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셨을때,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지 못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는데, 어째서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못마땅하게"(마르 6,3) 여겼을까요?
성경에서 "존경받지 못한다"(마태 6,4) 라는 뜻으로 사용된 말은 '아티모스' 입니다. 이 말의 뿌리는 어떤 것의 가치에 상응하는 '값어치'를 뜻하는 '티메'입니다.
제값을 치른다는 건, 사는 사람이 파는 사람 것의 가치를 인정해준다는 의미에서, 그 소유주에게 '예를 갖춘다'라는 뜻으로 이해되었고, 제값을 많이 치르면 치를 수록 '존경한다" 라는 의미로까지 확장되었을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존경'받지 못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의 집안 대대로 잘 알고 지내왔던 터라 너무나 가까웠던 것입니다.
타자와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타자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타자와의 거리를 두는 것이 타자를 더 객관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객관적으로 타자화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관적으로 판단한 채 그를 '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앎'이 아닙니다.
진정한 앎이란 나와 타자 사이의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해 저 존재가 있는 그대로 있게 할 때 가능한, 존재 자체에 대한 인식입니다. '존경'이란 저 사람이 있는 그대로 있게 함으로써, 그의 존재 가치가 온전히 드러날 때 자연스레 일어나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존경'할 수 있는 힘은 나와 그와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에서 비롯됩니다《김정일 안드레아 신부》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건 그를 있는 그대로 있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