자서 고민하기보다는 대답해줄 사람에게 겸손히 상담을 요청하는 것이란다. 신앙의 선배나, 인생의 선배들에게 지혜를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은 배워가는 것이니까 잘 묻는 사람이 사랑도 잘 하는 법이란다. 내가 묻는 사람이 '순찰자' 즉 권위가 있는 사람이라면,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도움을 받을 가능성도 커진단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순찰자'를 세상에 보내셨는데 우리는 그들의 도움을 받아 '내가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발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단다.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4절)
요즘 초등학생들 중에서 교제하는 짝이 없는 사람은 바보취급을 당한다고 하더구나..
이성교제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건강하지 않단다. 왜냐면 이성에 집착하는 동안 내가 참 사랑을 배우고 연습하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지. 어떤 사람은 이성과 사귀면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단다.
이성에 너무 일찍 눈을 뜨는 것은 나의 성장에 바람직하지 않단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성에 눈을 뜨게 되면 이성을 집착하고 독점하고 지배하고 소유하려고 들게 된단다.
우리는 사랑에 눈을 뜨기 전에 먼저 사랑을 배워야 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건강해져야 한단다.
왜냐면 참 사랑은 소유하고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풀어주고 섬김으로써 자유케 하는 것이니까.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분, 우리가 집착해야 할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단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5절)
사람은 누구나 사랑에 대한 욕구과 열망을 가지고 태어나지.
그러나 참 사랑이신 하나님을 경험하기 전에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 욕구를 자극하거나 충족시키려고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다.
"몰약과 유향과 상인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내 풍기며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가"(6절)
술람미를 태운 가마는 레바논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오면서 거친 들을 통과하여 오고 있단다.
6절에서 11절까지 말씀은 술람미를 태운 마차가 광야를 통과하는 장면을 노래하고 있는 부분이란다.
사실 술람미를 태운 마차는 지금 고통과 아픔이 많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이라고 할 수 있지.
비록 광야를 통과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보다 더 아름다운 이들은 세상에 없단다.
세상을 살면서 그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내가 세상에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지금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환경이나 외모로 평가하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이 나를 어떤 모습으로 보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단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의 사랑하는 신부라는 사실이지.
어떤 사람들은 결혼에 대해 간절히 열망하고 있고, 결혼을 원하는데 결혼시기를 놓친 것에 대해 스트레스가 많단다.
아빠는 우리 딸들이 솔로몬같은 사람, 아빠같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지라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결혼하고 않고를 떠나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사랑스런 예수님의 신부들이니까 말이다.
우리가 충분히 아름답고 충분히 영광스러운 신부가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지 결혼을 하고 못하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단다.
솔로몬은 술람미가 광야를 잘 통과할 수 있도록 60명의 호위무사를 보내었지.
우리는 사랑을 받는 자들일 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보호를 받는 자들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쉬운 길이 아니란다.
우리가 가는 길은 거칠고, 험하며, 매우 위험한 길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보호받고 있는 자들'이란다.
어떤 환경에서도 이러한 '자존감'과 '안정감'을 잃지 않는 딸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솔로몬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가마를 만들었는데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깔개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딸들의 사랑이 엮어져 있구나."(9,10절)
내가 곧 사랑받는 자요,
내가 곧 보호받는 자요,
내가 곧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몸도 마음도 믿음도 강해져야 한다.
내가 약할 때 강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붙드는 사람보다 더 강한 사람이 없고 더 아름다운 사람은 없단다.
세상 그 누구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딸들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4장
사랑하는 딸들에게,
아빠가 너희들에게 아가서를 들려주는 것은 사랑을 경험하기 전에 참 사랑을 배웠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음란한 이야기와 동영상을 통해 사랑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참 사랑이 아니란다.
하나님은 참 사랑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통해 우리는 참 사랑을 배울 수 있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모든 일, 말씀,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란다.
오늘은 아가서 4장을 함께 살펴보자.
아가서는 크게 전반부(1-4장), 그리고 후반부(5-8장)으로 나눌 수 있단다.
아가서 4장은 아가서 전반부의 마지막 부분으로 '첫날 밤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단다.
결혼을 꿈꾸는 모든 젊은이들은 이 첫날 밤에 대해 상상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단다.
거칠고 폭력적이고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유린하는 더럽고 음란한 동영상에 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란다.
솔로몬과 술람미의 첫날 밤에 대한 노래는 1장 후반부와 2장 전반부에도 나왔지만 4장에서는 좀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단다.
본문을 자세히 읽으면서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특정한 행위를 상상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태도'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아가서를 통해 사랑의 구체적인 행위가 어떤 태도와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배우는 것이 중요하단다.
첫째는 칭찬하는 사랑이다.(1-4절)
칭찬하는 것과 아부하는 것이 어떻게 다를까?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결혼식 날 첫날 밤에 솔로몬과 술람미의 대화를 볼 수 있는데 대화는 주로 솔로몬이 주도하고 있지.
그리고 중요한 것은 솔로몬의 대화를 보면 주로 술람미의 아름다움에 대해 칭찬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지.
그리고 그 칭찬은 매우 구체적인 칭찬이란 것도..
만약 상대방의 칭찬을 통해 내가 나의 아름다움에 대해 새롭게 발견하게 되고 깨닫게 된다면 나에 대한 그의 말은 칭찬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는 말은 아부가 되겠지.
사랑은 칭찬하는 기술이란다. 많은 사람들은 거짓 사랑에 속아넘어가는데 거짓 사랑이란 아부꾼flatterer의 달콤한 유혹이란다.
우리는 아부꾼의 달콤한 말에 우리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훈련을 받아야 하고 또 주의해야 한단다.
