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눈으로 광야를 해석하라.
1.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광야에서 보낸 40년의 세월을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광야 40년을 잘 정리하고 기억해야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땅에 들어가서도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왜 광야의 삶이 40년이나 되었습니까? 물론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불신과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징계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광야의 방황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겸손하게 낮추심이며(3,16),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배우게 하심이고(3), 하나님의 징계이면서도(5), 궁극적으로 복을 주시려는 의도였습니다(16).
3.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는, 그들이 잘 살게 될 때 하나님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11~18). 사람은 교만해지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는 법입니다(11, 14). 아니, 하나님(의 은혜)을 잊어버리는 순간 인간은 교만해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더라도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광야에서 매일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하심을 받았고, 만나를 매일 하늘에서부터 공급받고 살 때에야 어찌 하나님을 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들은 매일을 기적의 날로 살면서도 하나님을 불신했고 불순종했습니다.
4. 그렇다면 가나안에 들어가, 더 이상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없고, 만나도 없을 때, 여전히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큰 믿음의 싸움이 되겠습니까? 오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 도전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오늘 내가 그 은혜를 누린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18). 내 힘으로 내가 얻은 재물이며, 내 힘으로 내가 쟁취한 성공이라고 여기는 한, 그 모든 것은 그에게 저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5. 하나님께서 이 시점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40년을 회상하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광야를 정리하고 기억해야,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를 믿음의 눈으로 정리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정리되지 않은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현재에는 언제나 쓴 뿌리가 있습니다. 쓴 뿌리는 미래의 영광을 자족 대신, 채울 수 없는 불만족의 불신앙으로 대치하게 하는 독과 같습니다. 당신의 광야 40년을 기억하십시오. 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간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지금의 행복을 누릴 능력도, 자격도 없습니다. 미래는 말할 것도 없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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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땅
오늘 본문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사는 동안 그들의 삶이 은혜였음을 회고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과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갈 풍요롭고 아름다운 땅 가나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현실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던 오랜 훈련의 기간을 마치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 그리고 얼마나 신실하게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며 동행하셨는지를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게 된 후에도 이스라엘이 기억해야 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1절~3절입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 땅에서 받는 복과 은혜, 저주의 차원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삶과 죽음은 영원한 문제입니다. 단지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 사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에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사단의 유혹을 받으신 주님께서 말씀하신 첫 번째 답변이 바로 오늘 본문 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비밀을 알려 주셨는데도 그 비밀을 자신의 것으로 삼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책임입니다.
3절 말씀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면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드는 자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딘가 부족한 분이시라서 사람의 섬김을 받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으로 온 우주의 경배를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중 인간을 가장 사랑하시기에 날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갈 것을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찾는 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시는데 그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가운데 모세를 통해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 몸과 마음의 무릎을 꿇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지 3절~4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광야 40년 동안 만나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만나는 광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도록 널려 있던 식량이 아닙니다. 만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했던 특별한 하늘 양식이었습니다. 또한 헐벗지 않게 의복을 공급하셨을 뿐아니라 발이 부르트지 않도록 백성들을 무리하게 인도하지 않으시고 신발까지도 공급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광야 길을 인도하셨지만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으로만 나타나신 것이 아닙니다. 5절~6절입니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마음에 생각하라’는 말씀은 ‘너는 마음으로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깨달아 알았거나 경험하여 알게 된 사실, 즉 광야 40년 간의 고난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백성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자신의 거룩함을 닮은 존재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 말씀에 불순종할 때는 징계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징계’는 ‘바로잡기 위해 벌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책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닮은 거룩한 백성으로 성장하도록 교육적인 목적을 가진 징계라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과할 때는 말할 수 없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고난을 통과하고 난 후에는 그것이 우리를 순금같이 흠없는 존재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도 징계하십니다. 우리를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성화시켜 가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라고 고백했습니다.
부모에게 비싼 선물을 드리고, 맛있는 것을 사드리는 것이 가장 큰 효가 아니라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듯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보여주는 삶의 방향을 따라서 한걸음 한걸음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맡겨주신 사람들까지도 말씀으로 더불어 살아가도록 바른 도구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는 광야에서 끝나지 않고 미래까지도 책임져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7-10절을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현재 이스라엘이 할 수 있는 일은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그 말씀대로 살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입니다. 입술의 찬송이 아니라 찬송의 생활화, 생활 속의 찬송이 매일 매 순간 드려져야 합니다. 그러한 인생이 얼마나 복된 인생인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각 사람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대림절 셋째주간을 살아가며 아기 예수님께 드릴 선물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총의 삶을 살아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억하기 위한 훈련을 많이 합니다. 공부를 더 잘하기 위해 많은 단어들을 외우고, 삶 속에서 다양한 분야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는 반대로 잊으며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도 하는데, 만일 우리가 어떠한 일을 망각하지 못하고 모든 일을 기억하면서 살아간다면,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이나 치욕스러운 일 때문에 단 하루도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망각이 빈번히 일어나도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무엇보다 우리가 삶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11)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보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는 일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잊고 산다는 것은 삶에서 증상이 나타나는데,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잊고 사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잊고 사는 것은 바로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각자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각자의 소견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을 잊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잊게 됩니까?
