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호남정맥 스물세번째 구간 종주를 마쳤다. 스물세번째 구간은 장흥군 소재 곰재에서 시작해서 보성군에 위치한 봇재까지이다.
이 구간을 걷다보면 사자산, 간재, 579봉, 골치, 골치산, 일림산, 628봉, 413봉, 활성산 등 높고 낮은 산과 잿등, 그리고 무수한 무명봉을 넘게 된다.
이 구간은 특색이 많은 지역이다.
지금까지 걷던 장흥 땅을 벗어나서 새롭게 보성 땅을 밟게 되고,
장흥 제암산에서 보성 일림산까지 이어지는 끝이 없는 철쭉평원을 걷게 될 뿐만아니라,
산 중턱에 자리잡은 초록일색의 보성 계단식 녹차밭을 구경할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도 얻게 된다.
또 628봉에서 내려갈 때는 보성 앞 바다인 득량만의 시원스런 푸른물결을 바라볼 수가 있는데, 이 순간 만큼은 모든 피로를 잊을 수가 있다.
대신 철쭉평원이 길게 늘어진 관계로 숲이 없어서 종주 내내 한여름 뜨거운 햇볕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고통은 감수해야 된다.
완만한 능선이 길게 이어지고, 산과 산 사이의 고도차가 그리 크지 않기에 다른 구간보다 힘은 덜 들지만, 길 잇기에 어려운 곳이 두군데 정도 있다.
일림산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이 두곳에 있는데, 반드시 정상에 있는 묘지 좌측을 통해서 내려가야 한다. 자칫하면 헛길로 내려가 이번의 나처럼 많은 시간과 체력을 낭비할 수가 있다.
또 주의할 곳은, 413봉에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가면 완경사로 이어지는데, 완경사 내리막 끝에 대나무밭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는 표지기도 없고, 선답자의 안내를 보면 대나무밭을 통과하라고 되었지만, 아닌 것 같다. 대나무밭 입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길을 찾아야 될 것 같다. 대나무밭으로 들어가거나 좌측으로 우회할 경우 엄청난 고생과 시간낭비가 있게 된다.
시골이 야박하게 급변하고 있음도 확인하였다. 산길을 걷다보면 과수원이나 약초 재배지에는 전기선으로 출입을 통제하는 곳을 가끔 보게 된다. 대부분 경고용인데, 이번 보성 들판을 통과하면서 실제 전기가 흐르고 있는 아찔함을 당하기도 하였다.
정맥 종주를 하면서 항시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시간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새로운 곳에 들어설 때마다 그 지역의 산은 말할 것도 없고, 시장이나 골목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싶은 게 욕심이지만 매번 귀가의 촉박함에 쫓길 뿐이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금요일 저녁 새벽 1시에 출발한 심야 버스는 평소보다 10여분 일찍 광주에 도착하였는데, 예민해진 탓인지 이런 것에도 염려를 하게 되는 요즘이다. 나이가 들은 탓일까?
오고가는 교통편은 산행기록 중간에, 또 맨 뒤에 자세하게 부기하였음을 알려드리며,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후기를 올린다.
호남정맥 스물세번째 구간 종주(2013. 6. 15. 토. 오전 잠깐 흐리고 오후 햇빛 속에 무더위. 하루 전 일기예보는 흐리고 구름이 많다고 했으나 오보였음)
장흥 버스터미널에서(07:39)
소요시간이 들쭉날쭉인 것 같다. 고속버스 주행 속도 이야기다. 보통 서울에서 광주까지는 심야버스로 3시간 10분 정도가 정설이다. 그런데 지난주 금요일에는 밤 1시에 출발해서 새벽 3시가 넘자 도착해 버렸다. 3시간만에 주파해 버린 것이다. 대체 어디에서 뭣 때문에 시간 세이브가 발생했을까?
내겐 빨리 도착한다고 해서 좋을 게 없다. 다음 이동을 위한 기다리는 시간만 많아질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안한 것이다. 심야에 과속이나 하지 않았나, 싶어서다.
광천터미널에서 다시 장흥행 버스로 갈아탄다. 6시 5분에 출발한 버스는 화순 이양, 장흥 봉림 등을 거쳐 목적지인 장흥 터미널에는 7시 39분에 도착한다. 1시간 34분이 걸린 셈이다.
