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소년 사건추적에서 잠시나마 1991년 그해에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살펴본 바이다.
이어서 1991년 개구리소년사건이 일어난 대구에서는 또 다른 사건들이 있었는지 추적해 보고자 하는 바이다.
개구리소년들이 실종된 1991년 그 해 대구와 그 인근에서 발생된 유명한 사건들이 있었다.
개구리소년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들도 공소시효 만료가 가까워지고 있다.
개구리소년들이 실종된 1991년 3월 26일 다음 날 27일 일본 나고야에 살던 24세의 오마사유미양이 부산을 통하여 입국한 후 경주 일대를 관광하기 위하여 경주로 들어왔다. 그리고 경주의 한 호텔에서 머물다가 이튿날인 28일 개구리소년들처럼 감쪽같이 사라져 실종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 유명한 일본인 여자 관광객 실종사건이다.
경찰은 오마사유미양 혼자서 불국사 석굴암 등 토암산을 관광하거나 경주 일대를 관광중에 사고사를 당하거나 인신매매범들에게 납치된 것이 아닌가 하여 수사를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개구리소년들을 와룡산에서 찾으려고 수색했던 것처럼 토함산과 그 인근 경주지역 멀리는 안동 대구 경북 지역 등에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수색을 벌였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도 개구리소년들처럼 살해된 후 암매장된 것이라면 영원히 풀 수 없는 미궁의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당시 이 사건은 일본 자국민 실종이라는 사실에 일본에서는 대대적으로 중요사건으로 다루었고, 다른 나라에서도 외신보도를 통하여 중요사건으로 다룬 사건이었다.
그리고 또 사건이 일어났다.
개구리소년과 일본인 여자가 실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1년 5월 9일 군위에 있는 팔공산에서 팔공산골프장 캐디로 일하고 있던 26세의 여자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당시 캐디의 시신은 양손이 절단되고 양가슴과 국부가 절단된 채 알몸으로 암매장되어 있어 그야말로 끔직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팔공산씨씨 캐디 피살사건이다.
당시 경찰에서는 캐디의 사체에서 물에서 사는 플랑크톤이 발견된 것을 단서로 물이 있는 연못 등지에서 살해된 것이 아닌가 수사를 벌였지만 지금까지 범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도 개구리소년사건처럼 이제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외에 대구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는 개구리소년들이 실종되기 직전인
1991년 2월 25일 서구 비산동 경상여상 운동장에서 알몸으로 숨진 채 44세의 여자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3월16일 동구 신천동 도로상에서 32세의 남자가 흉기에 찔려 살해된 사건도 아직까지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잠시나마 당시 뉴스를 통해 보도된 갈산동 부녀자 강간살인사건이 개구리소년들이 실종된 직후인 4월 13일에 일어났다. 이 사건의 범인도 아직까지 잡지 못하고 있다.
그 밖에 이미 설파한바 있는 어린이 납치유괴사건들이 대구에서도 일어났는지 추적해보자.
그 대상이 개구리소년들과 같은 어린이였다는 점에 본좌는 납치유괴사건에 주목하고 있다.
개구리소년들이 납치유괴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 때 그 시절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때는 바야흐로 개구리소년들이 실종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실종이 다가오기 불과 몇 달 전인 1990년도에 일어난 일들이다.
1990년 5월 16일 개구리소년들이 사는 곳과 가까운 달서구 성당동 두류공원 쓰레기통에서 생후 50일 가량된 여아가 발견되었다. 경찰 수사에 의하면 비산1동에서 괴한에게 납치된 김양으로 밝혀졌다. 그 후 납치한 범인을 잡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틀 후인 1990년 5월 18일 북구 대현동에서 하교중이던 5학년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괴한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범인은 여자 아이를 봉고차에 강제로 태우는 방법으로 납치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도 범인이 잡혔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또 한 달 후 1990년 6월 22일 마찬가지로 개구리소년들이 살고 있던 옆 동네인 달서구 용산동 용산초등학교에 놀고있던 5세의 김양을 괴한들이 납치유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범인들이 김양을 강제로 납치한 후 김양의 집으로 전화하여 현금 1천만원을 요구, 가난한 김양의 집에서 돈을 마련하겠다고 하고 1차 장소에서 범인들을 만나기로 하였으나 범인들이 나타나지 않아 검거하는데 실패하였다. 하지만 재차 2차로 다시 범인들이 전화를 해와 접선 장소인 경북 영덕에서 범인을 검거하였다고 한다.
당시 범인들은 서구 비산동, 개구리소년들이 살고 있는 달서구 이곡동에 거주하는 자들로 20대 초 청년과 2명으로 고등학생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납치한 김양을 개구리소년들이 실종된 바로 와룡산 중턱에 지어진 가건물에 감금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와룡산이 우범지대였다는 기사를 본 사람은 실감을 할 것이다. 물론 김양은 살아 돌아왔다.
이 사건이 일어난지 다시 두달만인 1990년 8월 22일 남구 봉덕동 어린이 놀이터에서 놀고있던 6세의 김군이 오토바이를 탄 20대 청년 괴한 두 명에게 유괴납치되는 사건이 또 일어났다. 경찰 수사에 의하면 당시 범인들이 김군을 납치한 후 부모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원한관계로 납치하였다고 말하면서 현금 1천만원을 준비하라고 하고 달서구 상인동으로 돈을 가져오라고 하였으나 경찰 수사를 눈치채고 범인들은 도주하였으며 다행히 김군은 범인들의 은신처에서 살아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 후 범인들을 검거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또 하루 후인 1990년 8월 23일 서구 상리동 마을길에서 8세의 초등학생인 노군이 괴한의 봉고차로 납치유괴되는 사건이 또 발생하였다.
경찰수사에 의하면 노군을 납치한 후 범인이 현금 5백만원을 요구하였으나 노군의 부모가 가진 돈이 없어 돈을 마련할 수 없다고 하자 잘못 짚었다고 말하면서 준비되는 대로 돈을 가지고 나오라고 하여 접선장소인 북구 대현동에서 붙잡았다고 하였다.
물론 노군은 살아 돌아왔다.
이 밖에 몇 차례 납치유괴 사건이 일어나 1990년 한 해에만 약 10여건의 어린이를 상대로 한 납치유괴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다행이 살아 돌아온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나마 불행 중 다행스러운 사건들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하여 개구리소년사건은 정말 끔찍하고도 잔인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과연 아이들에게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었단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