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의 지혜
이 세상을 살면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가 구애받지 않는 것을 <해탈> 이라고 합니다.
배를 타고 바다에 가면서 파도도 치지 말고 바람도 불지 마라. 이렇게 바라는 것이 아니고 파도야 치려면 쳐라, 바람아 불려면 불어라, 나는 이미 튼튼한 배를 마련해 놓았고 좋은 항해 기술도 습득했기에 그 정도는 끄떡없다.
마음속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상태 이런 마음가짐이 바로 <해탈>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남편이 그렇게 착해 보였는데 살다보면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고, 내 뱃속에서 열 달을 품어 나와서 내 맘대로 키운 자식도 클수록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이렇듯 세상일이 나의 생각대로만 되겠습니까?
파도가 일면 파도를 타고 가면 되고 파도가 치지 않으면 조용히 즐기면 됩니다.
세상 일이 내 생각대로 안 된다고 전혀 구애 받을 일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곤 합니다.
하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한, 불행이 수반 될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손등과 손바닥 같은 것이어서 항상 함께 다니기 때문이지요.
진정한 행복은 행복해지고자하는 마음까지도 놓아 버려야 합니다. 저도 나이가 드니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사람들한테서 소식이 옵니다.
<죽었다는 소식입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듯이 소식이 없으면 살아 있는 것이지요.
얼마 전에도 지인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느라 화장장에 갔습니다. 화장장 정문에서부터 영구차와 버스들이 밀려있더군요. 관이 전기 화로에 내려가면 고인의 이름 밑에 소각중이라는 문자 등이 켜지고 40분쯤 지나니까 소각완료, 또 10분쯤 지나니까 냉각중이라는 글자가 켜집니다. 10년쯤 전에는 소각에서 냉각까지 100분 정도 걸렸었는데 이제는 50분으로 줄었습니다.
기술이 크게 진보했고, 장례의전을 관리하는 절차도 더욱 세련되어 졌습니다. 냉각완료가 뜨면 흰 뼈 가루가 줄줄이 컨베어 벨트에 실려 나오는데 성인 한 사람분이 한 되 반 정도 됩니다. 그리고 직원이 뼈 가루를 담아서 유족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유족들은 미리 준비한 용기에 뼈 가루를 담아서 돌아갑니다.
원통하게 비명횡사한 경우가 아니면 요즘 유족들도 별로 울지 않습니다.
부모를 따라서 화장장에 온 아이들은 대기실에 모여서 과자를 먹으며 놀고 있었습니다.
제 입으로 우리는 호상입니다 라며 문상객을 맞는 상주도 있었지요.
그리고 그날, 세 살 난 아기도 소각되었습니다. 작은 관이 내려 갈 때, 젊은 엄마도 돌아서서 울었습니다. 아기의 뼈 가루는 서너 홉쯤 되었을 것입니다.
뼈 가루를 보면 흰 분말에 흐린 기운이 스민 안개 색깔입니다. 입자가 고와서 먼지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나이든 사람이든 어린 아이든 한 세상 그리다 가는 구나,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두 죽음을 향한 여정에 오르며 결국 언젠가는 죽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즉,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향해가는 존재이지요. 금방 있던 사람이 없어졌는데.................
뼈 가루는 남은 사람들의 슬픔이나 애도와는 사소한 관련도 없고 수명이 다하고 업이 다 한 것을 말해줄 뿐입니다.
죽으면 말길이 끊어져서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죽음의 내용을 전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즉음을 인지 할 수 없습니다.
머물면서 태어나지 않을 수 없고 태어난 이상 늙지 않을 수 없으며 늙으면 병들고 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탄생과 죽음은 실습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의 무서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죽음이 저토록 가벼움으로 우리는 남은 삶의 무거움을 버티어 낼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더한 욕심을 부릴 것도 없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갈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입니다. 사실이지 죽음은 아무런 기약 없이 갑자기 닥쳐옵니다. 나이가 들면 죽음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일상생활을 하듯이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하며 미리 정해놓은 일만 생각하세요.