장흥터미널에서 오늘 산행 들머리까지는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군내버스가 있긴 하지만 이미 떠나 버렸고, 다음 버스는 9시에 있기 때문이다.
택시로 대략 5분정도 소요되는 거리인 공설 공원묘지까지 7천원을 받는다. 교통 수단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이용하지만 1시간 34분을 타고 와서 9200원을 낸 것에 비교하면 터무니 없이 비싸다는 생각이다.
공설 공원묘지에 도착하니 시간은 7시 59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른다. ‘제암로’라 명명된 삼거리 입구에 이른다(08:08). 산행안내도와 이정표가 있다. 안내도를 보니 갈등이 생긴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 제암로에 세워진 이정표.
원래는 지난번에 마친 곰재로 가려고 했지만 안내도에 나타난 지름길을 보니 욕심이 생긴다.
40여분이 단축된다. 한마디로 편하고 빠른 길이다. 에라 모르겠다. 편법이긴 하지만 간재로 가기로 한다.
곰재를 버리고, 간재를 향하여 제암로를 따라 우측으로 오른다. 시멘트로 포장된 넓은 임도이다.
도로 양쪽엔 매실나무가 빽빽하다. 장흥이 자랑하는 매실농원이다.
길은 경사 완만한 시멘트 포장길. 갈림길에 이른다(08;28). 이정표가 있다. 간재가 1.3, 철쭉군락지가 2.2킬로 미터라고 알리고 있다. 갈림길 우측은 계곡.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쉼없이 발길을 쫓아 따라온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산길로 오른다. 초입에 목재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간밤에 비가 왔는지 땅에 물기가 촉촉하다. 돌길이다. 미끄럽다. 10여분을 올랐을까 했는데 다시 임도와 만난다(08:38). 조금 전 갈림길에서 만났던 그 임도다.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발길을 옮기자마자 이정표가 나타난다. 간재가 1.1킬로미터 남았다고 알린다. 이곳에서도 임도를 버리고 산으로 오른다. 마찬가지로 목재 계단으로 시작된다. 주변에 산죽이 나타난다. 새소리가 들려온다. 산속이 온통 새소리와 물소리로 가득찬다.
간재에서(09:03)
산길을 오르면서 임도를 두 번 더 만나고 간재에 도착한다(09:03).
당초 계획대로 올랐다면 지금쯤 곰재에 도착했을텐데... 40여분을 단축하긴 했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찜찜하다.
새치기했다는...
곰재에서 이곳 간재까지 이어지는 철쭉군락지를 보지 못했다는...
간재는 장흥군 신기마을과 보성을 잇는 잿등이다. 잿등 중앙에 키는 작지만 옆으로 넓게 퍼진 소나무가 한그루 있다. 산행 안내도와 이정표도 세워져 있다. 이정표에는 정맥으로 이어지는 우측 방향으로 사자산이 2.7, 좌측 곰재 방향으로 제암산이 3.0킬로미터라고 적혀 있다.
* 간재에서 올라가는 초입
이제부터 호남정맥 스물세번째 구간 정맥종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측 사자산 방향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09:19).
시작되는 초입은 완만한 능선. 길 양쪽은 온통 철쭉 천지다. 사이사이에 키 작은 소나무가 간간이 보이긴 하지만 한마디로 철쭉 일색이다.
좌측 아래로 보성의 논과 밭이 보인다.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목재 계단이 나타난다(09:37). 계단이 끝나고 암릉이 시작되더니 우측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로프를 잡고 오른다. 암릉을 넘어서니 전망대에 이른다(09:46).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보성 들녘, 여유롭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사자산 정상에서(09:48)
바로 오른다. 자욱했던 안개가 일부 방향은 걷히는 중. 2분여를 오르니 봉우리 정상에 서게 된다. 사자산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09:48).
이곳 정상은 사자산의 미봉이라고 부르는데, 사자산의 꼬리 부분에 해당되는 것이다. 머리 부분의 정상이 또 있다는 암시다. 두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좀 전에 택시기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장흥읍에서 사자산을 바라보면 두 봉우리가 마치 사자의 머리와 꼬리 부분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 사자산 정상석. 사자산엔 두봉과 미봉 두개의 정상이 있다.
