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따라 변하고 있는 것도 같다. 예전이라면 '사랑' 혹은 '친구' 이런 말에 끌려 있었다면, 요즈음엔 '배려' '협력'이런 말에 더 마음이 간다. 많이 갈망해서 일수도 있다. 젊어서는 사랑이나 친구가 전부였을수도 있지만, 살아보니 더 긴급한게 배려이고 협력이란 생각도 들어서다. 인정하고 감사하는 일은 또 어떤가. 때로는 공감하면서도 인정하긴 쉽지가 않다. 또, 내가 할수있는 일이 별로 없습을 알면서도 감사에 인색하지 않앗던가. 두발로 걷고, 스스로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자꾸 잊는다. 숨을 쉴수 있다는게 바로 기적임을 깨닫지 못할때도 많았다. 와! 사실 하루 하루의 일상이 모두 기적이고 감사인데, 피조물이면서 창조주께 왜 이리 인색할까. 그냥 감사하다고 말하면 될것을, 토를 달기에 바쁘다. 내가 그랬다. 어제는 중등부 예배를 온라인으로 살펴보았다. 큰아이가 중등부로 옳겨서다. 단 한번도 관심을 갖어본적이 없었는데,,, 큰아이 모습도 찾아보았는데, 1학년 5반에 비슷한 아이를 발견하고 눈여겨 보았는데 아니었다. 1학년 7반이란다. 다음번엔 7반을 찾아 보아야 겠다. 내 아이, 내 보물1호. 나는 이 아이의 미래가 형통하길 바란다. 신앙생활도 잘하고, 학교 생활도 어려움없이 해내길 바라고 있다. 그런데, 막상 도움이 되어줄길은 없다. 아이를 잘 살펴달라는 문자를 썻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하나님보다 더 큰이가 어디있다고, 이런 생각을 해보면서도 그랬다. 아이는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지으시고 기르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대하는게 맞다. 내가, 특히 아무 영향력이 없는 무능한 할머니가 할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들은 주말에 왔다가 엄마인 내게 전화한통 없이 출장지로 떠났다. 아마도 분주하게 일만 하다가 갔겠지. 아들 팔자도 참 더럽다. 아버지는 없는것보다 못했고, 엄마는 무능의 극치였는데, 아내는 그보다 더한 존재 아닌가 싶으니 참 할말이 없다. 아들은 어디서 위로를 찾고 있을까. 하나님이 아들의 위로가 되셨으면 좋겠다. 아들이 교회 발길을 끊은지 아마도 30년쯤일까. 아들은 하나님을 잊었을지라도 하나님은 아들을 잊지않고 계실것이라 믿는다. 아들과 그 가정에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계신지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대어 희망해본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한다. 나는 어려운 말들을 잘 모른다. 쉬운말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어제만해도 온라인 예배를 드렸는데,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 하나도 기억에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가 그렇다. 많은 목사님들의 좋은 말씀을 듣고 또 듣는대도, 정작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건성으로 듣는게 아니다. 나름 집중하고 있다. 내 신앙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다. 새해 특새라고 도 하고, 부흥회라고 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저녁밥도 준다고 한다. 밥 얻어먹는것 좋아하는데,,,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에, 그것도 저녁에, 교회출석을 할만끔의 열성이 내겐 없다. 만일 이 예배에 주님이 오신다고 한다면 어떨까? 교회에 나가지 않았음을 땅을치고 후회할까? 나는 또 생각이 든다. 주님은 이런 집회에 오시지 않는다고. 주님은 교회 집회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만일 오신다면 화창한 날, 누구나 참석할수있는 대낮에, 넓은 광장같은 곳에 오시지 않을까. 아니, 살며시 연약한자, 병든자, 무능한자들을 찾아오시지 않을까 싶다. 내 희망사항이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오늘을 선물로 주셨으니 감사하게, 즐겁게 하루를 살아보련다. 내가 나인것도 감사했으면 더욱 좋겠다. 배려, 협력, 인정, 감사, 사랑,,, 주님,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