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미가 된 남자 / 윤진모
고등어는 표층이나 중층에 사는 물고기다. 끝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운명인가, 한자리에 가만히 멈추지 않는다.
활어회를 파는 횟집의 수족관은 대개 직사각형이다. 반면에 살아 있는 고등어를 파는 횟집의 수족관은 원형이다. 수십 마리의 고등어가 원을 그리며 계속 앞으로 앞으로만 내달린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가자미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양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돌고 돈다. 가자미들은 이렇다 할 움직임도 없이 눈만 껌벅거리며 빠르게 움직이는 그들을 어이없다는 듯 쳐다본다.
젊었을 때 나는 한 마리 고등어였나 보다. 한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술자리에서도 1차, 2차, 3차로 옮겨 다녀야 제대로 술 마신 기분이 들었다. 등산하러 가서도 이 산 저 봉우리로 발길을 옮겨 다녔다. 낚시터에서도 조금 기다렸다가 입질이 없으면 저수지를 돌면서 낚싯대를 여기저기 담갔다 들었다. 한여름에는 쏘가리나 꺽지를 잡는 루어 낚시에 푹 빠져 수조 안의 고등어처럼 개울을 오르락내리락 돌고 돌았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 피곤한 줄도 몰랐다.
직장에서 제일 먼저 춤을 배웠다. 무엇이든 다른 사람보다 앞서 하면 좋은 줄 알았다. 천천히 움직이는 4박자인 블루스보다 빠르게 몸을 놀리는 6박자인 지르박이 더 재미가 있었다. 출퇴근하는 버스 뒷자리에 앉으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마음속으로 스텝을 헤아리며 발바닥으로 박자를 맞추었다.
서너 달 개인 지도를 받은 후 무도장에 들락거렸다. 아무 여인에게나 정중히 인사하고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왼손을 잡았다. 한 곡이 끝나면 그뿐이었다. 서툰 솜씨로 서두르다가 상대방의 발등을 밟거나 일찍 상대를 돌려 버렸다. 내게 다시 손을 잡아주는 여인은 없었다. 이내 흥미를 잃고 또 다른 데로 눈을 돌렸다.
단독주택에 살 때 흑백사진 현상실을 만들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하여 촬영한 대여섯 롤의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면 작업실엔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암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늘 멈춘 상태였다. 빛을 가감하면서 만들어진 피사체는 촬영 당시와 차이가 나기 마련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현장을 다시 찾았다. 서해 갯벌, 백로 서식지, 이름난 사찰, 지리산과 설악산의 일출 등 바쁘게 쫓아다녔다. 한 오 년 지나자 이것도 시들해졌다.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꿈마저 접었다.
이름난 '맛집'이라 한들 줄을 서서 한 시간 이상 기다리지 못한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여긴다.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뭔가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이런 나를 두고 주위 사람들은 부지런하다느니 열정이 넘친다느니 하면서 치켜세웠다. 이런 말이 듣기 좋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열심히 설쳤다. 따지고 보면 진득하지 못한 성격 탓이었다.
운전면허를 취득하여 처음엔 무척 조심스럽게 핸들을 잡았다. 고속도로를 서너 번 달리고 나서 자신감이 생기자 씽씽 내달렸다. 앞차가 안전운행을 하느라 서행하면 앞질러 가야 속이 시원했다. 이 바쁜 세상에 왜 저리 굼벵이처럼 움직이느냐며 혼자 혀를 끌끌 찼다. 형제들은 내 차에 동승하기를 꺼렸다. 나는 신나는데 그들은 오금이 저리다고 야단이었다. 과속 딱지가 일 년에 몇 차례씩 날아와 과태료를 심심찮게 물었다.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고쳐지지 않았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어긋나지 않다는 것을 많은 수업료로 지불하면서 배웠다.
빠르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걸 뒤늦게야 알았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 매끄럽게 지나가는 터널의 벽만 실컷 보게 된다. 전동차 안에서 스마트폰에 정신을 뺏긴 사람들만 멋없이 바라본다. 1호선과 2호선보다 느리게 가는 하늘 열차인 대구 3호선은 철 따라 변하는 풍경을 실컷 구경할 수 있다. 여유롭게 날아가는 백로의 날갯짓을 보게 되고 형형색색 몸가짐을 달리하는 가로수가 달려와 가슴에 안긴다.
고등어처럼 마구 달린 젊은 시절이었다. 바쁘게 살아갈 땐 좌우를 돌아볼 생각을 갖지 못하고 앞만 보았다. 부모 · 형제도, 아내도, 자식도 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내 좋을 대로 달려왔을 뿐이다.
돌아보면 눈을 감고 살아온 것 같다. 이 눈치 저 눈치 보지 않았으니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 가족, 특히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기적이란 말을 들으면서 뭐라고 반박하거나 변명도 제대로 못 하고 시곗바늘 돌 듯 반복된 일상이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끔 돋보기를 찾고 눈살을 찌푸린다. 가는 귀까지 먹어 TV 볼륨을 다른 사람보다 배이상 높여야 겨우 알아들을 정도가 되었다. 시력이 저하된 것은 주위 사람들의 사소한 실수나 잘못을 보고도 못 본 체하라는 가르침일까. 미사 때 집전 사제의 강론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몰라서 아내에게 두어 차례 되물었다가 집중하지 않는다고 쓴소리만 듣는다. 낮은 말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혹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쑥덕거리거나, 심지어 궂은 소리를 하더라도 못 들은 체하라는 신의 계시인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함으로 해서 생기는 오해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전화로 "다금바리 한 마리 부탁해."란 말을 듣고 잠시나마 기분이 최고조였다. '모처럼 그 귀한 회를 먹게 되었구나. 역시 이 친구는 통이 커!' 자리를 옮기고 보니 치킨 집이었으며, '다금바리'가 아닌 닭 한 마리였다.
언젠가부터 치아가 하나둘 빠져나갔다. 어쩔 수 없이 위아래에 틀니를 맞추었다. 빵이나 떡 같은 걸 먹을 때엔 틀니를 빼고 오물거리다 삼킨다. 음식 맛이 제대로 있을 리가 없다.
바다 생선은 대개 날카롭거나 톱니 같은 이빨이 있다. 쥐치 같은 물고기는 먹이를 야금야금 잘라먹는다. 가자미는 이빨이 없이 먹이를 씹거나 끊어 먹지 않고 삼킨다. 치어일 때엔 상층부에서 돌아다니지만, 성어가 되면서 바다 밑 모래더미 속에 파묻혀 살아간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노화 현상을 보이는 것도 가자미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싶다. 늙어서도 천방지축 날뛰면 노망이 든 것으로 보이리라. 영원한 침묵의 세계로 들어가기에 앞서 낮은 곳에서 지닌 날을 되돌아봐야 하는 나! 이제 더 이상 고등어가 아니었다. 앞으로는 가자미처럼 살아가는 삶에 길들여져야겠다며 마음을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