* 사자산에서 바라본 장흥. 안개 때문에...
정상은 온통 바위로 깔려 있는데 정상석과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고 많은 표지기들도 보인다.
이정표에는 좌측으로 삼비산이 5.0킬로미터라고 적혀 있다.
다시 안개가 짙어지기 시작하고 주변 조망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진다.
바로 출발한다. 정맥은 사자산의 두봉이 위치한 곳이 아닌 좌측으로 진행된다. 역시 암릉길이다.
삼거리에 이른다(10:02). 이정표가 있다. 삼비산이 4.8킬로미터라고 적혀 있다. 정맥은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이어진다. 바로 계단이 시작된다. 인조목 계단은 어느새 돌계단으로 바뀌고 계단 좌측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돌계단이 아주 성의 없이 놓여 있다. 울퉁불퉁 뒤죽박죽이다. 자칫하면 발을 삘 수도 있는 그런 어설픈 상태다. 이전까지 보아왔던 장흥지역의 시설들과 너무 대조적이다. 보성 지역에 들어와서 대하는 첫 시설인데 아쉽다. 자치단체장들이 첫인상의 중요성을 좀 더 알아야 될 것 같다.
* 사자산 아래 삼거리에 매달린 표지기. 갑자기 안개가 심해져 겁이 났다.
급경사 내리막이 끝나고 완만한 능선으로 변한다. 주변엔 잡목이 주종으로 나타난다.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니 쉼터가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10:15).
갈림길에 세워진 쉼터가 특이하다. 원두막처럼 디자인되었는데 지붕은 비닐을 재료로 사용하였다. 마치 볏짚처럼 보인다.
이정표 또한 지금까지 보아왔던 장흥의 그것과는 판이하다. 디자인도 크기도 다르다. 이정표에는 일림산이 4.4킬로미터 남았다고 적혀 있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은 제암산 자연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정맥은 직진이다. 바로 오른다.
지금까지는 장흥과 보성의 경계를 걸었다면 이제부터는 오로지 보성 땅을 밟게 된다. 완만한 오르막 능선이다.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으로 내려간다. 묘지 1기가 나타난다. 길 좌측에 있다. 바로 안부사거리에 이른다. 안부에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산죽이 길게 이어진다. 안개가 걷힐 줄을 모르고 더 자욱하게 쌓인다. 그나마 햇빛이 없는 것은 다행이지만 약간 무덥다.
산죽 지대를 오르내린다. 다시 쉼터에 이른다. 좀 전에 만났던 쉼터와 모든 게 똑같다. 형태도, 재질도, 크기마저도 똑같다. 쉼터 주변에 조그마한 바위들이 있다.
579봉 정상에서(11:04)
오르막이 시작된다. 역시 주변엔 산죽이 있다. 오르막은 갈수록 가팔라지고 로프가 나타난다.
오르막이 완만한 능선으로 변하더니 봉우리 정상에 이른다. 579봉에 도착한 것이다(11:04). 579봉에는 등산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골치가 1.0, 일림산이 2.7킬로미터 남았다고 알리고 있다.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길 양쪽은 철쭉으로 빽빽하다. 한마디로 철쭉평원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길도 걷기에 최적인 흙길이다. 내리막길은 갈수록 완만해진다.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잠시 후에 사거리에 이른다. 골치에 도착한 것이다(11:21).
골치에도 쉼터와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에는 좌측으로 용추계곡이 1.4, 직진 방향으로 일림산이 1.8킬로미터 남았다고 알리고 있다.
시장기가 든다. 이곳에서 간식을 먹기로 한다.
다시 출발이다(11;35).
* 골치재에 있는 쉼터. 보성에서 설치한 쉼터는 모두 이런 형태다.
직진으로 오른다. 채 5분도 안되었는데 다시 사거리가 나온다. 이곳에도 쉼터가 있다. 좌측 아래쪽으로 임도가 보인다. 직진으로 오른다. 길은 계속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고 다시 봉우리 정상에 선다. 골치산에 도착한 것이다(11:56). 골치산으로 표기했으면서도 괄호에 작은봉이라고 부기한 것을 보니 봉우리가 또 있는 것 같다.
