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자랑하고 다니랬다고
김선미
동생네 강아지 수컷 요크셔테리어가 나에게 들이댄다
올케는 난감해 하고 나는 내 다리에 붙어있는 그것을 발로 밀어내느라
생일이라고 만든 김치 만둣국을 먹은 듯 만 듯 했다
말도 그랬다, 서삼릉가려다 잘못 들어간 원당 종마목장에서
머리가 크고 몸통은 작고 꼬리는 풍성한 수컷, 커다란 속의 것을 밖으로 내밀고
붉어지거나 불거지는
서삼릉 옆에서
왕자와 공주 묘 그리고 쫓겨오다시피 옮겨온 임금들의 태실도 묻혀 있다는데
멸종된 종족의 말 같아
친구는 찢어진 종이봉투를 끌어안고 웃었다 징그럽다 징그러워 봉투는 점점 더 찢어지고
나는 전생에 개였나
말이었나 저렇게 내게 달려드는 걸 보면
웃을 때 마다 점점 더 찢어지는 그 봉투였는지도
지구 반대쪽 나라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구는 둥그니까 세상의 바다는 다 같이 출렁거리고
수위가 높아지고
물이 나의 목까지 차오를까 미리 걱정하는 동안
우리 집 화분 제라늄은 또 씨를 토해놓는다
일 년 내내 꽃 피는 제라늄
누군가 걔 죽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꽃나무들은 죽을 때 되면 씨를 마구 쏟아놓는다던데 묻고
병은 자랑하고 다니라 했다고 여기저기 병들만 난무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아이들을 낳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로마에 여행간 친구는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허망함에 울었다는데
친구는 왜 거기에서 씨를 토해놓고 있나
나도 “이제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선언했는데
씨를 자꾸 내 몸에 붙여 놓는 저것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내 꼴이라니
웹진 <시인광장 > 2023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