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웅인가, 죄인인가?
이연욱
1.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9살에 고아가 되었소
명성왕후 시해 사건에 격분해 조선 최고의 포수가 되었소
호랑이 대신 왜놈을 잡으러 산천을 뛰어다녔소
상것이라 무시받던 나를 사람들은 홍장군이라 불렀소
68명의 포수들을 모아 산포수 의병대를 만들고 함경도를 날아다녔소
은밀하게 강을 건너고 국경 근처에서 일본군을 기습 공격했소
탕! 탕! 탕!
우두둑 우두둑 우두두둑
하늘에서 엄지 손가락만한 우박이 떨어졌소
일본군의 살갗이 다 패일 정도로 커다란 우박이었소
비명을 지르며 일본군이 후퇴했소
60전 60패 백전백패
하늘도 우리 편이었소
‘날으는 홍범도’를 잡기 위해 일본은 혈안이 되었소
간도 지방 조선인들을 보이는대로 총과 창으로 찔러 죽였소
온 마을은 불에 탔고 3,700여명이 떼죽음을 당했소
내가 죄인이오!
일본군의 분노는 극에 달했소
당신과 양순이를 잡아갔소
볏짚을 들고와 발가락 사이에 끼우고 불을 붙였소
일본 순사가 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려도
당신은 입 밖으로 내이름을 부르지 않았소
아녀자가 죽음이 두렵지 않았소?
나를 지키기 위해 뭣하러 혀를 깨물었소?
내가 죄인이오!
2.
1930년대 초, 일본의 핍박을 피해 러시아로 이주해야만 했소
러시아 혁명군을 도와주면 대한민국의 독립 투쟁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소
블라디보스토크-시베리아 횡단-카자흐스단
6000km 달려서 40일만에 허허벌판에 도착했소
조선인 중 일본인 첩자가 있을 수 있다, 멀리 보내자
17만명을 카자흐스탄으로 이동 시켰소
나라가 없는 민족이니 그래도 된다
우리의 의중은 일본도 러시아도 물어보지 않았소
3.
카자흐스타 작은 마을의 경비원, 극장 수위로 근근히 살다 75세에
조국의 독립을 2년 앞두고 죽었소
살아생전 나 스스로 영웅이라 생각해 본 적 없소
늘 가족과 의병대원들에게 죄인이었소
차일피일 미루던 유해를 2021년 8월 15일
카자흐스탄 상공 3번을 선회하며
장군의 귀환, 이제야 모시러 왔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홍범도 장군님의 귀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하게 호위하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소
나는 영웅으로 귀환되었소
4.
흉상을 세워달다 겁박하거나 부탁한 적 없소
세울 때는 언제고 5년 후에 다시 철거한다 난리요
항일독립전쟁 5영웅 흉상을 철거한다니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이오?
1922년 소련에 입국할 당시
직업은 의병, 목적은 고려독립이라 자필로 썼소
기록에 남아 있으니 꼭 찾아보시오
나를 빨갱이로 몰아서 모욕을 줘야 속이 시원하겠소?
가족이 죽고, 후손이 없으니
그래도 된다!
나의 소원 역시 자주 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는 것이오
무덤에서 꺼내 부관참시 하고 조롱하는게 목적이오?
그 자리에 그대로 두시오
그것이 그리 어렵소?
나는 아비로서 지아비로서 장군으로서는 죄인이오
하지만 나라를 위해 싸운 평범한 우리는 모두 영웅이오!
최 and Choi
이연욱
말이 느렸다 한글을 떼지 못하고 70년대에 미국에 이민 왔다 한국인은 나밖에 없었다 Where are you from? I’m from korea. 고개를 꺄우뚱했다 콜라가 있냐고 물어봤다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한글보다 영어가 먼저였다 중학생 때 몇 명이 화장실로 데려가 바닥에 눕히고 오줌을 갈겼다 태권도를 열심히 배웠다 부모는 새벽부터 세탁소에서 근무했다 점점 고개가 무릎에 닿을 정도로 하늘을 못 봤다 백인 선생님은 “고개 들어”를 외쳤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미국인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상대방을 무시하는거라 생각했다 어떻게 행동해야될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맨땅에 헤딩하는게 쉬웠다 미국 이름으로 바꾸지 않았다 최는 Choi로 불렸다 어느날부터 영어가 편했다 중국인 친구가 입학했고 단짝 친구가 생겼다 미국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빠가 암에 걸렸다 다행히 시민권 취득을 안 해서 다시 한국으로 가는게 어렵지 않았다 한국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나는 Choi에서 다시 최를 찾았다 친구들은 스포츠 머리를 했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머리카락을 잘랐다 “너 어디에서 왔어? 미국인이야, 한국인이야?” 친구들에게 나는 친구가 아니었다 다른 반에서도 신기한지 나를 보러왔다 아이들은 운동장에 나가지 않았다 좁은 책상에 앉아 공부만 했다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잠을 자면 10년이 지나가기를 바랬다
거울을 보기 싫어졌다 거울을 바라보면 거울 안에는 햄버거를 좋아하는 Choi가 있었다 거울 밖에는 몸부림치는 최가 있었다 최 and Choi는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 서로 헷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