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립 홍 성 순 hong6443 @hanmail.net 시렁 위에는 잡다한 옛 물건들이 쌓여 있다. 복조리며 씨오쟁이, 멱동구미 등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것저것 정리하다 그중 구석에 있던 상자를 열자 기다렸다는 듯 흑립이 모습을 드러냈다. 먼지를 허옇게 덮어쓴 흑립은 꼿꼿한 양반자세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생전의 아버지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사랑방에는 아버지의 손때 묻은 물건이 많이 남아 있었다. 방 한쪽에 고리짝과 문방사우가 있고 그 옆에는 천자문과 사자소학이 있다. 차곡하게 정리해둔 책을 보니 늦은 밤까지 소리 내어 읽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타닥타닥 군밤 익는 소리가 들리고 금방이라도 탕탕 화로를 두드리는 곰방대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아버지는 읍내나 향교 나들이 때 흑립을 쓰고 하얀 두루마기를 입었다. 걸음걸이는 대나무처럼 곧았고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휘적휘적 날리는 두루마기 모습은 흡사 한 마리 두루미 같았다. 나는 흑립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이 싫었다. 깔끔하게 양복차림을 한 친구들의 아버지보다 서너 살은 더 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신식 옷에 비해 어딘가 촌스러운 티가 나서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 보여도, 의복이 불편하더라도 종갓집 장손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버지의 차림새는 제례법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 조상 앞에서는 법도를 따라야 한다며 흑립을 쓰고 엄숙하게 제사를 지냈다. 어느 때, 고집스럽게 옛것을 취하는 아버지를 딱하게 여긴 집안 당숙이 양복 한 벌을 선사했다. 평생 두루마기만 입던 아버지를 설득하긴 쉽지 않았다. 한 번은 가족들 권유에 마지못해 장롱 속을 지키던 양복을 입고는 머리에 흑립을 쓰고 우리 앞에 섰다. 엇박자가 난 차림에 가족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그 이후로는 결코 양복을 입지 않았다. 하굣길에 흑립을 쓴 아버지 모습을 발견하면 골목에 숨거나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친구들도 집에 초대하지 않았고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올 때면 어둑해져서야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가족그림을 그릴 때는 항상 말끔하게 양복 입은 아버지를 그렸다. 흑립은 어린 내겐 구닥다리처럼 창피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흑립은 양반들이 쓰던 갓이다. 대나무를 실처럼 가늘게 쪼개어 만들고 검게 옻칠을 하여 광택을 냈다. 머리를 덮는 부분인 모자와 차양 부분인 양태로 이루어졌다. 그 모양은 시대에 따라 변하여 양태는 넓어지고 모자 부분은 높아지게 되었다. 커져버린 부피 때문에 좁은 방에 선비 두 명이 나란히 앉지 못해 대각선으로 앉았다고도 한다. 멋에 민감한 조상들 탓에 우산처럼 커졌다가 다시 작아지면서 모습을 바꾸었다. 반대로 초립은 황색의 가는 풀이나 대오리를 엮어 만들었는데 양반이나 평민이 모두 사용했다.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시절에 흑립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나타내는 중요한 도구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느 해, 큰 홍수가 났다. 가재도구는 물론이고 집이 통째로 떠내려갔다. 외양간에 매어둔 소도 잃고 크고 인명피해까지 생겼다. 온 동네가 술렁거렸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도 물에 잠겼다. 곡식은 한 알도 건질 수 없는 형편이었다. 강 가까이에 논이 많았던 우리 집은 피해가 더욱 컸다. 아버지는 침울한 표정으로 황톳물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이참에 전답을 처분하여 도시로 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버지는 실의에 빠져 술로 시름을 달랬다.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고모부가 왔다. 일찍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고모부가 늘 부러웠다. 농토를 팔아 도시로 가면 잘 살 수 있다는 고모부 말에 우리 가족들은 귀가 솔깃해졌다. 한 해는 가뭄으로, 그다음 해는 홍수로 몇 해 동안 농사를 그르쳤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자연재해 앞에 무릎을 꿇었는지 지키고자 했던 선산을 팔겠다고 내놓았다. 사겠다며 나타난 사람은 이웃 아저씨였다. 어머니와 어린 우리는 도시로 간다는 말에 밤잠을 설치며 들떠 있었다. 마을 이장이 오고 매매절차가 이루어졌다. 뒷전에 있던 사람들이 이제야 고집을 꺾었다며 아버지를 보고 수군거렸다. 계약서를 쓰고 난 후, 인감도장은 잔금을 치르는 날 찍기로 되어 있었다. 그날은 하늘이 잔뜩 흐렸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이삿짐 보퉁이를 마당 한가운데 모았다. 동생과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짐 나르는 일을 도왔다. 아버지의 얼굴빛은 장마에 밀려오는 먹구름 같았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트럭 한 대가 마을 어귀에 당도했다. 선산을 계약한 아저씨는 이제 인감도장만 찍으면 계약이 성사된다며 아버지를 채근했다. 트럭에는 어느새 이삿짐이 다 실렸고 우리 가족들은 동네 사람들과 서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기침 소리가 나더니 아버지는 들고 있던 매매계약서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 시절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공장에 취직을 하거나 장사를 했다. 명절 때 고향을 찾아온 그들은 겉모습부터 달랐다. 어머니와 우리들은 도시로 가자고 아버지를 여러 번 졸랐다. 그때마다 장손은 고향을 지켜야 한다며 아예 말을 꺼내지 못하게 말문을 막았다. 남들이 다 떠나더라도 고향땅에 남아 선산을 지켜야만 후손의 도리를 다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선산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의 어느 가치로도 바꿀 수 없는 어떤 정신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자식들은 다 대처로 나가서 공부를 하게 하면서도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끝내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흑립은 간수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아버지는 외출에서 돌아오면 서늘한 그늘에 내어놓고 바람을 쐬었다. 땀을 말리고 나면 갓집에 반듯이 앉히고 아무나 손대기 어려운 사랑채 시렁 위에 보관했다. 오랜 세월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흑립 속에는 언제나 반듯한 자세를 유지하려던 양반의 기개가 보이는 듯하다. 혹여 얼룩이라도 묻을까 구겨질까 애지중지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게 떠오른다. 공자는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현대문명이 발달한 요즘 옛것들은 고루하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기 일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유행이 바뀌고 눈을 뜨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앞만 보며 달려가고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하지만 어제가 없는 오늘이 없듯 옛것이 없는 새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만 지향하다 보면 정신은 황폐해지고 말 것이다. 아버지는 새것의 시류에 당신만이라도 쉽게 휩쓸려가지 않으려고 흑립을 고집했던 것은 아닐까.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했던 내가 슬그머니 부끄러워진다. 손가락 끝으로 흑립을 쓸어본다. 빳빳한 감촉 위로 따뜻함이 배어 나온다. 마지막 순간까지 전통을 지키려 했던 아버지의 자존심이 전해진다. 먼지를 털고 가지런히 정리해서 다시 상자 속에 넣었다. 사랑방을 나서려는데 등 뒤에서 어흠! 낯익은 기침소리가 들려온다. |
첫댓글 와~~
드디어 올려주셨네요.
고오맙습니다. ^^
히힛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