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서부터 살기를 거부했던 그 아기는 아주 오래 살았다. 아기는 1973년까지 살았다. 무려 아흔두 해를 산 것이다. 단지 오래 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 도예와 조각 작업도 했다.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 사이 그는 현대 미술의 창시자가 되었다. 아니 그는 현대 미술 자체가 되었다. 파블로 피카소. 그의 이름이다. 어머니의 성을 딴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현대 미술의 거의 모든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1907년,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언덕, 반 고흐, 툴루즈 로트레크가 그 언덕에서 살았다. 언덕 위에 배가 서 있다. 배의 이름은 ‘바토-라부아르’, 즉 세탁선이다. 한 건물 안에 30여 개의 아틀리에가 있다. 계단은 삐걱거리고, 수도라고는 하나밖에 없다. 가스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습기로 가득 찬 그 건물에는 일년 내내 고양이 오줌 지린내가 풍긴다. 바토-라부아르, 그것은 이 건물의 보기 흉한 몰골이 ‘세탁부들의 빨래터로 쓰이는 강변에 늘어선 낡은 배들’과 흡사하다 하여 어느 시인이 붙인 이름이다.
문을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통로 맨 끝 쪽 아틀리에, 그 곳에서 피카소가 무덤덤하게 자신의 그림을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후에 그와 함께 큐비즘을 발전시켜 나간 조르주 브라크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마치 우리에게 솜뭉치를 먹이고 석유를 마시게 해서 불을 뱉어내게 하려는 것 같군.” 펠릭스 페네옹이나 앙리 마티스, 피카소의 무조건적인 지지자였던 기욤 아폴리네르마저 그의 그림을 비판하고 있었다. 오직 한 친구 칸바일러만이 그 그림의 가치를 알아 보았다. 초대한 친구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그는 그림을 둘둘 말아 화실 한 구석에 처박아 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