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테니스는 도구를 사용하는 운동이다. 라켓으로 공을 쳐서 상대방 코트로 보내면 된다. 라켓을 사용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다. 먼저, 부상이 적다. 라켓을 잘못 휘둘러 부러지는 경우가 있지만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는 것에 비하면 양반이다. 테니스는 라켓이 주인을 대신해서 부상을 당해주는 안전한 경기다. 라켓을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테니스의 매력이다. 운동신경이 둔한 사람도 노력을 하면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보다 공을 더 잘 칠 수 있다. 테니스는 구력이 중요하다는 말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조기 축구를 삼 년 정도 한 적이 있다. 때려치운 이유는 운동신경을 타고난 사람을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라켓은 주인의 능력을 끌어올린다. 테니스 공을 손으로 때려 서브를 넣는다면 시속 60킬로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 남자 테니스 선수들의 서브가 시속 200킬로를 넘는 것은 라켓 덕분이다. 도구를 이용함으로써 다양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테니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경기를 한다는 뜻이다. 테니스의 재미는 라켓으로부터 나온다. 테니스 라켓은 무게가 250~300그람 정도다. 탁구라켓이나 배드민턴 라켓보다 크고 무겁다. 참고로 배드민턴 라켓은 무게가 70~90그람 정도다. 테니스 라켓은 크고 무거워서 손목이나 팔과 같은 작은 근육을 쓰면 안 된다. 어깨나 허리와 같은 큰 근육을 써야 하기 때문에 운동량이 많고 상대를 속이는 기술이 없다. 테니스는 정직한 운동이라서 자기보다 공을 잘 치는 사람과 경기를 해서 시합에 지더라도 약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한 수 배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테니스는 발로 하는 운동이다. 내 테니스 코치는 선수 시절에 몇 시간씩 운동장 트랙을 돌았다고 한다. 하루는 육상선수가 와서 물어보더란다. 무슨 운동선수인데 자기보다 더 열심히 트랙을 도느냐고. 테니스 선수라고 했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더란다. 달리기는 좋은 운동이지만 재미가 없다. 달리기를 하면서 배꼽이 빠지게 웃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테니스장에서는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두세 시간씩 달리기를 하는데도 지루하기는커녕 시간이 빨리 가버린 것을 아쉬워하게 되는 운동이 테니스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무심천을 지나고 있었다.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육상부 학생들이 계단을 이용해서 훈련을 하는데 하나같이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학생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계단을 쉴 새 없이 오르내리고 육상부 선생님은 계단 가까이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무심한 표정으로 무심천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우리 체육 교육의 현실이지 않을까. 아이들이 불쌍해서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한참을 지켜봤다. 내가 육상부 선생님이라면 학생들을 두 개 조나 세 개 조로 나눠서 계주 시합을 시킬 텐데, 자장면 내기 시합을 시키면 즐거운 마음으로 훈련을 할 수 있을 텐데. 좀 더 욕심을 내도 된다면 저 학생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칠 텐데, 그러면 육상시합을 할 때보다 더 빠르게 코트를 뛰어다닐 텐데...
테니스는 진입장벽이 높다. 보기에는 쉬워보여도 라켓을 처음 잡아본 사람은 네트 너머로 공을 넘기는 것도 쉽지 않다. 테니스 라켓으로 공을 맞추게 되기까지도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을 정도로 공을 치려면 구력이 1, 2년은 되어야 한다. 나처럼 운동신경이 둔한 사람은 내가 어떤 자세로 공을 치고 있는지를 알게 되기까지 10년이 걸렸고 힘을 좀 빼고 공을 쳐야 된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다시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힘을 빼고 부드럽게 스윙을 하면서도 강타를 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려면 또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지...
