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그날은 우리 남해 남수 37회의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와중에 창선 김종렬친구의 장인 장례식이 있었다.
좋은 봄날에 아들 결혼식에서 동기들에게 부담 주었다고 아예 연락조차 없었던지라 아무도 모르고 있다가 장례식 당일에서야 알게되었다.
부랴부랴 남해동기들에게 문자를 보낸 시각이 오후 2시경이었던 것 같다. 워낙이 갑작스런 통보라 동기들의 참석여부를 물을수도 없었다. 그래서 남해 박덕정회장과 임옥주, 김원석이 대표로 참석을 했었다.
오후 4시,
엄숙한 장례식에 참석하는 우리의 호프 박회장께서는 이미 술이 한잔 되어있었다. 읍내에서 택시를 타고 지족까지 와서 임옥주회원이랑 창선 적량 공동묘지로 향했다.
그후 약 한시간 가량이 지났을까? 김원석이 전화를 한다. 지족 달반늘 장어에서 한잔 하고 있으니 오라한다. 퇴근을 하고 강춘영이랑 강대철이랑 달반늘로 갔더니 반만큼 썩었다. 그나 저나 차가 걱정이다. 운전기사포함 6명이 가야하니 분명코 불법이 아닌가? 거기다가 남해 남수 37회 대표덩치가 3명이니 뒷자리에 타는 친구는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마음좋은 이기사는 그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동천 박창우한테 연락을 해둔다. 시끄러운 박회장님을 포함해서 6명은 동천으로 향했다. 차내에서 박회장이 동천에가서 설주한잔하고 가자고 제안을 한다. 전화상으로 문중채네 가게에 중국요리를 주문한다. 다행히도 그날은 중채네 가게가 쉬는 날이란다. 우리차에서 박회장을 방출해 창우친구차로 이동시키고 송남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봉창이네 집에는 계주인 권영만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서 줄줄이 친구들이 도착했다. 집주인 백봉창, 계주 권영만, 김정봉, 김학수, 박덕정회장, 신동명총무, 강대철, 강춘영, 박종길, 김태룡, 송정완, 문중채, 박창우, 김원석 그리고 나......
으례히 술잔이 돌고, 적당시간에 회의가 진행되었다. 오늘의 안건은 지난 전국모임의 결산, 총동창회 체육대회 개최에 관련하여 주관기수의 문제, 그리고 하계단합대회의 건이었다.
문제는 총동창회 체육대회 주관기수의 건,
신동명총무는 총동창회에서 거론되었던 내용을 보고하였다. 총동창회에서 이번 주관기수는 50회인데 50회의 조직이 원만하지 않아 금년에 주관을 할수 없다는 통보가 있음에 따라 총동창회 사무국에서는 비상이 걸렸고 대체방안으로 우리기수에게 주관을 해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총동창회 이사회석상, 사무국에서 특별기수란 이상한 단어를 사용해서 내가 물었다. 도대체 특별기수란게 무슨 의미이며 어떻게 정해진 것인지?? 사무국의 답변은 그냥 체육대회 참여기수를 통칭하는 말이란다. 그러니까 37회부터 49회까지 약 12~3개 기수를 의미한다나? 그리고 그 기수의 선두의 위치에 있는 우리기수가 이번 행사를 책임져 줬으면 하는 눈치라....이 문제는 또 당장 이 자리에서 가부간의 의견을 제시할수 없으므로 차기 모임에서 결정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오늘 우리모임에서 우리의 의견을 물어 우리의 뜻을 총동창회에 통보를 해 주어야 한다. 왈가왈부 말이 많다. 사실 우리는 한번도 총동창회 체육대회 주관을 하지 않았다. 다만, 오늘의 총동창회 체육대회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몇 년도인지는 기억이 가물하다. 우리기수에서 한해선배, 그리고 한해 후배를 모시고 체육관에서 음식을 마련해서 대접을 하고 내년도에도 상하 기수를 더해서 모임을 하자는 결의를 했었다. 이듬해에 권영준선배님을 비롯한 36회 선배님들이 약 10여개 기수를 초대해서 제1회 남수총동창회 체육대회를 가지게 되었다. 총동창회 체육대회 우승기도 만들고 체계적으로 대회형식을 갖추었다. 우리는 그 문제로 36회 선배님들과 의견충돌이 있었다. 왜 우리가 1회인데 당신네들이 1회를 사용했는지? 그런속에서 기틀은 우리기수가 마련하고 한해 선배님들이 완벽하게 모임을 완성시켰다. 또 다음해는 34회 선배님, 그리고 35회, 우리는 넘겨뛰고 38회, 39회.....그리고 41회 차례에서 41회의 모임분열로 급히 34회가 한번더...등등 명맥을 유지해서 지난해에는 49회가 주관을 하여 무사히 행사를 마쳤다. 전자에 언급했듯이 50회가 금년에 행사를 담당하지 못하게 되면서 우리기수에게 화살(?)이 겨눠지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우리기수는 실질적으로는 한번도 총동창회 주관한 적이 없다. 그런데 단지 총동창회 체육대회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그 공로하나로 이렇게 버티고(?)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 회의석상에서 한번정도 해 줘야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구태여 나서서 우리가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라.......
