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산불
최의상
산불이 전국에서 번지고 있다. 인왕산이 타고 있다. 홍성이 타고 있다. 산림청과 소방대원과 공무원들은 강풍이 불어대며 불길이 하늘로 솟구칠 때마다 놀라며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했다. 홍성의 피해는 34채의 가옥이 재가 되고, 1454ha의 삼림을 태웠다고 한다.
서울, 춘천, 홍성, 보령, 공주, 금산, 무주, 진주, 정읍, 고창, 거창, 진안, 남원, 전남광주, 봉화, 포항, 울주, 제주, 김삿갓면, 성산면, 옥계면, 울진 북면, 삼척, 금정구, 대천면, 개포동 등 30여곳에서 오전 11시를 전후 하여 동시 다발적으로 불이 났다고 한다. 일부 유튜브에서는 간첩의 소행이 아닌가 의심이 된다고 까지 하였다.
가뭄이 문제다. 칠 년 대한에 비 아니 오는 날 없다는 말이 있다. 비가 온다는 기상대의 발표가 있은 후 비는 올 때도 있고 비구름만 끼었으나 비같은 비는 오지 않았다. 소낙비처럼 휙 지나가거나 빗방울 몇 방울 떨어졌는가 하면 태양만 반짝 나타나곤 하였다. 물이 필요한 호남평야가 있는 호남지방에 50년 만의 가뭄이 극심하였다고 한다. 목마르게 비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마침내 단비가 왔다. 산불로 걱정하던 사람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주도 한라산 주위로는 많은 비가 쏟아졌다고 한다. 각 지방이 골고루 비를 뿌려주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사는 중부지방 내 집 주위는 안개인지 물안개인지 구분이 안 되는 농무 속에 비인 듯 한 비가 내리고 있다. 빗줄기를 볼 수가 없다. “가랑비에 베잠방이 젖는다.”라는 말과 같이 안개비가 밤새 내린 탓으로 땅속의 씨들이 출세할 준비를 하고 풀과 꽃들이 다투어 쑥쑥 자라서 이미 지나간 듯한 봄을 아쉬워할 것이다.
겨울인지 봄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체감온도에서 아직도 겨울이라 생각되는 사람들의 정서에 사방에서 화신이 도래하였다. 정상적인 계절의 순환에 비하면 10 여일은 앞당겨 봄이 온 것이라 생각된다. 4월에 접어들고 길과 산과 공원에는 벚꽃이 만발하여 이미 바람에 꽃잎이 날려 아스팔트 바닥을 하얀 꽃길로 수놓은 것이 어제인데 오늘 밤에 온 비로 벚꽃이 후줄근하게 척 늘어지고 대부분은 꽃잎이 떨어진 벚꽃나무 아래 울타리에 노란 개나리꽃만 더욱 노랗게 싱싱해 보였다. 사라져 가는 꽃들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이제는 라일락꽃 피는 4월의 향기속에 다양한 색조로 필 튤립을 구경할 수 있으며 수선화, 히아신스, 크로커스가 만발한 공원과 정원을 구경하게 될 것이다.
안개비로 천지가 잿빛으로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으나 흐릿하게 먼 산 능선만이 천지를 구별하게 한다. 이왕 오는 비라면 주룩주룩 빗줄기가 적당히 쏟아져 도랑물이 넘치고 개울물이 붉게 흘러 그동안 쌓였던 때를 씻어내기를 바랬다. 그러나 비다운 비는 오지 않아 시원한 느낌이 적었다. 곳에 따라 흡족하게 비가 온 곳도 있겠으나 미흡한 곳의 사람들은 마음이 시원치 못할 것이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다. 공평할 수가 없다. 부자가 있고 빈자가 있다. 이 세상은 공평할 수가 없다. 어제까지도 전국에 산불로 온국민이 걱정을 하며 비가 오기를 학수고대 하였다. 어느 지역에서는 비가 많이 와서 화마를 진압하는 수고를 덜게 되었고 어느지역에서는 비가 오지 않아 진압에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까지 온 비로 전국의 산불은 완전 소화되었다. 가뭄의 기간이 너무 길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늘에서 비가 왔기에 모든 근심과 걱정을 덜게 되어 다행이다. 앞으로도 하늘에서는 인간 세상 사람들이 필요할 때 비가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