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동창생
우리 집은 가족 전부가 같은 초등학교 동문이고 동창생도 셋이나 된다. 작은 시골 마을이야 초등학교가 하나뿐이니 동문이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동창이 셋이 되기는 쉽지 않다.
먼저 나 보다 두 살이 더 많은 1958년 개띠 형. 결혼하고 싶다고 데리고 온 색시가 내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아버지가 우리 학교 교감 선생님이었고 전교 어린이 여자 부회장을 한 미자가 형이 결혼하고 싶다는 여자란다. 기가 찰 노릇이다. 미자는 국군 간호학교를 졸업한 간호장교 출신이고 형은 현역 입대도 못 한 방위 출신인데 두 사람이 결혼한다는 사실이 더 믿기지 않았다.
나랑 크게 친하지는 않은 사이지만 초등학교 졸업하는 6년 동안 네 번이나 한 반을 했기에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하기도, 그렇다고 아주 친해서 시시콜콜 다 안다고 하기도 모호한 그런 관계다, 나와 미자는.
또 한 번의 기막힌 사연은 1965년생인 내 여동생이다. 사귄다고 하던 성당 오빠가 내 초등학교 동창 영찬이다. ‘베드로 오빠’라고 하기에 성가대 활동을 같이하는 키 크고 잘생긴 종철이 형인 줄 알았더니 영찬이란다.
영찬이는 초등학교 6년 내내 나와는 한 반이었고 6학년 때는 나와 영찬이 미자는 같은 1반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좁다지만 정말 이럴 수도 있을까 싶었다. 사실 영찬이도 6년 한 반을 하기는 했지만 사는 동네가 달라 나와 크게 어울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성당을 같이 다니면서 조금 더 친해졌고 어쩌다 밥을 먹는 정도의 친분은 가진 사이였다.
이렇게 초등학교 동창 세 사람이 한 가족이 되었으니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실상을 불편함이 더 많다. 자주 모이는 관계는 아니지만, 명절이면 보아야 하고 가족 모임이 있으면 만나야 하는 사이였으니.
문제는 서로에 대한 호칭이다. 미자는 나에게 형수님이 되고 나는 미자의 시동생이다. 우리 경상도에서는 미혼인 시동생을 ‘도련님’으로 부른다. 또한, 나와 영찬이는 처남 매부 사이가 된다. 더 이상한 것은 미자와 영찬이의 호칭이다. 미자 입장에서는 시누이의 남편이니 ‘서방님’이 되는 것이고 영찬이 입장에서는 손 위 처남댁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형수님’이나 ‘도련님’ 혹은 ‘서방님’이나 ‘처남댁’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냥 영찬이고 미자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우리를 두고 입방아도 찧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뭐라고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각자 아이들이 생기고부터는 ‘고모부’니 ‘숙부’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끼리는 아직도 이름을 부른다.
학교 다닐 때는 사는 동네와 성적, 또래들과의 관계 형성으로 서로 서먹할 수도 있는 사이였지만 한 가족이 되고부터는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고 형수님인 미자와는 병원과 환자 이야기로 매제인 영찬이와는 성당 이야기와 책 이야기를 종종 한다. 미자와 영찬이는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뭐 그것까지 캐고 싶지는 않다.
첫댓글 하늘이 점지한 멋진 만남, 너무 멋지세요 ^^
너무 멋지지는 않아요.....ㅋㅋ
초등 동창, 특히 이성 동창은 나이들어 만나면 호칭이 껄끄러운데, 그나마 가족이 되면 더욱 고약하죠. 불편하시겠군요...^^
이제는 늙어서 그냥 편하게 삽니다. 저나 나나...
전생에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인연 , 잘 지내면 전혀 모르는 사이보다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사이좋게 잘 살아요.....
사람의 인연은 정말 알 수 없는...그래도 다복해 보입니다...^^
네. 친하게 잘 살고 있어요..........
친구 중에도 시동생이 동창인데
초반에 껄끄럽다고 하더군요
어느순간 가족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될 것 같은데요
글은 재밌게 읽었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참 대단한 인연이군요.
몇번의 겁을 지나야 이런 인연이 될까요...ㅎ
그런가요??? 그렇게 좋게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잘 살고 있으니 됐죠!
친구처럼 편하게 불러도
될듯합니다
부를때마다 어린날이 생각 날까요?
늙은 어린이들..............
참 묘한 인연이군요.
행복한 동창 가족 되세요~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동창이 시매부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껄끄러웠지만 이제는 그냥 동창으로 통합니다.
제가 총무라서 공지 사항이 있으면 알려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동창으로 톻합니다
집안 모임에는 촌수를 따져서 부르고, 동창 모임에는 동창으로 통하면 되겠네요
좀 쑥스럽죠.
참 드문 인연의 가족관계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