우리도 참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장님도 한 말씀.....
지난 미조에서 우리 전국모임할 때 총동창회장께서 참석하셔서 요청이 있었다든지 했으면 시기가 시기인지라 한번 해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도 있었다. 총동창회장께서 참석한다는 통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연유에선지 참석치 않았다. 총동창회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런 집행부의 대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결론은 총동창회에서 요청이 있으면 다시 회의를 개최해서 우리의 의견을 모으겠단다. 내 생각에는 이왕 모였으니 그런 요청이 있을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미리 의논했으면 했는데......술도 한잔 들어가고 그냥 밀려버린다.
과연 동기들간의 모임의 취지는 무엇일까? 한번씩 만나서 안부를 묻고 술한잔 하면서 추억과 근황을 나누는 것? 쬐끔은 회의가 느껴진다. 나이가 든 탓일까?
그날도 기침에다가 차까지 타고 가서 술은 마시지 않았다. 그렇게 왁자지껄 회의를 마쳐졌다. 음식에 불만을 느껴 가버리는 친구까지........
그렇게 우리는 타협보다는 내 의견에 집착하는 나이로 옮겨왔나보다. 좀 더 세월이 지나면 또 이런 아집을 초월하는 시기가 오겠지?
언젠가 서울에서 주최한 남수총동창회 모임을 마치고 대절버스로 귀가하는 도중, 삼천포에서 저녁식사를 하게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2차 노래방가는 제의가 있었다. 대 선배님들과 함께 한자리라 시간이 많이 늦으면 힘들 것 같아서 집행부에서는 그냥 귀가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지만 역시나 술취한 적극파들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2시간 가량을 노래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귀가를 하게되었다. 한시간 정도가 지나자 대 선배님들은 자리를 피해 버스에서 기다리신다. 그래서 한 선배님께 사과의 말씀을 드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많이 피곤하실텐데 기다리게 해서......” 그랬더니 선배님께서 하신 말씀, “괜찮네. 어찌 내 개인만 생각하겠는가? 여러사람의 모이면 많은 사람의 뜻을 따라야 하는게 당연한 것”하면서 되려 집행부를 위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나는 그 분의 그 모습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이렇듯 우리도 그런 연륜이 쌓여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수 있는 시기가 오겠죠?
이왕이면 그런 시기가 떠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첫댓글 종렬이가우리한테도 연락을 안했던데.
기쁜일이나 슬픈일은 같이 하자고 만들어놓고서는~
나이들면 나아지는 것도 있고. 또 나름의 고집이 단단해져서 어려워지는 일도 있더라구요~ 애썼네요~
우리가 석이를 찾아 헤맬때 정작 본인은 이런줄도
모르고 있었다. 나도 궁금하면 폰한번 하면 되는데 이 돌머리로 세상을 살려니 손 발이 고생이
많다. 석아 수고스럽지만 소식 빼지말고 꼭 올려라.
그리고 니 몸은 니것이 아닝께 건강 잘 챙기고....
남의입장에서 생각하면 성공의 첫발을 딛는다는 카네기 인생론의 한구절이 있지만,
그것도 엄청 내공이 필요한가 보더라.
얄팍하게 행동하면 맨날 손해만 보게 되고
손해보며 사는것도 좋은 인생길중에 하나지만
나중에 궁색해지면 바쁜세상에 형제도 친구도 모두가 기피하게 되니정답이 없지요.
자청해서 역사를 꺼꾸로 돌리려고는 하지 맙시다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다보면 바다에서 만나겠지요.
아하..참석자중에서 김재갑이를 뺏구나..ㅎㅎ 지송~~
동창회 발을 디디고 있는 사람이 고생이 많겠네요... 지혜를 모을때인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