(12-13)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잊은 시기는 풍요로움을 얻었을 때입니다. 사람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물질이 부족할 때는 긴장하고 조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가진 것들이 풍부해지기 시작하면 긴장이 풀리고 나태해질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름다운 집을 짓고, 가축이 늘어 번성하며 소유가 많아졌을 때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을 잊고 살아갈까 염려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의 삶은 어떠한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할 때는 언제입니까? 혹시 무언가가 부족하고, 기도의 제목이 있을 때만 간절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어떻게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인가 얻어내기 위한 기도를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를 하고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었을 때부터 하나님을 잊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까? 잠언에는 우리가 깊이 묵상해보아야 할 기도가 나옵니다.
(잠언 30:8-9)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언에 나오는 아굴의 기도입니다. 부요함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틀어지게 하는 요소라면 우리는 삶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할 기도는 잠언에 기록된 아굴의 기도와 같이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우리를 채워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마치 주님의 기도에서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처럼 필요 이상의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하루의 은혜로 살아가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부요함에 이어 또 어떤 상황이 하나님을 잊게 합니까?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사람은 자신의 상황이 궁핍하고 어려울 때 유독 하나님께 매달리고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사람의 상황이 나아지면 마음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지만 그것도 잠시 조금 지나면 착각이 자신을 지배하여 하나님이 내려주신 복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노력과 능력의 대가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교만하여 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교만해지려는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15-16)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이스라엘은 무엇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어떤 일들을 행하셨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셨고, 광야에서도 먹이시고 지켜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많은 고생을 하였으나 이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그들을 낮추시고, 마침내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려는 원대한 계획입니다. 우리가 매일을 살아갈 때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때때로 자신의 힘으로 했다고 착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17-18)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처음부터 자신들의 능력으로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잊고, 내 능력과 내 힘으로 살아간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광야에서 살아갈 능력을 주신 것은 오직 하나님 뿐이심을 그들은 기억해야 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때때로 며칠 전에 한 약속도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아무리 작은 약속이라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살아가면 그 끝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며 오늘 본문은 마무리가 됩니다.
(19-20)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잊은 민족에게도 미래는 여전히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잊고 다른 신들을 따르고, 섬기면 그들은 반드시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지금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모든 것이 누구로부터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가정, 나의 직장, 내가 가진 물질이 내 힘과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역시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는 이스라엘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구원하신 그 백성들도 결국 멸망하게 되고, 우리 역시 매주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할지라도 삶 속에서 하나님을 잊고 살고 있다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종교 행위가 되어 결국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하루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가장 먼저 우리 믿음의 눈을 들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매일의 삶에서 감사와 기쁨이 넘치며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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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8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1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의 관건은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나 원주민들과의 전쟁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투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행하는데 있었습니다. 장정만 60만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과 능력과 의지로 가나안을 얻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나안이라는 목적지에 이르지 않았고,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과 방법으로 가나안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갑작스런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이 명령은 출애굽 이후 광야생활 40년동안 한결같이 그들에게 들려온 명령이었습니다.
우리는 40년을 시작과 끝이 있는 일정한 기간으로 이해하지만, 40년의 세월을 하루하루 마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40년의 광야생활은 끝이 없는 막연한 나날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끝을 알 수 없었던 광야생활이었기에 그들의 하루와 한해의 삶은 기대에 찼다가도 낙심하고, 가나안을 꿈꾸었다가도 포기하는 흔들림의 반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만나를 먹고, 의복이 헤어지지 않는 신비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만나에 질려 원망도 하고 하나님을 향해 항명 하다가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흔들리며 축적된 40년이라는 세월을 지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라는 말씀은 낯선 말씀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지난 역사를 통해 철저하게 드러난 그들이 추구해야할 삶의 가치이며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생에 아로새겨진 흔적인 광야의 역사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2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하심이라. 그들이 기억해야하는 광야는 외적 조건만을 놓고 보자면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에 가깝습니다. 15절은 광야를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이라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광야는 출애굽 1세대들이 모두 죽임을 당한 죽음의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위험했던 시간, 죽음의 시간을 기억하라고 하시는 것은 드러난 위험과 죽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험과 죽음의 이면에 그들을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던 하나님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광야로 대변되는 위험의 시간, 죽음의 시간은 그들을 인도하신 전능자 하나님 충분자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시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신명기 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듯, 오늘 우리에게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은 어느날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습니다.