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릴 눈물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세상에 남아있는 것들과 세상 밖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하는 눈물....돌연한 어머님의 타계, 스승의 죽음....또 어느 때 보다도 많은 젊은이들이 가혹하게 민주주의 제단에 바쳐졌다....나른한 어둠이 나를 덮치려 하고 있다. 멈추지 않고 가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미래인데도...(1987년 간행 고정희 시집 「지리산의 봄」 자서>
☞시인 고정희, 역사의 어둠과 슬픔과 부조리를 떠메고 그 한가운데에서 시대를 뜨겁게 노래한 그녀, 그녀를 보내고 30년!
<고정희 30주기 문학제>가 열립니다. 6월 5일 토요일, 해남에 갑니다. 졸시 한 편 낭송할 예정입니다. 그녀와의 추억을 불러내어 목소리 가다듬을 때...울컥!하지않도록...미리 마음 내려 놓습니다. 해남 오실 기회 있으면 미리 예약해주시구요~^^
..........☆.....☆......
(고정희 30주기 문학제 낭송시)
천둥벌거숭이 노래 11
-그리운 사람 고정희
이민숙
.
불두화 정갈하게 손 모으는 오늘, 펼쳐 보여주던 육필원고를 생각합니다
아직 첫 시집이 되기 전의 또박또박 펜글씨, 가열차고 염결한 시심을 들이밀었던
시인이여 별빛 주목나무로 남은 언어여 정신이여!
그 눈빛으로부터 한 술 더 뜬 삭발의 머리!
차마 당신께 묻지 못하고 가슴에 꽝! 천둥치듯 그 심사만 간직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숱한 인연은 우연, 아니 모든 인연은 필연,
가슴에 화인처럼 박힌 채 영혼밖에 부를 길 없는 시간들!
시간의 껍데기와 살, 결코 비켜서지 못할 노래
“언어를 고민하지 마라 삶을 고민하라!”
당신의 눈빛으로 시를 쓸 수 있음에 이 어찌 축복 아니리오!
지리산 세석고원을 넘으며 썼지요 당신은,
*“발 아래 산맥들을 굽어보노라면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산머리에 어리는 기다림이 푸르러/천벌처럼 적막한 고사목 숲에서/
무진벌 들바람이 목메어 울고있다/나는 다시 구불거리고 힘겨운 길을 따라/
저 능선을 넘어가야 한다/고요하게 엎드린 죽음의 산맥들을/
온몸으로 밟으며 넘어가야 한다/
이 세상으로부터 칼을 품고, 그러나/ 서천을 물들이는 그리움으로/
저 절망의 능선들을 넘어가야 한다/막막한 생애를 넘어/용솟는 사랑을 넘어/... ...”
그 역사 오늘에 이르러 고립무원, 당신이 넘던 저 절망의 능선은 아직도 첩첩산중,
용솟는 사랑마저 여수의 동백 모가지 째 뚝뚝 끊어지는 오늘,
그러나 세석고원 철쭉 선혈이 흐르듯
우리의 그리움은 긏지 않았으며 눈물 폭포수처럼 뜨겁습니다
얼음 박인 철조망 허물어뜨릴 날 노래할 것입니다
당신께 기어이 부끄럽지 않게
우리 여럿이 어깨동무하고 해방을 자유를 어깃장 놓겠습니다
조선의 조선의 지리산의
조선의 조선의 백두산의
한강의 압록강의 그 하루를 둥글게 따스하게
혼불 맞이하듯 황톳빛 그리움으로 끌어안겠습니다
분홍꽃불로 타오를 지리산의 깊은 봄처럼
백두대간을 맨발로 흩뿌리길 염원한 1948년생 마고할미를 위하여
당신이여 고정희, 천둥벌거숭이의 빛이여!
*<지리산의 봄 4>/ 『지리산의 봄』/
......