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31일
전체와 무한, 혹은 무한으로서의 타자
어제 오늘 여름을 실감케 하는 무더운 날씨다. 해마다 이맘때면 에어컨을 살까 말까 고민할 법도 하다. 아내와 나는 아직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오늘은 아파트 도색을 한다고 창문을 모두 닫으란다. 어찌할꼬? 어디 산이나 다녀오고 싶은데 아내가 집에서 같이 있어주었으면 하는 눈치다. 다시 어찌할꼬? 이럴 때 독서삼매에 빠져보는 것도 좋다. 무슨 책을 읽을까? 아들 서고에 가보니 강신주가 쓴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이 꽂혀 있다. 이태 전쯤 내가 먼저 읽고 좋아서 아들에게 넘겨준 책이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2년이면 망각이 작용할만한 세월이다. 요즘은 몇 달 전에 읽은 책도 내용이 가물가물할 때가 있다. 그래도 이 책에서 선명하게 기억되는 대목이 있다.
유아론을 넘어서 타자에게로
레비나스가 철학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그의 도움으로 우리가 타자를 사유할 수 있는 또 다른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왜 레비나스는 그다지도 집요하게 타자라는 문제에 집착했던 것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그가 참혹한 살육의 시대를 살았던 배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대인이었던 레비나스가 어떻게 2차 세계대전을 경험했을지 구태여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네요.
레비나스에게 유럽을 휩쓴 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로 상징되는 국가 사회주의, 즉 전제주의의 무서움을 알려 주는 증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철학적으로 깊이 숙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체주의가 세상에 다시 등장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레비나스는 전체주의를 그 뿌리에서부터 진단하려고 노력했던 것이지요.
마침내 레비나스는 전체주의를 기원이 일자()모든 것을 포괄하려는 서양철학 속에 이미 있었다고 진단합니다. 이 일자가 플라톤이든 하이데커의 존재든 간에 상관없이 말이지요. 일자로 모든 것을 환원하려는 시도에 맞서기 위해서 그는 타자라는 개념을 새로운 각도에서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타자란 ‘다른 것’이자 동시에 ‘낯선 것’이기 때문에, 친숙한 일자로 쉽게 환원될 수 없는 것을 상징하는 개념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148쪽)
(...........)
조금 어렵다면 다른 쉬운 예를 하나 더 들어보지요. 예를 들어 밥술갈로 이리저리 음식을 뒤척거리고 있는 중학생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들이 공부하는 것에 싫증이 나서 또 게임이나 하려고 저러는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는 부모가 있다고 해보지요. 사실 이런 식으로 자녀를 판단하는 태도가 ‘전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도 있습니다. 자식의 속내를 투명한 유리 속 보듯이 빤히 꿰뚫어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반면 자식의 마음 속이 마치 어두운 열 길 물 속과 같다고 느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갑갑함을 느낄 때, 이 순간 부모는 자식을 일종의 ‘무한’처럼 상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레비스나에 따르면 ‘전체’의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내가 타자의 속내를 모두 알 수 있다는 오만함을 나타내는 것이고, 반대로 ‘무한’의 자세를 취하는 것은 타자의 속내를 끝내 알 수 없다는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이라도 할 수 있지요.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왜 전체주의적 사고가 위험한지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체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타인도 자기와 똑 같은 생각을 한다고 확신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에 에스프레스 커피를 좋아한다면 타자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는 자신이 공포 영화를 좋아한다면 타자도 그럴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레비나스 표현처럼 ‘사람끼리 서로 마주하는’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협소한 자신의 내면속에서만 머물러 있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결국 ‘전체’의 관점은 ‘유아론’에 빠진 관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유아론자에게는 타자와의 대면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49-150쪽)
8월 7일 전남 담양교육연수원 국제부에서 영어교사 일정 연수가 있다. 일정 연수는 교직 3년 정도의 젊은 교사들이 받는 연수다. 나는 교직을 불과 몇 개월 남겨놓은 늙은 교사니까 젊은 연수생 자격으로 가지는 못하고 학급 경영에 대한 강의를 하러 간다. 처음에는 ‘학급 경영’이란 말이 좀 그래서 그런 강의 못 할 것 같다고 했더니 제목은 그렇게 해놓고 내용은 알아서 채우셔도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오늘 이 대목을 다시 읽으면서 선생님들과 무슨 얘기를 나눌 건지 대충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학생들을 ‘타자’로 대하고 있는가?
학생들을 폭행하는 교사들 중에는 학생을 자기 자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마치 학생들의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분신으로 보듯이.
"내가 내 자식을 때리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내가 우리반 아이들 잘 되라고 때렸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그럼 애들을 포기하라는 거야?)
*우리는 학생들을 ‘전체’로 보고 있는가? ‘무한’으로 보고 있는가?
여기서 무한이란 말이 좀 낯설게 느껴진다면 ‘개인’으로 바꾸어도 무방하겠다. 관리형 교사는 당연히 학생들은 ‘전체’로 볼 것이다. 관리형 교사는 관리형 학교나 관리형 사회의 부산물일 수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나 자신이다.
나는 학생들은 전체로 보고 있을까? 무한으로 보고 있을까?
정년까지 불과 반년이 남았지만 이 점은 내게 정말 아주 중요하다.
오늘 아침은 5시에 일어나 곧바로 산(태극산)으로 갔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일출은 한 순간이긴 하지만 장엄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장엄한 일출을 보고 난 뒤와 그 이전과 삶이 같다면 무슨 소용이랴?