돈 들이지 말고 죽자. 주변 사람들 힘들게 하지 말고 가자. 질척거리지 말고 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온 것이 있다면 다 갚고 가자. 남은 것이 있으면 다 주고 가자. 입던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가자. 이렇게 말입니다.
죽음 학자인 퀴블러 로스는 죽는 과정을 부정하고 왜 내가 죽어야하느냐며 화를 내고 조금만 더 살게 해달라고 타협하다가 우울감에 빠지며 결국 받아들이는 상태로 요약했습니다. 물론 꼭 모든 단계가 순서대로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자신의 죽음을 부정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하고 처음부터 체념하고 사후세계에 몰입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믿는 사람과 의연하게 죽어가는 과정을 가까이 지켜볼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잘 받아들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집에 있는 서랍과 수납장을 들여다보면, 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나간다는 생각에 서글퍼지는 순간이 옵니다. 똥을 백자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 둔 꼴이지요. 지금까지 내가 지니고 있었던 것이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다는 것을 죽음을 앞두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아직 아무 것도 하지 못했는데 왜 그렇게 두 손에 꽉 쥐고 놓지 못하는인생을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라지만 욕심을 내서 살았던 지난날을 떠올리면 그 마음이 너무 공허합니다. 나의 삶이 너무 허무하게만 느껴집니다. 결국 인간의 삶이 죽음에 순응할 수밖에 없고 운명이라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어떤 것이 아름다운 노년이고 또 어떻게 죽는 것이 아름다운 죽음인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불변의 사실 앞에서 이제부터라도 조금 더 의미 있는 것으로 내 인생을 채워 보시길 바랍니다.
세상에는 없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정답이 없습니다.
둘째는 비밀이 없습니다.
셋째는 공짜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세 가지도
첫째는 사람은 분명히 죽는다는 것
둘째는 나 혼자서 죽는다는 것
셋째는 아무 것도 가지고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것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른 다는 것과
어디서 죽을지 모른 다는 것
그리고 어떻게 죽을지 모른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태어나는 방법은 거의 비슷하지만 죽는 방법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나는 것보다 죽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내가 세상에 올 때 나는 울었고 내 주위에 모든 이들은 웃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땐 모든 사람이 아쉬워 우는 가운데 나는 웃으며 훌훌 떠나가야 합니다. 언제나 사랑하고 배려하며 주어진 삶이 다 할 때까지 의무를 다하며 살아야합니다. 그것이 인생을 최고로 잘 산 것입니다.
하루하루 행복한 삶을 살아가세요.
걸을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친구들과 대화할 수 있고, 이렇게 살아 있는 지금이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한 것입니다.
인생은 소풍입니다, 잠시 소풍 나온 거니까 즐겁게 잘 놀다 가면 그만입니다.
삶은 너무나 짧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하루하루가 기다고 느껴지시겠지만, 우리 어르신들은 돌아보면 인생이 너무 빨리 지나 갔다고 말씀하십니다.
연세가 여든이 넘은 우리 어머니도 요즘 계속 그런 얘기를 하십니다.
누구나 한번 왔다 가는 인생, 바람 같은 시간입니다. 멈추지 않는 세월은 하루하루 소중합니다. 미련이야 많겠지만, 후회도 많겠지만, 어차피 한 번 왔다 가는 걸 붙잡을 수 없다면 소풍 가듯 웃으며 행복하게 사셔야 됩니다.
인생을 바쁘게 살지 마세요.
삶에 대해 너무 욕심 부리지 마세요.