골치산 정상에도 이정표와 쉼터가 있고, 특이한 것은 정상에 넓게 퍼진 소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정표에는 일림산이 1.0, 한치재가 5.7킬로미터 남았다고 적혀 있다.
우측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 양쪽은 여전히 철쭉으로 빼곡해서 1센티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
키 큰 철쭉으로 걷는 길 양쪽이 울타리 쳐진 길. 그 가운데를 홀로 걷는다.
모든 것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
철쭉도 안개도 부드러운 흙길마저도.
그동안 긴 오르막에 대한 보상일까? 완만한 능선길이 계속된다. 이런 길만 이어진다면 백리길도 천리길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다.
* 숲이 없어서 햇빛 때문에 고생이지만 길은 더 없이 걷기에 좋은 흙길이다.
잠시 후에 이정표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오르막 끝에 또 봉우리 정상. 큰봉우리에 도착한 것이다(12:07). 큰봉우리도 역시 골치산이라고 괄호로 부기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이해가 간다. 골치산에는 큰봉우리와 작은 봉우리가 있다는 것일 것이다. 이곳에도 이정표가 있고 목재로 된 쉼터가 있다. 쉼터는 와상틀처럼 생겼는데 전망대로도 쓰이는 것 같다. 이정표에는 일림산 정상이 0.6킬로미터 남았다고 적혀 있다. 정상이 눈앞이다.
우측으로 내려간다. 숲이 없어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는 고행이 계속된다. 그나마 햇빛이 약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좌측에 묘지 1기가 나타난다. 묘지를 지나고서부터 산죽길이 나오더니 다시 철쭉능선으로 변한다. 삼거리에 이른다(12:17).
* 철쭉에 이어 간간이 산죽도 나타난다.
일림산 정상에서(12;23)
삼거리에는 이정표가 있고, 이정표에는 이곳이 정상삼거리라고 표기되어 있다.
우측으로 오른다. 오르는 길 양쪽은 철쭉으로 가득한 철쭉평원이다. 통나무 계단이 나오더니, 계단이 끝나고 봉우리 정상에 이른다. 일림산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12;23).
일림산 정상은 한마디로 황홀하고 복잡하다. 넓은 공터에 정상석, 이정표, 삼각점이 있고, 별도로 방위를 표시하는 것도 있다. 우량을 측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측우기 비슷한 것도 있고, 묘지 1기와 비석도 세워져 있다. 뭐가 이리 복잡한지...이 높은 산 꼭대기에...
그러면서도 안개속으로 남해바다가 보이기도 한다. 날씨만 좋다면 사방의 조망이 정말 괜찮을텐데, 아쉬움이 크다.
* 일림산 정상석과 삼각점
* 일림산 정상에서 바라본 호남정맥 줄기. 구름 때문에...
또 한가지 변화가 있다. 이곳에서부터는, 그동안 북에서 남으로 정맥 종주를 해오던 것이 북동 방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보성 땅에서 그 우측에 위치한 순천 광양을 향해서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호남정맥도 이젠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곳 일림산 정상에선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정상에서 이어지는 정맥길은 좌측으로 난 철쭉길로 가야되는데 무심코 진행하다간 다른 길로 가기 십상이다. 나도 헛길로 내려가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40여분 정도를 허비하고 말았다. 정확한 위치는 정상에 있는 묘지를 중심으로 왼쪽에 있는 길로 내려가면 되는 것이다. 묘지 오른쪽으로 가는 길도 있는데 이건 잘못된 길이다. 이미 지나온 제암산으로 향하는 길인 것이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걸 알고 다시 일림산 정상으로 되돌아 오니, 정상에는 보성 주민인 젊은 부부가 올라와 있다. 이들에게 물었다.
길 안내도 받고, 얼음이 든 시원한 물과 커피까지 얻어 마셨다. 사자봉에서 내려올 때 보성군에서 설치한 돌계단을 보고 보성에 대한 첫인상이 좋지 않았는데, 이들 부부로부터 환대를 받고서는 보성에 대한 인상을 새롭게 하게 된다.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친절하게 해결해 주었으니...
