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아 기다려라
여물지 못한 찬 공기를 가르고 들리는 아내의 나를 부르는 소리 "여보! 빨리 와!"
창문에는 아직도 어둠의 찌꺼기가 더덕더덕 붙어 있어 때를 감지할 수 없는데 어느샌가 잠이 물러가고 눈은 칠흑의 어둠 속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오늘 하루를 만나기 위해 어제 일들을 반추하며 따뜻한 이불 속에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아내의 호출을 받고 급히 아내 곁으로 다가갔다. 예의 그 통증, 종아리에 쥐가 날 것 같이 아프다는 것이다. 딸이 사준 얼굴 마사지기를 이용하여 아내의 양 종아리를 마사지해 주었다. 평소의 생활습관이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매사에, 예를 들어 음식, 청소, 밭관리, 몸관리까지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쓰면서 생활하는데도 대충대충 무던하게 살려고 하는 나보다 아내는 더 잔병들이 많다. 어떤 때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렇게 매사에 조심하며 사는데도 몸의 건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이상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정확한 답을 알 수는 없다. 의사조차도 답을 못 주니 말이다. 내 나름 굳이 답을 둘러댄다면 결국 모든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신경을 써야 하는 타고난 스트레스가 아닐까 한다. 아내에게 사소한 것이란 없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 뭐 그런 것인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조금만 대범하게 지나치면 좋을 것 같은 것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니 그 자체가 스트레스의 원인일 것 같다는 것이다. 차에 동승해 있으면 예의 그 참견 그만두고 눈을 감은 채 운전은 내게 맡기고 잠이라도 청하면서 몸도 정신도 좀 쉬게 하라고 조언해 주지만 싫다고 한다. 운전 면허가 없어도 나보다 더 예민하게 운전자처럼 참견한다. 스트레스가 쉴 틈이 없다.
그래서인가 모든 일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문학 방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에는 그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난해한 이상의 시 전편을 가지고 평론을 썼다. 1930년대의 시였음에도 불구하고현재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해석이 없었던 것으로알고 있는데 그 시들에 대한 평론을 쓴 것이다.
나의 능력으로는 꺼집어 낼 수 없는, 작가의 저의조차 뛰어넘는 감정을 표출해 내는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나와 같은 일반인들보다 더 상위의 생각을 가지고 매사를 보다 보니 늘상 나와는 다른 견해로 의견 차를 보이게 된다. 정말 예전에는 몰랐고 그녀 자신조차도 몰랐던 놀라운 능력이 스멀스멸 기어나와 그녀를 모든 방면의 비범한 접근녀로 만드는 것 같다.
아내의 머릿속을 거닐고 있는 몹시도 바쁘기만 한 상상이 현실화될 때면 나는 바쁘다. 멋도 모른 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저러니 늘상 아프지. 그냥 좀 쉬면 안되나?" 한다. 그녀는 한가한 법이 없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늘 무엇인가를 골똘이 생각하며 산다. 참 신기한 일이다. 내가 그러한 조밀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까운 곳, 밭이 아닌 다른 곳으로 잠시 바람도 쐬고 누적된 생각들도 좀 내려놓고 몸에게 마음에게도 휴식을 주자고 권유해도 싫다고 한다. 여행은 쉬기 위한 최적의 기회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다른 사람들의 여행지인데 또 어디로 가요?"라고 말하는 데는 그 어떤 권유도 의미가 없다.
아내의 종아리를 안마해 주는 동안에 잠이 들었는지 편안한 숨소리가 들려서 하던 안마를 멈추고 거실로 나왔다. 다시 잠을 청하기도 뭣해서 뜨거운 차를 마시고 싶어 물을 끓였다. 따끈한 컵을 들고 거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뽀얀 아침이 서리를 타고 아니면 서리보다 늦은 것인지 희끄머레 색깔을 하고 살포시 내리고 있었다. 오늘 또 아내는 무슨 일을 하려고 작정하고 있을까가 더 궁금해진다. 토요일이며 용문의 5일 장날이기도 하여 그저 장 구경이나 하며 푹 쉰다는 생각을 하였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단지 나만의 원일 뿐이다. 내게는 특별히 꼭 해야 할 일이 없다. 아내가 해야 할 일만 있을 뿐이다. 나는 단지 그녀를 도와 주면 된다. 불평불만 없이.
무심한 희끄머레한 아침이 내 속을 읽었는지 조그만 새를 불러내어 위안을 준다. 아침의 여백에 잔 그림을 남기는 저 새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른 시간 먹이를 찾아 생명을 연장하고자 한다. 나도 오늘 기이한 처음으로 시작하는 오늘의 일을 낮의 여백을 채우며 하게 될 것이다. 과연 어떤 기적의 일이 하루를 채울 것인지 궁금 또 궁금하다. 아내가 깨어나는 시간을 숨죽여 기다려 본다. 생각하는 동안 뜨거운 차가 식어가고 있다. 생각을 거두어들이고 남은 차를 들이킨다. 하루야 기다려라 내가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