진입장벽이 높은 이유는 테니스 게임에 필요한 기술이 종류가 많기 때문이다. 포핸드 스트록은 테니스의 기본이다. 상대가 내 오른쪽으로만 공을 주는 게 아니므로 백핸드 스트록이 필요하고, 바닥에 공이 떨어지기 전에 쳐서 넘기려면 발리가(발리에도 포핸드 발리와 백핸드 발리가 있다), 게임을 시작하려면 서브를 해야 한다. 내 머리 위로 넘어가려는 공을 쳐내는 기술이 스매시고 상대 머리 위로 공을 넘기는 기술이 로브다. 야구 선수는 정해진 역할이 있다. 투수는 공만 던지고 타자는 공을 쳐내고 수비수는 공을 잡는다. 테니스 선수는 투수처럼 서브로 공을 던지고, 타자처럼 상대방의 서브를 스트록으로 쳐내고, 수비수처럼 발리로 공을 잡는다 (진짜로 잡으면 안 되고 잡아서 상대 코트로 넘겨야 한다.). 내야수의 키를 넘기는 기술은 로브와 비슷한데, 야구에는 스매싱이 없다. 그래서 스매싱이 테니스의 꽃인가 보다.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은 구력이 1, 2년 밖에 안 된 사람들이 떨어져나갈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구력이 5년을 넘으면 그만두거나 다른 운동으로 전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동안 들인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서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테니스 기술은 한계가 없어서 계속 노력하면 하루하루 실력이 늘기 때문이다. 눈에 띄게 하루하루 실력이 느는 재미에 한번 빠지면 웬만해서는 빠져나오기 어렵다.
테니스를 잘 하려면 욕심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테니스는 멘탈 스포츠라고 불린다. 기술이 있어도 마음가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 실력이 나보다 못한 상대와 게임을 하면 이길 확률이 상당히 높은데, 반드시 이겨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안타깝게도 질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면 승부욕이 없는 사람이 승률이 높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실력이 월등하지 않다면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만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최선은 다하되 욕심은 버릴 줄 아는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테니스게임은 겉보기에는 운동경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신수양인 셈이다.
테니스는 아무 때나 칠 수 없다. 비가 오면 축구나 야구는 비를 맞으며 하고 탁구나 배드민턴은 실내에서 비를 맞지 않고 한다. 테니스를 치는 사람은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아쉬워 할 뿐이다. 실내 테니스장이 있긴 하지만 테니스는 하늘을 보며 해야 제맛이 나는 운동이다. 서브를 넣으려고 공을 토스하다가 가을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잠시 한눈을 판 적이 없다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비가 오지나 않았는지 땅을 살피고 비가 올 건 아닌지 하늘을 살피지 않는다면, 눈이 내리면 곧장 테니스장으로 나가 코트에 쌓인 눈을 치우지 않는다면 테니스를 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테니스는 아무 때나 칠 수 없어서 더 매력적이다.
내가 테니스와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다. 1학기에는 체육시간에 축구를 했는데 2학기가 되니 테니스를 가르쳤다. 국문과 남학생들만 배웠는데도 인원이 많아서 제대로 수업이 될 수 없었다. 시험을 서브 넣는 것으로 봤다. 내 라켓은 우드라켓이라 친구 라켓을 빌려 힘껏 휘둘렀는데 상대 코트에 멋지게 꽂혔다. 잘했다며 강사가 다시 시범을 보이라고 하는 바람에 실력이 탄로나버리고 말았다. 테니스가 치고 싶었지만 80년대의 대학생에게는 학생운동을 제외한 어떤 운동도 금기였으므로 꿈을 접어야 했다. 90년대가 되어 시대가 바뀌었지만 테니스를 배울 여유는 없었다. 나중에 교수가 되면 테니스를 꼭 배우리라 다짐해야 했다.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아침에 일어나자부터 재채기에 콧물, 허리가 아파서 의자에 오래 앉아 있기 어려웠고, 위가 약해 밥을 먹으면 한 시간은 지나야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이를 닦을 때마다 잇몸에서 피가 나는 것은 가벼운 증상이었을 정도로 삼십대 초반의 내 몸은 종합병원이었다. 이런 상태로 가다가는 교수가 되기 전에 세상을 뜰 것이 분명했다. 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것이 급한 때였는데 아파트 테니스 코트에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테니스를 시작한 지 석 달도 안 되어 건강을 되찾았지만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인지 박사학위 논문 발표에서 떨어져 오랜 고생길에 접어들게 된다. 테니스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씩 해본다. 그럴 때마다 결론은 같다. 종합병원 상태에서 논문 발표에 떨어졌겠지!
<과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장편소설 <백년의 고독> 1권을 읽고,
남들에게 엉뚱하게 보였을 행동을 한 경험을 시나 산문으로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