보성 주민이 일러준대로 묘지 좌측을 통해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계단으로 시작된다. 잠시 후에 사거리에 이른다. 그동안 지체된 것을 생각하니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바로 직진으로 올라간다. 다시 삼거리에 이른다. 삼거리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이정표에는 현위치를 봉수대삼거리라고, 그리고 한치재가 4.6킬로미터 남았다고 적혀 있다.
삼거리에서 우측은 봉수대로 올라가는 길이고 정맥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좌측으로 난 길도 양쪽에 철쭉이 빽빽하다. 빽빽한 철쭉의 호위를 받으며 내려간다. 철쭉길은 다시 산죽길로 바뀌고 쉼터 전망대에 이른다(13;21). 3분여를 지나니 발원지 사거리에 이른다(13:24).
발원지사거리에도 이정표가 있고, 한치재가 4.1킬로미터 남았다고 알리고 있다. 바로 지나간다. 직진이다. 5~6분을 더 진행하니 헬기장이 나온다(13;30). 이곳에도 이정표와 표지기가 있다. 이정표에는 용추폭포 주차장이 3.2킬로미터 남았다고 적혀 있다.
628봉 정상에서(13;43)
잠시 후에 626고지라는 곳에 이른다. 이곳에도 이정표가 있고, 한치재가 3.7킬로미터 남았다고 알리고 있다. 직진이다. 헬기장을 지나고 628봉에 이른다(13:43). 628봉 아래에 전망바위가 있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 득량만의 시원스런 탁트임에 넋을 잃는다. 황홀함 그 자체다.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을 것만 같은 평화로운 남쪽세상이다.
* 628봉에서 내려다 본 득량만
내려간다. 계단이 시작된다. 옆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내려가면서 바라보는 보성 앞 바다인 득량만은 보면 볼수록 시원스럽다. 정맥 종주를 멈추고 달려 내려가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다.
그동안 보아왔던 철쭉은 사라지고 전나무와 소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사이사이에 산죽도 보인다. 쉼터 삼거리에 이른다. 이정표가 있으나 방향만 표시되어 있고 거리표시가 없다.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한참을 내려가니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 안에는 요즘 한창 번성하고 있는 칡순이 얽히고 설켜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걷기 좋은 길은 계속된다. 그런데 갈수록 햇볕은 쨍쨍해져 무더위가 가중된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다. 요즘 일기예보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만은 틀린 것 같다. 이번 종주 결정도 구름이 많다는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출발한 것인데...
3분을 더 내려가니 삼거리에 이른다. 회령삼거리에 도착한 것이다(14:19).
회령삼거리에도 이정표가 있다. 직진 방향으로 한치주차장이 1.7, 우측 방향으로 회령다원이 1.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알리고 있다. 직진으로 진행한다.
413봉 정상에서(14:39)
완만한 능선이 계속된다. 표고차가 그리 크지 않은 봉우리 서너개를 넘고 413봉에 이른다(14;39).
413봉 우측 조금 아래에는 이동통신 안테나가 아주 높게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정맥은 좌측으로 90도 방향을 틀어서 내려가게 된다. 내려가는 길은 얼른 봐서는 알 수 없지만 주변에 표지기가 있고, 자세히 관찰하면 희미하지만 흔적이 나타난다.
좌측으로 내려간다. 급경사 내리막이다. 급경사에 이어 완경사 내리막이 시작되고 대나무 밭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실패한 내 경험을 먼저 소개한다.
대나무 밭에 들어서자 길이 보이지 않는다. 대나무밭 속에서 앞과 뒤가 막혀 고생하다가 가까스로 탈출해서 다시 좌측 산으로 오르게 된다. 산을 거쳐 내려가니 논이 나타난다. 논을 거쳐 밭에 이른다. 밭가에는 전기 철선으로 통제하고 있다. 경고문도 설치되어 있다. 고압전기가 흐르니 주의하라는. 이런 경고문은 자주 봤지만 겁주기 위한 것이란 걸 알기에 별생각 없이 넘는다. 젖은 손으로 짚고 넘다가 깜짝 놀란다. 실제로 전기가 통하는 것이다. 심하다. 너무 야박한 시골 인심에 실망한다. 밭작물 보호를 위한 것이겠지만 자칫 사람의 생명까지도 위험할 수가 있는데...