다행히도 조금 달라진 것이 있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햇살....곧 '해의 살'이 내 눈에 보인 것이었다.
산길에, 나뭇잎에, 묵정밭 잡초에 떨어진 해의 살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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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넝담이 아니라 요즘 샘 사진 보면 정말 깊이가 느껴져요.. 범상치 않아요... 무지 더워서 큰일 났어요... 일하다가 쓰러졌어요..웃옷을 벗어서 콱 짜면 땀이 출렁이며 빠져요.. 또 몇시간 안 되어서 옷을 벗어서 짜야 해요... 저녁이 되면 참 고마워요 그래서... 을지로에서 시화전 한다고 한 편당 제작비 삼만원이라며 참가해 달래요... 공짜로 해도 안 할 건데.. 삼만원이나 내라니 가난한 나에게 ㅋㅋ 열 편이면 삼십만원인데 헐.... 걍 패스하고 말아야 것어요^^
앞으로도 사진 얘기는 하지마라 쪽 팔리니까 ㅎㅎ 사진 보다는 글이나 다시한번 읽어보거라 전체적인 관점은 결국 유아론의 관점이라는 말을 네가 이해했으면 좋겠는데...
@안준철 알았어요^^ 읽어 보고 또 읽어 볼게용^^
@김준한 그래 고압구나♡
우선 제가 전체주의는 아니네요 만약 그렇다면 세상이 이렇게 낯설리 없죠 ^^ 글고 항해일지란 시가 나올리도 없겠구요.. 사람들이 너무나 낯설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고 궁굼하며... 그들의 이런 저런 생각들을 공유하고 싶고,, 그래서 내가 먼저 마음을 여는 것인데... 상처 받을 때 다시 또 아프고 뭐 .... 그리고 무한에 가깝지만 사실 그것도 위험해요... 그것이 얼마나 더 위험한 것인지 전 절실히 느끼고 있으니깐요...
그니깐 전체에 빠지면 밖에 해가 되고 무한에 빠지면 안에 해가 되요 ^^ 스스로를 죽이죠.... 천천히 아주 조금씩 야금야금... 스스로 파멸해버리지요.... 철학적인 이야기 재밌네요 ^^
전체에 대한 생각은 맞는것 같고 여기서 말하는 무한은 타자에 관한건데 네가 만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최소한 너와 같은 비중의 삶의 의미와 비밀과 은밀함을 지닌 자유를 욕망하는 개인이라고 생각하면 될것 같다 나와 세계가 아니라 나와 너 또 너 너 이렇게 관계를 맺는 거지 이를 교육 실천적으로 말하자면 교실에 앉아있는 학생을 집단 속의 일원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의 세계로 대해주는 것!!!
시인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근데요 샘 요즘 저 새로운 사실 하나 알게 되었어요 예전엔 시를 써 놓고 꼭 내가 무엇이니가를 단정 짓고 이건 무엇이다 답을 내려 했고 그렇게 이야기 하려 했고 독자가 그것을 몰라주고 단말 하면 마음이 안 좋았는데... 요즘 새로운 것을 경험한 것이 카페에 시를 올렸는데 같은 시에 읽고 소감을 이야기한느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달라요 같은 시를 보고 다ㅣ들 저마다 드른 느낌 다른 생각 다른 말을 댓글로 남기는 거 보고... 많은 생각을 한 것이 앗 이런 것이구나 이래야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받고 이래야 내 시가 증폭되고... 아 그 신비로움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좋은 일이지^^ 이걸 전체성의 문제로 놓고보면 너도 모르는 사이에 개별 독자들의 독자적인 생각이나 감정을 전체(네 방식으로)로 환원해버리는 오류를 저지른 거라고도 할수 있겠지 넌 요즘 그걸 극복하고 있는 셈이고 언젠가 너에게 너를 포함한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힘을 가져야 작가가 될수 있다는 말을 한 것 같은데 같은 맥락인거지^^
물론 그건 기본이고 내 것이라고 할수 있는 고유한 것이 있어야 겠지만
@안준철 요즘 제가 고열을 앓았다고 이해하시고 용서해주세요... 열병이 치유되고 나면 또 다른 세상열리지 않겠습니까 가족이란 것은 그렇게 한 사람의 성숙 과정을 감당해야하는 아픔이 있기 마련... 샘은 가족이니께... 도 모르죠 몇 년 후에 또 열병 앓아가지고 ㅋㅋㅋㅋ 그럼 또 감당해야죠 그것이 가족인게....
저 위에 말씀 천프로 만프로 지당한 말씀^^ 그동안 그런 오류 속에 있었지만 이제 그곳에서 좀 걸어 나온 것 같에요 이번에 앓은 열병으로 말이죠^^ 그리고 옆에 샘이 있었고요... 감사합니다... 근데 배가 넘 고파서 밥을 묵고 싶은 욕망처럼 너무 거시기 해서 미칠 것 같은 이 거시기같은 거시기는 어케 감당하여야 할 까요^^
나도 미안하구나 조금씩 나아지는 삶을 살도록 서로 노력해보자 인생을 한 방에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은 빨리 버릴수록 좋다 신춘문예도 일종의 그런것이라면 과감하게 버릴 필요도 있다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오랜만에 기분이 좋구나 또 보자 짜샤♡♡
@안준철 장엄한 일출을 보고 난 뒤와 그 이전과 삶이 같다면 무슨 소용이랴?
저도 뭔가 털어버리는 느낌입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김준한 나도 사랑한다 짜샤♡♡ 오랜만에 맘에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