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있었던 특별한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일을 꿈꿀 수 없고, 목적을 잃고 막연함에 흔들리는 광야의 시간을 비켜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광야와 같은 시간을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다시금 광야의 시간을 기억하고, 광야 속에서도 우리를 인도하신 전능자 하나님 충분자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을 분명해질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을 발견하여 그 명을 따라가는 여정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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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를 통해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과 약속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어제는 은과 금의 전리품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상급임을 알았고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성취되는 것들의 부산물들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참된 성도가 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오늘 8장의 말씀은 7장의 연장선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1절 상반절입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하나님은 자신의 명령을 지켜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면 1절 하반절에 보상을 해주겠노라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면 하나님의 보상을 받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교회문화 중에 “간증”문화가 있습니다. 간증이란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은 간증에 대해 ‘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증언하는 일’로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간증은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증언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범람하는 간증집이나 집회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존재가 드러나고 있는지요. 아마 대동소이하지만 수많은 간증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였지만 간증자의 현재의 성공적인 삶이나 유명세, 그들의 스펙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단지 한 개인의 상으로 끝난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이방종교가 쫓는 그들의 신과 다른 점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간증들이 끝없이 양산되는 이유는 수요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의 상급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신명기 8장 1절에 초점을 맞춘다면 과거, 답습해오던 신앙생활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만난 누린 하나님보다 더 큰 하나님을 만난 자를 만나면 기가 죽고 이내 신앙성장은 멈추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8장은 거기에서 멈추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작은 부분으로 치부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신앙의 해안과 지평을 열어줍니다. 신명기 8장을 통해 두 가지 영적인 교훈을 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는 새로운 지평은 은혜에 대한 “기억”입니다. 신명기 8장은 “기억”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2절, 18절에서 기억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11절, 14절, 19절에서는 “잊어버리지 말라” 즉, 기억하라고 하나님은 연거푸 말씀하십니다. 총 5번이나 하나님이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2절 상반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모래먼지가 가득하고 생사를 넘나들었던 불편과 좌절, 범죄와 용서의 사십년 광야 생활을 잊지말고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과도 같지 않습니까. 인생 어디를 살펴봐도 오아시스는 보이지 않고 막막하며 절망스러운 상황을 하나님은 잊지말고 기억하라 명하십니다. 왜 그러셨는지 2절 하반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광야의 이유는 교만으로 뭉쳐있는 인생들을 낮추시고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지, 주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와 마음이 숨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지 광야에 몰아놓고 서바이벌 게임을 하듯 승자승의 원칙으로 생존자, 승리자만을 귀히 여기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모든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한없이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배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광야 곳곳에 짙게 배어있었습니다. 3,4절에서 조상들도 맛보지 못한 만나와 의복이 해어지지 않고 사막에서 발이 부르트지 않는 인도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돌보심이 짙게 배어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의식주를 베풀어주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생활에 만족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주어질 엄청난 풍요와 번영을 눈에 보이듯 선명하게 약속하십니다. 7-10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많은 이들은 주어질 상을 기대하며 만족하므로 성경을 닫아버려 신앙의 성장이 멈춰버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신명기 8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또다시 하나님은 11절에서 하나님을 잊지말고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통해 주어지는 풍요로운 영광의 분깃과 소유가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을 우려하십니다. 12-14절 상반절입니다.“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산물들은 참 감격스럽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상징이 될 수 는 없습니다. 실제로 일찍 부모님을 여읜 자녀가 부모님의 유품을 통해 부모의 사랑을 또한 존재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을 간직할 수는 있지만 유품이 부모가 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유품은 부모가 될 수 없듯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산물들이 하나님 자신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부산물을 기억하라 하지 않으시고 함께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말씀하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새롭게 열어주시는 지평은 “오늘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19-20절입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하나님은 다른 신을 섬기고 절하면 멸망을 면치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20절 하반절에 있는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않기 때문이라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하나님께서 이방신을 질투하여 던지신 말씀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편협한 이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믿음이 변질되어 화석화될까 염려하셔서 경종을 울리고 계십니다.
신약의 시대, 예수님과 충돌하였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던 자들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았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과거 하나님의 흔적들, 곧 화석화된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자신들과 대면하여 만난 하나님, 곧 성자 예수님을 인정하고 따라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주 과거 내 삶 가운데 흔적을 남기신 하나님의 모습에서 만족과 안도를 얻습니다. 하나님을 만났고 또한 그 감격으로 사는 것은 매우 소중하고 귀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를 평생의 만족으로 평생 모실 하나님의 모습으로 국한 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을 축소하고 하나님을 틀에 가두는 행위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십니다. 그분의 영광은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도 우리와 함께 하셨지만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 8장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의 삶에 흩뿌려진 하나님의 흔적과 은혜의 산물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음성을 듣자는 것입니다. 과거에 말씀하신 하나님, 또한 하나님의 유품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오늘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그분의 인도를 따르는 복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수많은 간증들이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10년 전, 20년 전, 40년 전에 만나 남겨주신 하나님의 흔적으로 살아가지는 마십시다. 오늘 함께 계신 하나님과 함께 그분의 음성을 따라가십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대의 복이요 최대의 은총이 될 것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37)
오늘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