오늘 본문을 한번 보렴..솔로몬의 칭찬이 얼마나 구체적이며 섬세한지..
사랑은 구체적인 칭찬이란다.
둘째는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이다.(7-10절)
솔로몬은 술람미를 향하여 이렇게 노래하고 있지.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사랑은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란다.
상대방의 허물을 단지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그 허물을 내 것으로 여기고 내가 그 허물을 짊어지고 책임지는 것이란다.
그래서 사랑은 단순한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라 책임지는 행위이며 능력있는 행동이란다.
솔로몬이 술람미의 허물을 어떻게 덮어주었을까?
8절을 보면,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자."라고 기록하고 있지?
레바논은 술람미의 고향이 있는 곳인데 솔로몬이 술람미를 향해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자"고 했는데
솔로몬은 술람미의 과거를 자신의 삶으로 초대하고 있단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과거와 어린 시절, 성장과정에 내가 동참하는 것이란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사람의 과거와 성장과정을 내 것으로 삼지 못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단다.
솔로몬은 술람미의 과거에 있었던 그 모든 아픔과 상처들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술람미를 완벽한flawless 여자로 바라보고 있는데
이것이 참 사랑의 모습이란다.
사랑은 허물을 가려주는 것이고, 허물을 없애주는 것이고, 그래서 허물이 없이 완벽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과 같은 것이다.
셋째는 순결한 사랑이다.(11-15절)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12절)
사랑은 순결해야 한다. 순결하지 않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예비한 것은 순전히 사랑하는 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내 몸과 내 마음도 오직 한 분 예수님을 위해 준비된 것이어야 한다.
내 몸과 마음을 아무에게나 주어서는 안 된다.
왜냐면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이지.
아프리카에서 사는 펭귄을 자카스 펭귄이라고 하지..
자카스는 jackass 즉 '바보'란 뜻이란다. (원래는 숫당나귀처럼 운다고 해서 jackass라고 붙여졌지만)
자카스 펭귄은 평생동안 오직 한 마리만 사랑한다고 한단다.
그래서 한 사람만 사랑하는 사랑을 '바보같은 사랑'이라고들 하지.
순결한 사랑이란 오직 한 분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사랑을 의미하지.
세상은 그러한 사랑을 바보같다고 하겠지만, 순결한 사랑을 어리석다고 하겠지만
그러나 참 사랑은 순결해야 한다. 오직 한 분 하나님만 사랑하고 경외해야 하고,
만일 하나님께서 결혼을 허락하신다면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한다.
세상이 관점에서 '바보'같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거룩한 사랑이란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이 볼 때에는 우리가 바보같겠지만
그러나 바보같은 사랑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단다..
*
I am a rose of Sharon..
예루살렘 미인들 앞에서 "이래뵈도 난 아름답다"며 그렇게 당당했던 술람미 여인도 정작 결혼식 첫 날 밤 솔로몬 앞에서는 자신을 샤론 평원에 무수히 피어있는 이름없는 들꽃 중의 하나로 고백합니다. 술람미가 고백한 '샤론의 꽃'은 어떤 꽃일까요? 샤론평원Plain of Sharon은 이스라엘의 3대 평원 중에 하나로서 지중해 연안 욥바에서 갈멜산 까지 이어지는 넓은 평야로서 원래는 늪지대가 많아서 사람들이 살지 않고 양이나 소를 키우는 목축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옥한 땅으로 개간해서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밀집해서 사는 지역입니다.
솔로몬의 포도원이 갈멜산 기슭에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갈멜산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샤론평원이 내려다보입니다. 갈멜산 기슭에서 포도원지기로 일했던 술람미 가족들은 샤론 평원에 피어있는 들꽃들을 쉽게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샤론평원은 지금과 달리 원래 늪지대와 목축지였습니다. 미국식 단어 rose of Sharon은 한국에서 늘 보는 무궁화이지만 무궁화는 관목식물이고, 늪지대에서 잘 자라는 수선화narcissus나 수생식물인 칼라 릴리calla rily나 튤립의 일종일 것입니다.
찬송가에서는 샤론의 꽃을 예수님께 비유하지만 성경본문에서는 술람미 자신에다 비유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면 아무리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초라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자신을 샤론의 수선화로 고백하는 술람미에게 솔로몬은 "당신은 "가시나무중에 백합화"a lily among thorns라고 화답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당신에 비하면 다른 사람은 모두 가시나무thorns와 같소"란 뜻인데요..술람미를 띄워주는 솔로몬의 재치와 유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이렇게 눈이 멀게 됩니다. 오글오글..ㅎㅎ
참고로 수선화를 가리켜 나르키소스라고 부르는데요..그 이유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건데 나르키소스란 청년이 물이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여 흠모하다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곳에 꽃이 피어났다고 합니다. 꽃말은 신비한 고결이라고 합니디ㅏ. 요즘 셀카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자신의 모습을 즐기는 것을 가리켜 나르시즘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저는 셀카를 즐기는 젊은이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은데요..일단 자신이 아름답고 건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요..하지만 나르키소스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샤론의 이름없는 들꽃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기도할 때 주님의 임재 가운데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두고 비판하며 비난하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자시을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면서..그렇게 비난하는 이단은 한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직면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을 죄인이라 부르며 자학하거나 무조건 자기비하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릇된 자기겸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임재 안에 깊이 들어갈 때 우리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지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수치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라고 탄식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샤론의 꽃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알고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자화상입니다. 이것은 그릇된 자격지심과 다른 것입니다. 사랑받는 자로서 갖는 거룩한 수치심divine shame입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겸손의 미덕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샤론의 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겸손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