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027FDA35519E395817)
습관(習慣)
善惡行實初慣重(선악행실초관행)-선악의 행실은 처음 습관이 중요하고
幼少受習平生岔(유소수습평생차)-어릴 때 습관이 평생의 갈림길이 된다.
人生繪畫自素紙(인생회화자소지)-인생이란 흰 종이에 스스로 그린 그림이니
習慣尤重天性比(습관우중천성비)-습관이란 천성(天性)보더 더 중하다.
慣此換性聖賢訓(관차환성성현훈)-버릇이 천성을 바꾼다는 성현의 말씀
久久生涯思又又(구구생애사우우)-일생 오래도록 생각하고 또생각해야
농월(弄月)
습관이 평생의 행복 불행을 좌우한다
필자는 서예(書藝)를 좋아하지만 보는 취미이지 쓸 줄은 모른다.
간혹 카페에 붓글씨를 올릴 때도 있지만 그냥 단조로운 카페의 시각 분위기를 변화시키기 위함이지 나의 붓글씨를 “선보이기” 위함이 아니다.
남 앞에 내어 놓을 글이 못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청소년 시절에 고향에 서예를 하신분이 계셔서 일주일에 이틀정도 약 3,4년간 붓글씨를 배웠다. 그때가 1965년에서 1970년경으로 기억된다.
호(號)를 도연(陶然) 김정(金正) 이라고 하는 스승님이시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선생의 수제자(首弟子)중에 거제출신 성파(星坡) 하동주(河東洲1879~1944) 선생이 있다. 밀양 “영남루(嶺南樓)” 현판을 쓴 사람이다.
성파(星坡)선생은 추사의 행서체(行書體)에 일가(一家)를 이룬 분이다.
거제에서 출생했지만 진주(晉州)에 살면서 후학(後學)들을 가르쳤는데 현존하는 진주 “촉석루(矗石樓)” 현판을 쓴 은초(隱樵) 정명수(鄭命壽1909~2001)와 촉석루 “북장대(北將臺)” 현판을 쓴 도연(陶然) 김정(金正1906~1999) 두 분이 대표적인 제자로서 서부경남의 추사 행서체의 맥을 이은 분들이다.
도연(陶然) 김정(金正) 선생으로부터 필자가 붓글씨를 배웠다.
그런데, 서예에 관심이 있으면서 여러 자료를 접하고 느낀 것은 서예는 기본적으로 오체(五體 예서, 해서 행서 초서 전서)를 배우면서 서법(書法)을 익혀야 하는데 필자는 처음부터 기본적인 서법(書法)을 익히지 않고 행서(行書) 초서(草書)를 익힌 것이다.
나이 들면서 내 붓글씨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잘못된 붓글씨 습관을 고치기 위해 서예학원에 나갔지만 이미 4,50년 동안 습관된 버릇이 고쳐지지가 않고 오히려 뒤죽박죽되어서 포기 하였다.
“세 살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속담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 우리 생활에 있는 말이다.
습관(習慣)은 여러 번 되풀이함으로써 저절로 익고 굳어진 행동(行動)으로 고치기 어렵게 된 성질(性質)이다.
“습관(習慣)”의 한자 뜻으로 풀이하면
“어린 새가 날갯짓을 연습하듯 매일 반복하여 마음에 꿰인 듯 익숙해진 것” 이다.
습관(習慣)은 일상생활의 매우 사소한 일들을 몸에 익히는 훈련이다.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습관 고치는데 걸리는 시간은 21일간을 쉬지 않고 반복 훈련을 해야 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 66일을 반복 훈련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소성약성(少成若性)”이란 말이 있다.
“어려서 길드려진 습관은 천성(天性)과 같다”는 뜻이다.
그만큼 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다.
습관이 고정되면 그걸 고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잘못된 습관을 아무리 고치고 바꾸려 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이 대단한 관성(慣性)에 대해서
山河易改(산하역개)-산(山)과 강(江)은 오히려 고치기 쉽지만
習慣難移(습관난이)-사람의 길드려진 습관은 고치기 어렵다
고 탄식하였다.
논어(論語)에서도 공자가 말하기를
性相近也(성상근야)-타고난 성품은 서로 비슷하여 가깝지만
習相遠也(습상원야)-습관 때문에 서로 사이가 멀어진다.
고 했다.
즉 길드려진 습관에 따라서 개개인의 팔자와 행복 불행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습관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며 선천적(先天的)이기보다는 후천적(後天的)인 행동이다.
먹고 자는 것에서부터 생각하고 반응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상생활의 행동이 습관으로 길 드려지고 반복을 통해 발전한다.
安常處順(안상처순)은 좋은 습관을 익혀 일상생활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다.
積非習慣(적비습관)은 나쁜 습관이 오랫동안 쌓여서 삶이 위축되고 초라하고 주변과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이다.
공자는 좋은 습관을 가지기 위해서
無友不如己者(무우부여기자)-자기만 못한 사람을 친구로 사귀지 말고
過則勿憚改(과칙물탄개)-잘못을 알면 즉시 고치는 것을 망설이지 말라
고 했다.
길 드려진 습관(習慣)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에 대한 좋은 예가 있다.
지난날 중국에서는 전족(纏足)이라 하여 여자(女子)의 엄지발가락 이외(以外)의 발가락을 어릴 때부터 발바닥 방향(方向)으로 접어 넣듯 힘껏 묶어 헝겊으로 동여매고 자라지 못하게 하던 풍습(風習)이 있었다.
전족(纏足)을한 이유는 발을 작게 하여 여성들의 육체노동을 제한시키면서 남성의 보호 하에서만 생활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발이 작아 걸음걸이가 뒤뚱 뒤뚱하면 엉덩이가 요동치기 때문에 남성의 성적 쾌감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여성을 남성의 성적(性的) 노리개로 만들기 위한 지독히 잔인한 방법이 바로 전족(纏足)이었던 것이다.
중국 4대소설중의 하나인 섹스의 심벌인 “금병매(金甁梅)”에 나오는 서문경(西門慶)과 섹시녀 반금련(潘金蓮)의 만남이 바로 전족(纏足)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전족(纏足)의 풍습은 20세기까지 내려왔고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중화민국이 설립되었을 때 금지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이 풍습은 계속되었으며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나서 강력한 전족 폐지법령을 만들어 반포하여 지금까지 유효하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여성들을 압제(壓制)와 성(性)의 노리개에서 해방한다면서 전족(纏足)을 풀게 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전족을 풀어도 이미 정상적인 걸음걸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발을 꽁꽁 싸맨 천을 풀자 오히려 발목을 지지해줄 것이 없어 통증만 극심해졌다.
중국여자들은 결국 자기 손으로 발을 다시 동여매어 전족(纏足)의 속박으로 스스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길드려진 전족(纏足)의 습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불과 100년 전에 전족(纏足)을 폐지했지만 지금도 “인간속박의 전족(纏足)” 습관을 못 버리고 “오리궁뎅이 걸음”을 걷는 여자가 있다.
사람의 삶은 “습관(習慣)”을 공기처럼 호흡하면서 산다.
그 사람의 일상생활 습관에 따라서 평생의 행복 불행 좌우한다.
습관에 따라서 팔자(八字)가 결정된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