가는 길에 쉬었다가, 오는 길에도 쉬고, 또 중간에 틈나는 대로 쉬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을 그 자체로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지 하루하루를 마치 무슨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소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지혜를 깨우친 현인들은 우리에게 ‘소풍’을 권했습니다. 우리는 일하러 세상에 나온 것도 아니고 성공하려고 온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다 부차적이고 수단적인 것이지요. 우리 모두가 전생에 무엇을 잘하고 못했는지 모르지만 한 세상 노닐 수 있는 삶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아직 삶을 선물로 받지 못한 억조창생의 대기조들이 우주의 커다란 다락방에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삶을 수단시 하지 말고 삶 자체가 목적임을 깨우치세요. 이 삶이라는 여행은 어떤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것입니다. <맹목적> 그러니 이 여행 자체를 즐기시길 바랍니다. 멀리 소풍 가서 노는 이야기에 번뇌와 고통만 가득하다면 그것은 참된 인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기막힌 사연과 세상 속에서도 행복과 기쁨이 있는 삶을 살아가세요. 삶에 대한 집착, 욕망 같은 군더더기들을 벗어 버리고 소풍 같은 인생을 살기를 바래 봅니다.
곱게 늙어 가는 이를 만나면 세상이 참 고와 보입니다.
늙음 속에 낡음이 있지 않고 도리어 새로움이 있습니다. 곱게 늙어가는 이들은 늙지만, 낡지는 않습니다. 늙음과 낡음은 글자로는 불과 한 획의 차이 밖에 없지만, 그 품은 뜻은 서로 정반대의 길을 달릴 수 있습니다. 늙음과 낡음이 함께 만나면 허무와 절망 밖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늙음이 곧 낡음이라면 삶은 곧 죽어 감일 뿐입니다.
늙어도 낡지 않는다면 삶은 나날이 새롭습니다.
몸은 늙어도 마음과 인격은 더욱 새로워집니다.
더 원숙한 삶이 펼쳐지고 더 농익은 깨우침이 다가옵니다.
늙은 나이에도 젊은 마음이 있습니다. 늙었으나 새로운 인격이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도 낡은 마음이 있습니다.
젊었으나 쇠잔한 인격입니다. 겉은 늙어가도 속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름답게 늙는 것입니다. 겉이 늙어갈수록 속이 더욱 낡아지는 것은 추하게 늙는다는 것입니다. 늙음과 낡음은 삶의 미추를 갈라놓습니다. 글자 한 획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태어나면 늙어 가는 것이지요. 몸은 비록 늙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새로움으로 살아간다면 평생을 살아도 늙지 않습니다. 곱게 늙어 간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인 것입니다.
멋모르고 날뛰는 청년의 추함보다는 고운 자태로 거듭 태어나는 노년의 삶이 더욱 더 아름답습니다.
행여 늙는 것이 두렵고 서럽습니까?
마음이 늙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새로움으로 바꿔보세요. 늘어가는 나이테는 인생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그만큼 원숙해진다는 거지요. 늙음은 새로운 원숙입니다.
어느 바람에 지는 줄 모르는 낙엽이 땅에 떨어지기 까지는 순간이지만, 그럼에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것은 분명히 절규가 아니라 춤추는 모습입니다. 낙엽이 지기 전 마지막 모습은 아름다운 단풍 이었습니다. 말년의 인생 모습도 단풍처럼 화사하고 봄꽃보다 고운 잘 물든 단풍처럼 화사하고 봄꽃보다 고운 잘 물든 단풍처럼 장엄합니다. 마치 해질녘의 저녁노을처럼 말이지요.
인간은 누구나 ‘삶의 유혹’과 ‘죽음의 공포’ 이 두 가지에서 벗어나고자 고민하는 것이 인생의 참 공부인 것입니다.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이 늙음의 내리막길이 아닐까요?
인생의 오르는 길은 힘이 듭니다. 그래도 내려가는 길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삶의 길을 멋지게 내려가는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 30년 지기 친구의 아버지는 섬진강 상류의 산골 마을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사셨다고 합니다.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친구를 불러놓고 유언을 하셨는데 “네 어머니가 방마다 아궁이에 불 때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다. 부디 연탄보일러를 놓아 드려라” 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이 유언을 듣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죽음을 별것 아닌 것으로 아침마다 소를 몰고 밭으로 나가듯이 가볍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 정도의 유언이 나오려면 깊은 내공과 오랜 세월이 필요한 것이지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습니다. 죽음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의술의 목표라면 의술은 백전백패입니다. 깨어진 육체를 맞추고 꿰매서 살려내는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충분히 다 살고 죽으려는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품위 있게 인도 해주는 의사도 있어야 합니다. 죽음은 쓰다듬어서 맞아들여야하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 살았기에 가야하는 사람의 마지막 시간을 파이프를 꽂아서 붙잡아 놓고 못 가게 하는 의술은 무의미합니다.
