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으로 입춘, 우수가 지났으니, 그리고 영상의 날씨에 비마저 내리고 있으니 봄이 오고있는게 분명한 것 같은데, 불마저 꺼두고 있어선가, 집안은 여전히 으스스하고 춥기만 하다. 좀 따뜻하게 지내면 안될까. 가스요금이나 전기요금 폭탄 같은것은 저리가라 하고 즐겁게 지낼수는 정말 없을까. 경제적인 무능력이야 말로 최악의 고통아닌지 모르겠다. 과도한 낭비도 좋은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반대로 궁핍에 가까운 절제도 문재가 많은것은 사실이다. 자유경쟁이란 말로 공평은 물건너간지 오래다. 약자들에게 자유경쟁이란 말은 폭력일수도 있지않을까 싶다. (그래서 어쩌라고?) 답이 없다. 그냥 알아서 사는것 말고 무슨 답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뒤척이고 뒤척이는 날이 많아진다. 이불속의 온도도 낮아지다가는 올라가고를 반복한다. 새벽이나 별로 다를게 없는데,,, 무슨 잠못이룰일이 그리 많아선가. 아니라고도 못하겠다. 두려움만저 스몰거린다. 다 왔다고 생각했다. 이제, 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도 문고리는 멀리있는 것일까. 잠을 이룰수 없을만끔 두려운게 뭘까. 이런저런 사유야 없을수는 없다. 또 내가 할수있는일도 없다. 어쩌면 그때문에 머리속이 번거로운게 아닐까 싶다. 나는 뭘하고 살았지? '나'에게는 늘 '나'만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혹 '나'에 평화가, 평강이 흔들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하고 있는거 맞다. 뒤늦게 주신 선물이 횡재다 싶은데 행여 놓칠까봐 심히 마음이 어지로운것 아닌가. 늘 빈손이었다. 속은 더 비어서 황량한 벌판이었다. 사실 광풍이나 폭우 같은것도 필요없다. 아주작은 바람에도, 시우에도 요동치는 '나'이니까. 태산은 커녕, 들판의 얕트막한 언덕만끔도 못되는 '나'가 아닌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감히 얼굴이나 들수있을까. 너무나 부끄러워서 서 있을수나 있을까. 그때도 '내 원대로' 해주신게 없다고 당당히 말할수 있을까. 징징대고 투덜거릴수가 있을까. 어쩌면 그때는 눈물샘이 터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수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말 말고는 없다. 입에 풀칠하는 일마저 어머니 도움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고, 말년에 누린 빈둥거림이나 자유도 아들딸의 지원으로 된 것이라는 것을 내가 말 안해도 그분은 아실테다. 한사람으로 살았는데, 한몫을 한것은 아니었나보다. 나때문에 어머니의 짐이 아들딸의 짐이 더욱 무거워진거라면 나는 정말 어쩌지? 내가 뭐그리 큰죄를 지었느냐고 했던가. 주님, 살피고 계신가요? 불쌍히 여겨주십시요. 자복하는 죄인 여기 있사오니 긍휼을 배풀어 주십시요. 그리고 감히 해방을 원하옵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