밭을 거치고 다시 논을 거쳐 895번 지방도로에 이른다. 목적지인 삼수마을 입구에 이른다(15;40). 원래 계획보다 50여분 정도가 지체되어 삼수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길을 잘못 찾은 사례이고,
제대로 된 정맥길은 대나무밭에 이르렀을 때 대나무밭으로 들어가지 말고 우측으로 돌아가서 길을 찾았어야 했지않나, 하는 생각이다. 다행이도 그 다음 기착지가 마을이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삼수마을 입구에는 큰 표석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는 학교 교사처럼 보이는 신식 건물이 있다. 마을 입구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간다. 그늘에서 작업하고 있는 마을 청년을 만나 길을 묻고, 식수를 부탁했다. 마을 창고를 가리키며, 들어가면 안에 수도꼭지가 있으니 맘껏 마시라고 한다. 다행이도 심성 고운 청년을 만난 것이다.
삼수마을 정자나무에서(16:00)
마을 청년과 헤어져 정자나무가 있는 사거리에 도착한다(16:00). 이곳에도 야외에 수도꼭지가 설치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이 일하러 갈 때나 들어 올 때 사용하는 수도꼭지인 것 같다. 이곳에서 세수까지 하고 몸을 식힌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지지난주에 만났던 부산산들산악회 소속 회원들이 도착한다. 모두 11명이라고 하는데 선두 주자 3명이 먼저 도착한 것이다. 이들도 호남정맥을 종주 중이다. 부러운 사람들이다. 단체로 버스를 대절하여 이동하니 오고가는 교통편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공동으로 여러 사람이 경비를 분담하니 부담도 줄어들테고...
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먼저 나선다.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쭈욱 올라간다. 지금이 감자 수확철인 모양이다. 도로 주변에 있는 밭에서는 감자를 캐는 아주머니들 모습이 눈에 띈다.
15분 정도를 올라가니 삼수고개에 이른다(16;15). 삼수고개에는 표지기가 있고, 이정표와 등산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정맥은 우측 임도로 이어진다.
임도는 최근에 개설했는지, 아니면 지금도 개설 중인지 마감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시뻘건 흙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좌측에 키가 큰 대나무가, 우측에 편백나무 숲이 나타난다.
임도를 따라 15분여를 올라가니 임도사거리가 나온다(16:30). 이곳에도 표지기와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정맥은 우측 임도를 따라 산으로 올라가면 된다.
여기서부터는 산꼭대기만 바라보면서 오르기만 하면 된다. 오르는 도중에 최근에 개설한 것으로 보이는 지그재그식 산길을 만나게 된다. 등산객을 위한 길이 아니고 다른 용도인 것 같다. 이렇게 20여분을 오르니 활성산 갈림길에 이른다(16:51).
활성산 정상에서(16:52)
갈림길에도 이정표가 있다. 우측 방향으로는 활성산이 0.03, 좌측 방향으로는 봉화산이 8.2킬로미터라고 적혀 있다. 이정표에 적힌대로 우측으로 진행한다. 1분도 채 못가서 활성산 정상에 이른다. 정상에는 마치 표지기 전시장처럼 많은 표지기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 활성산 정상에 있는 표지기. 마치 표지기 전시장 같다. 비실이 부부 표지기도 눈에 띈다.
인증샷을 마치고 바로 내려간다. 녹차밭이 나온다(16:56). 녹차밭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간다. 녹차밭은 최근에 제주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산에서 만난 계단식으로 가꿔진 녹색 평원이 신기하기만 하다. 녹차밭 끝에 이르러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사거리에 이르고, 사거리에서 직진하니 갈림길에 이른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올라가니 낮은 봉우리에 이른다.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니 다시 임도에 이른다(17:15).
임도를 가로질러 오른다. 날카로운 철조망이 앞을 막는다(17;23). 스틱을 이용해 철조망을 누르고 뛰어 넘는다. 조금 내려가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내려간다. 임도 좌측에는 계단식 녹차밭이 또 나타난다. 봇재다원이다. 봇재다원 아래쪽으로 건물이 보이고 건물 너머 도로에는 초고속으로 내달리는 자동차들의 역주 모습이 경쾌하게 보인다.