죽음 앞에서는 가볍게 죽고, 가는 사람도 미련 없이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 이토록 단순한 장례 절차에서도 정중한 애도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의술도 모두가 가벼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가벼움으로 삶의 무거움을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천하를 통일 했던 중국의 진시 황제나 애플을 창시하여 억만장자가 된 스티브 잡스, 영원히 북한을 통치할 것 같았던 김일성, 그들은 모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도 병상에 누워 있다 결국 고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화려하게 살다가 떠나간 사람 중 누가 부럽나요.
천천히 걸어도, 빨리 달려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한 세상입니다.
더러는 조금 살다가, 더러는 오래 살다가 우리는 결국 가야할 곳으로 떠나갑니다.
소중한 시간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사세요.
우리에게 주어진 둘도 없는 삶. 지난날을 돌이키며 후회하기보다는 나에게 남은 하루하루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희망을 거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마침내 바람에게도 돌멩이에게도, 보이지 않는 마음에게도, 고마움을 느끼며 정다운 사람들과 오붓하게 웃음을 나누면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됩니다. 가져 갈 수 없는 무거운 짐에 미련을 두지 마세요. 빈 몸으로 와서, 빈 몸으로 떠나가는 인생입니다. 힘들었던 과거, 상처 받은 마음, 쓸데없는 걱정거리, 모두 훌훌 털어 버리세요. 아까울 것 하나 없습니다. 힘겹게 이고 지고 안고 있으면 인생이 금방 지치고 힘이 들게 됩니다. 간밤에 꾼 호화로운 꿈도 깨고 나면 모든 것이 허무하고 무상하죠.
어제 꽃 피는 봄날도 오늘의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데 지금 두 손에 붙은 미련을 놓아 버리고 가벼워지세요. 어차피 떠나야 할 그 길이라면 그 무거운 짐일랑 다 벗어 던지고 처음 왔던 그 모습으로 편히 떠날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혹여나 지나간 일에 대한 자책감으로 힘들어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에 두려운 분들이 있다면, 일어나지도 않은 어떤 일 때문에 너무 걱정하다가 과거에 대한 자책과 미래에 대한 걱정 모두가 현재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현재에 집중하세요. 그리고 후회가 없도록 현재를 즐기셔야 합니다. 이 좋지 않은 감정들은 모두 털어 버리시고 지금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보다 행복한 삶을 만드는데 유익할 것입니다.
노후는 삶의 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삶의 시발점으로 생각하고 이 기회를 슬기롭게 이용하여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노인에게 주어진 특별한 숙제입니다. 있으면 있는 것으로 즐기고, 없으면 없는 대로 체념하고, 그대로 견디면 됩니다. 마음 조리며 안달하고, 아파할 것이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값진 인생이기에 의도적으로 가치 있는 인생을 살도록 노력하며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제2의 선물의 삶을 멋지게 보내는 의미를 다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감사하고 격려하며 칭찬하고 일 줄기는 긍정적인 생각은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고, 미워하고 시기하며 불평하고 원망하며 앙심을 품은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욕심과 기대는 줄일수록 편해지고 사랑과 감사와 희망은 늘려 가야만 더욱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소박하고 간결한 삶을 즐기는 것은,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며 과한 호화로움과 방탕한 생활은 불행의 씨를 키우는 것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건강도 가난도 자신의 살아온 결과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이 오늘의 자신을 만든 것입니다. 행복과 건강은 선물이 아니고 자신의 준비와 노력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긍정적인 생각이 오늘 하루를 변화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좋은 생각과 노력이 쌓이면 여러분의 인생은 좋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첫댓글 현실적으로 너무 와 닿는 글이라서 퍼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