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8
순천에 다녀왔다. 한국작가회의 순천지부(순천작가회의)가 주관하는 문학아카데미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첫날 강사는 김준태 시인이었다. 나는 마지막 날 강의를 맡았다. 나에게 스승이라면 스승이신 김준태 선생님을 뵙고 싶었고 청중의 면면(학생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살피고 싶어서 병실에서 장모님을 간병하고 있는 아내의 허락을 받았다.
기차 속에서 한승원의 <소설 원효>를 읽는데 원효가 지네를 밟아 죽이는 장면이 나왔다. 숨을 죽이고 읽었다. 강의하는 날 특히 학생 청중들에게도 소개해주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순천역에 내리니 29년 동안 살아온 순천이 마치 고향처럼 느껴졌다. 행사장인 연향동 중앙서점까지 걸어갈까 하다가 이번 행사를 진행하는 신임 집행부 누이 시인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시내버스를 타고 갔다.
시내버스에서 막 내리는데 세상에! 이계삼 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오늘이 순천에서 선거유세를 하는 날이라고 했다. 우리는 반가워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싸 안았다. 깊게 포옹을 한 뒤에 함께 사진도 찍었다. 살면서 진실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이계삼 선생님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녹색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다. 그에 대한 소회를 적은 <가지 않은 길>을 <벗> 카페에 올렸는데 읽으신 모양인지 글도 잘 읽었노라고 했다.
중앙서점 3층으로 올라갔다. 중앙서점 대표인 박병화씨는 3층 전체 공간을 시민들의 문화활동을 위해 내놓았다. 순천작가회의는 해마다 이 공간을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집행부 누이 시인들이 세팅작업을 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으니 순천 금당고 학생들이 삼삼오오 몰려들기 시작한다. 멀리 창평고에서 온 여학생도 있었다. 문학에 관심이 있느냐고 묻자 웃음만 지어보였다. 내가 마지막 강사라고 말해주고 자리로 안내해주었다.
김준태 시인의 열정적인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연 제목은 "오늘, 왜 문학인가-시인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였다. 독일 시인 고트프리트 벤(1886-1956)의 이야기를 먼저 해주셨다. 학생 청중들을 배려한 쉽고 가슴 뜨거운 강연이었다. 강의 내용을 전달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대신 인용시 3편을 소개할까 한다.
수술대 위에
올려진
죽은 처녀의
벌거숭이 시체
나는 벌거숭이
그 처녀의 자궁 속에
빨간 꽃 한 송이를 심어주었다.
-'아스터꽃' 고트프리트 밴
호숫가 나무들 사이에 조그마한 집 한 채,
그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연기가 없었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연기, 베트롤트 브레이트
막내딸을 찾아가는
다 쭈그러진 시골 할머니의
구멍난 보따리에서
빠져 떨어졌을까
역전 광장
아스팔트 위에
밟히며 뒹구는
파아란 콩알 하나
나는 그 엄청난 생명을 집어 들어
도시 밖으로 나가
강 건너 밭이랑에
깊숙이 깊숙이 심어주었다
그때 사방 팔방에서
저녁노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콩알 하나' 김준태
나는 도중에 강연장을 빠져 나왔다. 기차 시간 때문이었다. 막차가 있긴 한데 도착하면 밤 한 시가 넘는다. 마지막 강연 날은 어쩔 수 없이 그 차편을 이용해야하겠지만 며칠 째 병실에서 장모님을 간병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쉽지만 9시 27분 기차를 탔다.
돌아오면서 문득 '생명'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읽은 <소설 원효>와 버스에서 내리자 만난 녹색당 비례대표가 된 이계삼 선생님과 오늘(어제) 문학아카데미 첫 강사인 김준태 시인이 인용한 시편들이 모두 생명에 관한 것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엄청난 생명"은 나의 교직 평생의 화두이기도 했다.
첫댓글 아 샘 그랬군요
지네얘기도 묵직허고 이계삼샘 만난것두 우연이 아니고..
어쩜 우린 모두다 꼭 만나야만 했던 사람들로 얽혀 요리 가고 있는 걸까요
몸은 모다 떨어져 살지만 늘 가슴속에서 같이 살아가고 야기나누며 사는 듯한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도 그리 반갑고 좋기만헌 사람들.
어제 강의도 특강이었지만 그 모듬속에 있어 행복했습니다
저도 미자씨가 제 삶에 존재해주어 너무 기쁘고 행복하네요. 우리 그렇게 다정하고 뜨겁게 한 세상 살아가게요♡
올리신 책 속의 글 다 읽었지요 ㅋㅋ 샘~~ 금년 겨우 이제 100 모았습니다. ㅋㅋ 삼일에 이틀에 용역 나가고 글도 열심히 쓰고 그러면서도 100모았습니다. ㅋㅋㅋ 아 죽것습니다 삼일 연짝 나가는 경우는 드문데 ㅋㅋ 그러면 피곤해서 글이 안 나오는데요. 며칠 무리를 했습니다 ㅋ
글 쓰는 것도 좋지만 무엇이든 급히 서둔다고 될 일이 아니니 여유를 가지고 하거라. 그나저나 애 많이 쓴다.
다양한 개성으로 깨달음을 주시는 스승님~ 책속에서~ 문학아카데미 특강에서~ 감사합니다~^^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