* 봇재 위 산에 있는 녹차밭
갈림길에 이르고,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길은 계단식이고 양쪽은 녹차밭이다. 영화속의 한 풍경만 같다. 그 풍경 속 주인공은 내가 되고...
녹차밭이 끝나고 봇재다원 건물들 앞을 지난다. 판매점도, 시음장도 있다.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가 코앞이다. 서둘러 내려간다.
봇재에서(17;28)
주차장이 나타나고 이어서 18번 국도에 이른다. 봇재에 도착한 것이다(17:28).
봇재 주변에는 많지는 않지만 서성거리는 관광객들이 보이고, 포장도로에는 많은 차량들이 달리고 있다. 또 도로 건너편으로 주유소와 휴게소가 보인다.
오늘은 이곳에서 마치기로 한다. 이젠 귀경길 교통편을 찾아야 한다. 이곳에서 보성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굴다리 있는 곳에 보성으로 들어가는 군내버스 정류장이 있다. 정류장으로 향한다.
다섯시가 넘었는데도 아직도 햇볕이 따갑다. 낯선 산속을 쉼 없이 헤맨 여름날 하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바닥난 체력에 육신의 고통은 심하지만 오늘도 사고 없이 해냈다는 안도감에 마음만은 가뿐하다.
이렇게 또 6월 중순의 토요일이 소리없이 지나간다. - 끝 -
* 봇재에서 장흥방향을 촬영.
* 봇재에 있는 군내버스 정류장. 여기서 버스를 타고 보성터미널까지 들어간다.
* 버스 정류장에 18:08분에 도착한 군내버스를 타고 보성 터미널로 들어가서, 서울행 고속버스를 찾았으나 이미 막차까지 떠나버렸고, 광주행 직행버스를 타고 광주로 가서 광주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귀경
# 교통편
1. 서울 - 광주
-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광주행 고속버스를 이용(05:30분 첫차, 5분 간격으로 자주 있음. 심야버스 02시까지 있음. 소요시간 3시간 30분)
- 영등포역에서 광주행 야간열차를 이용(22:05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이용. 4시간 20분 소요)
2. 광주 - 장흥
- 광주 광천터미널에서 장흥행 직행버스를 이용(06:05분에 첫차. 그 이후 자주 있음. 1시간 30분 정도 소요)
3. 장흥 - 신기마을, 공설 공원묘지
- 장흥 군내버스 이용(07:20, 09:00, 10:50, 14;15. 10분 정도 소요)
4. 봇재 - 보성(15분 정도 소요)
- 봇재에서 보성행 군내버스를 이용(12:55, 13:40, 14:45, 15:25, 16;25, 17:05, 18:15, 18:40, 19:40, 20;10, 21:00)
- 보성에서 봇재행 군내버스를 이용(06:00, 07:00, 07:20, 08:10, 08:30)
5. 보성 - 광주(1시간 30분 정도 소요)
- 보성에서 광주행 직행버스를 이용(약 30분 간격으로 07:00부터 21:00까지 있음)
6. 광주 - 서울
- 광주 광천버스터미널에서 강남행이나 동서울행 고속버스를 이용(10분~30분 간격 운행)
- 광주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이용
7. 관련기관 전화번호
- 장흥군청 061-863-7071
- 장흥군내버스 061-863-0636
- 장흥시외버스터미널 061-863-9036
- 보성군청 061-852-2181
- 보성교통 061-857-6393
- 보성 시외버스터미널 061-852-2777
첫댓글 여름철엔 기후가 불순하여.. 특히 장마철엔 습도도 높고 더위도 심하고 녹음이 많이 우거저
시야도 좁고.. 잘못하면 길을 잃을 수 있는 상황도.. 암튼 조급하게 서둘지 말고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장기 레이스를 펼처 나가게.. 늘 안전과 건투를 빌며..
요즘 난 허리 수술로 재활 치료중이네!
친구님~! 전라도 모든 산을 다 다니네요~!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